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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에세이 소설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김광한
러브인 아시아
김광한
베트남 나트랑(1966년 여름)
테레비전 프로에 일주일에 한번씩 러브인 아시아가 나온다.한국의 청년(주로 나이많은 총각)과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중앙 아시아쪽의 처녀와 결혼해서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한국 남자에게 시집온 베트남 아가씨들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데 나는 이 프로를 보면서 이국 멀리 낯선 나라로 시집와서 부디 잘살아줬으면 하는 생각으로 이 프로를 본다.그러다가 문득 50여년이 다 되어가는 지난날의 이야기가 떠올라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서 추억에 젖어보기도 한다,
1966년 퇴계원의 모 자동차부대에서 사병계를 보고 있던중 그 부대가 베트남 파병부대로 선정이 되었다.부대 전체가 가는 것이 아니라 제대할 날짜가 먼 사병부터 선발해서 따로 부대를 창설하는 것인데 내가 데리고 있던 조수에 윤이병이 있었다. 윤 이병은 나보다 나이가 열살이나 많은 노병이었는데 경북 금능군(김천)에서 고추 농사를 짓다가 기피자 일체 단속에 걸려 뒤늦게 군대에 들어온 사람이었다.시골에는 이미 처와 자식이 있었는데 월남 차출이 됐다고 하니까 밤새도록 잠을 못자고 담요를 뒤집어 쓰고 울고 있었다.
파병된 사병들의 전사소식이 매일 들려오던 뒤숭숭한 때였다.나는 제대가 일년남짓해서 명단에서 빠졌다.윤이병을 보자 그대로 있을수가 없어서 인사계에게 부탁해서 내가 대신 가겠다고 했다.인사계는 내 말에 정신나간 놈이라면서 거기가면 죽을텐데 가만있으라고 했다.그 시절의 치기(稚氣)였는지 영웅심이었는지 윤이병을 대신해서 강원도 화천의 오옴리란 곳에서 6주 교육을 받고 춘천에서 군용열차를 타고 부산역 제 3부두에 집결 , 미국 상선을 타고 일주일만에 베트남 나트랑이란 곳에 도착했다.
그로부터 1년 6개월간 나트랑, 캄란, 투이호아, 닌호아 등에서 근무를 했다.한달 급료라야 병장이 43불, 지금 돈으로 4만원 남짓이었다.총만 들었지 베트남보다 잘살지도 못하는 최 빈국의 나라 대한민국, 그 시절 32만명이 파병이 되고 6천명이 전사하고 10만명이 이런저런 병으로 유명을 달리한 지금 그때의 젊은이들은 70노객이 되어서 고작 종로 3가나 외진 공원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는 신세로 젊은이들에게 괄시받는 여생을 대부분 보내고 있다.
1980년도 어느해 회사 직원의 조부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부천 심곡동의 어느 상가(喪家)를 갔는데 거기서 어떤 노인이 나를 유심히 보더니 혹시 김상병님이 아니냐고 하길래 그렇다고 하니까 그 노인이 바로 자신이 20년전 퇴계원 자동차부대의 윤이병이라고 하면서 넙죽 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당시도 60이 넘었으니까 지금 생존해있다면 80도 넘는 나이가 돼있을 것이다.죄짓고 못사는 것이 인생인 것같다.남에게 깊은 슬픔을 주면 그 슬픔이 어느땐가는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오는 것이 인생의 철칙인 것같다. 러브인 아시아에 나오는 베트남 아가씨들은 그 당시의 내나이 또래를 할아버지로 두고 있을 것이다.이땅에 시집온 모든 베트남, 아시아 여자들이 잘살아주기를 기도한다. 이 아이도 살았으면 할머니가 됐겠지.
1967년 김신조 일당 청와대 피습 사건 1년전에 육군 하사로 제대했다. 남들보다 군대생활을 7개월 더했다.68년에 다니던 중앙대에 복교, 69년도 2월에 졸업했다.벌써 46년전의 일이다.시계는 고장이 있는데 세월은 고장도 없는 것같다. |
첫댓글 선생님 제가 태어난해입니다1966년 초여름
미남입니다^^♥♥
저 멋진 총각 ㅡㅡ 황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