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대한 예의
임병식
양귀자의 단편소설 「복만동 이야기」를 읽다가 귀에 익은 말 하나를 만났다. 식량이 떨어져 쌀을 사 온 것을 두고 ‘팔아왔다’고 표현한 대목이었다. 내게는 아주 익숙한 말인데, 요즘에는 좀처럼 들을 수 없다. 산 것은 샀다고 하고, 판 것은 팔았다고 하는 것이 오늘의 말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의식 속에는 아직도 옛날의 말법이 남아 있다. 나 역시 양귀자의 소설 속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쌀이 떨어졌으니 쌀 팔아 오거라.”
아내가 병석에 누워 있어 살림을 돌봐주시던 어머니도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나는 ‘쌀을 사 오라는 말이구나’ 하고 알아들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 그 말을 다시 만나니 오래 헤어졌던 사람을 만난 듯 반가웠다.
예전 시골에서는 이와 비슷한 말법이 흔했다.
“형님 시아제가 이러드란께요.”
‘남편’이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상대방의 처지에서 ‘시아제’라고 불렀다. 자기 자리에서 한 걸음 비켜나 상대의 자리에서 사물을 부르는 말이었다.
‘쌀을 팔아 온다’는 말도 어쩌면 그런 말법과 닿아 있었을 것이다. 예전 사람들에게 쌀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하루의 끼니를 잇고 가족의 생계를 떠받치는 양식이었다. 쌀을 대하는 말에도 그 무게가 스며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문득 이 말이 지금도 통할까 궁금해졌다. 어느 날 마트에 가서 일부러 써 보았다.
“찹쌀 팔러 왔는데 어디 있죠?”
직원의 대답은 단호했다.
“우리는 개인한테 물건사지 않아요.”
나는 쌀을 사러 왔는데, 직원은 내가 쌀을 팔러 온 사람인 줄 알았다.
그제야 알았다. 그 말의 유통기한은 이미 끝났다는 것을. 이제는 시골의 촌부나 옛 소설 속에서나 간신히 목숨을 이어가는 말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말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 말을 낳은 마음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진지 드셨는가요?”
먹고사는 일이 어려웠던 시절, 사람들은 만나면 먼저 밥부터 살폈다. 잘 지내느냐는 인사보다 배를 곯지는 않았느냐는 물음이 먼저였다. 그 한마디에는 함께 가난을 건너온 사람들의 인정과 서로의 끼니를 살피던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러고 보니 ‘쌀을 팔아 온다’는 말에도 그런 마음이 깃들어 있었던 것 같다.
쌀 한 톨을 귀하게 여기던 마음,
남의 처지를 헤아리며 말을 건네던 마음.
오래된 말들이 우리에게 남겨놓은 것은 말 자체가 아니라, 사물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말은 사라져도 마음까지 사라질 필요는 없다.
말 하나에도 사물을 대하는 예의가 있었다.
(2026)
첫댓글 사라져 가는 옛말의 결을 포착해 그 속에 담긴 시대의 정서와 태도를 깊이 있게 길어 올렸군요! 양귀자의 소설에서 발견한 '쌀 팔러 간다'는 한마디를 출발점 삼아, 개인적 추억(어머니의 말씀, 시골의 어법)과 마트에서의 해학적인 일화로 자연스럽게 연결한 흐름이 매우 매끄럽습니다. 마트 직원과의 짧은 대화는 세대와 시대에 따른 언어 감각의 단절을 위트 있으면서도 직관적으로 보여주어 글에 생기를 더합니다. 단순한 어휘의 변천에 머물지 않고, 곡식을 단순한 상품으로 보지 않았던 '양식에 대한 경외'와 '서로의 끼니를 살피던 공동체의 온기'로 사유를 확장한 대목이 깊은 울림을 줍니다. 말 한마디에 깃든 예의와 사람다움을 차분하게 되짚어 보게 만드는 따뜻한 글입니다. ^^
살아져가는 언어에 대하여 생각해보았습니다.
쳇지피티가 이 작품이 가장 우수하다고 하네요.
'쌀을 팔아왔다'는 옛 말법 속에서 밥 한 끼의 귀함과 사람을 향한 따뜻한 배려를 읽어내신 선생님의 깊은 사유에 감탄하며 잘 읽었습니다. 모든 것이 흔해지고 가벼워진 오늘날, 사물 하나에도 예의를 갖추고 서로의 끼니를 살피던 옛사람들의 정성이 선생님의 글을 통해 다시금 환하게 빛나는 듯합니다. 언제나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깊은 울림으로 마음을 정화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늘 강건하시고 은혜로운 날들 가득하시길 소망합니다.
먹고사는 일이 절체절명이던 시절에는 '식량'이 그야말로 목숨을 이어가게 하던 것이었지요.
사람을 만나면 먹을 먹었는지 안부를 묻는 일상이기고 했습니다.
곡물 거래를 곧대로 말하지 않고 반대로 했던것은 식량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던가 합니다.
쌀 팔아 왔다 쌀 팔러 간다는 말은 제 부모님 시대의 상용어였지요 돈 사러 간다는 말도 썼는데 이는 시장에서 쌀을 돈으로 바꿔오는 일이었어요 지금과 정반대의 표현을 썼던 건 아마도 돈을 중심에 둔 시대풍조인 듯합니다 쌀을 산다는 말은 쌀을 팔아 돈을 취한다는 뜻이었지요
제 소년 시절엔 마을 어른을 아침에 만나면 지니 자셨습니까 하고 인사했지요
끼니때가 아니면 어디 가십니까 했습니다 극노인들은 뉸도 어둡고 하여 인사를 드리면 걸음을 멈추시곤 오 니가 누구냐
하고 묻기 일쑤였고 저는 뒤첨 이 샌 아들입니다 하고 여쭈었지요 아련한 추억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곡물의 거래어법은 먹는 곡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이제는 그런 말을 듣기도 어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옛날의 상용어는 이제 드라마속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고 박제된 박물관의
자료에나 보존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