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큰스님 반야법문] (85)원산스님-화엄의 바다
흔히들 화엄경은 바다와 같다. 화엄경은 화장장엄 세계라 해서 바다에 다 비유를 많이 했습니다. 왜 그러느냐면 이 물이 흘러서 어디로 가느냐면 바다로 다 모인단 말입니다.
빗물도, 산물도, 강물도, 눈물도 어디로 갔느냐고 찾아보면 전부 바다로 다 가 있습니다.
그와 같이 모든 물은 바다로 다 모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 우주 만법의 진리가 전부 화엄경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화엄경 여래수량품에는
『시방 세계바다의 일체 모든 부처님들이 다 모든 보살들을 위하사
세계바다와 중생바다와
법계가 안립(安立)한 바다와
부처님바다와 부처님 바라밀바다와
부처님 해탈바다와 부처님 변화바다와
부처님 연설바다와 부처님 명호바다와 부처님 수명바다에 대하여 설하여 주소서.
그리고 원컨대 일체 보살들의 서원(誓願)바다와
일체 보살들이 발심하여 나아가는 바다와
일체 보살들의 도를 돕는 바다와
일체 보살들의 승(乘)의 바다와
일체 보살들의 행(行)의 바다와
일체 보살들의 벗어나는 바다와
일체 보살들의 신통바다와
일체 보살들의 바라밀바다와
일체 보살들의 지위(地位)바다와
일체 보살들의 지혜바다를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하사 이와 같이 연설하여 주소서.”』하고 나옵니다.
여기 보면 세계의 바다와 중생의 바다라 했어요.
세계가 한없이 넓고, 욕계, 색계, 무색계 또 중생의 세계, 무정세계, 지정각세계,
이 많은 세계가 바다처럼 그와 같이 또 그 속의 중생들이 바다같이 많잖아요?
그래서 중생의 바다라 합니다.
부처님도 또 한없이 많기 때문에 부처님 바다가 있어요.
부처님의 바라밀바다,
생사가 없는 열반에 가는 그 바다.
해탈의 바다. 변화의 바다, 변화도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전부 바다에다 비유했습니다.
바다는 열 가지 공덕이 있는데 들어갈수록 점점 깊어집니다.
겉에는 백사장도 있고 얕잖아요. 그러나 들어갈수록 점점 깊어지죠.
얼마나 깊은지 산더미 같은 고래가 거기 살아도 안보입니다.
그래 바다는 들어갈수록 점점 깊어지듯이
이 화엄경도 보면 자꾸 보면 볼수록 점점 깊어지는 겁니다.
제일 처음 범부의 지위에서부터 시작하는데 그걸 십신이라 해요.
그 다음이 십주법문, 십행법문, 십회향법문, 십지 법문으로 이어 집니다.
범부에서 점점 들어가서 나중에 성인에 되어가지고
끝에 가서 등각 묘각해서 부처가 되는 겁니다.
바다도 옅어져서 점점 깊이 들어가듯이 화엄경도 그와 같습니다.
바다는 불수사시(不受死屍)라 죽은 시체를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합니다.
바다에 만약 사람이 죽든지 하면 시체가 바다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둥둥 떠서 바깥으로 내보내지 바다에 안 놔둡니다.
화엄경에도 일체 좋지 못한 그런 것은 안 받아 들여요.
파계를 하고 살생하고 도둑질하고 하는 좋지 못한 것은
화엄경에 둘 수 없다 해서 바깥으로 내 쫓아 버려요.
또 바다는 다른 물이 그 가운데 들어가면 다 본명을 잃어버립니다.
낙동강 물이나 두만강 물이나 무슨 강물이든지 바다에 들어가면 이름을 다 잃어 버려요.
바다뿐이지.
그와 같이 화엄경에 들어가면 무슨 다른 좋은 얘기 있더라도
다 없어지고 화엄경만 남는 겁니다.
그 다음에 바다는 동일한 맛이라, 맛이 한가지 입니다.
강물에 있을 때는 오염도 되고 냄새도 나고 하지만
바다에 들어가면 짠맛 한맛 밖에 없어요.
화엄경속에 들어가면 다른 진리가 전부 화엄경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마음자리 밝히는 그 하나로 돌아가 버린다 말입니다.
마음 바다는 무량한 진보(珍寶)가 있습니다.
한량없는 보배덩어리가 바다에 다 있죠.
진주도 바다에서 나오고 금, 은, 온갖 보배가 바다에 다 있어요.
그와 마찬가지로 화엄경에는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온갖 무량한 방편과 신통, 그리고 우리가 알 수 없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어요.
바다는 또 능히 그 밑에 이를 수 없느니라 해서,
그 끝이 어디 있는지 그 밑바닥에 갈 수가 없듯이
화엄경도 그 깊이를 측량할 수가 없어요.
그 동안은 제가 머리 깎고 스님이 되어
화엄경을 여러 차례 보았는데도
볼 때마다 기분이 틀려요.
조금 더 알아지는지는 모르겠어요.
완전히 다 알라고하면 부처님 같이 되어야 완전히 아는 거지,
부처님이 되기 전에는 우리가 화엄경이 뭐 아무리 설법을 잘하고 해도
화엄경의 진짜 뜻을 모른다 그 말입니다.
“여인음수 냉난자지(如人飮水 冷暖自知)라”
어떤 사람이 물을 마실 때 차고 더운 것을 제가 마셔봐야 알지 안 마셔 보고는 모르듯이, 부처님처럼 도를 깨쳐야 만이 화엄경의 깊은 이치를 알 수가 있는 거지,
그 밑바닥이 너무 깊어서 그 밑까지 이를 수 없는 것이 화엄경입니다.
바다는 광대 무량하리라. 육지가 넓다 하지만 바다보다는 좁지요.
바다는 광대하고 무량합니다.
그와 같이 화엄경도 아주 광대한 그런 지혜가 있고
또한 모든 선교방편이 그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또 바다는 대신(大身)이 거(居) 하는바 다.
바다는 고래 같은 그런 큰 몸뚱이들이 거기 살고 있다.
그와 같이 화엄경에는 광대한 장엄한 아주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또 바다는 조수가 한(限)을 넘지 아니한다.
조수가 밀물 썰물이 밀려오더라도 한계가 있는거지
백두산 꼭대기까지 못 올라가잖아요.
해일이 있었다 해도 영축산을 덮쳤다는 그런 해일은 없잖아요.
그런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와 같이 부처님의 해탈행도 한계를 넘지 아니한다는 겁니다.
또 바다는 널리 큰비를 받아들이되 넘치지 아니한다.
아무리 장마가지고 폭풍우가 오고하더라도 바다는 넘치지 아니하듯이
일체 부처님의 여래 대법의 그런 비를 능히 화엄경에서 받아들이더라도
이 화엄경은 싫어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
그래서 이 화엄경을 바다의 성품과 같다고 비유를 해서 말했습니다.
화엄경의 여래현상품에서는
모든 보살과 대중들이 생각으로
18가지의 부처님법과 19가지의 바다에 대해서 질문한거에 대해서
부처님께서 전체적인 대답을 하는데,
입안의 치아 사이에서 광명을 놓아가지고 시방의 한없는 세계를 비춥니다.
화엄경에서는 광명을 열 번 놓는데 여래 현상품에서 두 번이나 놓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단 얘기입니다.
화엄경을 대충 살피면
부처님은 도를 깨닫고 그 깨달은 가운데
그 자리에서 27일 동안 가만히 계시고 설법은 거의 다 보살들이 합니다.
그러면 부처님은 무얼 하느냐면, 광명(光明)을 놓습니다.
이 품에서는 면문 중치라, 입속의 이빨사이에서 광명을 놓는다고 나옵니다.
그 광명을 보니까 시방의 한없는 세계가 그 속에 다 비치는 겁니다.
또 그 광명 속에서 저 많은 세계에 있는 보살들이
각기 화장장엄세계를 다 볼 수 있는 겁니다.
부처님의 광명으로 시방의 중생들이 다 깨우치고 나서는
비로자나 부처님의 거처에 와 가지고
비로자나 부처님을 친견하고 공양을 하였는데,
모든 보살들이 온갖 법계가 안립(安立)한 먼지 속에서 두루 들어갔으니,
그 낱낱 먼지 속에 한없이 광대한 세계가 있고
또 낱낱 세계 속에 삼세의 부처님들께서 생각 속에서
꿈에 자재하게 나타나 보이는 법문으로 세계의 한없는 중생들을 깨우치셨습니다.
그러한 세계의
“일미진중 함시방(一微塵中 含十方) 일체진중 역여시(一切塵中 亦如是)라,
한 미진 가운데서 시방세계가 들어있고, 먼지 속에 세계가 다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내 조그만 눈 속에 여러분들이 이 속에 다 들어 가 있죠.
저 산 위에서 내려 다 보면 이 큰 세계가 조그만 눈 속에 다 들어와 있어요.
시방세계 속에 내 눈이 들어가 있고 내 눈 속에 시방세계가 들어 있어요.
크고 적은 것이 서로 닿아 서로서로 다 통하게 되어 있어요.
일다(一多)가 자재하고 대소(大小)가 자유자재한 그런 내용이 화엄경의 법문입니다.
첫댓글 아래 법혜님의 댓글을 읽고 불수사시하는 화엄의 바다라는 스님의 법문이 생각나서 다시 모십니다 _()()()_
^^ 고맙습니다. 복습하고 공부하고 갑니다.............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불수사시가 무언가 했더니...^^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