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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알미네 원문보기 글쓴이: 솔체
가을 불국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이다. 또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불국사는 부처님의 화엄의 세계인 불국토를 현세의 사바세계에 구현시킨 열정적인 신앙의 완성체이다. 석가탑과 다보탑을 비롯한 수많은 국보문화재와 보물문화재가 있고 매년 수백만의 내외국인 방문객들이 한국의 뛰어난 불교예술작품들이 자리한 불국사를 방문하고 있다. 과거의 뛰어난 불교문화재 뿐만 아니라 현재의 불국사는 강원과 선원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을 하고 계시고 불조의 혜명을 이어가는 중심적인 수행 처이기도 하다. 또한 불국사는 한국의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의 전시관으로서 세계에 한국불교와 한국의 불교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1600년 한국불교 수행정진과 지혜의 도량으로서 오늘도 끊이지 않는 용맹정진의 푸르른 서기가 흐르고 있는 곳이 바로 불국사이다.
<天地는 나와 한 몸이니라> 왜 그런가 하니 마구니와 싸우다가 돌로 된 팔이 부러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다치지 않은 다른 금강역사는 팔에서 피가 솟아 올랐다.
<기와를 간다고 거울이 되랴> 어느날 회양선사가 기왓장을 갈고 있었다. 이를 본 마조선사가 물었다. (월산선사)
* 일체 유심 (一切唯心) 도무지 실다운 뜻이 없다는 뜻입니다. 연기법칙(緣起法則)상대성 원리로 보아도그렇게 됩니다. 많다고 하면 벌써 부분입니다.정말 마지막 말로 전체를 많다고 하더라도 그건 하나 뿐이니까 많은것도 아니고 사실 또 하나도 아닙니다.
그건 전체에 그만한 부분을 빼고 하는 말이므로 그것은 전체에 비하면 적다는 말이 됩니다. 그건 크다는 말도되고 또 작지도 않다는 말도되고 그런게 아니란 말도되고 그럽니다.
바로 무실무허(無實無虛)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하자면 환의 존재이기 때문에 허망하다 실답다 하는 말을 붙일수 없는존재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도 무실무허 하다가도 그 경지에 들어서 놓으면 참다운 것도 있고 허망한 것도 있고 그렇게도됩니다. 이렇게 하나가 되어진 그경지는 시간을 여의어 일체 생각이 다 끊어진 때고 무분별지(無分別智) 본래의 실상 자리인데 그러면서 거기서 내내 중생살이와똑같고 하지만 보고 듣고 하는 마음을 지어서 작심으로 하는게 아니라무위(無爲) 무심으로 하는겁니다.
일체가 모두 마음으로 만들었다 그러는데, 마음이만들었다고 하면 만든 마음과 만들어진 객관이 있게되어 거기에는 주관 객관이 또 벌어질 수 있으니 일체유심이라 지을조(造)자 하나를 빼버려야 알기 쉽읍니다. 거울 가운데 동서 남북이 있어 보이지만이것은 빛으로 그림자로 거울면에 나타난 것이지 거울을 뚫고 들어가서 동서남북상하 중간이 된 것은 아닌것과 같읍니다. 꿈도 역시 그와 같아서 전체 그대로가 거리가 없는 거고 실제로 멀어 거리가 있으면서 또 그대로 없는거고 그대로 전체가마음이고 그러니 일체법이 개시불법(一切法皆是佛法)이고 무실무허(無實無虛) 한 경지까지 하나가 되고 한 덩어리가 되어서 , 주관 객관의 관념이 없어져서 없어 졌다는 생각조차 없어지면 구공(俱空)인데 그래도 구공 됐다는 잠재의식이 남아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공의 도리가 하나로 쉽게 환용되지 않다가 점점 닦아서 수치(修治)돼들어가면,참 그야말로 미세한 습기까지 전자가 움직이고 에느르기가 움직이는 것보다더 미세한 폭으로 움직이는 그 <습기> 까지 마음에서 다 끊어지면 그때는 전체가 다하나가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체를 몽뚱그려한 덩어리로 만들어 놓는거냐 하면 그런것이 아니라 제망중중(帝網重重)의 도리로 그 가운데는 모래도 있고 흙도 돌도 있지만 모래 한알 그게 또 우주.인생 전체 이기도합니다.
그러니까 큰걸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런것이 아니고여기 먼지 한알이 그와 같아서 그 가운데 어떤거 하나를 들추어 이것이<아뇩다라삼먁삼보리> 다 이렇게 말할수가 없다 이겁니다.
<凡夫노릇 그치면 곧 聖人> 혀 없는 사람 있는가? 몸뚱이 없는 사람 있는가? 생각 없는 사람 있는가? 역대 조사와 천하 선지식 가운데 팔다리가 세 개씩인 화상이 있던가? 그런데 삼세제불과 천하 선지식은 무엇이 잘나서 부처이고 조사이며, 여기 대중은 무엇이 못나서 범부중생인가? 영가스님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여기 있는 대중들은 그대로가 부처로다. 더 이상 무슨 증명이며, 인가가 필요하단 말인가?
청운교(靑雲橋) 및 백운교(白雲橋) / 국보 제23호 위쪽이 청운교, 아래쪽이 백운교이다. 계단을 ‘다리(橋)’라고 한 것은 속세로부터 부처님의 세계로 건너감을 상징한 것이다. 청운교는 16단, 백운교는 18단이며, 계단 경사면이 45°의 안정된 각도로 되어 있다. 청운교와 백운교가 이어지는 부분의 아래쪽은 무지개 모양의 홍예로 되어 있어, 우리나라 홍예교와 홍예문의 초기 형태를 보여준다. 석축(보물 제1745호), 연화교 및 칠보교(국보 제22호)와 함께 8세기 중엽에 건립되었으며,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통일신라의 계단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죽이는 칼 살리는 칼> 그러므로 산승은 이 자리에 오르기 전에 이미 30방을 얻어 맞았도다. 왜 그런가. 팔만대장경과 삼라만상이 벌어졌으니 이는 유언(有言)이고 동(動)이 아니던가. 그러나 무언의 모양은 유언이요, 부동의 모양은 동이라, 유언과 동을 떠나 무언과 부동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 어찌해야 속이지 않고 30방을 모면할 수 있을 것인가. 누가 눈밝은 사람 있으면 이 산승을 불쌍히 여겨 그 방법을 일러주기를 바라노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동즉30방(動卽三十棒)’이라 잘못 이르면 다시 30방이니 조심하고 또 조심할지어다. 초학자는 불야타 조야타(佛也打 祖也打)로 부처도 치고 조사도 때리면 되는 줄 알지만 이는 사구(死句)에 머무는 것이니라. 일단 부처도 치고 조사도 쳤으면 다시 그것을 살릴 줄도 알아야 한다. 이는 유(有)가 곧 무(無)요, 무가 곧 유이기 때문이니라. 평산 처림(平山處林)선사에게 인사를 하러 들렸다. 이 때 처림선사가 나옹에게 물었다.
나의 칼은 사람을 능히 죽이기도 하지만 또한 능히 살리기도 합니다.”
연화교(蓮華橋) 및 칠보교(七寶橋) / 국보 제22호 청운교 및 백운교(국보 제23호)보다 규모는 작으나 형태와 구조가 매우 비슷하다. 계단은 45°각도의 안정된 기울기를 보이며, 연화교와 칠보교가 이어지는 부분은 무지개 모양의 곡선으로 되어 있다. 연화교의 층계에는 계단마다 넓은 연꽃잎이 새겨져 있는데, 계단을 밟는 사람이 아미타 부처님의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석축(보물 제1745호), 청운교 및 백운교와 함께 8세기 중엽에 건립되었으며,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통일신라의 계단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짚신이 곧 부처이니라> 늘 나무만 하는 것이 무료하고 고생스러워 절에 있는 노스님한테 가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노스님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나무를 하면서도 '짚신이 불이라' 참외밭을 가꾸면서도 '짚신이 불이라'하고 일념으로 의심을 했다. 어느날 이 처사는 다 떨어진 짚신을 불에 태우다가 깨달았다. 부목은 좋아라 하면서 노스님을 찾아가 아뢰었다. 나중에 누가 찾아와 요즘은 비심비불(非心非佛)이라 한다고 하니 그래도 자기는 즉심시불이라 했다. 부목처사의 얘기도 대매법상의 얘기와 같지 아니한가. 일념으로 의심하여 참구하면 ? 즉심시불?이나 ?짚신시불?이나 다 같은 것이다. 이것이 화두를 바르게 참구하는 것이니 알음알이로 알려고 하지 말고 바로 보라. 그러면 내일이라도 눈앞이 환해지는 소식을 얻으리라.
<참다운 神通과 妙用> 열반묘심(涅槃妙心)을 전한 사실은 너무나도 유명한 일이다. 첫번째는 영산회상에서 설법을 하다가 부처님이 꽃을 들었는데 이 소식을 안 가섭존자만이 혼자 빙그레 웃었다. 두번째는 다자탑 앞에서 설법을 하고 있는데 가섭존자가 앉을 자리가 없었다. 부처님이 가섭을 불러 당신이 앉은 자리를 반으로 나누어 앉게 했다. 세번째는 부처님이 열반에 들 때 가섭존자가 임종을 못보고 늦게 도착했다. 그 때 부처님은 관 속에서 두 발을 내보였다. 이것이 바로 삼처전심이다. 이심전심(以心傳心) 즉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는 것이니 이는 우리 선문(禪門)의 참다운 신통묘용(神通妙用)이다. 선문의 신통묘용이란 하늘을 날고 땅 속으로 들어가는 둔갑술과 같은 것이 아니라 정법을 상전(相傳)하되 마음에서 마음으로 하는 것이니 이는 오직 선문에만 있는 것이요 다른 종교나 학문에는 없는 것이다.
칼이 날카로운 것을 철부지 아이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과 같으니 그래서 고인은 여인음수 냉난자지(如人飮水 冷暖自知)?라 했다. 물을 마셔보아야 스스로 차고 더운 것을 알지 말로서는 아무리 설명을 해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맛을 아는 사람만이 서로 신통묘용이 통하는 것이니 제불제조(諸佛諸祖)가 서로 눈 한번 찡긋하면 알아차리고 인가를 하고 심인을 전하는 것은 다 이와 같은 묘용의 일이니라.
자네도 그것이 어떤 꿈이었는지 내게 한번 물어보지 않으려는가?"
금동비로자나불좌상金銅毘盧舍那佛坐象(국보 제26호)
금동아미타여래좌상金銅阿彌陀如來坐像(국보 제27호)
다보탑(多寶塔) / 국보 제20호 <법화경(法華經)> ?견보탑품(見寶塔品)?의 내용에서 유래한 것이다. 두 탑 모두 8세기 중엽 신라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불국사를 건립했을 때 세워졌다. 다보탑은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삼층석탑 형식인 석가탑과는 달리 목조 건축의 여러 요소들을 조합한 독창적인 형태의 탑으로, 높이 10.3m이다. 기단 위에 놓인 돌사자는 원래 4마리였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없어져 현재 1마리만 남아 있다. 탑 내부에 안치되었던 사리장엄도 1925년의 수리공사 때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