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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8.11(주일) 요한복음 10:1~21 ‘나의 목자되신 예수님’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선한 목자’(11절)라고 선포하시며, 우리를 ‘양’으로 표현하시면서 진정한 목자를 따르는 양들의 특징을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먼저 양의 중요한 특성이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 양은 매우 애정이 깊은 동물입니다. 사무엘 하 12장 3절에 보면 양을 기르는 사람이 마치 자식 다루듯이 합니다. 순한 자식이 부모를 따르듯이 양는 사람을 잘 따릅니다. 사람의 손에서 풀을 받아 먹습니다.
둘째. 양은 비공격적입니다. 순하고 복종을 잘합니다. 사자나 이리, 뱀, 시랑이나 곰 같은 억센 짐승 앞에서는 오금을 못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53장 7절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우리 주님을 가리켜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양으로 비유 했습니다.
셋째. 양은 끊임없는 관심과 관리가 필요한 동물입니다. 양은 자기 방어의 힘이 약한만큼 목자의 소리에 잘 따릅니다. 그러나 조금만 방심하면 웅덩이에 빠져 버리고 맙니다.
넷째. 무엇보다도 양의 중요한 특징은 무리를 지어 살기 좋아 합니다. 또한 풍뎅이가 한번 나자빠지면 자기 힘으로 일어서지 못하듯이 양도 마찬가지 입니다. 돌봐 주는 목자가 없다면 결국 죽고 맙니다.
양은 이렇게 쓸모가 많으면서도 연약 합니다. 그래서 양은 목자가 필요 합니다. 인류가 살아 오면서 양만큼 사람의 재산이 되어 떼를 지어 살면서도 사람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짐승입니다. 그래서 양의 특질은 항상 목자와 연관 됩니다.
목자를 히브리어로 ‘로에’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에는 헬라어로 ‘포이멘’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에 있는 포이멘은 장로를 가리켜 말합니다. 장로는 ‘감독자’라고 합니다. 목자라고도 부릅니다. 장로라는 말은 경험이 많은 연장자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경험많고 덕망있는 연장자를 장로로 선출 합니다.
성경은 양과 목자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양과 목자의 관계에 대한 비유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오늘 드리는 본문 말씀에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서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모든 인류를 양으로 보십니다. 그리고 인류는 선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유대지방에서 밤이 오면 목자는 양들을 우리 안에 몰아 넣습니다. 우리 안에 있지 않으면 어두운 밤에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벽으로 두르기도 하고 혹은 산나무 울타리로 하는 수도 있습니다.
대개는 두서넛 목자들이 한 울타리를 공동으로 사용합니다. 양들이 우리 안으로 다 들어가면 번갈아서 울타리 문을 지킵니다. 한 사람이 그 울타리 문을 지키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쉬기도 합니다. 아침이 오면 목자들이 울타리 문으로 옵니다. 각자가 자기 양의 이름을 부릅니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주인된 목자를 따라 나섭니다. 목자는 그 양들을 몰고 들로 나갑니다. 주님은 이런 모습을 비유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말씀 하십니다.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을 모든 죄인을 포함한 온 인류의 리더로 생각해 볼 때
구글에서 2008년부터 지난 10여년간 좋은 리더에 대해 연구해 온 결과들을 발표했습니다. 최고의 실적을 내는 훌륭한 리더들을 관찰했고 공통적인 모습을 발견했죠. 총 10가지입니다. 물론 미국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지만 분명 귀담아 들을 얘기도 많습니다. 다음의 ‘훌륭한 리더의 10가지 조건’을 보며 다시 한 번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과 비교해보면서 나 자신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길 바랍니다.
1) Is A Good Coach? 좋은 리더는 훌륭한 코치입니다. 문제 발생시 그 해법을 제시하기 보다는 그 순간을 코칭의 타이밍으로 활용하죠. 직원에게 인사이트를 주거나 스스로 문제를 풀도록 안내해 주는 역할에 머뭅니다. 그들에게 직접 고민할 시간을 제공하면서 앞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죠.
2) Empowers Team and does not micromanage 직원에게 권한을 주고 일일이 간섭하지 않아야 합니다. 모든 구성원들은 깐깐하고 사소한 리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신 직원이 스스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실험하고, 본인의 작업스타일을 개발할 수 있는 자유와 책임을 부여하는 리더를 원하죠. 그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바로 리더의 역할입니다.
3) Create an Inclusive team environment, showing concern for success and well-being 좋은 리더는 관대한 업무환경을 제공하고, 성취에 대해 늘 주목합니다. 또한 팀 구성원들의 신뢰를 최우선적으로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높은 수준의 심리적 안정감이 얻어질 때, 팀원들은 멤버들과 위험을 기꺼이 공유하려 하고, 또 실수에 대한 관대한 문화 속에서 성과를 낼 수 있죠. 만일 위험과 도전을 두려워하는 리더라면 직원들 역시 새로움을 추구하기 어려워 합니다. 언제나 그들에게 위험을 감수할만한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해야 합니다.
4) Is Productive and Result-oriented? 좋은 리더는 생산적이며 결과를 중시합니다. 또한 감정적 터치로 구성원들에게 동기부여하고 그들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5) Is a Good Communicator-listens and share information? 좋은 리더는 소통능력을 갖고 있고 경청하며 정보를 공유합니다. 직원들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갖고 있죠. 그래서 리더는 직원들에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업무와 능력들을 경청하며 가능성을 파악합니다.
6) Supprts Career Development and discusses performance 좋은 리더는 직원의 경력개발을 지원하며 성과에 대해 함께 생각해 줍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직원들은 모두 본인이 가고 싶은 길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방향을 설정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죠. 또한 리더 개인의 사적인 이익보다 팀원들의 이익과 목표 달성을 우선시 하고 지원합니다.
7) Has a Clear vision/strategy for the team 좋은 리더는 팀을 위한 명확한 비전과 전략을 갖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아는 것은 기본. 팀원들이 어둠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도록 계속해서 안내합니다. 그래서 팀과 조직을 위해 직원들에게 필요한 행동과 현실적인 기대, 구성원들의 구체적인 역할에 대해 언제나 주의하고 알려줍니다.
8) Has Key Technical Skills to help advise the team 좋은 리더는 팀원을 도울 수 있는 테크니컬한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직원이 만일 업무 상 어려워 하는 부분이 있다면 팔을 걷어 붙이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며 그 문제를 콕 집어내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직원들에게 큰 존경심을 받습니다.
9) Collaborates across the Company 좋은 리더는 회사 전체를 조망하며 일합니다.
어떤 매니저들은 팀 칸막이를 만들며, 팀내에서 다른 팀과의 경쟁을 유발하면서 ‘우리 vs. 그들’이란 인식을 심어줍니다. 반면 훌륭한 리더는 큰 그림을 보며 회사 전체의 이익을 생각합니다. 무의미한 경쟁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팀내 협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10) Is a Strong Decision Maker 좋은 리더는 결단력이 있습니다.
어려운 의사결정을 미루거나 피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구성원들로 하여금 왜 그러한 결정을 내렸는가에 대해 납득할 만큼 충분히 설명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결정을 내린 것을 통해 구성원들과 함께 이행할 것을 약속합니다.
선한 목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첫째 선한 목자는 양들을 인도합니다.
1,2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니라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여기 양과 선한 목자는 인도하고 인도를 받는 관계입니다.
양은 선한목자의 인도를 받아야 삽니다.먼저 선한 목자는 양을 우리 안의 문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둘째, 선한 목자는 양을 압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선한목자는 자기 양을 압니다. 자기 양의 소리만 들어도 압니다. 자기 양의 모습을 멀리서도 압니다. 자기 양의 체질이 어떤지 습관이 어떤 지 심지어는 생각까지도 압니다.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을 안다는 사실입니다.
세째,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
11절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5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주님은 양의 목자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양들의 생명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주님이 당하신 그 많은 상처들, 그 많은 아픔들 그 십자가의 죽음이 바로 양된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려주셨습니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위해서 주님이 죽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기를 바랍니다. 나를 주님이 기억하고 죽어주실만큼 귀한 존재이다라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10장은 우리 신앙의 진정한 리더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확신을 주며, 우리의 신앙생활에 중요한 지침을 제공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나의 목자로 고백하는 성도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1.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릅니다(2,3절).
선한 목자의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목자를 따릅니다.
양과 목자는, 무엇으로 의존되어 살까요? 그것은, 음성입니다. 양은 시력이, 아주 약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양은 청력이 발달하여, 목자의 음성을 '잘 알아 듣는다'고 합니다. 수많은 위험과, 맹수의 공격에 노출되어 살지만 양이 안전하게 풍성한 꼴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청력에, 의존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에게 있어서 듣지 못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듣지 못하면 따라 갈 수도 없고, 듣지 못하면 보호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목자가 자기 양들의 이름을 각각 부르면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갑니다(3,4절). 성도들도 마치 양들이 목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를 따르듯이 예수님의 목소리를 통해 그의 인도하심을 따릅니다. 그러나 목자의 음성이 아닌 다른 소리에는 현혹되지 않습니다(5절). 세상의 유혹과 거짓된 가르침은 ‘타인의 음성’(5절)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성도는 세상의 소리에 현혹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음성에만 집중합니다. 참 성도는 예수님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선한 목자되신 하나님의 음성을 인식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과 더 깊이 연결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여전히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너무 바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거의 듣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로마서 10장 9~10절은 여러분이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구원을 받으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이제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됩니다(고린도후서 5:18). 아직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 바로 받아보세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그분의 영을 보내주셔서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16~17절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나신 후 진리의 영을 보내셔서 그들과 함께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안에. 신자는 내 안에 성령이 계시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 3절에서 양들이 그분의 음성을 듣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그분이 이미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요한복음 10장 4절에서 양들이 그분의 음성을 알기 때문에 그분을 따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낯선 자의 음성을 거부하고 그를 따르지 않고 그에게서 도망칩니다(요 10:5).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시간'입니다. 그 사실이, 우리의 혼과 육에 전이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영적인 기관을 '직관'이라고 합니다. 직관은 하나님의 말씀을 감지하는 영적센서가, 작동하는 기관입니다.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의 직관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우리의 혼과 육이, 재빠르게 반응을 합니다. 그때 기쁘기도 하고, 평안하기도 하고, 주체할수 없이 황홀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성령의 감동'이라고 말하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영적 직관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우리는 평강과, 기쁨과, 소원으로 감지를 하고 성령님과 교통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절제되지 않는 소원, 또는 주체할수 없는 평강과, 지속적인 기쁨으로 하나님은, 당신의 음성을 양들인 당신의 자녀들에게 전달하십니다. 대체적으로 하나님의 뜻은, 시간이 갈수록 기쁘고 평안하지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답답하고 불안한 것이 특징입니다.
그 다음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법은 말씀을 반복하여 듣게 하시거나, 생각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생각나게 하고, 기억나게 하시는 영이십니다. 만일에, 우리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그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가를 알기 원한다면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직접 말씀하셨지만 지금은, 기름부어 세우신 당신의 종들의 설교와, 기록된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예를 들면, 설교를 들을 때나 묵상할 때 평상시에는 '로고스'로 들리던 말씀이, 그날 따라 '레마'로 들릴때가 있습니다.
‘로고스’는 기록된 말씀, 혹은 선포되는 말씀으로,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레마’는 나를 위해 준비된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특별히 주시는 말씀입니다. 설교를 들을 때나 말씀을 깊이 묵상할때, 우리는 레마로 들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면 그 레마의 말씀이 바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인 것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음성은, 환경과 사건 그리고 사람을 통하여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속에 '하나님 자신을 계시해 두셨다'고, 로마서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자연 만물만 주의 깊게 보아도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임재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쟁을 통하여, 질병을 통하여, 실패를 통하여, 상처를 통하여 사고를 통하여, 말도 안되는 고난을 통하여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은,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그냥 넘기지 않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애를 씁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하는 모든 영적 센서가. '항상 열려있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은 내 주변의 사람을 통하여도 심지어는, 어린아이의 무심코 지껄이는 소리를 통하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번에 우리들교회 아웃리치를 통하여 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수련회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담당 목사님이 8월말에 세종에서 THINK 목회자세미나가 있는데, 참석해보시면 어떨까요? 라고 했을 때는 바쁘다고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날이 지날수록 참석해야 겠다는 마음을 강하게 주셨고, 아내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설득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함께 사흘을 연가를 내고 등록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도 ‘영혼을 살리는 교회’로 쓰시고자 하시는구나 라는 음성을 주시고, 그에 순종하여 등록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루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기대가 됩니다. 여러분은 요즘은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까?
성도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성령의 내적감동을 통해, 그리고 주변의 상황 속에서 예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분의 인도하심을 따릅니다. 이는 마치 양이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따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시편기자는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고 이끄신다는 의미로 그분의 말씀을 ‘등과 빛’에 비유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나와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동행의 훈련’을 받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고, 그 분을 신뢰하며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법, 즉 한 발자국씩 인도를 받아 걷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동행’이라는 방법으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고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 방법이 비록 당시에는 답답해보여도 결국 가장 확실하고 안전하며 가장 아름답고 풍성한 인생의 길을 가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10절).
적용) 나는 날마다 누구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까? 세상에 있는 거짓 목자의 음성입니까? 참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입니까?
2. 목자의 음성에 반응하여 따릅니다(4,5절).
목자를 따르는 양은 단순히 목자의 음성만 듣는 것 뿐 아니라, 그 음성에 반응하여 따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목자로 여기고 따르는 성도들도 단순히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음성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여 따릅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며,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헌신합니다.
부자청년 (마 19:16-26)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이 청년은 영생에 대한 깊은 관심과 그것을 갈구하며, 소원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영생에 대한 그의 간구가 얼마나 간절하고 진지했는가는 그가 예수님에게 나아오는 태도를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0:17에 보면 그는 힘을 다해 달려와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물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더우기 그는 부자였다고, 그것도 어지간한 부자가 아니라 심히 부유한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진 자로 성경은 묘사하고 있고, 누가복음에 보면 거기에다가 관원이었다고 하니 돈과 권력을 아울러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그 많은 재산과 권력을 소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것만 가지고서는 안되겠다. 이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요, 더 귀한 것, 영생이 있음을 깨닫고 영생 얻기를 소원했습니다. 더우기 혈기방자한 청년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시자, 내가 어려서부터 이런 것들을 다 지켰다고 대답할 만큼 그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만하면 어느모로 보나 세상적인 안목에서나 신앙적인 면에서나 전혀 흠잡을 데가 없는 모범적인 청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자 청년은 ‘선한 선생’, 스스로의 힘으로 선을 행하여 의로워질 수 있는 인간의 전형을 예수님에게서 발견하고 나아온 것입니다. 달리 표현한다면,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선을 행하여 의로워질 수 있는 길을 말해줄 수 있는 선생이라 생각하고 그 방법에 대해 물은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에게서 스스로의 힘으로 선을 행하여 의로워질 수 있는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을 본 것입니다. 하나의 선한 인간, 그 스스로의 힘으 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인간의 가능성, 인간의 전형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의도를 알지 못하고 스스로 의로와질 수 있다고, 율법을 다 지켰다고 그 정도는 다 지켰다고 고집하는 청년을 예수님께서는 주시하여 보시면서 사랑하여 말씀하시되 그가 대견해서, 그만큼 율법을 지켰으니 대견해서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그를 불쌍히 여기시는 사랑으로 말씀하시되 ‘아직 너에게 부족한 것이, 남은 것이 한 가지 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표현들은 한결같이 너는 다 지켰다고 장담하나 온전하게 지킨 것이 아니라 부족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의 수준이 얼마나 엄중한가 하는 것을 일깨우기 위해서, 그리하여 그 청년이 죄인임을 스스로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청년에게 이웃 사랑을 그럼 한 번 실천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이웃 사랑이란 네가 그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는 재산을 하 나 남김없이 몽땅 팔아서 가난한 사람, 그 재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청년에게 여러가지 계명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이웃 사랑의 계 명을 실천해 보라고 하셨는지에 대해서도 잠깐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웃 사랑의 계명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첫째가는 계명보다 작은 계명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를 사랑하는 사람은 영적이고, 내적인 만큼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 실천의 정도나 여부를 가늠하기 힘든 반면에, 이웃 사랑은 구체적인 대상을 가지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구 체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인 만큼 그 실천 여부를 확인하기 쉬운 사 랑입니다. 결국 이웃 사랑을 실천해보라고 한 것은 네가 이 작은 계명도 지키지 못하면서 더 큰 계명,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네 생명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수 있겠는가! 이 작은 계명 하나도 지키지 못함을 네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지 않느냐 이래도 네가 죄인임을, 네 힘으로는 결코 의로워질 수 없음을 알 수 없는가라고 하는 뜻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 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청년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재물이 심히 많은 고로 욕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도 못하면서, 그러면서도 자기가 죄인됨을 엎드려 고백하고 회개하지도 못하고 여전히 계명을 지켜서, 선을 행해서 영생을 얻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 의를 고집하면서 번민과 고통에 휩싸여 돌아가는 청년을 보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청년이 가지고 있는 재물에 대한 사랑, 이 세상 것에 대한 사랑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장애가 된다고 하는 그런 뜻만이 아닙니다. 무언가 자기 것을 많이 가진 사람, 영적으로 부자인 사람, 자기 의가 많은 사람, 나는 이런 저런 일을 했다고 자기를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천국에 들아가는 것이, 영생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부자청년은 예수님을 선한 목자로 고백하고 따라가지 못하고, 결국 자기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고 자기 의를 버리고 목자되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데, 결국 근심하여 예수님을 떠나게 됩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적극적으로 따라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성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 양들인 우리를 위해 스스로 목숨까지 버리셨던 적용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자기를 부인하고 기꺼이 순종하셨습니다. 그 자발적인 희생으로 죄인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양을 위해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 사랑을 몸소 삶으로 보이셨던 분이 바로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이십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도 말씀을 적용함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마5:13~16)이 되어 내 곁에 있는 지체가 구원받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다 부족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미 내가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소금과 빛’이 되었다는 엄청난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이 교회를 통해서 하는 조그마한 행동들이 세상에 엄청난 ‘파급효과(나비효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믿고 말씀을 통한 작은 순종, 헌신의 한 걸음을 믿음으로 내디뎌야 할 것입니다.
적용) 나는 내 곁에 있는 지체가 구원받도록 어떤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3. 목자와 깊은 교제를 하며 따릅니다(14,15절)
선한 목자를 따르는 양들은 목자와 깊은 교제를 나눕니다.
14-15절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본문에서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안다’ 는 부분을 원문대로 직역하면 ‘그리고 내가 내 것들을 알며 내 것들 또한 나를 안다’ 입니다. 참 목자와 양들이 가지는 관계의 긴밀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특히 ‘알고’, ‘아는 것이’ 로 번역된 ‘기노스코‘ 는 히브리어 동사 ’야다‘를 번역한 헬라어로, 지식적으로 인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상호관계를 통해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출 33:17; 신 34:10).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자기 양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주님의 아심은 독점적인 앎, 구체적인 앎, 시종(始終)을 아는 앎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마치 성부가 성자를 알고 성자가 성부를 아는 것같이, 남편이 아내를 알고 아내가 남편을 다 아는 것 같은 앎을 가리킵니다(3절).
예수님은 자기 양들을 모두 아십니다. 양의 이름을 아시고, 음성도 아시고 양의 형편을 모두 아십니다.
마치 목자가 양 한 마리 한 마리를 알고, 양들도 목자를 잘 아는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는 말씀에서 성도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는 ‘사랑과 순종의 조화’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이는 단순한 의무적인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행위입니다. 또한 계명을 지키는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더욱 깊이 깨닫고,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계명을 완벽하게 순종할 수는 없지만,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적용) 나는 말씀을 적용하고 순종함으로 목자되신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까?
[큐티인간증] [신앙인 독립선언, 강영창]
저는 사명감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격무에 시달리다보니 야근을 하다 막차 시간에 버스를 놓치지 않고 타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늘 시간에 쫓기며 일하는 모습만 보이니 커피 한 잔 같이 마시며 이야기 나눌 동료도 없었습니다. 그럴수록 저는 더 인정받고자 독기를 품고 일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만을 바라는 삯꾼 리더였던 저는 결국 그 자리를 내려놓게 되었습니다(12~13절).
그러다 3년 전 어느 날, 야근을 하다가 힘들어 보이는 한 동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그와 이야기를 나눠야 겠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동료의 사정을 들어보니 이사 간 집에 문제가 생겼고, 업무 스트레스까지 겹쳐 사면초가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신앙인님을 밝히며, 저 역시 힘든 직장생활 속에 교회 공동체에 속해 가고 있음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기도해주며 신앙생활을 하도록 권면했습니다. 그러자 그 동료도 결혼 전에 뜨겁게 신앙생활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 일이 하나님이 돌아오라고 주신 사건임을 고백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은 그 동료에게 말씀이 들리는 은혜와 가족 모두 주게 돌아오는 기적을 허락하셨습니다. 지금 그는 직장에서 저의 든든한 동역자로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직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면 약점이 잡히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숨긴 채 오직 인정을 받으려고만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날 위해 죽어주신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 받는다고 선언하니 하나님이 직장인으로서의 소명을 깨닫게 하시며 동역자의 축복도 더해주셨습니다. 세상에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내 삶의 주권은 주께 있습니다’라고 선포함으로 자유를 누리게 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적용) 직장 동료와 정기적으로 만나 큐티한 내용을 나누겠습니다. 직장에서 회식할 때 크리스찬이라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정중히 말하겠습니다.
결론
11절의 ‘선한 목자’는 단순히 양을 잘 돌보는 목자를 넘어 양들에 대해 희생적인 사랑과 인격적인 관계 뿐 아니라 보호와 인도, 양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분임을 의미합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선한 목자되신 주님을 잘 따르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