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지난 36년 이상 동기라고 여겼던 장신대 신학대학원 100여 명 동기들의 카톡방에서 나왔습니다. 나의 신앙과 신학이 더 이상 그 방에 머물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동기들에게 마지막으로 글 하나 썼는데, 친구들과 공유합니다.
경애하는 81기 동기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 공동체 의식이 강하고, 나름 교회와 지역사회에서 크게 기여하시는 동기 여러분이 계셔서 그동안 행복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여러분의 시야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나는 토론방이 자유로운 토론을 위한 방으로써 예의를 갖추면 무엇이라도 토론하거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방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나의 소견으로 자유로운 토론의 주제는 목회현장과 정치현장 포함한 우리 삶의 현장에서 경험하거나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사안에 대해서 성찰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가능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동안 나는 토론방의 토론이나 의견이 너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이 아닌가 안타까워서 균형을 잡는데 작게라도 기여하겠다는 마음으로 나의 생각을 나누거나 나의 생각에 준한 다른 글을 퍼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나의 마음과 달리 불쾌하게 여기는 동기들이 종종 발견되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자유로운 토론문화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모른 체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른 체 하기에는 정도가 지나친 것 같아서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경애하는 동기 여러분께 먼저 질문합니다.
1. 우리 카톡방에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토론방의 취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까? 게다가 현재의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고,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사립학교법에 대해서 비판하고, 이재명을 비판하는 것은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윤석열을 비판하거나 이재명을 지지하는 것은 동기들의 공동체를 균열시키는 정치적인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습니까?
2. 그동안 몇몇 동기들이 동성애를 비판해온 것은 정당한 것이고, 무속과 주술, 신천지와 통일교와 연루된 이제는 대통령이 된 (말도 안 되는) 그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은 비판이 되는 것이 맞습니까?
나는 한국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질타를 당하는 현실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는 사람입니다. 가톨릭이나 불교에 비해서 호감도나 신뢰도가 바닥인 한국교회가 윤석열을 지지했다고 해서 앞으로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오히려 몰락의 더 깊은 자리로 나가지 않을까 심히 염려하고 있습니다.
신천지 OUT을 버젓이 교회 입구에 붙여놓은 한국교회가 신천지를 배려한 결과로 그들의 절대적인 보은의 지지를 받아 20대 대통령으로 취임할 윤석열에 대해서 기도의 응답이라고 한 글을 읽었습니다. 돌출적인 이러한 글에서 믿음이 부족한 나만 절망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윤석열은 선거유세에서 공정과 정의를 외치며 정권교체를 주장했고, 드디어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해서, 부산저축은행과 대장동, 검찰의 부당한 수사 지시와 거래 등에서 수없이 드러난 그의 범죄와, 온갖 경력의 위조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등에서 드러난 그의 부인 김건희의 범죄, 공문서를 위조하고 국가와 개인을 상대로 수십억 원, 수백억 원의 부당한 돈을 갈취한 그의 장모 최은순의 범죄 등을 모두 묻어두고 가야 하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면, 공정과 정의가 세워지려면, 어떤 누구의 범죄라도 분명히 짚고 가야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는 81기 동기 여러분이 무엇을 공정이라고 무엇을 정의라고 생각하는지, 무엇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무엇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이라고 생각하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나는 한국교회의 문제가 순진한 평신도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사악한 목회자들에게서 비롯된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물론 그런 목회자들을 배출한 신학자들에게도 문제가 크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적어도 우리 동기들이 신학적인 사고를 제대로 하는 목회자들, 독서를 열심히 해서 최소한의 인문학적 소양이라도 갖춘 균형감 넘치는 목회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우리 동기들이 자신의 왕국과 자신의 교회를 만들려고 물불을 가리지 않기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충성을 다하는 진실한 목회자들, 평신도들 앞에서 목에 힘을 주며 섬김을 받으려 하기보다는 그들에게 제대로 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겸손히 섬기는 목회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나는 동기 여러분의 카톡방이 소설가 이청준씨가 말한 [당신들의 천국]으로 전락하지 않고, 서로 소통하는 가운데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자신을 키워나가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혹시 연세대학교 부근에 오시는 81기 동기들이 계시다면 언제라도 연락을 주시길 바랍니다. 나의 연구실에서 차라도 대접하겠습니다. 81기 동기 여러분의 인생과 목회가 더욱 행복하고 더욱 보람되기를 기도하며 이만 줄입니다. 오늘도 샬롬입니다.
2022년 3월 11일 여러분의 동기였던 정종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