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런디피티(Serendipity)와 항생 물질 페니실닌(Penicillin)
- 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 회장 정승남 -
세런디피티(Serendipity)란 기지(機智), 지혜(智慧), 재치(才致)라고 말할 수 있다. 태양과 지구 사이, 지구와 달 사이에 보이지 않는 인력(引力)이 작용하며, 지구에 보이지 않는 중력(重力)이 작용하듯이 인간과 인간 사이, 인간과 사물 사이, 사물과 사물 사이, 우주 만물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인력(引力)이 작용된다.
그 작용되는 인력(引力)이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집념을 갖고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정성을 쏟아 부으며, 자신의 지식과 교양 및 상식을 넓혀 가면서 실력을 배양하고 예지력(叡智力)을 키워 나갈 때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세런디피티(Serendipity)인 것이다.
세런디피티(Serendipity)에 의한 귀중한 발견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알렉산더 플레밍 박사(Dr. Alexander Fleming 1881.8.6. - 1955.3.11.)에 의해 1928년에 세계 최초로 발견된 페니실린일 것이다.
그러나 이 발견에 얽힌 이야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세렌디피티가 있으며 플레밍의 발견이 얼마나 중요했던 것인지에 대하여 주목할만한 속편이 있는데 그 속편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플레밍의 생애에는 제각기 연결이 잘 안되는 사연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그 중에서 어느 것 하나만 없어도 성공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며, 그의 친구이자 연구 동료이던 퍼네트 교수가 플레밍의 죽음 앞에 바친 조의를 표하는 글에서 “그런 것들이 단순한 우연이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라고 말한 그대로이다.
플레밍(Fleming)은 1991년 스코틀랜드의 에어셔 주의 시골에서 태어났다. 그가 일곱 살 때 아버지가 사망했다. 그 때문에 모친은 농장을 운영하면서 4남매의 자기 자식과 몇 명의 의붓자식을 길러냈다. 플레밍은 다섯 살이 되자 1.6Km 거리에 있는 학교를 걸어서 다녔으며 열 살 때에는 6.4Km의 학교를 다녔다. 12세 때에는 학교와의 거리가 26Km나 되어서 킬마녹 학원에 기숙하였으나 그래도 철도역과 집 사이의 왕복 19Km를 매주 걸어야 했다. 킬마녹에 1년반 있다가 런던의 형에게로 가서 폴리테크닉(대학 수준의 종합기술전문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그러나 형편이 나빠져서 오래 계속할 수가 없었다. 16세가 되어서 플레밍은 해운회사에 취직했으며, 여가가 생겨 런던의 스코틀랜드 자원봉사자 조직에 들어갔다. 이 그룹에서는 그는 수구(水球)팀에 가입했었는데 어느 때인가 런던대학 부속 성모마리아병원의 팀과 시합을 한 적이 있었다.
몇 년 후, 그는 약간의 유산을 상속했다. 형은 그에게 의대에서 공부할 것을 권유했다. 런던에는 12개의 의대가 있었으나 플레밍이 알고 있는 의대는 과거에 수구시합을 한 적이 있었던 성모 마리아 병원(St. Mary's Hospital Medical School)과 관계가 있는 런던 대학(London University)뿐이었으므로 결국 그곳으로 입학했다. 같은 무력 앨름로스 라이트가 미생물학 교수로서 이 대학으로 부임해 왔다. 플레밍은 처음에 외과 의사가 될 생각이었으나 졸업 후 라이트경의 연구실에 취직하였으며, 그 후 1929년에는 미생물학 교수가 되어 일생을 이 연구실에서 지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플레밍과 라이트는 프랑스로 파견되어 부상병의 치료를 담당했다. 그 당신의 의사들은 전장에서의 부상자 치료에 오로지 소독약을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플레밍은 당시 가장 많이 사용되던 소독약인 석탄산(폐놀)이 이로운 점보다는 해가 더 컸는데 그 원인이 세균을 죽이기 전에 먼저 신체를 지키는 백혈구를 죽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1922년 플레밍은 세균은 죽이지만 백혈구는 죽이지 않는 항생 물질을 세런디피티적으로 발견했다.
플레밍이 감기에 걸렸을 때 자신의 콧물을 조금 채취해서 배양을 했다. 황색의 세균으로 가득 찬 배양 접시를 살피고 있을 때 그의 눈물 한 방울이 접시를 조사해 보니 눈물이 떨어진 부분은 깨끗해져 있었다. 플레밍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탐구심에 의해 눈물은 세균을 재빨리 분해하면서 인간의 조직에는 해가 안 되는 물질이 함유되어 있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눈물에 함유되어 있는 항생 효소를 그는 리소자임(lysozyme)이라고 이름 지었다. 리소자임이 죽이는 세균은 비교적 무해한 것이기 때문에 별로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나 후에 설명하는 바와 같이 발견은 페니실린(Penicillin) 발견에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전주곡이었다.
1928년의 여름, 플레밍은 유행성 독감을 연구하고 있었다. 실험실의 평상시 일로 페트리 접지(뚜껑이 있는 평탄한 유시 접시) 속에서 배양한 세균을 현미경으로 살피고 있던 플레밍은 하나의 접시 속에서 이상하게 아주 깨끗한 부분이 있는 것은 발견했다. 잘 살펴보았더니 아마도 뚜껑이 열려있을 동안에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한 점의 곰팡이 주위가 깨끗해져 있는 것이었다. 리소자임의 경험으로 보아 플레밍은 이 곰팡이가 배양 접시 속의 포도상 구균을 죽이는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플레밍은 나중에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다.
리소자임에 관한 이전의 경험이 없었던들 아마도 세균 학자들처럼 그 접시를 버렸을 것이다… 또 아마도 몇 명의 세균 학자는 내가 발견했던 것과 같은 변화를 발견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항생 물질에 대한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배양접시는 간단히 버려졌을 것이다… 나는 이 오염된 배양 접시를 ‘제기랄’ 하면서 버리지 않고 좀 조사해 보기로 했던 것이다.
플레밍은 이 곰팡이를 나누어 푸른 곰팡이인 페니실린 속(屬)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여 그것으로부터 얻어지는 항생 물질을 페니실린이라고 이름 지었다.
후에 그는 “수 천 가지의 곰팡이가 있고 수 천 가지의 세균이 있는데 마침 알맞은 시간, 마침 알맞은 장소에 그 곰팡이가 떨어졌다는 것은 마치 복권에 당첨된 것과 같다”고 말했다. ‘수 천 가지의 세균’이란 적절한 표현이며 페니실린은 포도상 구균을 함유하는 많은 세균에 유효하지만 다른 몇 가지 세균에는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페니실린이 유효한 세균에는 인간에게 있어서 흔하면서 심각한 전염병의 원인이 되는 것이 많이 함유되어 있었다.
1928년 당시 전염병에 곰팡이를 이용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1877년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와 그의 공동연구자 J. F. 주베르는 한 미생물이 다른 미생물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것을 밝혔다. 고대에는 이집트인이나 로마인들이 빵에서 얻은 곰팡이를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으나 빵에 생기는 곰팡이에는 수천 가지의 종류가 있고 전염병에 유효한 물질을 만드는 것은 그 중에서도 극히 적었을 것이다. 플레밍은 이것을 틀림없이 잘 알고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놀라움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플레밍은 페니실린이 동물에 대해서 독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인체의 세포에 대해서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실험을 계속했다.
이것이 언젠가는 치료약으로서의 진가를 발휘할 것으로 제가 믿게 된 것은 백혈구에 대해서 해가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간의 혈액 중에서 실험하면 미정제(未精製)의 페니실린은 1,000분의 1의 농도에서도 포도상 구균의 생육을 완전히 제해했습니다만 백혈구에 대해서는 원래의 배양기(培養基) 그 이상의 독성은 없었습니다… (병원 환자의) 몇 사람에게 사용해 보았더니 결과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경이적인 것은 없고 생각하건데… 이것을 농축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페니실린의 농축을 시도했는데 알아낸 것은… 페니실린은 쉽게 분해 되며, 그리고 우리의 간단한 방법으로는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설파닐아미드가 큰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화학요법이 주목을 끌게 되었다. 플레밍의 공동연구자 레이스트릭이 페니실린을 분리시켜서 농축하려고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으며 페니실린에 관해서는 그 후 몇 년 동안은 손대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30년 대 후반에 들어서서 옥스포드 대학의 병리학 교수 플로리(Howard Walter Florey)는 그가 옥스퍼드대학으로 초빙한 나치 독일의 유태인 난민인 생화학자 보리스 체인(Ernst Boris Chain)과 공동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그들은 먼저 플레밍이 발견한 항균성 효소 리소자임과 가타 항생 물질에 대해서도 연구를 시작했으나 바로 이들 중에서도 가장 유망한 페니실린이 연구의 주된 대상이 되었다.
성모 마이아 병원의 플레밍에게는 친숙하지 않은 분리나 농축의 세련된 방법을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이용할 수 있었으며, 플로리나 체인인 그러한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옥스퍼드 대학의 그룹은 페니실린의 농축과 정제에 성공하였으며, 먼저 생쥐를 이용하여 실험한 후에 포도상 구균이나 기타 세균에 의해 중증의 감염증에 걸린 환자에 대하여 치유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있었다(인간에게 사용된 최초의 페니실린은 병원의 납작한 접시 속에서 배양된 것이었다. 환자의 요에서 회수하여 재사용되기도 했는데도 불구하고 약이 부족해서 임상 시험이 빨리 중단되는 일도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군대의 병자나 부상병을 치료하기 위한 긴급성 때문에 페니실린의 대량 생산이 영국과 미국의 쌍방에 있어서 최대의 관심사가 되었다. 플로리(Howard Walter Florey)가 미국을 방문하여 영국에서 이용되고 있는 추출과 제조 방법을 설명하였으며, 대서양을 사이에 둔 양측의 화학자들은 페니실린의 화학 구조를 결정하기도 하고 합성 또는 발효로 이것을 만드는 방법의 연구에 몰두했다. 이 불안정하고 복잡한 분자의 최초의 화학 합성이 이루어진 것은 전쟁이 끝난 훨씬 뒤였으나, 발효에 의해 이것을 제조하는 방법의 개발은 전쟁 중에 경이적인 속도로 진보했다.
발견 당시와 마찬가지로 페니실린의 제조법에 관해서도 세렌디피티(Serendipity)가 관련하고 있다.
플로리가 페니실린의 대량 합성법에 대해서 상담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을 때 그는 일리노이 주 피오리아에 있는 미국 농무성의 북부농학연구소를 방문했다. 그 연구소는 당시 잉여 곡물의 공업적 이용법을 찾고 있었으며, 이와 관련해서 옥수수의 제분 과정시 부산물은 점성(粘性)이 있는 추출물의 처분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이 추출물을 페니실린의 배양기에 넣으면 놀랍게도 곰팡이의 수가 10배나 많아졌다.
피오리아 연구소에서는 다음으로 페니실린을 생산하는 곰팡이의 개량종 개발에 나섰다. 전 세계에서 몇 백 종류의 곰팡이가 수집되어 피오리아연구소에서 테스트되었다. 믿기 어려운 일로 곰팡이 추적에 가장 큰 공은 그 지방의 메리 헌트라는 한 부인에게 돌아갔는데, 그녀는 새로운 곰팡이를 찾는데 너무 열심이어서 ‘곰팡이 메리’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그녀는 ‘화려한 황금빛’의 곰팡이가 나있는 칸탈루프 멜론(참외의 일종)을 피오리아의 과일 시장에서 사가지고 왔는데 이 새로운 계통의 곰팡이는 페니실린의 생산량을 20배로 올렸던 것이다. 영국 런던에서 우연히 발견된 마법의 약을 생산함에 있어서 미국 중서부의 한 고을 피오리아가 이토록 현저한 공헌을 하리라고 어느 누가 상상인들 했을 것인가?
전쟁 중 수천 명에 달하는 생명이 이 페니실린에 의해서 구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페니실린과 화학적으로 친척 관계인 세팔로스포린을 포함해서 그 외에도 항생 물질을 찾으려는 연구가 성행했다. 새로운 항생 물질 중에는 항생 물질을 찾으려는 연구가 성행했다. 새로운 항생 물질 중에는 페니실린에 저항력이 있는 세균에 대해서 유효한 것이 있었다. 플레밍, 플로리(Howard Walter Florey) 그리고 체인(Ernst Boris Chain) 이 세 사람은 1945년의 노벨 생리의학상(Nobel Prize for Physiology or Medicine in 1945)을 수상했다. 이어서 이 세 사람 모두에게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제거하고 목숨을 구했다는 공적이 인정되어 작위가 수여되었다.
알렉산더 플레밍경(Sir Alexander Fleming)에게 있었던 우연도 그의 지성과 통찰력, 예지력 및 집중력, 그리고 끊임없이 연구하는 노력과 끈기가 없었더라면 모두 다 헛되었을 것이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떤 집념을 갖고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정성을 쏟아 부으며 자신의 지식과 교양 및 상식을 넓혀 나가면서 실력을 배양하고 예지력을 키워나갈 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막연히 공부만을 착실히 할 것이 아니라, 큰 목표를 세우고 정성을 기울여 집념을 불태워야 한다. 학생 자신의 마음 밭에 이상(理想)과 야망(野望)의 나무를 심고 가꾸어 그 대지(大志)를 펼쳐 나가야 한다. 냉철하게 사색하고 올바르게 비판할 줄 아는 창조적 지성을 배우며, 인간다운 덕성과 건전한 인격을 연마해야 한다.
이러한 집념과 사색이야 말로 자신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날고 진부한 관습을 파괴하는 방법이며, 자기 확립을 위한 창조적인 모습이 될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 모두가 플레밍과 같은 지혜와 세런디피티(Serendipity)로 빛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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