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수산한못 지나치면서 한라산 봉우리 눈풍경에 감탄 한번, 그리고 알현하듯 한라산 신령님께 오늘도 모두 행복하게 무사하게 하루 일과가 펼쳐지고 마무리되길 마음 속으로 빌어봅니다. 오늘의 여정은 청명한 햇살 아래 눈덮힌 정상의 모습을 여지없이 종일 드러낸 한라산풍경 좇기라고나 할까요.
도로를 달리는데도 눈 앞에 한라산풍경이 펼쳐져 있으면 단숨에 달려가 꾸벅 절하고 싶습니다. 오래 살았던 서울과 서울근교로 치면 3월 정도의 날씨가 제주도 1월 겨울날씨입니다. 왠만해서는 영하의 기온으로는 가지 않으나 육지의 3월처럼 날씨의 굴곡과 바람이 몰아다주는 한기가 꽤 아프도록 시릴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청명+온화 그 자체입니다.
태균이와 준이를 주간활동보호센터에 내려주고나서, 완이랑 처음으로 단둘이서 오름행 등반을 했습니다. 이승악오름은 진입전 탐방로를 걸어본 적이 있으나 오름행은 오늘 처음입니다. 이승악 탐방로에서는 한라산 정상이 계속 눈에 들어옵니다. 이승악오름 정상에서 올려다보는 한라산도 서귀포쪽 바닷가 풍경도 근사합니다.
형들이 없어서인지 등반시작 얼마되지 않아서는 완이가 애를 먹입니다. 걷는 것도 느적느적, 계단에 주저앉아 버티기도 하고, 자꾸 신발도 벗어버리고, 급기야 중간에서 제가 먼저 올라와서 전망대에서 풍경감상하고 있는 사이 일도 벌어집니다.
홀로 등산온 저비슷한 또래의 여자분의 팔짱을 끼고는 따라 내려가려고 가니 깜짝놀란 그 여자분의 고성이 전망대에까지 선명하게 들립니다, '엄마어딨어?' 전망대에서 완이 이름을 부르니 그 여자분의 반응이 바로 옵니다. 하는 수 없이 후다닥 전망대에서 내려와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완이를 수습하는데... 이 녀석 아무에게나 들러붙는 이 버릇 어찌하려나...
알아듣던 말던 '처음본 사람에게 이러는 거 안돼안돼'라고 몇 번을 강조하며 팔로 X자를 만들어 주의시킵니다. 아름다운 경치와 다양한 수종들이 꽤 멋진 이승악 숲길 감상은 어쩔 수 없이 완이감시와 보조로 일관되고, 늘 무엇을 해도 적응이 느린 녀석이기에 정상에서 내려오면서 걷기에 좀 적응을 하는 듯 합니다.
좀 웃기지만 이승악 오름 둘레길은 돌다보면 이래저래 만나게 되어있는데 완이가 실례를 했던 그 여자분을 세번이나 마주쳤습니다. 그 정도되면 인연이건만 암튼 마주칠 때마다 죄송했노라고 사과드리고... 꽤 빠르게 운동을 하는 듯 합니다. 제주도 특유의 나무들의 이름하여 지질에 관한 정보도 표시판을 보며 배워갑니다. 여기저기 아름답고 영스러운 곳이 널려져 있어 한라산 신령님께서 좀 바쁠 것 같습니다.
거의 9천보 채우고 (산길 9천보이니 좀더 올려주어도 될 듯) 서귀포 시내들려 1.7-8kg에 달하는 토종닭이랑 전복, 백숙용 약재도 사고, 바쁘게 태균이랑 준이를 데리러갑니다.
돌아오는 길에 배가 고파 햄버거세트 하나사서 프랜치프라이는 완이주고 (아직 햄버거는 먹을 줄 모릅니다) 햄버거를 먹으면서 운전하는데 대로변을 막고 음주운전 검사를 합니다. 족히 경찰들이 10여 명이 동원된 대대적 측정현장에 얼덜결에 들어서니 햄버거 들고서 먹고있는 현장을 들켜버려 웃음이 나옵니다. 제주도에서 대낮에 최초로 마주쳐본 음주측정 현장입니다.
서둘러 주간보호센터에 들어서서 입구로 가니 태균이가 나오고 있습니다. 아마 창가에서 엄마차를 발견하고는 이층에서 혼자서 내려온 것입니다. 주간보호센터는 2층 건물로 되어있고 신축된 지 얼마되지 않아 깔끔하고 깨끗합니다.
태균이도 그렇고 준이가 얼굴표정이 밝고 즐거워보여 어찌나 좋던지... 전에 받아주었던 자폐스펙트럼 성년친구가 행동문제가 많이 심해서 결국 얼마못가 퇴소되었었다고 전해주며 태균이와 준이가 자폐스펙트럼이라는 게 놀랍다고 국장이 전해줍니다. 자폐스펙트럼의 아이들은 행동문제가 심할 것이라는 인식이 이런 전문기관조차 깊습니다.
근무하는 분들이 아이들 숫자에 비해 꽤 많은 듯 한데 다들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고 세심해서 너무 고마울 정도입니다. 요로결석때문에 물 좀 많이 먹여달라고 부탁했더니 어찌나 신경써주던지 미안할 지경입니다. 태균이 담임은 서울에서 제주도가 좋아 내려왔다는 젊은 남자선생이고, 준이담임은 특수체육 전공자랍니다. 센터장님 있는데 국장이라는 분이 따로 있고 암튼 인원이 적지는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셋이서 활동을 못한데 대한 아쉬움으로 수산한못 두어바퀴 산책! 머리는 여전히 만지작거리지만 준이가 예전 밝은 모습으로 간 듯 해서 일단 안도가 됩니다.
토종백숙과 닭죽을 너무 좋아하는 태균, 백숙 닭죽은 별로이고 얼큰 닭개장을 좋아하는 준이와 완이, 세 녀석 모두 행복한 저녁상을 만드는 것은 늘 그렇듯 혼비백산 과정입니다. 약재우려낸 국물에다 닭백숙을 만들어 닭다리 두 개는 태균이 차지, 국물 일부는 덜어서 닭죽 끓여주고, 다른 부위살들은 발라서 통감자까지 넣어서 감자닭개장을 따로 만들고. 세 녀석이 지나치게 행복해했던 저녁상이었습니다. 완이는 종일 그렇게 많이 먹고도 두 사발을 비웠고 준이도 간만에 예전 모습을 보여주니 안도가 됩니다.
제주도에서 우연히 만난 주간활동보호센터가 두 녀석의 삶에 어떤 전환점이 될까 거기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사정만 된다면 10년이고 20년이고 다닐 수도 있으니 (이미 50세가 넘은 원생도 있습니다) 일단 보호를 받으며 갈 곳이 있다는 것이 다행은 다행이다 싶습니다. 녀석들 삶에 밝은 햇살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일단 주간보호센터의 환경이 맘에 듭니다. 시간이 지나도 세심한 관심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게 되네요.
태균씬 백숙, 둘은 얼큰 스타일, 저도 얼큰 스타일에 낑깁니다.^^
한라산의 머리 백설이 눈을 끕니다. 저도 산신령님의 가호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