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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백조사냥
남녀노소 젖먹이에다 팔순노인에 이르는 일군(一群)의 사람들이 거친 황무지를 떠돌고 있다.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뭉쳐 폭넓은 계층을 구성하고 있는 만큼 제각기 지닌 사연도 복잡하고 다양하리라.
어설픈 행장과 차림새를 살펴보면 한눈에 조선인들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고, 고향땅에서 쫓겨났거나 도망쳐 나온 사람 실향(失鄕)민들인데, 이 선량한 사람들이 꾸물꾸물 딱히 정해놓은 목적지도 없으면서 들길을 가고 있다.
머리에 무거운 짐 보따리를 이고 걷는 한 아낙네는 등에 젖먹이까지 업었고, 다른 아낙도 가슴에 아이를 안고 손에는 눈물겹도록 초라한 보따리를 아귀차게 움켜쥐었다.
물 바랜 삼베적삼에 갓을 눌러쓰고 두루마기를 걸쳐 입은 남정들!
차림새 어디를 보나 틀림없는 우리네 조선 사람들임에 분명한데 대체 무슨 연고로 이 황폐한 만주벌을 헤매 다니는 것일까?
제 땅인 조선의 산야를 무리 지어 다닌다 해도 이상하게 여겨질 터인데 멀고 먼 여기 동북의 황무지를...
말할 기력조차 없을 것이다. 험한 산은 기다시피 넘고 깊은 물길은 먼 길을 돌아 건넜다.
바로 이들을 칭하여 못된 무리들이 백조떼라 조롱하며 업신여기는 것이다.
갖은 멸시와 냉대를 견디며 쫓겨 다니는 이 힘없고 불쌍한 우리 조선유민들이 바로 백조떼다.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기반 무너진 조정에 빌붙어 자신의 권익을 찾기에만 눈깔 뒤집힌 악덕관리와,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추잡한 정치배들의 횡포에 얼마나 시달렸겠는가!
그뿐이랴! 일제의 착취와 핍박 또한 얼마나 이들을 압박하였던가! 살기 위해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서지 아니하고는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일본인들에게는 막강한 관동군이 있다.
그리고 비록 적화(赤化) 되었다지만 러시아인들은 러시아인대로 엄연한 조국이 존재하고 있었고 만주인은 말 그대로 만주국의 국민이다.
중원의 중국인들도 신생 중화민국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고, 모든 여타 종족들에게도 그들을 보호해 주는 국가가 있거나 아니면 스스로 자위(自衛)할 수 있는 무장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조선인들에게만은 그들을 보호해 줄 국가나 권력기관이 없다. 그렇다고 스스로 방어를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터로 이주해 오는 조선백성들을 두고 동북의 약탈자들은 이구동성 날지 못하는 백조라 비웃으며 함부로 천대하는 것이다.
뒤져보면 어딘가에 양식을 감춰두었고 몸 어느 구석에 꼭 한두 개의 금붙이를 지니고 있다.
언제라도 사냥할 수 있는 수월한 사냥감이기에 이 날지 못하는 백조들을 일부러 놓아 보내기도 했다. 참으로 가소로운 아량을 베푼 것이다.
이 서러운 백조들에게도 수천 년 넘게 지켜온 나라와 자자손손 누려왔던 황금강토가 있었다. 그럼에도 동북에서 가장 천대받는 처지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절골지통(折骨之痛)의 사연을 품고 떠나온 사람들은 오가다 만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마음 붙여 서로에게 의지하며, 아직 사람손이 덜 닿은 야성의 땅에 한가락 희망을 걸고서 광활한 만주벌의 처녀지를 찾아 떠도는 것이다.
쇠잔한 노약자들은 도중에 낙오하여 길에서 죽어나갔다.
때로는 기다렸다는 듯 범법자들이 파리떼처럼 달라붙어 목숨처럼 숨겨온 한줌의 식량과 파종할 종자까지도 약탈하여 갔다.
고통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가족 앞에서 겁탈 당한 아녀자들은 없어서는 아니 될 꼭 필요한 구성원임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끊었다.
무슨 죄가 있어 이런 치욕과 고통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그나마 목숨을 부지한 사람들은 다시 방랑의 길을 헤매고 다녔다. 씨앗을 뿌리고 자식을 키워 가르칠 땅을 찾아.
유랑천리 한 떼의 백조무리를 이끌고 있는 권종현은 경남 하동에서 꽤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당시 가세가 상당하여 먼 지역까지 제법 내노라 유세를 부리던 소위 만석꾼집안으로, 부친이 소과(小科)에 급제하여 향토지역에서 선망도 컸고 권종현은 집안 귀한 삼대독자였다.
어지러운 세상이었지만 고생을 모르고 자란 권종현은 세상을 만만히 여겨 주변 사람들을 낮추어 교만에 빠진 것이 그가 백조무리에 들어 방랑해야 하는 원인이 되고 만다.
참으로 무모한 짓이었다. 너무나 어리석었다.
오만함으로 세상 넓은 줄 모르고 달콤하게 들리는 말만 듣고 그런 말만 믿었다. 나중에는 일확천금의 한탕주의에 현혹되기 시작하다 그나마 지각 있는 주변인들의 충고에 귀마저 닫아 붙였다.
이 권종현의 우매한 일면을 찔러보고 이용한 자가 있었는데, 평소 그의 주변을 얼쩡거리던 자로써 권종현을 잔뜩 부추겨 충동질 하던 일본인 모오리다.
일본에서도 수차례 사기극을 벌렸던 모오리는 권종현을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손쉽게 조종하여 그의 재물을 야금야금 착복했다.
권종현은 모오리와 동업하는 형태로 경남 양산 어딘가에 있다는 구리광산에 전 재산을 투자하였지만, 사기가 목적인 모오리의 치밀한 계획을 눈치 챘을 땐 자신의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빚까지 잔뜩 짊어진 상태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비옥한 전답과 모든 재산을 한순간에 날려버리고 죄 없는 가족을 길거리로 몰아내친 권종현은 두 주먹 불끈 쥐고 재기를 노리며 고향을 떠났다.
수중에 가진 것 없이 무작정 길을 떠난 권종현은 굶주리고서야 과오를 통탄하며 농주찌꺼기 한잔 얻어먹고 밭고랑에 누워 지친 몸을 풀고 있던 중 깜박 잠에 들었다.
그대 누군가가 나타나 몽둥이로 사정없이 어깨를 후려치며,
“이놈! 그저께도 여기서 한 놈이 죽어 자빠져 있더니 오늘 또 사지 멀쩡한 놈이 엎어져있구나. 죽으려거든 피둥피둥한 몸뚱이 나라나 위해 던질 것이지왜 남의 밭고랑에 자빠져 썩은 송장이나 치게 만드는 것이냐. 예키, 이 고얀 놈.”
노인에게 혼이 난 권종현은 참으로 처지가 난감하여 인적 드문 길가에 쭈그려 앉아 서러운 생각에 절로 흐르는 눈물만 훔치고 있을 때, 지나가던 스님 한 분이 권종현을 자신의 암자로 거두어 데려갔다.
그리고 밥벌이 방편으로 사주관상 보는 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몇 달 지나 절을 내려온 권종현은 다시 정처 없이 이곳저곳 떠돌아다닌다.
그러다 한시도 잊지 못하던 가족생각에 고향으로 걸음을 돌렸을 때는 어느 듯 삼 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서다.
문둥이들이 살다버린 집에서 연로하신 부친은 한해 전 이미 세상을 등진 후이고, 모친마저 깊은 와병(臥病) 중에 약 한 첩 쓰지 못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었다.
아내는 어린 자식들을 먹여 살리느라 뭇 사내들에게 몸을 맡기 고 있는 눈치니 집안이 파멸의 벼랑에 내몰려 있는 것이다.
큰 자식 놈은 도둑질을 하다 붙잡혀 그때 맞은 매로 반병신이 되어 있는 데다, 이제 열두 살 된 딸아이는 며칠 있으면 기녀(妓女)로 팔려가 가족들과 생이별해야한다.
한때는 자신의 재물을 내놓고 다른 사람들을 수 없이 보살피기도 했다.
이 지경인데도 돌보아 주는 사람 하나 없고 그야말로 멸망의 구덩이를 허우적거리는 기막힌 실정이다.
“으흐흑!”
목구멍에서 분노의 핏덩이가 터져 나온다.
권종현은 피눈물을 흘리고 울부짖으며 맹세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새로이 시작하리라. 이 땅을 떠나자. 수많은 불운한 사람들이 선택하여 찾아가는 땅 만주로 떠나리라. 그곳에서 몸이 진토가 되어 반드시 다시 일어서 보일 것이다.”
권종현은 이렇게 울부짖으며 두 주먹 뿔끈 쥐고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고향을 떠나와 이 백조무리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어디 권종현만이 이른 뼈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으랴!
무리의 일원들은 앞서 말한 대로 제각각 나름대로의 가슴 찢는 사연을 꼭꼭 눌러 품고 있었다.
이 백조 중에 남장수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에게도 가족을 이끌고 고향을 등져야 했던 피치 못할 사연이 있었다.
남장수가 자신의 식솔을 이끌고 백조무리에 합류하게 된 얘깃거리를 간추리면 대략 다음과 같다.
남장수는 비록 천민(賤民)에 속하는 사람이었지만 의기가 출중(出衆)하여 불의를 보면 도저히 그냥 넘기지 못하는 사람이다. 기개 또한 남달라 시대를 잘 만났으면 세상에 이름 한번 크게 떨쳤음직한 사람이었다.
수중에 가진 것 없고 신분 또한 비천하였으나 홀로 수업을 많이 하였기에 학식은 제법 깊었다.
그래서인지 옳고 그름이 명확하였고 선을 그은 것처럼 결론도 분명했다.
이 남장수에게 평소 흠모하며 잘 알고 지내던 강일두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 역시도 남장수와 비슷한 처지로 그저 세상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세간일이나 비웃고 사는 몰락한 선비였다.
어쩌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술 한 잔 얻어 걸치기라도 하면 그 보답으로 시나 글귀 따위를 지어 세상을 조롱하였다. 다분히 풍류기가 몸에 배인 걸객(乞客)이라고나 할까.
강일두를 대할 때마다 그의 인품과 학문에 사로잡혀 있던 남장수는 강일두가 취언 중 자신에게 던진 몇 마디 말을 항시 기억하고 있었다.
‘스스로 남아대장부라고 자랑할 줄 안다면, 남에게 물 한 잔을 얻어 마셔도 그 즉시 목숨을 내놓을 줄 아는 근본이 되어 있어야한다. 그러므로 함부로 남에게 신세나 은혜를 입지 말아야하며, 패기만 믿고 자신을 구속하는 약조 따위나 맹세를 섣불리 하여서도 아니 된다. 그 맹세가 비록 당장은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사슬보다 더 끊기 어려운 구속력으로 자신을 얽어맬 것이다. 단언컨대 불시에 자신의 가슴을 찔러 장래를 망치는 자멸의 구렁텅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략 간추려 이런 내용이다.
이 몇 마디 말들이 왠지 남장수의 가슴에 닿아 항상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어느 날, 남장수가 타지방으로 잠시 출타(出他)하였다 돌아오던 길이다.
배도 출출한데다 목도 마르고하여 마을 어귀에 붙은 주막에 들러 동동주 한 대접 시켜놓고 잠시 쉬고 있었다.
그런데 옆자리의 한 남정이 술항아리를 통째로 끼고 연거푸 잔을 비우고 있었는데, 남장수와도 다소 면식 있는 자로 일본관료에 아첨하며 그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부랑자다.
한 마디로 상대하기에 그다지 질이 좋지 못한 사내였다.
남장수가 아니 본 척 술 사발을 단숨에 비우고 자리를 뜨려는데 느닷없이 그 사내가 남 장수를 붙들고 좀처럼 놓아주지를 않는 것이다.
“윗마을에 사시는 남장수형님이 아니십니까? 아따 저를 모르는 척 하시는구료. 정말 그러시면 이 아우는 참으로 서운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번 만나 뵙고 정식으로 인사를 올리려던 참이었는데, 오늘 이렇게 옆자리에서 뵙게 되었으니 제가 어찌 외면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부터 이 술자리는 아우가 알아서 모실 것이니 저를 그만 좀 모른 척 하시구랴.”
말이야 누가 들어도 그럴싸하다.
“말씀은 고맙소이다만 본인은 지금 막 먼 지방 길을 다녀오는 터라 오래 앉아 머물 수가 없습니다. 다음번에 기회가 있으면 그때 같이 대작토록 하지요.”
“아따 그런 서운한 말씀일랑 후딱 거두시고 어서 이쪽으로 와 앉으십쇼. 어헛 참! 이러시면 이 아우 정말 섭섭하게 여길 것입니다. 형님! 제 체면도 좀 세워 주시구료.”
잘도 감아치는 놈의 혀에 우직한 남장수가 얽어매기 충분하였다. 한사코 거부하여도 주모를 불러 술과 안주를 더 시켜 남장수를 자리에 앉혔다.
“보아하니 시장기로 목이 컬컬하신 것 같은데, 어디 그깟 술로 양이나 차겠습니까. 오늘 이 아우가 마음껏 대접하여 올릴 터이니 이 기회에 통성명이나 하여 차후로는 마음이나 터놓고 지냅시다요.”
남장수는 내키지 않았지만 황중석이란 자가 어찌나 끈질기게 권하는지 차마 떨쳐버리지 못하고 주저앉아 건네주는 술잔을 넘겨받고 말았다.
그리고 그가 권하는 대로 술을 받아 마시며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술항아리는 두 번이나 비었고 세 번째 항아리마저 비어갈 때다.
“이놈! 여기 있었구나. 자알 만났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세 명의 우락부락 한 사내들이 들이닥쳐 다짜고짜 황중석의 멱을 거머쥐고 마루에서 끌어내렸다.
그리고 말릴 겨를도 없이 황중석에게 달려들어 몰매를 가하는 것이다.
이 세 명의 건달 역시 황중석과 마찬가지로 일본인에게 빌붙어 아부하는 자들인데 들어보니 서로 투전판을 벌이던 중 황중석이 속임수를 썼다는 그런 내막이었다.
남장수는 참으로 난처하였다.
황중석을 저대로 못 본 척 놓아두면 맞아 죽을 것도 같고 아니면 병신이 될 것이 분명하다.
땅바닥에 엎어진 채 자기를 쳐다보는데 남장수가 빨리 나서서 살려주기 바라는 눈빛이 역력(歷歷)하였다.
만약 저자를 그냥 버리고 일어선다면 필경 자신을 몰이정한 놈으로 몰아 온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것이 분명했다.
보다 못한 남장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여보시오들! 당신네들 사이에 도대체 무슨 사정이 있어 그러시는지 모르겠으나 백주대낮에 이 무슨 행패요. 그리고 사람을 장작 패듯 그렇게 난장질하여 구타하는 경우가 어디 있소. 잘못된 일이 있으면 관아나 지서에 고하여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 사리에 맞는 일이거늘. 다짜고짜 그렇게 발길질하다 혹 사람이 상하거나 죽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들 그러시오.”
하는 수 없이 남장수가 끼어들어 그들을 가로막고 꾸짖었다.
부랑자들은 한결 험한 표정으로 여차하면 남장수에게도 손찌검을 가해올 태세다.
“어허라! 이 자는 또 어디서 굴러온 잡놈이라던가? 미리 일러두겠는데 우리 일에 한 번 더 참견한다면 이놈과 한 통속으로 간주하여 같은 꼴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자리를 뜨는 것이 네놈에게 상책이니라. 이놈이 우리 손에 붙잡힌 이상 이제 반쯤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으니 네놈도 신상에 해로운 꼴을 당하지 않으려거든 속히 가던 길이나 떠나라.”
부랑자 중 우두머리인 듯한 자가 제법 거만을 떨며 아랫사람 가르쳐 달래는 투로 엄포를 놓는다.
그런데 사납고 성질 급급해 보이는 한 자가 느닷없이 남장수의 가슴팍을 움켜지며 신체적 제압을 가해왔다.
“아따 형님도 참! 이놈에게 타이를 것이 무엇 있습니까. 황씨놈과 같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보나마나 사기투전하는 놈이 분명할 텐데 똑같은 매맛을 보여 주어야합니다.”
사정이 이렇게 되면 엎질러진 물이나 다름없다.
“이노옴!”
크게 노한 남장수가 그자를 번쩍 치켜들고 내동댕이쳤다.
그것이 그만 모난 돌 부분에 머리가 부딪혀 본의 아닌 살인을 불러일으키고만 것이다.
상황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남장수와 남은 두 명의 부랑자들이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혼란한 틈을 타 황중석은 나 살려라하고 줄행랑을 쳐버렸다.
술 몇 잔 얻어먹고서 엉겁결에 살인자가 돼버린 남장수는 생각할수록 황당하고 기가 막혔다.
그렇다고 마냥 망설이고 있을 수도 없다. 일경에 구속되면 이놈들에 의해 가족들이 화를 당할 것은 분명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땅에 더 이상 미련이 없던 터다.
세상 어디에 갈 곳 없겠느냐며 급히 가족 전부를 동반하여 역시 보따리 하나로 머나먼 길을 떠나온 것이다.
이렇게 이런저런 사유로 오가며 만난 조선인유랑민들은, 모든 것이 부족한 터인데도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누어가며 소위 한 무리의 백조떼를 구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후손을 낳고 삶을 이어나갈 한 조각 땅을 찾아 여기까지 다다른 것이다.
“형님! 곧 해도 저물 것이고 다들 지친 것 같으니 오늘은 이 근처에서 야숙할 준비를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개울을 발견한 남장수가 일행의 선도자격인 권종현에게 노숙준비를 권한다.
“저도 아우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권종현이 남장수의 말에 동의하며 다른 사람들의 의향도 물어 일행들에게 야숙준비를 시켰다.
낮에는 견딜만하더라도 밤이 되면 추위가 살을 도려내 듯 엄습하기에 그 준비 또한 여간 만만한 것이 아니다.
남자들은 불을 피울 나뭇가지를 주워 모으고 아낙들은 저녁 준비를 서둘렀다.
그러나 더 두렵고 절박한 문제는 다른 곳에서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사람들이 일상 겪어 알고 있는 따위의 추위나 배고픔이 아니다.
이 백조들을 언제부터인가 슬금슬금 뒤따라오는 고약한 불청객들이다.
이자들은 백조들이의 저녁거리를 준비할 동안의 시간을 기다려주는 너그러움도 지녔다.
“우후후후!”
백조떼를 쳐다보는 악귀처럼 음산한 마금초의 눈빛이 빛난다.
철이 들기도 전에 도둑질을 먼저 배웠고 성장하면서 강간이나 강도 짓 따위는 셀 수 없이 저질렀다.
살인 또한 닥치는 대로 행하여 사람의 생명을 벌레 죽이듯 가볍게 거두는 잔인한 인간도살자다.
무언가에 쫓기는 듯 험준한 산령을 넘어온 마금초와 그를 따르는 잡패들은 사실 백조무리를 눈앞에 두고 거의 탈진상태가 되어 있었다.
제대로 된 식사를 입에 대지 못했던 것도 며칠이나 된다.
그러나 백조떼를 발견한 순간부터 이 도당 전체에 새로운 활기가 넘쳐났다.
마금초의 일당들이 가파른 산령을 도망치듯 넘어온 데에는 감춰진 이유가 있었다.
밀림에는 떠돌이 약탈자와 일정한 지역을 가지고 있는 토구(土寇)들이 있다. 토비(土匪)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평소에는 여느 양민들처럼 농사를 짓기도 하고 사냥도 했다. 일정한 지역을 확보하여 가족도 거느리고 있으며 돈을 받고 지역의 안내자 역할을 맡기도 하였다.
또 드물기는 하지만 더욱 큰 무리로 일어나 군벌을 편들기도 했다.
여기에 비해 떠돌이 약탈자들은 비록 그 수가 소수라고는 하지만 위험한 정도에 있어서는 토적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들 모두가 못된 짓을 저지르고 숲으로 숨어 들어온 도망자 아니면 범법자들로써, 언제나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밀림의 어두운 곳만 찾아다니는 밀림의 종양이었다.
인생의 끝에 서버린 잔혹한 밀림의 배회자(徘徊者)들은 돈과 쾌락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던 망설이지 않는 냉혹한 인간도살자들이다.
삼 개월 전, 이 잔악무도한 무리들은 길야드인들이 마을을 이루어 살아가는 조그만 산간촌락을 우연히 지나치게 되었다.
불행이 닥칠 이 마을의 건장한 남자들은 다가올 겨울대비를 위해 모두 사냥에 참가한 터이라 텅 빈 마을이나 다름없었다.
마을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노약자와 아녀자들뿐으로 심상찮은 분위기에 휩싸였고, 경험 많은 노인들이 그들을 달래고 회유(懷柔)시키기 위해 음식과 고기를 장만하여 융숭하게 대접했다.
뿐만 아니라 이런 경우를 위해 마을에서 보살펴주는 홀로된 여자 두 명도 들여보냈다.
그러나 잔혹한 약탈자들은 술이 모자란다며 점차 포악한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이내 광폭(狂暴)한 야수로 돌변하여 닥치는 대로 사람을 살상했다.
눈에 띄는 여자들은 모두 머리채를 꿰어 채서 짐승처럼 겁탈했고 여기에 어린 여자아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을은 순식간에 피비린내 나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사냥 나갔던 남자들이 돌아왔을 땐 사람 사는 마을이라 불리기엔 너무도 처참히 망가져 있었다.
길야드인들은 모두 손가락 하나씩을 잘라 피로써 그들 조상에게 맹세하였다. 놈들을 낱낱이 찾아 죽이기 전에는 결코 살아 더운 음식과 익힌 고기를 입에 넣지 않을 것이라며.
그리고 약탈자들을 찾아 밀림을 유랑하기 시작했고 기어이 찾아내어 하나 둘씩 죽였다.
길야드인들도 약간의 피해를 입었지만 보다 큰 문제가 있었다.
마을을 재건하고 보존해야 하는 본질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무작정 그 살인집단을 뒤쫓아 다닐 수만 없는 현실적 난관에 굴복치 않을 수 없었다.
궁리 끝에 자기네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을 고용키로 결정하였고 바로 죽음의 저승사자라 불리는 해동랑이 결정된 것이다.
(주: 이 이야기는 긴 소설의 한 중간부분이라 동방에서 건너온 이리라는 해동랑의 해설이 좀 부족할 것입니다. 주인공은 아님.)
“...”
숲 사이로 피는 연기를 바라보는 해동랑의 외눈이 번뜩거린다.
마금초의 살인패들과 마찬가지로 밀림 한 쪽 숲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똑같이 지켜보고 있다. 무엇인가 불길한 짐작을 하고 있는 듯하다.
해는 점점 서쪽으로 기울고 있다.
“놈들은 굶주렸기에 틀림없이 저 연기가 나는 곳으로 몰려갔을 것이다. 주어진 절호의 기회이니 모두 섬멸해야겠다.”
해동랑의 명령이 떨어지자 추종자들은 먹이를 덮치는 사냥개처럼 숲을 가로질러 줄달음치기 시작한다.
이런 긴박한 움직임들이 자신들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을 까마득 모르고 있는 백조들은 상황에 무심히 그저 야숙할 준비와 저녁끼니를 마련하기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긴 여정에 지친 백조들!
하늘을 지붕 삼아야 하지만 그나마 따뜻한 한 끼니의 식사를 기대하며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여유를 즐기며 도란도란 대화도 나누면서.
빈속이 채워지면 모닥불 한 귀퉁이에 쓰러져 들잠을 자게 될 것이다.
여인네들은 주섬주섬 뜯어 모은 산나물에 한 숟가락 된장을 풀어 바글바글 끓였다. 구수하고 은근한 냄새가 고향을 두고 떠나온 심신을 일부라도 달래주니 그나마 다행이다.
“아! 오늘도 하루해가 저무는구나! 내일의 태양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행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고달픈 방황이 언제 끝나게 될 지 권종현도 알 수 없다. 그저 낙오자 없이 오늘 하루해를 무사히 넘길 수 있다니 회정(懷情)의 감사에 잠길 뿐이다.
그때다.
먹이사냥을 나온 산짐승처럼 살기 가득한 눈빛을 띄운 정체불명의 그림자들이 여기저기서 출현하였다.
권종현은 맑은 하늘을 뒤덮는 시커먼 먹구름을 보듯 불어 닥칠 불길한 징조를 예감하였다.
“애고머니!”
여인네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까무러쳐 놀라며 저마다 남정네등 뒤로 숨어 사지마저 부들부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가족들을 보호해야 하는 남자들의 표정도 예외 없이 짙은 먹빛으로 변했다.
조금 전까지의 작은 평화와 넉넉함은 일순간에 깨어지고 백조무리전체에 불안과 공포의 분위기가 무겁게 번져나기 시작한다.
갑자기 찾아온 고요 속에는 피를 부르고 죽음을 예고하는 암시가 축축하게 스며난다.
저들이 어떤 부류의 자들인지 누구라도 단번에 짐작할 수 있었다.
“아하하핫! 백조나리들이 모두 여기에서 자알 놀고 있었구먼.”
말투와 행동이 모두 비천하고 추악하다.
그리고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 초조한 표정에 뒤집힌 흰 눈창은 악귀처럼 번들거렸다.
뒤따라오던 다른 자들도 여유를 부리며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고 하나같이 교악한 눈빛들은 살육과 광기에 절어 보인다.
충혈 되어 핏발 선 눈빛들! 권종현은 저와 같은 눈빛을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었다.
상대방을 똑바로 응시하지 못하고 흐리멍덩하면서 광기를 발하는 눈빛은 바로 광견의 그것다.
권종현 뿐 아니라 모두들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권종현은 탄식하였다.
“아! 하늘도 무심하구나. 여기서 이렇게 끝나고 말다니. 가족이 한곳에 모여 같이 생을 마감하니 이나마는 다행이구나.”
체념하니 두려움과 공포가 일시에 사라졌다.
무리 중 몇몇은 벌써 솥과 냄비가 걸려있는 곳에 둘러앉아 주인행세를 시작했다.
나무꼬챙이로 밥솥을 뒤적이다 그릇에 퍼 담고 뜨거운 것도 아랑곳없이 손으로 주물러 마구 입 속으로 쑤셔 넣는다.
안겨있는 갓난아이들조차 두려움이 깊어 우는 것을 잊어버렸다.
“여러분, 음식이 비록 풍부하지는 않으나 골고루 나누어 드릴 터이니 노인네와 아녀자들이 놀라지 않도록 점잖게 행동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으하핫! 모두 이 백조나리가 하시는 말씀 좀 들어보게.”
남장수의 말에 그들은 배를 싸안고 나동그라지며 웃는다.
“으아하하핫! 후흐하핫! 이 백조나으리가 이르시는 말씀이 우리 모두들 점잖게 행동하랍신다. 으흐하하핫!”
우려하던 대로 피를 부르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한 명이 환도를 빼들고 남장수의 어깨를 내려찍은 것이다.
“아악!”
남장수는 피할 틈도 없이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쓰러져 사방으로 피를 튀기며 고통으로 몸부림친다.
그의 아내가 기겁을 하며 남편을 부여안고,
“여보! 여기까지 와서 이 무슨 변이오. 제발 죽지 마오. 당신이 죽으면 이 낯선 땅에서 우리 아이들은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간단 말이오. 오! 하늘이시어 제발 우리 이이를 살려주십시오.”
남장수가 설사 죽음의 위기를 넘긴다고 하여도 노동력을 상실하고 말 것은 분명하였다. 가족들 또한 무리를 따라오지 못해 결국 남장수와 함께 낙오되어 고립되면 굶어 죽기 십중팔구일 것이다.
“아빠! 무서워. 이런 곳에서 제발 죽지 마. 흑흑!”
남장수의 가족은 어른 자식 할 것 없이 모두가 피범벅이 되었다.
광란의 도화선은 이미 점화되었다.
다른 쪽에서는 약탈자 몇 명이 여자들을 낚아채기 시작한다.
발버둥치는 젊은 아낙의 사지를 여러 명이 달라붙어 치마를 찢어 내렸다.
도망가 숨는 사람을 향해 발포한 총에 희생자도 발생했다.
백조들의 한가로운 저녁식사는 지옥의 만찬이 되고 말았다.
피를 뿌린 놈들은 미치광이로 돌변해있었다.
남장수를 상하게 했던 자가 사태를 감당하지 못해 얼빠진 사람처럼 서있는 권종현에게로 슬슬 다가와 살기 띄운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후훗! 백조선생, 나는 사람을 죽일 때 상대의 고통 깊은 몸부림이 길어야 즐거움을 더욱 크게 느끼는 소칭 인간백장님이시다. 그래서 칼을 더 즐겨 사용하신다는 말씀이지. 으흐흐.”
놈이 권종현을 향해 환도를 번쩍 치켜들었다.
“아! 분하고 원통하다. 가난과 왜놈들을 피해 천신만고 끝에 여기까지 왔건만, 저 야수와 다름없는 자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마는구나. 나를 믿고 여기까지 따라온 피붙이들이 불쌍하도다. 운명이 정히 이렇다면 내 여기서 저놈에게 난도질당하여 조각조각 갈라져 죽을지언정 놈의 살이라도 한입 베어 삼키고 말리라.”
권종현은 죽음을 각오하고,
“오냐! 이놈 나부터 죽여보아라.”
권종현이 눈을 부릅뜨고 환도를 치켜든 적도에게 달려들려는 바로 그 순간이다.
“타탕! 탕탕탕!”
어디서인가 난데없는 총성이 연달아 울리더니 환도를 치켜든 눈앞의 백장과 두세 명의 적도들이 잡풀 위로 쓰러진다.
예기치 못한 반전이 일어났다.
몇 발의 총성에 적도들은 이내 우왕좌왕하며 맞서 싸울 기미라곤 없이 제각기 흩어져 도망치기에만 급급했다.
부상당한 자기네 동료들은 잡풀처럼 버려 팽개친 채 꼬리 잘린 도마뱀처럼 자리를 피해 달아났다.
놈들은 모이를 주워 먹다 맹조에 쫓기는 새떼처럼 뿔뿔이 흩어져 약속이나 한 듯 그들이 나타났던 숲의 반대방향으로 불이 나게 도망질쳤다.
그 약탈자들의 뒤를 사냥개처럼 쫓아가는 또 다른 집단이 있고, 몇몇은 남아 자빠진 약탈자들의 시체를 한 곳으로 모아 사체를 세세(細細)히 살폈다.
권종현에게 환도를 휘두르던 그자는 단번에 죽질 않아 돼지처럼 추한 소리를 내지르며 풀 바닥을 파충류처럼 기어 다니고 있었다.
그때 한 사나이가 뚜벅뚜벅 다가오는데 표정이 매우 흉측하고 외눈의 광채가 예사롭지 않다.
행동이 당당하고 표정이나 손짓으로 보아 새로이 출현한 무리의 두목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권종현은 사나이의 전신에 괴괴(怪怪)한 느낌이 풍기자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애꾸눈사나이는 피 흘리는 남장수를 안고 있는 가족에게 다가와 앞에 서더니 놀랍게도 또렷한 조선말로,
“나에게 지혈제와 상비약이 조금 있으니 부상당한 저 사람을 치료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외다.”
죽음 직전에 뜻밖의 상황을 맞이하자 권종현은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괴이한 자가 남장수의 아내에게,
“저자가 아직 숨이 붙어 있으니 복수를 원한다면 놈의 환도로 숨통을 직접 끊을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소.”
모두 벌벌 떨었고 남장수의 아내는 질급을 하며,
“우리는 사람을 죽여본 적도 없고 죽일 줄도 모릅니다. 이 모두를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일 것이니 장사님께서 뜻대로 처리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약을 주시니 우리에게 저 자의 목숨을 거두는 것보다 더 고마울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애꾸눈사나이는 남장수아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닥에 떨어진 환도를 냉큼 집어 들었다.
적도의 표정은 조금 전의 여유 만만하던 그 얼굴이 아니다.
애꾸눈사나이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적도의 얼굴을 경멸하듯 잠시 내려다보더니 단칼로 목털미를 내려찍어 죽여 버린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이들이 무슨 이유에선지 죽어 자빠진 적도들의 면피(面皮)를 모두 벗겨 양가죽주머니에 담아 수집하는 것이 아닌가.
광경이 얼마나 잔혹하고 무시무시한지 혼절하는 여인네도 있었다.
조금 후 적도를 뒤쫓던 자들이 돌아와 그들 역시 채집한 몇 장의 인면피를 애꾸눈 사나이에게 보여주며 양가죽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잎사귀처럼 떨고 있는 백조들에게는 조금의 관심도 보이지 않더니 자기들의 용무가 끝난 듯 밀림 속으로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이 모든 일들이 순식간에 일어나고 한순간에 종결되었다.
사람들은 아직도 망연자실하여 제 마음을 붙들지 못한다.
여기저기 나동그라진 무시무시한 형상의 시체들하며, 이런 일들이 무엇 때문에 벌어져 어디서 시작되어 끝났는지 분별조차 할 수 없다.
모두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가족들만 끌어안고 있을 때 돌연 그 애꾸눈사나이가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뚜렷한 조선어로 말하기를,
“여러분들께 무슨 피치 못할 사연이 있어 이 깊은 밀림을 헤매고 다니는지 몰라도 사정이 딱하게 몇 가지 일러주고자 하오.”
그때서야 제 정신으로 돌아 온 권종현을 비롯한 사람들 모두 선 자리에 털썩 엎드려,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를 죽음의 사지에서 구해 주신 동포장사님께 절 올려 감사드립니다. 우리들 처지를 딱히 여겨 한 말씀 깨우쳐 주시는데 어찌 가슴에 아니 새겨듣겠습니까. 말씀을 내려주시면 기필코 받들어 명심할 것이니 부디 잘 일러주십시오.”
권종현이 애꾸눈사나이 앞에 엎드려 청원(請援)하자 남녀노소 다 같이 같은 말로 간청하였다.
“밀림에서 함부로 연기를 피운다던가하여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면 조금 전처럼 그런 자들의 표적이 되어 화를 당하기가 십상이오. 귀찮고 힘이 들더라도 마른 가지를 사용하여 불을 피우시오. 그리고 만약 어쩔 수 없어 조금 전과 같은 자들의 공격을 또 다시 받게 되면 그들이 어떤 자들이건 이렇게 말하시오. ‘우리는 해동랑에게 세전을 내고 있소이다.’라고 말이오.”
“동포장사님, 고맙습니다. 의지할 데 없는 우리들에게 처신함을 일러 주시니 그 말씀 가슴깊이 새겨 따르겠습니다.”
권종현은 다시 머리를 땅에 붙이며 크게 절하였다.
“정착할 개간지를 찾는 것이 목적이라면 동쪽으로 계속 방향을 잡아 나아가시오. 하루 정도를 걷다보면 지대가 높고 험한 바위구릉지대와 맞닥뜨리게 될 것이오. 하지만 그 험지만 무사히 넘어서면 농지로 개간해 볼만한 넓은 목초지가 나타나오. 근처에 수원도 있으니 땅을 일구기 적당할 것이오. 여러분들에게 행운이 따르기를 바라오.”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정체불명 애꾸눈사나이는 마치 나는 새처럼 밀림의 어두운 틈새로 다시 빨려들어 사라져버린다.
구세주가 따로 있을 리 없다.
그저 하늘이 베풀어준 구원의 손길이 악을 응징하여 자신들의 목숨을 살려주었다고 믿고 싶다.
“고맙습니다. 은혜를 내려주시어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애꾸눈의 사나이가 사라진 숲을 향해 울어나는 감동의 눈물을 멈출 줄 모르고 수없이 절하며 엎드린 몸을 일으켜 세우질 않는다.
오랜만에 심심풀이 올려봤습니다. 모두들 건안하시길 바랍니다. 풍걸.
첫댓글 오! 풍걸님
연작 이오니 다음편도
마음졸이며 기다립니다.
너무도 생생한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습작을 ok일베님이 혹 야근하실 때 시간 때우시에 지겹지 않도록 쬐끔 도움 될까봐 끄집어 올린 것인데, 첫 편을 올릴 걸 그랬나 봅니다. 완성까지는 이 년 쯤 걸리지 않을까 싶군요.(셀 수 없는 수정도 거쳐야 하고요.) 구국헌신하다 몸상하시면 마음 아픈 분들이 많이 생길 것입니다. 감사하쥬.
@풍걸
마음이 이끄시는 데로 올려주세요
일독, 재독해도 참 좋습니다
단지 풍걸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매우 훌륭한 작품입니다 많은 경험과 풍부한
상상력과 역사적 통찰이 있기에 가능한 소설입니다
기대가 됩니다
애국의 대웅이신 일송정님께서 졸작을 너무 과대평 하여 주심에 고마움을 먼저 쪼아려 표합니다. 꾸준히 소개해주시는 작품소개는 항상 살펴 저의 살로 보충시키고 있지요. 편찮으시다던 존체가 아무래도 염려되는데 순환계같으니 휴대용진동암마기를 한번 사용해보심을 권합니다. 저의 부친이 92세 신데 요양원에 가게 될까 우려하시는 것 같아 방 하나를 병실처럼 꾸미고 침대도 병원 침대로 바꾸어놓고 매일 주기적으로 진동암마기로 자극을 드린답니다. 청컨대 건강을 잘 보존해 주십시오. 감사드립니다.
훌륭한 소설 잘 읽었습니다 ...
가슴을 졸이게하며 손에 땀이나는
듯한 긴장감도 있었습니다
이긴 글을 쓰시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신 풍걸님의 노고에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직 시작도 않했는데 뭘 그래용. (다른 글 좀 읽어보고 나중에 저 위에 인사하러 감. 외출도 잠깐 하고용.)
풍걸님 소설 단숨에 읽었습니다.
다음이 기대 됩니다.
초돌님! 허리는 좀 어떠신지요. (배에 지방이 좀 생기면 많이 개선되는데요. 허리 굽은 할머니들도 펴지는 것을 많이 보고 호전되었기에 참고로 드리는 말씀.) 감사합니다.
@풍걸 허리는 아팠다 안 아팠다 합니다.
배에 지방은 많이 있습니다.ㅎㅎ
@초심으로 돌아가자 배의 적당한 지방은 인체의 방어막입니다. 오래 전 경부고속도로에 눈이 쌓여 차량통행이 오래토록 불가했을 때, 배지방이 있는 분들이 먼저 고통을 느꼈지요. 그리고 한참 후 이분들의 인체가 배지방을 녹여 영양분으로 전환하고 있을 때, 지방없는 분들은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살기 위해 깡다구로 멀고 먼 거리를 걸어가 먹거리를 구하러 다녔지요.
도로가 개통되었을 때 뱃살분들은 얼굴만 홀쪽하였지만 없는 분들은 뇌에 혈류가 줄어 거의 실신상태였답니다. 부담없이 많이 자시고 건강하십시오.
@풍걸 감사합니다.
부담없이 먹고 건강해지겠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반갑습니다 초돌님
다음주에는 만나기를 기다리며
@ok 일베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ok일베님!
필승!
어제부터 읽다가 중간에 전화 와서 끊기고,^^ 또 읽다가 끊기고, 여차저차 해서 오늘 대중교통 이용 하는 차 안에서
읽기를 마무리👌 ㅎㅎ
손에 땀을 쥐고 가슴이 콩닥 콩닥 하면서 읽었습니다.
남장수 부상은 어찌 됬을까요?? 혹시 죽은건 아니겠죠?^^
그런데 북동의 만주벌판
저의 머릿속에는 춥고 얼어붙은 허허 벌판 황무지 밖에 상상이 안됬었는데....^^
갑자기 밀림이 나와서 깜짝 놀랬습니다. 😀
슬프고 처절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가운데 스릴과 재미가 있습니다👍 풍걸님 상상력은 어디까지이신지 ....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백조"라는 이름에서 희망을 봅니다
정말 대단 하십니다~👍
안녕! 요 지역은 그야말로 원시생태의 보물창고이자 자연의 신비가 고스란히 옛대로 숨 쉬는 무림(茂林)의 창해(滄海)로 세계 4대수렵지 중 명성 높은 곳이랍니다. 흑룡강, 우수리강 유역들이지요. 실제로 백조무리라 그렇게 불렸답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 우찌 달았는지 아직도 전 몰라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