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고찰 영랑호 보광사가 6.25 당시 속초를 사수하다가 장열하게 전사한 5명의 용사들에게 ‘영웅의 제복‘을 입혀주고 위패를 모시고 추모식을 갖는다.
6월 25일 오전 지장전에서 열릴 추모행사에는 시민과 관계자들이 참석할 예정이다.이어 지장전에 위패를 모신다.그날 정오 12시 5용사가 산화한 보광사 하늘위로 극락으로 향하는 트럼펫 소리도 울려 퍼진다.
금강산 신선봉에서 출발 일제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속초의 파란만장한 근현대사와 함께 해온 보광사는 이미 일제항거 구국의병 스님 135위 위패를 모시고 있고 이번 5용사를 제단에 올려 놓으면서 명실상부 구국현충의 사찰로서 그 위상을 공고히 하게 된다.
5용사 스토리는 19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국군이 진주했지만 1952년 속초는 여전히 치열했고 위기의 소용돌이속에 있었다.
5용사는 1952년 10월, 영랑호 부근에서 일어난 공비소탕작전에서 맹활약하던 청년들이다. 이들은 북한에서 부모형제가 공산당에 의해 학살되고 재산을 몰수당한 청년들로서,보광사 영랑호 부근에서 공비와 접전, 20여명을 소탕한 뒤 납치된 주민들을 구하고 포위 공격해 오는 한떼의 공비를 맞아 다시 사투를 감행하여 40여명의 적을 더 사살하였으나 모두 장렬히 전사 영랑호반에 잠들었다.
이들 5용사는 김덕범(金德範)함경남도, 지창하(池昌河)함경북도, 이기구(李基九)함경남도, 김병선(金炳善)평안남도, 김화수(金化壽)평안남도)이다.
이들 5용사의 무덤이 보광사 남쪽 언덕에 마련됐고 그후 이를 높이 기리기 위해 1961년 8월 15일 ‘순국 오용사 추모비’를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아무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또한 “1981년 4월 5일 오용사의 유골을 화장하여 보광사에 봉안하고 있다.(속초시지)”라 기록되어 있으나 이 역시 확인할 길이 없다. 보광사 관계자는 “보광사에 안치되었으면 어떤 형식으로든 흔적이 남아 있을 텐데 아무런 단서도 없다”고 말했다.
5용사 관련 흔적이 보광사 근처라고 추정할 뿐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길이 없는 상황이다. 당시를 기억하는 시민들은 지금 ‘이편한 세상 아파트’ 뒤편이라고 추정한다.분명한 것은 기념비와 묘소가 있었으나 사라진 뒤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속초시 차원의 추모행사도 이어지지 않았다.
공산치하서 수복되면서 그 어느 도시 보다 분단과 전쟁의 아픔이 많은 속초지만 이들에 대한 추모는 사실상 맥이 끊겼고 62년이 지난 2024년 6월 25일 오늘에 보광사가 그들의 위대함을 재평가하고 역사의 제단에 오롯이 세우는 작업에 착수한다.
보광사 관계자는 “시민의 절집 보광사는 앞으로도 구국전선에서 헌신한 이들의 발자취를 찾아 그들의 용기와 희생을 기리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 나갈 예정이다.”고 말했다.
신창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