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s는 가장 치명적인 암 유발 단백질 중 하나다. 과학자들은 지난 30여 년간 Ras를 겨냥하는 약물을 개발하고자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해 왔다. 그러나 일부 과학자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고 또 다시 전의(戰意)를 불태우고 있다."

H-Ras의 구조(출처: http://en.wikipedia.org/wiki/Ras_subfamily)
스티븐 페식이 제약업계를 떠나 밴더빌트 대학교에서 신약개발 연구소를 차렸을 때, 과학계에 알려진 핵심 발암단백질 다섯 개를 연구대상 목록에 올렸다. 그 단백질들은 종양의 증식을 촉진하지만, 신약개발자들에게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는 것들이었다. 즉, 너무 밋밋하거나 헐렁헐렁하거나 다루기가 까다로워, 약물이 접근하거나 달라붙기가 어려웠는데, 이를 그 바닥의 전문용어로 '언드러거블(undruggable)'이라고 한다.
페식이 작성한 목록에서 맨 위에 있는 것은 Ras라는 단백질군(群)이었다. 지난 30여 년 동안, 「Ras 돌연변이(Ras를 코딩하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는 암을 유발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 중 하나로 손꼽혀 왔다. Ras 돌연변이는 가장 공격적이고 치명적인 암 중 일부(예: 폐암의 25%, 췌장암의 경우 90%)에서 발견되며, 일부 진행성 암 환자의 경우 Ras 돌연변이가 있으면 일찍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Ras의 활성을 안전하게 억제하는 방법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가 계속 실패하다 보니 많은 과학자들이 다른 분야로 이적했고, 제약사들은 신약개발을 중단하는 사태가 속출했다. 그러나 페식을 비롯한 일부 연구자들은 새로운 기법과 (Ras의 작용 메커니즘에 대한) 고급지식으로 무장하고, Ras를 다시 정조준하고 있다. 때마침 2014년 미 국립암연구소는 「Ras 이니셔티브(Ras Initiative)」를 출범시키고, 연간 1,000만 달러를 들여 「Ras가 일으키는 암(Ras-driven cancers)」을 처치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그리고 연구자들은 이미 몇 가지 화합물을 발견했는데, 잘만 변형하면 Ras를 겨냥하는 최초의 신약이 탄생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Ras 르네상스(Ras renaissance)」가 도래하고 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Ras는 가장 중요한 발암유전자(oncogenes) 중 하나다. Ras를 결코 만만히 봐서는 안 된다"라고 웰스프링바이오사이언스(Wellspring Biosciences)의 대표 트로이 윌슨은 말한다. 웰스프링바이오사이언스는 캘리포니아주 라호야에 있는 바이오업체로, 2012년 Ras를 정복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하지만 「Ras 르네상스」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Ras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파급력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Ras 연구에서 조금이라도 성공의 가능성이 보이는 경우, 다른 난공불락의 단백질들을 다루는 데 소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Ras를 겨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손사레를 친다고 해서 포기해서야 되겠는가? 도그마란 움직이는 표적일 뿐이다"라고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채플힐 캠퍼스의 채닝 더 박사(암 연구자)는 말한다.
1. 높이 매달려 있는 열매
1982년 더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인간 Ras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암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참고 1). 그것은 인간의 유전체에서 발암유전자를 찾아내려는 노력의 정점을 이룬 사건이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발암유전자는 바이러스와 동물모델에서나 언급되었을 뿐이었다. 현대 암연구는 ‘유전자 돌연변이 추적’과 ‘변형된 분자경로 매핑(mapping)’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더 박사는 그 토대를 쌓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는 또한 '발암 유전자를 겨냥하면 일부 암을 치료하는 약물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싹트게 해 준 인물이기도 하다.
그후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옴에 따라, "인간은 매우 비슷한 Ras 단백질을 3개 만들며, 이 단백질들은 세포증식이 필요할 때(예: 손상된 조직을 대체할 필요가 있을 때) 활성화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세포 외부에서 신호가 전달되면 Ras 단백질의 스위치가 켜져(on), GTP라는 분자에 결합하게 된다. 그런데 암을 유발하는 Ras는 오프(off) 스위치가 망가져 GTP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다. 따라서 "돌연변이 Ras를 멈추게 하는 방법은 'GTP를 방해하는 약물을 만드는 것'이다"라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Ras의 생화학적 성질에 대한 이해가 증가할수록 비관론도 증가해갔다. ① Ras는 GTP에 대한 친화력이 극도로 높아, Ras가 GTP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② 또한 Ras는 다른 단백질들과도 상호작용을 하는데, 세포 안으로 침투할 수 있는 소분자약물(small-molecule drugs)의 크기가 너무 작아, (단백질 간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넓은 표면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③ 그렇다면 항체는 어떨까? 항체는 탁월한 약물로 사용될 수 있으며 표적의 넓은 범위를 차단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항체들이 세포막을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Ras의 구조는 더 큰 문제였다. 신약 개발자들은 단백질의 핵심부위에 결합하는 화합물을 찾아내기 위해 단백질의 구조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그들은 약물이 쏙 미끄러져 들어가 다양한 접촉점들과 결합할 수 있는 깊은 포켓(deep pocket)을 선호하는데, 안타깝게도 Ras는 구조가 비교적 밋밋해서 그런 공간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참고】 Ras를 공략하라
Ras 단백질를 공략하는 약물은 개발하기가 매우 어렵다. Ras는 표면이 비교적 밋밋하여 포켓(pocket)이 거의 없으므로, 약물분자가 단단히 결합할 수가 없다.
1. 중요한 지질꼬리가 Ras에 첨가되는 것을 막는 약물들은 임상시험에서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2. Ras는 GTP(빨간색)에 신속하고도 단단하게 결합하므로, Ras와 GTP의 상호작용을 차단하기가 매우 힘들다.
3. Ras에 결합하여 형태를 바꿈으로써 Ras의 표면에 포켓을 형성하는 약물이 개발되었는데, 성능을 강화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4. Ras에 발생하는 가장 흔한 악성 돌연변이(G12C)는 시스테인(cysteine)이라는 아미노산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스테인에 비가역적으로 결합하는 약물이 개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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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과학자들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했다고 믿었다. Ras가 기능을 발휘하려면 지질꼬리(fatty tail)를 이용하여 세포막의 내부에 달라붙어야 한다. 이 꼬리를 덧붙이는 효소는 파르네실 전달효소(farnesyl transferase)인데, 이것을 겨냥하는 것이 Ras 자체를 겨냥하는 것보다 더 쉬운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파르네실 전달효소를 저해하는 약물을 이용하여 Ras의 활성을 억제한다'는 아이디어가 제시되었다.
이 아이디어는 처음에는 필승전략인 것처럼 보였다. 파르네실 전달효소 저해제(FTIs: farnesyl transferase inhibitors)는 마우스와 인간 암세포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세포증식을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참고 2). 이에 따라 2000년대 초반에는 최소한 여섯 개의 제약사들이 신약 출시 경쟁을 벌였다. "Ras의 고질적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자 모든 제약사들이 앞다투어 FTIs에 올인하는 바람에, 다른 메커니즘을 통한 Ras 억제제 개발은 깡그리 중단되었다. 제약업계는 일제히 숨을 죽이고 결과만을 기다렸다"라고 독일 막스플랑크 분자생리학연구소의 헤르베르트 발트만 박사(화학)는 회고했다.
그러나 FTIs는 제약업계 사상 최대의 실패작으로 밝혀졌다. 임상시험이 실시되는 족족 실패였다. "우리는 거듭된 실패로부터 Ras의 생물학에 대해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라고 더 박사는 회고했다(더 박사는 그때까지 Ras를 연구하고 있었다).
인간이 보유한 3가지 Ras(H-Ras, K-Ras, N-Ras)는 구조와 아미노산 배열이 거의 비슷한데, 과학자들은 기능도 비슷할 거라고 가정해 왔다. 그런데 H-Ras는 다른 Ras에 비해 연구하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보니, Ras 연구에 사용되는 도구들(예: 배양된 세포, 유전자변형 마우스, 항체)이 대부분 H-Ras를 이용하여 개발되었다는 게 함정이었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과학자들은 'H-Ras를 연구하면 되는데, 구태여 다른 버전을 사용할 이유가 뭔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불행하게도 이 같은 오해 때문에 많은 연구비가 낭비되었다"라고 더 박사는 말했다.
그런데 암의 경우, H-Ras보다 K-Ras와 N-Ras가 훨씬 더 중요하며, 암세포는 Ras를 제대로 가동시키기 위해 비상대책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파르네실 꼬리가 없는 경우, 암세포는 또 하나의 효소를 이용하여 다른 지질꼬리를 만듦으로써 실험약물을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연구자들은 Ras를 외면했으며, Ras를 다시 쳐다보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그들은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돌아온 연구자들은 이구동성으로 'Ras는 여전히 암에서 가장 중요한 표적 중 하나로군. 그런데 10년이 지나도록 이 분야에서 아무런 업적도 나오지 않았네. 이제 슬슬 일 좀 저질러 볼까?'라며 팔을 걷어붙였다"라고 발트만은 회상했다. 돌아온 연구자들은 참신한 접근방법을 취했는데, 그것은 'Ras가 일으키는 암의 약점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런 약점 중의 하나가 합성치사(synthetic lethality)이었다. Ras 단백질에 과부하가 걸리면 암세포는 종종 다른 분자경로에 의존하여 활로를 모색한다. 이 경우 해당 경로를 차단하면 정상세포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Ras가 일으키는 종양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살해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 같은 개념을 염두에 두고, 돌연변이 Ras 유전자의 합성치사 파트너(synthetic-lethal partner)를 찾아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참고】 합성치사란?
BRCA(breast cancer susceptibility genes)와 PARP(poly-ADP ribose polymerase)의 합성치사(synthetic lethality)를 이용하여 건강한 세포를 살리고 암세포만을 살해하는 전략을 생각해 보자.
BRCA와 PARP는 DNA 회복을 담당하는 핵심요소로, 서로 다르지만 보완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그런데 세포는 BRCA가 없어도 - 변이가 누적되어 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기는 하지만 - 살아남을 수는 있다. 그러나 BRCA와 PARP가 모두 사라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럴 경우 세포는 손상되거나 변형된 DNA가 수리되지 않아 사멸하게 되는데, 이를 합성치사라고 한다.
특정 유방암 및 난소암 환자들의 경우 기능적 BRCA를 상실하고 있는데, 과학자들은 환자들의 암세포에서 PARP를 차단함으로써 건강한 세포는 살리고 암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살해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건강한 세포가 생존할 수 있는 이유는, 기능성 BRCA를 보유하고 있어서 PARP가 차단되어도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PARP 저해제는 (기능성 BRCA가 없는) 암세포만을 사멸시키게 된다. ※ Source: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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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많은 논문들이 쏟아져 나와 새로운 표적의 가능성을 알렸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연구결과의 재현성을 문제 삼는 보고서들도 많이 발표되었다(참고 3). 2014년 10월, 스위스의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의 윌리엄 셀러스 박사는 한 컨퍼런스에서, 자신이 이끄는 팀이 가장 유망한 연구결과를 똑같이 시도해 봤지만 재현에 실패했다고 보고했다.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의 줄리언 다운워드 박사에 의하면, 맥락(예: 세포의 종류, 검사조건)이 달라질 경우 실험결과가 쉽게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아직도 표적을 찾아내기 위해 실험결과를 뒤적이고 있지만, 다운워드 박사에 의하면 그런 노력들이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실험할 때마다 다른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믿을 만한 표적이 아닐 수도 있다"라고 그는 말한다.
2. Ras에 꼭 맞는 분자
합성치사 접근법에 대한 실망을 가슴에 묻고, 많은 연구자들은 Ras 자체를 겨냥하는 방법에 다시 눈을 돌리고 있다. "우리는 Ras를 직접 겨냥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5년간 컴퓨터 모델링 및 신약탐색 방법이 향상됨에 따라, '밋밋하고 포켓이 없는 Ras를 겨냥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새록새록 생겨나고 있다. 예컨대, 과학자들은 Ras에 적합한 소분자의 친화력을 예측할 수 있으며, 단백질의 역학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컬럼비아 대학교의 브렌트 스톡웰 교수(화학생물학)는 말한다.
(1) 스톡웰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Ras 단백질의 표면에 적합한 소분자를 설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아마도 Ras에 적합한 소분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 1단계는 컴퓨터 모델링, 2단계는 실험실 연구를 통해 - 새로운 소분자를 합성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스톡웰 교수는 덧붙였다.
(2) 페식 역시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스톡웰과는 달리 기존 화합물의 라이브러리를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그는 애보트 연구소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냈는데, 내용인즉 '표적에 약하게 결합하는 화합물들의 조각을 여러 개 짜맞추어 단백질 간의 상호작용을 교란하는 것'이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표준 화학 라이브러리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대규모 화합물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페식이 선호하는 단편기반탐색법(FBS: fragment-based screening)을 열쇠공의 열쇠 만들기에 비유한다면, 열쇠의 홈(notch)을 한 번에 하나씩 만드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자물쇠에 맞는 열쇠를 깎기 위해 홈을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간다면, 종국에는 모든 홈을 완성할 수 있다. Ras에 알맞은 화합물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식으로 하면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화합물을 만들 수 있다. 요컨대 우리의 의도는 Ras에 꼭 맞는 화합물을 서서히 완성해 가는 것이다"라고 페식은 말한다.
페식은 제약회사 연구팀과 손을 잡고 K-Ras에 약하게 결합하는 분자들을 130여 개씩이나 발견했다고 한다(참고 4). 이 화합물들은 Ras의 구조변화를 유도하는데, 그 과정에서 결합포켓을 형성하게 된다고 한다. 페식이 이끄는 연구진은 상이한 단편들을 결합하여 적합성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는 열쇠의 두 번째 홈을 만드는 작업에 비견된다. "페식은 제약업계에 있을 때부터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drugging the undruggable) 인물로 명성이 자자했다. 만약 누군가가 Ras에 적합한 화합물을 개발한다면, 그 사람은 바로 페식이 될 것이다"라고 더 박사는 말한다.
(3) 다른 연구자들은 K-Ras의 특이한 돌연변이를 이용하기 위해 K-Ras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K-Ras를 코딩하는 유전자의 돌연변이 중에는 암과 관련된 것들이 많지만, Ras가 일으키는 암(Ras-driven cancers)은 대부분 3가지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한다고 한다. 그런데 3가지 돌연변이에 의해 탄생하는 K-Ras는 거동이 약간씩 다르다고 한다. 따라서 "3가지 돌연변이가 각각 다른 특성을 초래한다면, 그 특성들을 연구함으로써 암세포의 취약성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더 박사의 생각이다.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케반 쇼캇 교수(화학생물학)는 6년 전 Ras 사냥에 합류했는데, 2013년 "K-Ras의 돌연변이 중 하나인 G12C를 겨냥하는 화합물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참고 5). G12C는 글리신이 시스테인으로 바뀐 것을 말하는데, 폐암의 20%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시스테인은 다른 분자들과 쉽게 반응하는 특징이 있으므로, 쇼캇이 개발한 화합물은 이 약점을 물고 늘어져 시스테인과 비가역적으로 결합한다고 한다. "쇼캇이 발견한 화합물이 임상에 도입되려면 좀 더 정교화가 필요하지만, Ras에 직접 결합하는 최초의 후보약물이라는 점에서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쇼캇의 발견은 Ras 연구자들 모두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라고 다운워드 박사는 말한다.
"나는 오래 전부터 돌연변이특이적 접근법(mutation-specific approach)이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왔지만, 최근까지 연구를 주저해 왔다. 신약 개발자들은 비가역적 저해제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는 인체 내에서 다른 단백질들과 예기치 않은 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약물들(예: 림프종 및 골수종 치료제인 이브루티닙)의 성공사례에 힘입어, 나는 마침내 Ras에 비가역적으로 결합하는 화합물을 연구하게 되었다"라고 쇼캇은 설명했다.
(4) 한편 제약회사들은 특정 하위부류(subset)의 환자들에게 잘 듣는 약물을 개발하는 데 점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K-Ras가 초래한 암에 두루 잘 듣는 약물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라고 피츠버그 대학교의 티모시 번스 박사(암 연구자)는 말한다.
3. 향후 전망
페식은 "Ras을 둘러싼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은 - 어떤 형태가 됐든 - 제약사보다는 연구기관에서 나올 공산이 크다"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가 제약업계를 떠난 이유는 - 어렵든 쉽든 - 중요한 표적을 연구하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이었고 한다. 그러나 그에 의하면, 제약회사에서는 이윤추구와 단기업적을 중시한 나머지 과학적 관심이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이기 때문에, 까다로운 표적을 연구하는 것이 합리화되기 어렵다고 한다. "대부분의 제약회사들은 까다로운 표적을 추구하는 데 수반되는 리스크를 부담하지 않으려고 하며, 설사 리스크를 부담하더라도 일시적인 경우가 많다"라고 페식은 지적한다.
그러나 최근 제약업계와 학계를 연결하는 가교(架橋)가 형성되고 있다. 페식의 연구실은 독일의 거대제약사 뵈링거 잉겔하임과 손잡고, 동사(同社)가 개발한 「1세대 Ras 결합 약물」의 효능을 평가할 예정이다. 그리고 쇼캇은 자신이 개발한 저해제를 상업화하기 위해 웰스프링 바이오사이언스라는 바이오업체를 공동으로 창업하고, 얼마 후 얀센 바이오텍의 지원을 이끌어냈다.
또한 미국 정부도 학계와 업계의 공동노력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주도하는 수백만 달러짜리 「Ras 이니셔티브」는 Ras 단백질의 구조에 대한 기초연구와 도구개발을 지원함으로써 신약개발을 촉진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Ras라는 표적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을 거둬내어, 연구자들이 Ras를 정조준 하도록 도와줄 것이다"라고 UCSF의 암 연구자로서 「Ras 이니셔티브」를 이끌고 있는 프랭크 매코믹 박사는 말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제약업계는 키나아제(kinases)라는 단백질 분야에서 낮게 매달린 열매를 거둬들이는 데 주력해 왔다. 키나아제는 겨냥하기가 용이한 편이어서, 유용한 항암제들을 많이 수확하는 개가를 올렸다. 그러나 키나아제의 물결은 이제 잠잠해지기 시작하고 있으며, 바야흐로 높이 매달린 열매, 즉 Ras 단백질에 눈을 돌릴 때가 왔다. Ras는 키나아제보다 겨냥하기가 더 어렵지만 훨씬 더 중요하다.
"최근 Ras에 대한 연구가 부활하고 있는 것을 계기로, 이에 자극받은 과학자들이 다른 난공불락의 표적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으면 좋겠다. Ras 연구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온다면, 그 영향력은 다른 표적에까지 파급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진정으로 질병치료를 원한다면, 지금껏 신경쓰지 않았던 표적들을 다양하게 검토해 봐야 한다"라고 스톡웰은 말한다.
※ 참고문헌 1. Der, C. J., Krontiris, T. G. & Cooper, G. M. Proc. Natl Acad. Sci. USA 79, 3637–3640 (1982). 2. Appels, N. M. G. M., Beijnen, J. H. & Schellens, J. H. M. Oncologist 10, 565–578 (2005). 3. de la Cruz, F. F., Gapp, B. V. & Nijman, S. M. B. Annu. Rev. Pharmacol. Toxicol. 55, 513–531 (2015). 4. Sun, Q. et al. Angew. Chem. Int. Ed. Engl. 51, 6140–6143 (2012). 5. Ostrem, J. M, Peters, U., Sos, M. L., Wells, J. A. & Shokat, K. M. Nature 503, 548–551 (2013 ※ 출처: Nature 520, 278–280 (16 April 2015) doi:10.1038/520278a (http://www.nature.com/news/cancer-the-ras-renaissance-1.17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