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껍데기 같은 두 어른
요즘 어머니(91세)가 ‘허리 아프다’ 소리를 자주 하신다.
복대 차고 워커 밀고 아침 운동 나가는 힘겨운 싸움이다.
궂은 날은 기력이 없어 쉬신다.
건강이 더 나빠지면 자식들 짐 될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어머니 입맛이 돌아오지 않아 겁이 난다.
적게 드시고 때를 거른 탓에 교회 차에 오를 힘이 부친다.
그 모습에 눈물이 핑 돈다.
장모님(97세)도 교회 현관의 다섯 계단 앞에 선다.
네 발로 기어오를 폼이다.
허리 아픈 분들이 쉽게 생각한 자세다.
기막힌 동작에 아내가 덥석 손을 잡는다.
시골 계실 때 조반 후 면장갑 끼고 뒷산을 그렇게 올랐다.
취나물 뜯고, 고사리 꺾고, 5년 근 도라지를 캐서 팔았다.
그 시절 담아 놓은 백초를 지금도 마신다.
두 분 다 두메산골에서 자랐다.
시대적인 어려움 가운데 몸 생각하지 않았다.
억척스럽게 자식 키우다 탈이 났다.
이제 삶의 막바지에 이르러 살갗이 쭈글쭈글해졌다.
난 어릴 때 양판 들고 논에 우렁이 잡으러 다녔다.
그때 물 위에 뜬 빈 껍데기를 보았다.
마치 새끼들이 어미 속살 파먹고 뱃놀이하며 깔깔대는 것 같았다.
자식 잘 되길 원해 평생 희생하며 늙으신 어머니와 장모님도 그렇다.
가정 위해 살신성인의 섬김으로 빈 껍데기만 남았다.
두 어른을 가까이 모심도 하나님의 복이다.
장모님은 치매가 진행되어도 예배와 헌금하는 일은 놓지 않았다.
아내가 주일 예배 후 경균이와 장모님을 맛집으로 모신다.
난 따로 어머니와 함께 무등산 ‘샤브 한쌈’으로 간다.
색다른 야채를 넣은 월남 쌈을 잘 드신다.
부드러워 이빨 없는 노인이 먹기 좋은 도토리묵을 추가시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묻고 듣는다.
‘결혼하고 할머니, 시동생, 조카들과 살다 4년 만에 제금 났어.
하루는 아빠가 복통을 일으켜 네 발로 방구석을 기었어.
꼬치 까리 물을 타서 마셔도 소용없었어.
들것에 매고 3킬로쯤 걸어 기차 타고 순천에서 응급 수술 받았어.
복막염이라 배 양쪽을 한 뼘씩 쨌어.
다음 날 간호사에게 어제 수술한 환자
죽었을 거라고 의사가 확인하라 했데..
명이 길어 살았지 솜뭉치로 염증 빼낼 때 죽을 고생했지.
물을 못 마시게 해 입술만 적셨지.
갈증에 퇴원하면 산골 도랑물 다 마시겠다 할 정도였어.’
그 후 큰 딸을 낳았다.
생명을 이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였다.
70년 전 아버지가 깨어나지 않았다면 내 목회는 없었다.
영적인 가문도 잇지 못했다.
서빙하는 아주머니가 다가섰다.
‘막내아들이지요. 별나게 어머니와 다정하네요.’
장남을 막내 취급하자 어머니가 어이없어 웃었다.
말실수를 인정하고 ‘뭐가 더 필요한지’ 자꾸 물었다.
‘다음에 오시면 더 잘해 드리겠다’며 주차장까지 배웅해 주셨다.
어머니를 휠체어에 앉혀 산책길로 올라갔다.
아름드리나무가 우거진 숲길이지만 등골에 땀이 찼다.
아들 생각고 그만 가자 했지만 증심교에서 내려왔다.
무등산을 찾은 많은 이의 눈길이 어머니에게 모아졌다.
지난 광복절, 정남진 우드랜드 방문 때도 마차가지였다.
자연과 더불어 숨 쉬는 맑은 공기에 마음도 밝았다.
천천히 걸어도 힐링 되는 코스였다.
빽빽하게 들어찬 편백나무 향이 치료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재문화 체험관에 들러 다양한 작품들을 둘러봤다.
점심시간, 토요 시장 한우 식당을 찾았다.
고기 두 팩에 버섯과 키조개를 얹었다.
즉석에서 구운 불고기라 맛있게 드셨다.
주인이 커피를 권하며 살갑게 맞았다.
난 하루 두 끼를 고집하지만 어머니에게 맛집을 권한 이유가 있다.
30년 전, 송 권사님이 대장암 수술받고 식욕을 잃을 때였다.
딸이 서둘러 전국 맛집을 찾아 입맛 회복시켜 여태 살아 계신다.
믿음과 음식이 살렸다. 입은 열면 살고 닫으면 끝이다.
누죽달산! 누우면 죽고 달리며 산다.
어머니로 인해 맨몸 근력 운동에 좋은 팔 굽혀 펴기를 자주 한다.
상체 근육을 골고루 발달시키고 하체에도 자극을 준다.
복근과 코어 근육 키우는 그 자체가 플랭크다.
삼두근, 이두박근 키워 팔 힘이 강해졌다.
달릴 때도 팔로치고 나가는 힘에 4분대 속도를 냈다.
정한 날, 기독병원 예약 진료를 동생과 같이 갔다.
폐렴 증세가 보여 청풍 기독 약국 2층 가정의학과를 찾았다.
신속 항원 검사에 이상 없었다.
여의사 명찰과 등대교회 사모님 이름이 같았다.
말소리와 제스처도 닮아 놀랐다.
폐의 깊숙한 곳이라 내시경 조직 검사가 어려워 소견서를 써 줬다.
향후 치료 생각하고 대학 병원으로 연결시켰다.
8개월 전, 시티도 챙겨야 했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동생이 밥 산다고 맛집으로 가잔다.
멀지만 효령 염소 탕 식당으로 갔다.
주인이 어머니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았다.
앉자마자 뚝배기가 나왔다.
감사 기도 드리고 맛있게 먹었다.
어머니 고기 건더기는 내 차지였다.
어머니가 국물을 잘 드셔 좋았다.
난 앉은 자리에서 어머니의 감사 거리 백 개는 댈 수 있다.
첫째는 곁에 살아 계심이다.
지난날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장래에 대한 소망을 갖는 일이다.
세상 끝나도 사라지지 않고 영원하리라는 마음에 고마울 뿐이다.
무엇보다 어머니는 예배를 사모하며 기다리신다.
수요 예배 전, 폭우가 내려 시청 재난 문자가 떴다.
점차 수그러들 예보에 운행을 나갔다.
찬양, 기도, 말씀 시간이 은혜로 채워졌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
신사적인 분들의 만남이었다.
저녁 하늘을 쳐다봤다.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총총한 별들이 빛을 발하였다.
다음 날, 가거도 길에 풍랑으로 발 묶인 지인을 찾아 어머니와 함께 갔다.
2023. 8. 26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
첫댓글 당신이 가지신 것 모두 내어 주시고도
더 못 주셔서 안타까워하시는 분이 어머니라더니
목사님 어머님 역시 그러시군요.
저도 지난 목요일에 반찬을 들고 어머님을 뵈러 갔는데,
코로나에 감염되셔서 함께 밥을 먹지 못하고 반찬만 두고 왔습니다.
재밌는 것은 마을 경로당에 또래 할머니 5분이 매일 같이 모여서 10원짜리 민화투를 치시는데,
모두 다 코로나에 걸려서 5일 동안 자가 격리를 명 받았답니다.
날마다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하면 혓바늘이 돋는 분들인데 5일을 어떻게 보내실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에 10원짜리 동전은 전부 시골 마을 경로당에 있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쩌다 들러서 보면 각자가 10원짜리 동전을 커다란 주머니에 가득 가지고 계신 것 보았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날 화투 놀이가 끝나면 모든 돈을 다시 돌려준답니다.
치매 안 걸리도록 놀아준 것만도 고마운 것이라면서 ...
천상 효자 목사님의 흥미진진한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강 목사님
감사합니다.
목사님 사모님 부부
늘 연로한 어머니 반찬으로 섬기시는 일 감동이네요
코로나가 시골까지 극성을 부리니 걱정 많겠네요.
약한 할머니들 빠르고 온전한 회복 위해 기도할게요
경로당 10원짜리 민화투가 치매 예방약이지요
우리 어머니 아파트도 세 할머니가 모여 화투 치네요
여기는
돈을 따면 어머니 집에 모아 두고
공동 경비로 쓰신 것 같더라고요
지난번 투루키에 지진 구제 헌금으로
10만원 정도 보태 깜놀 했지요
어머니가 건강할 때
간식과 식사 제공까지 했는데
요즘은 그 분들이 어머니 식사를 챙기시네요
어머니와 저는 화투를 못하지요
아버지 도박에 뜨거운 맛을 보았기 때문..
성장하면서 그 어려움이 컸고
어머니와 제가 그 노름 빚 다 갚았네요
바쁜 주말에 격려의 답글로 반응하신
강 목사님이 언제나 강하고 위대해 보입니다.
늘 건강 챙시기고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