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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담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 (47) 기도
무릎 꿇음은 몸과 영혼이 결합된 내적 기도의 외적 표현
- <사진 1> 노르베르트 베버, ‘묵주를 든 두 소녀’, 유리건판, 1910년대,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십자성호 그으며 일상을 하느님께 봉헌
기도는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을 들어 높이는 것이며, 하느님께 은혜를 청하는 것이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일상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새 날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잠자리에 들어서는 오늘 하루 주신 모든 은총과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한다.
가톨릭과 정교회 신자들은 이마에서 가슴으로, 이 어깨에서 저 어깨로 십자성호를 그으며 자신의 전 존재가 십자가와 하나됨을 고백하고, 타인에게 삼위일체 하느님을 증거한다.
가장 짧고도 명료한 십자성호 기도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나를 축복하고 거룩하게 하심을 절로 드러낼 뿐 아니라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십자가로 모든 이를 구원하셨음을 선포한다. 그래서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정성으로 십자성호를 그으며 일상을 하느님께 봉헌한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개인의 도량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따름’이다. 주님께서 기도의 완전한 본보기이시기 때문이다. 네 복음서는 기도하시는 예수님 모습을 보여준다. 주님께서는 자주 고독 속에서 은밀히 기도하셨고,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버지 하느님 뜻을 따르는 절대적 확신과 사랑, 순명을 보여주신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깨끗한 마음과 생생하고 꾸준한 믿음, 자녀다운 대담성을 가지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신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촉구하시며 당신 이름으로 아버지께 간청하라고 권고하신다.
“신약에서 기도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무한히 선하신 성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성령과 맺는 생생한 관계이다. 하늘 나라의 은총이란, 거룩하고 고귀하신 삼위일체 하느님과 인간의 마음이 온전히 결합되는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기도 생활이란 평소에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면전에서 지내는 것이며, 그분과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는 생활은 언제나 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례 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기도는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어 그분의 몸인 교회 안에서 확장되어 가는 그만큼, 그리스도다운 기도가 되는 것이다. 기도의 차원은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사랑의 차원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565)
이 주님의 권고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강림 날부터 ‘한자리에 모여’(사도 2,1)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며’(사도 1,14) 신앙생활을 성장시켜오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무엇보다 ‘성경 말씀을 듣고 읽으며’ ‘성찬례에 참여’하고 ‘성사 생활과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다.
- <사진 2> ‘성당에서 기도하는 두 소녀’, 유리건판, 1920년대, 삼원봉성당,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 <사진 3> ‘성당에서 기도하는 두 소년’, 유리건판, 1920년대, 삼원봉 성당,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간도 삼원봉성당에서 기도하는 어린이들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한국을 방문해 ‘묵주를 든 두 소녀’를 사진에 담았다.<사진 1> 사진 파일에는 ‘1910년대’라고 적혀있지만, 두 소녀의 사진 속 배경인 한옥 성당과 벽돌담이 내평성당과 흡사해 아마도 베버 총아빠스가 1925년 내평성당을 방문해 우리나라의 많은 풍속 사진을 담을 때 촬영한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정해 본다.
십자가 목걸이를 한 두 소녀는 다소곳이 묵주를 쥐고 있다. 기도하는 손은 언제 봐도 거룩하고 아름답다. 20세기 신학자 칼 라너 신부는 손이 얼굴 다음으로 몸에서 가장 정신적인 부분이라고 했다. 손이 개인의 내·외면의 처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란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손을 주신 이유는 그 안에 영혼을 들고 다니기 위함’이라는 교회 속담도 있다. 묵주를 다소곳이 쥐고 있는 두 소녀의 손은 ‘겸손’을 드러낸다. 겸손은 기도의 바탕이다. 교회는 겸손을 ‘기도의 선물을 무상으로 받기 위한 마음가짐’이라고 가르친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 요소다. 가톨릭과 정교회는 하느님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로 공경하고, 신자들은 곤경과 위험이 닥칠 때 성모님의 보호 아래로 달려들어가 도움을 간청한다.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에는 1920년대 만주땅 간도 삼원봉성당에서 기도하는 두 소녀와 소년을 촬영한 필름 원판이 있다.<사진 2·3> 삼원봉성당은 1909년 5월 1일 훗날 초대 대전교구장 주교로 임명되는 라리보 신부가 첫 본당 주임으로 부임해 사목활동을 펼친 유서 깊은 신앙 공동체다. 1923년부터 성 베네딕도회가 사목을 맡았고, 덕원의 순교자 하느님의 종 김종수 베르나르도 신부가 이곳 삼원봉 출신이다.
- <사진 4> ‘기도하는 덕원 신학교 교수 신부와 신학생’, 랜턴 슬라이드, 1927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무릎 꿇음은 극명하게 겸손 드러내는 자세
“삼원봉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발전하는 모습을 살펴보자면, 매일 저녁 성당에 모여 공동 저녁기도를 바치는 것을 들 수 있다. 남녀 학생들이 하루씩 번갈아 가며 선창을 한다. 어린아이들도 짧지 않은 저녁기도를 쉽게 따라 익힌다. (⋯) 신자들이 집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은 매우 보기 좋았다. 한국 교회 초창기를 떠올려도 쉽게 이해가 된다. 본당 공동체 모두 하나된 마음으로 성당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더 자주 보고 싶다.”(하르트만노 에벌 신부, 1926년 「삼원봉 본당 연대기」 중에서)
삼원봉은 겨울이면 기온이 영하 30℃까지 내려가는 혹독한 곳이다. 포도주와 성혈이 얼어 촛불로 성작을 데워가며 미사를 지내야 했다. 사진 속 소년소녀들의 모습에 그 추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무릎을 꿇는 것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는 것보다 더 극명하게 겸손을 드러낸다.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이 행동은 하느님을 경외함을 표현한다. 무릎을 꿇는 것은 몸과 영혼이 결합된 내적 기도의 외적 표현이다. “하느님께서는 내적 기도에 몸까지 결합시키는 외적 표현도 원하신다. 왜냐하면, 외적 표현은 하느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완전한 찬미를 이루기 때문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703)
‘기도하는 덕원 신학교 교수 신부와 신학생’<사진 4> 은 1927년에 촬영됐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가장 알찬 시간이다.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 머물고, 하느님 역시 우리 안에 머무시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동안 우리는 육신과 영혼의 눈길을 하느님께 고정시키고 그분께 마음을 기울여 하느님 말씀을 경청한다. 이 경청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기도 중에 ‘예’(Amen)라고 응답하고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Fiat)라는 순명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일상과 분리될 수 없다. 기도의 최종 목표는 하느님 사랑에 일치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6-17)
기도는 사랑의 실천이 동반됨을 잊지 말자.
[사진에 담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 (48) 성당
유서 깊은 교우촌에 자리한 한옥 성당은 ‘한국의 바실리카’
- <사진 1> 노르베르트 베버, ‘하우현성당’, 유리건판, 1911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한국 성당의 ‘어머니’ 서울 중림동약현성당
성당(聖堂)은 말 그대로 ‘거룩한 집’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하느님 백성의 집’이다.“주님께서 친히 당신을 돌에 비겨, 집 짓는 이들이 버린 돌이 바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하셨다. 그 기초 위에서 교회가 사도들을 통하여 지어졌고, 그 기초 때문에 교회는 견고한 결속력을 지닌다. 그 건물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꾸며진다. 하느님의 집, 곧 하느님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 하느님의 신령한 거처,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계시는 장막, 특히 거룩한 교부들이 찬미하는, 돌로 지은 지성소에서 표상되는 성전이라 불리며, 전례에서는 당연히 거룩한 도읍, 새 예루살렘에 비겨진다. 바로 그 안에 우리는 이 세상의 살아 있는 돌로 쓰인다.”(「가톨릭교회 교리서」 756) 성당의 근본 목적은 하느님 백성이 모여 ‘오로지’ 그리고 ‘언제나’ 거룩한 ‘전례’만을 거행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성당은 모든 공간이 거룩하지만 그중에서도 성체성사가 거행되는 ‘제대’가 중심이며, 성찬례를 집전하는 ‘제단’과 미사에 참여하는 이들의 ‘회중석’으로 구분된다.
조선 왕조 치하의 박해가 끝나고 이 땅 위에 세워진 첫 성당이 바로 서울 중림동약현성당이다. 주교좌 명동대성당보다 6년이나 이른 1892년 지어져 이듬해 봉헌된 중림동약현성당은 1801년 신유박해를 시작으로 기해(1839년)·병인(1866년)박해를 거치면서 순교 성인 44위와 복자 27위를 낳은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를 품고 있는 각별한 곳이다.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1911년 3월 8일 성 요셉을 수호성인으로 모신 중림동약현성당을 찾았다. “언덕 위의 성 요셉 성당은 간결하고 소박하지만 정갈한 품위를 지키며 아랫마을 신자들을 굽어보고 있다. (⋯) 성당은 고딕식 벽돌 건물이다. 성당 안팎 어디에도 특별히 흥미롭거나 예술적인 장식은 없다. 신자석에 남녀를 격리하는 목제 칸막이가 성당 길이대로 아직 설치되어 있다. 남녀유별은 한국의 오랜 관습이다. 한국 가톨릭교회가 태동하던 시대에도 이 관습은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관습도 변했다. 그러나 칸막이는 한국 교회의 영광된 시대를 추억하는 뜻에서 그냥 남겨 두었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132쪽)
중림동약현성당이 한국 성당의 ‘어머니’라고 하면, 1898년 봉헌된 주교좌 명동대성당은 한국 성당의 ‘머리’이다. 베버 총아빠스는 명동대성당의 첫인상을 “고딕 양식으로 높이 솟은 주교좌 성당에는 십자가가 하늘 높이 달려 도시를 비추고 있다. 십자가는 만백성을 빛으로 인도하는 이정표다”라는 짧은 글로 표현했다.
- <사진 2> 노르베르트 베버, ‘갓등이성당’, 유리건판, 1911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하늘과 땅이 만나는 거룩한 하느님의 지성소
박해 이후 깊은 산 속 험하고 가파른 골짜기에 자리한 교우촌 중심에 기와와 초가로 지어진 한옥 성당들은 ‘한국의 바실리카’였다. 과장된 표현일 수 있고, 물리적 공간으로도 ‘대성전(바실리카)’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협소하지만 박해 후 많은 사람이 함께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전례 공간으로서 쓰임새는 한치의 다름이 없다.
한국의 바실리카들은 유럽의 대성전들과 마찬가지로 강당식 직사각형 평면에, 가운데 너른 공간을 기준으로 좌·우측으로 길게 늘어선 기둥들을 따라 복도(측랑)가 있었다. 돌이 아닌 흙으로 지은 성당이지만 순교를 각오하고 박해를 이겨낸 교우촌 신자들의 열심한 신앙심은 이 세상 모든 바실리카를 채우고도 남았다.
베버 총아빠스가 처음 대면한 한국의 바실리카가 ‘하우현성당’이다.<사진 1> 그는 이 교우촌에 매료돼 신자들은 물론 마을 구석구석을 사진에 담았다. “성당은 초가지붕에 막돌과 진흙으로 궁색하게 벽을 쌓은 나지막한 토담집이었다. 우리는 몸을 굽혀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좁고 초라했다. 천장에는 생나무 들보가 튀어나와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였다. 울퉁불퉁한 기둥이 들보를 바치고 있었다. 장식이라곤 낡은 양탄자로 제대 네 면을 두른 것이 전부였다. 문과 창문들은 가느다란 나무 격자로 되어 있었다. 문과 창문의 격자 위에 바른 창호지에 석양이 비치었다. 전면에 있는 제대 옆 창문 두 개는 붉은 색유리였다. 색유리를 통해 신비스러운 빛이 장엄한 어스름 속으로 들어왔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193쪽)
하우현성당에 이어 방문한 곳이 ‘갓등이성당’이다.<사진 2> 1839년 기해박해 이전부터 자리한 유서 깊은 교우촌이다. 아직 옹기를 구우며 생계를 유지하던 신자들을 보고 목멘 베버 총아빠스는 갓등이를 ‘박해의 유물’로 표현했다. 그러면서 이곳 신자들의 영웅적 삶을 칭송했다.
성당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장소이고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지성소다. 이 거룩한 공간에 들어선 인간은 온 마음과 온 정성으로 하느님께 기쁨에 찬 흠숭례를 드린다.
- <사진 3> ‘팔도구성당 종탑’, 유리건판, 1925년 이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성당, 신앙으로 목숨 지탱하던 삶의 자리
그리스도인의 몸은 성당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반응한다. 20세기 저명한 신학자이자 가톨릭 지성인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문을 지나면서 장터와 분별된 조용하고 축성된 내부에 들어서게 된다. 여기는 성소(聖所)이다. (⋯) 이 안에 속하지 않는 것은 생각·소원·근심·호기심·허영할 것 없이 모두 밖에 놓아두고 자신을 정화해야 한다. (⋯) 성당이 이루는 공간은 하느님만을 위해 선정되어 있다. 하느님만을 위해 이룩되고 성화되어 있다. 곧게 솟은 기둥·넓고 튼튼한 벽을 보면서 우리는 마음으로 ‘그렇지. 여기가 하느님 계시는 집이지’ 하고 따로 느끼게 된다.”(「거룩한 표징」 40~41쪽, 장익 주교 옮김, 분도출판사)
성 베네딕도회는 파리외방전교회가 사목하던 두만강 너머 북간도 지역을 1920년부터 관할하게 됐다. 북만주 지역에서 용정 ‘팔도구’는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다. “간도 지역 가톨릭 신자 80%가 팔도구 출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신심 깊은 교우촌인 이곳은 베네딕도회가 사목을 관할할 당시 일본 총독부와 남만주철도주식회사, 관동군 그리고 마적단으로부터 갖은 약탈을 당했다. 특히 마적단의 횡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저녁에 뮈텔 주교로부터 최문식 베드로 신부가 풀려났다는 긴급 전갈이 왔다. 최 베드로 신부는 한국인이 다수 이주해 간 남만주 북간도(팔도구)에서 사목하다가 반년 전쯤 중국 마적단에게 인질로 잡혀갔다. 그동안 노예처럼 학대당하고 삶과 죽음을 오갔다고 한다. 마적은 마을을 약탈하고 성당과 부속 건물을 파괴했다. 2만 엔에 달하는 몸값을 요구했으나, 신자들이 모금한 4000엔 선에서 석방이 이루어졌다.”(백동 수도원 연대기, 1920년 2월 20일 자)
마적단은 수시로 팔도구 신자들을 납치해 돈을 요구했다. 베네딕도회 선교사들은 팔도구 신자들이 더 안전하게 생활하고 신앙으로 뭉칠 수 있도록 성당을 보수했다. 마적들이 최문식 신부를 납치하면서 성당을 폐허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화강암으로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벽돌을 쌓았다. 일곱 기둥으로 내부 공간을 나눴다. 벽에 회칠해 깔끔하게 단장하고 보라색 천에 중국식으로 금색 글자를 새겨 성당을 장식했다. 종탑 수리도 했다. 종탑 목조 지붕이 썩어 빗물이 제의실에 떨어졌다. 팔도구 신자들의 10년 숙원사업이었던 종탑이 1925년 11월 초 35m 높이로 우뚝 섰다.<사진 3>
1931년 11월 4일 팔도구에 새 성당이 봉헌됐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성당이 완공되자 마적단이 쳐들어와 함석 지붕을 훔쳐가더니 나중에는 성당을 깡그리 불태웠다. 이처럼 조선 왕조 치하 박해 종식 이후 일제 강점 시기까지 한국의 성당은 가난한 신자들의 은둔처였을 뿐 아니라 신앙으로 목숨을 지탱하던 삶의 자리였다.
[사진에 담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 (49) 얼굴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얼굴은 하느님 사랑과 자비의 거울
- <사진 1> 노르베르트 베버, ‘여학생들’, 유리건판, 1925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하느님 모상인 모든 인간은 존엄한 인격체
얼굴은 그 사람의 자아를 반영한다. 기쁨과 환희, 자비와 관용, 고달픔과 슬픔, 분노와 인색이 모두 얼굴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대의 첫 인상을 통해 됨됨이를 판단하기도 하고, 기분을 헤아리기도 한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얼굴은 선하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일 뿐 아니라 주님을 통해 사랑이 가득하고 자비가 풍성한 거룩하신 하느님을 뵈었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운 얼굴은 아름답다. 그래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늘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우신 하느님의 얼굴을 뵈려 한다. 신앙은 온 인격으로 하느님께 귀의함을 뜻하기에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자기 인생의 첫 자리에 모신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창세 1,26 참조) 그래서 교회는 보이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며,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았다고 가르친다. 개개인이 하느님의 모습을 지녔기에 모든 인간은 존엄한 인격체다.
하느님 모습으로 지어진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하나인 존재다.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따라서 인간은 육체적이며 동시에 영적이다.
성경은 영혼을 ‘인간 생명’과 ‘인격’ 전체로 표현한다.(마태 16,25-26; 요한 15,13) 그러면서 인간의 가장 내밀한 것(마태 26,38), 가장 가치 있는 것(마태 10,28)으로 영혼을 통해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게 된다고 한다. 인간 개개인의 영혼은 부모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직접 창조하셨고, 불멸한다고 교회는 가르친다.
인간의 육체 또한 존엄하다. 인간의 육체는 영혼을 통해 생명력을 얻기 때문이다. “육체와 영혼으로 단일체를 이루는 인간은 그 육체적 조건을 통하여 물질 세계의 요소들을 자기 자신 안에 모으고 있다. 이렇게 물질 세계는 인간을 통하여 그 정점에 이르며, 창조주께 소리 높여 자유로운 찬미를 드린다. 그러므로 인간은 육체적 생활을 천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반대로 인간은 하느님께 창조되고 마지막 날에 부활할 자기 육체를 좋게 여기고 존중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사목 헌장」 14)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동등하게 존엄하다. “영혼과 지성과 의지를 지닌 인간은 임신되는 순간부터 이미 하느님을 향하고, 영원한 행복을 향하게 되어 있다. 인간은 진리와 선을 탐구하며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완성을 추구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711) 따라서 그 어떤 인간도 타인의 영원한 생명을 향한 행복 추구권을 침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낙태와 사형 등 인간 생명을 앗아가는 어떤 행위도 정당화될 수 없다.
- <사진 2> 노르베르트 베버, ‘풀숲에 앉은 여학생’, 유리건판, 1925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뜨거운 믿음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눈동자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많은 한국인의 얼굴을 사진에 담았다. 그는 수줍게 웃는 얼굴, 차분한 표정, 앳된 얼굴, 담담한 얼굴 등을 통해 각자의 삶을 지탱해온 인간 본성을 살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우촌의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얼굴을 통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들의 삶 전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웅변했다.
“풋풋한 젊은이들의 두 눈은 행복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 삶에서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무엇이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를 이 황량한 산중 고독 속으로 내몰았는지도 알 턱이 없다. 그들은 가난 속에서 자랐고, 그런 환경에 만족한다.…뜨거운 믿음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저 눈동자들! 이 산골짜기에서 신앙을 구했고, 신앙은 그들의 전부였으니, 그들이 이 산골짜기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191~193쪽)<사진 1>
베버 총아빠스는 한국인을 ‘생각 깊은 자연주의자들’이라고 칭송했다. 자연의 신비를 관조하고 경청하는 모습에 감탄했다. 한국인들은 자연을 꿈꾸듯 응시하며 몇 시간이고 홀로 앉아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인에 반해 일본인들을 ‘물질주의자’라 했다. 일본인들은 자연의 아름다움보다는 그것을 소유하는 데에 더 큰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285쪽 참조)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반영하듯 ‘풀숲에 앉은 한 여학생’을 촬영했다.<사진 2> 그리고 경건한 신앙심을 지니고 올바로 기도하는 신앙인을 생각 깊은 자연주의자로 인지했다. “옛 사막교부들이 그러했듯이 이들도 한데 모여 살지 않았다. 집들이 따로 떨어져 있었는데 어떤 집은 반 시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었다. 주민은 모두 12명도 채 되지 않았다. (⋯) 그들은 지독한 가난마저 사랑했다. 기도하고 일하며 늘 하느님께 의탁했다. 그들은 홀로 침묵 가운데 묵주 기도를 바치며 길을 걸었다. 매일 아침 그들은 돗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기도를 바쳤다. 밭일을 하고, 장작을 패고, 물을 길을 때도 그들은 헌신적 사랑의 마음으로 자신을 하느님께 바쳤다. 하여 그들의 얼굴에는 깊은 평화가 서려 있었다.”(「분도통사」 325~326쪽)
- <사진 3> 노르베르트 베버, ‘원피스를 입은 여아’, 유리건판, 1925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 <사진 4> 노르베르트 베버, ‘아기를 안고 있는 소녀’, 유리건판, 1925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하느님 자비의 얼굴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눈은 하느님을 갈망한다. 그리고 얼굴과 손에서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열기를 내뿜는다. 이 갈망은 나이가 적든 많든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갈망은 말 그대로 ‘본성’이다. 인간이 바로 하느님을 닮은 존재이기 때문이다.<사진 3>
“어떤 가족은 매일 꼬박꼬박 성실하고 정확하게 삼종기도와 아침·저녁 기도, 묵주 기도를 올린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고맙고 기뻤다. 그들의 기도생활은 마치 수도원 하루 일과와도 같았다. 내가 찾아가서 머물 때 교리문답을 다시 하고 질문을 하면 답을 해준다. 이 신자들의 기억력은 정말 대단하다. 몇 년 동안 교리책 한 번 들여다보지 않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물음과 대답뿐 아니라 해석까지도 다 외우고 있는 신자도 있었다.”(칼리스터 히머 신부 회령본당 1928년 연대기 중)
하느님 자비의 얼굴은 바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께서 당신 말씀과 행동, 그리고 온 인격으로 하느님 자비를 드러내셨기 때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각자 삶에서 하느님 자비의 얼굴을 드러내야 한다. 이는 세상에 하느님 사랑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 생생한 사랑과 자비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삶이다. 온유한 배려와 환대, 너그러운 용서와 진심 어린 겸손으로 하느님을 향한 애끓는 사랑을 실천하자. 그 사랑이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된 새 생명인 ‘태아’를 존중하고 그 생명을 지키는 일로 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사진 4>
[사진에 담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 (50) 위령 기도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하느님 안에서 새로운 삶의 시작
- <사진 1> 북간도 팔도구 성당 천주교 묘지 십자가, 유리건판, 1924년 이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부활의 희망 살며 선한 죽음(善終) 준비
“고통 없이 영광 없고, 죽음 없이 부활 없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덕분에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변화시키셨기 때문이다. 주님이신 그리스도는 죽음이라는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셨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죽음은 본질적으로 ‘새로운 삶’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통하여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완전한 새 인간으로 태어났다. 죄를 끊고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고 서로 용서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빛의 자녀로 살아가게 됐다.(에페 4―5장 참조)
이에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은 “이 세상 끝까지 다스리는 것보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일치하려고 죽는 것이 나에게는 좋습니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바로 그분이며 내가 원하는 것은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신 바로 그분입니다”라고 고백했다.<사진 1>
그리스도인은 항상 죽을 때를 위해 준비하고 주님의 뜻 안에서 죽음을 잘 맞을 수(선종-善終) 있도록 기도한다. 먼저 주모경과 묵주기도를 바칠 때마다 성모님께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하며, 삼종기도 때 “성자의 수난과 십자가로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은총을 저희에게 내려 주소서”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저녁때마다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를 보시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라며 통회 기도를 바치고 선한 죽음을 준비한다.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 “하느님 나라에서 사는 것”임을 잘 안다. 주님께서 당신 죽음과 부활로 온 인류에게 천국 곧 하느님 나라의 문을 열어주셨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결과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된 자’가 되어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서 이미 세상을 초월한 하느님 나라를 경험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인간 특히 가난한 이웃을 사랑하는 실천을 통해 성령의 이끄심대로 은총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과 결합하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아 ‘연옥’에 머물면서 영원한 구원을 위한 마지막 정화를 거치는 영혼들을 기억한다. 연옥 영혼들은 하느님을 거슬러 현세와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자(마태 12,32 참조)들이 받는 영원한 지옥 벌과 달리 정화를 거친 후 용서받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이에 교회는 연옥 영혼들이 하루빨리 하느님의 영광 안에서 ‘지복직관(至福直觀)’의 참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기도와 자선, 대사와 보속을 권고하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 또한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교회의 권고를 주저하지 않고 실천하고 있다.
- <사진 2> 팔도구 최 마티아 가족의 위령 기도, 유리건판, 1924년 이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 <사진 3> 칼리스토 히머(?), 용정성당 천주교 묘지 이 소피아 무덤, 유리건판, 1925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효는 한국인 민족혼 형성하는 한 요소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소장 한국 사진 아카이브에는 교우들이 천주교 묘역에서 이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을 위해 위령 기도를 바치는 사진이 다수 있다. 그중 한 장이 1924년 이후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북만주 팔도구 천주교 묘역 연도 사진이다.<사진 2> 사진은 최 마티아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가족들이 무덤 앞에서 위령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상복을 입은 이가 없는 것으로 보아 가족과 친지들이 아마도 죽은 이의 기일이나 추석 명절에 묘소를 찾아 기도하고 있는 듯하다.
앞줄 어른들이 모두 묵주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위령 기도에 이어 묵주기도를 바치는 중인 모양이다. 가족들의 모습은 어떤 시련이 와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강인하고 기백이 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이러하다. 어떤 시련과 고난·슬픔이 닥쳐도 하느님과 함께하기에 이겨낼 수 있고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는 ‘생명의 종교’다. 사람들을 죄의 올무에 씌워 옴짝달싹 못 하게 하지 않는다. 모든 이가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는 하느님 백성의 교회이다.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부모에게 효를 행하는 것이 한국인의 민족혼을 형성하는 한 요소라고 극찬했다. “선교사들이 이 민족과 어우러져 살면서, 그리스도교와 그 교리에 합치하는 한 모든 관습을 용인할 뿐 아니라, 신자들에게 장려하기까지 하는 모습은 흐뭇한 감동을 준다. (⋯) 선교사들은 부모 공경에서 비롯되는 옛 관습을 지켜 줌으로써, 효의 종교적 가치뿐 아니라 탁월한 민족적 역량까지 보존했다. 부모에 대한 효도야말로 위대하고 고귀한 한국인의 민족혼을 형성하는 한 요소이기 때문이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200쪽)
1925년 북간도 연변 용정본당 천주교 묘지 사진이다. 사진 속 무덤의 주인은 이 소피아다. 그는 1925년 음력 11월 25일에 선종했다. 언 땅을 파서 조성해서인지 봉분이 제대로 다져지지 않아 슬픔을 더해준다. 무덤 주인의 신상이 담긴 나무 십자가 가로축에는 “망자 평안함에 쉬어지이다. 아멘”이라 적혀 있다. 베버 총아빠스가 그해 8월 8일부터 9월 14일까지 북간도를 방문했기에 아마도 이 사진은 당시 용정본당 주임 칼리스토 히머 신부가 촬영했을 것이다.<사진 3> 1929년 「용정 본당 연대기」에는 “용정성당 묘지에 300기에 달하는 신자 무덤이 만주의 겨울 혹한에 훼손되었다”고 적혀 있다.
- <사진 4> 레오나르도 베버 신부 무덤, 유리건판, 1924년 이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 <사진 5> 노르베르트 베버, 갓등이본당 초대 주임 앙드레 신부 무덤, 유리건판, 1911년 4월,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선종한 사제와 신자들 무덤 찾아 위령 기도
레오나르도 베버 신부의 무덤 앞에서 한 독일인 선교사가 기도하고 있다.<사진 4> 베버 신부는 1924년 3월 25일 34살의 젊은 나이에 선종했다. 그는 1921년 한국에 파견되어 덕원 신학교 지도 신부와 함경남도 내평본당 주임으로 사목했다. 그는 열악한 북간도 지역 선교를 자청해 팔도구에 왔고 얼마 되지 않아 공소 방문 중 쓰러졌다. 사인은 ‘발진티푸스’였다. 팔도구 교우들은 쓰러진 베버 신부를 살리겠다고 담요만 깔린 소달구지에 태워 겨울 삭풍을 뚫고 9시간이나 걸려 용정에 갔으나 손쓸 길이 없었다.
과로로 쓰러진 또 한 명의 사제가 있다. 베버 총아빠스는 1911년 4월 초 경기도 갓등이 성당을 방문했을 때 초대 주임 앙드레 신부의 묘소를 찾았다.<사진 5> 앙드레 신부는 1888년 7월 갓등이본당에 부임해 이듬해 200명이 들어가는 12칸 초가 성당을 짓고 열심히 사목했다. 혼자서 요양 중인 선교사 파스키에 신부를 병간호하고, 200명이 넘는 본당 신자들의 부활 판공을 끝마쳤다. 그는 주님 부활 대축일을 장엄하게 치른 다음 쓰러져 1890년 4월 13일 선종했다. 갓등이 신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앙드레 신부를 깊이 존경했다. 늘 그의 무덤을 찾아 기도했다. 베버 총아빠스가 앙드레 신부의 무덤에 갔을 때에도 장정 여럿이 기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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