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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 자전거 여행
저-김훈(1948.서울생)
출-문학동네
독정-2018년 2월 6일
ㆍ동백은 한 송이 개별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덜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다음, 백제가 무너지듯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진다.
ㆍ매화는 잎 없는 마른가지로 꽃을 피운다. 나무가 몸속의 꽃을 밖으로 밀어내서, 꽃은 뿜어져나오듯 피어난다. 꽃 핀 매화숲은 구름처럼 보인다 매와 구름은 혼곤하고 몽롱하다. 신기루다. 꽃송이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한다. 바람에 불려 소멸하는 시간속에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땅에 닿은 동안 바람에 흩날리는 그 잠시가 절정, 죽음은 풍장. 배꽃, 복사꽃, 벚꽃이 다 이와 같다. 목련꽃 죽음은 느리고 무겁다. 천천히 진행되는 말기 암환자처럼. 죽음이 요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바치고 비로소 떨어진다.
봄꽃은 바람이 데려가거나 흙이 데려간다. 가벼운 꽃은 가볍게 죽고 무거운 꽃은 무겁게 죽는데 목련이 지고 나면 봄은 다 간다. 향일암 앞바다 동백꽃은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고, 봅빛 부서지는 먼 바다를 쳐다본다. 바닷가 매화 꽃잎은 바람에 날려 눈처럼 바다에 떨어진다. 매화 꽃잎 떨어지는 봄 바다에는, 나고 도 죽는 시간의 가루들이 수만 개의 물비늘로 반짝이며 명멸을 거듭한다.
ㆍ향일암은 여수 돌산도 맨 남족 벼랑 위 절이다. 해안 단애 위에 붙은 바다제비 집 같다. 벼랑 긑에 종루 세워져 있고 종 치면 종소리는 바닷속 물고기와 자라에게로 퍼진다 이 절은 영귀암이라도 한다. 절을 안고 있는 금오산은 물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이제 막 바닷가에 도착한 거북 모습이다. 이 거북 등 위에 절을 싣고 바다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거북 앞발 한 쌍은 벌써 물속에 담겨서 땅을 밀쳐내고 앞으로 나아가려하는데, 거북은 수천 년 동안 땅에 들러붙어서 바다로 가지 못한다. 거북은 머리를 들어서 먼 바다를 보고 절도 먼 바다를 바라보면서 갈 수 없는 바다로 종을 때려서 소리를 보낸다. 절로 올라가는 길은 기암절벽 바위 틈새로 난 길을 비집고 한 사람씩 겨우 지나갈 수 있다. 바위 틈새의 길은 어둡고 구불구불. 절 마당에 이르면 갑자기 남해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새 둥지처럼 작은 절 마당
벼랑 아래 바닷가 동백숲에 동백꽃이 피었다. 스칠 때마다 꽃은 뚝뚝 떨어지고, 바다로 가지 못하는 거북 등 위에서 사람들은 관세음보살을 수업이 부른다.<여수 돌산도 향일암>
ㆍ봄풀들의 싹이 땅 위로 돋아나기 전에, 흙 속에서는 물의 싹이 먼저 땅 위로 돋아난다. 물은 풀이 나아가는 흙 속의 길을 예비한다. 겨울을 밭에서 지낸 보리는 이 초록 흙들의 난만한
들뜸이 질색이다. 한창 자라날 무렵에 헐거워진 흙들이 뿌리를 꽉 껴안아주지 않기에. 농부는 봄볕 두터워지면 흙을 밟아준다. 부풀어 오르는 흙은 눌러놓는다.
ㆍ태초에 땅위 세상은 진흙 뻘밭이었다. 하늘나라 공주가 가락지를 이 진흙 수렁에 떨어뜨렸다. 하느님은 남녀 한 쌍을 세상에 보내 가락지를 찾아라했는데 가락지는 못 찾고 서로 사랑했다. 가락지를 찾기 위해 주물렀던 진흙 수렁은 마른 흙이 되고 흙 속에서 풀과 곡식들이 돋아 밭이 되었다.-경북지방 무당들의 본풀이는 흙의 근본을 이렇게 풀었다/.
ㆍ한 평생 밭을 갈던 부부가 죽어 그 밭 속에 누워 무덤이 되고 부푸는 봄 흙속에서 새파란 것들이 일제히 솟고 있다. 살아서 갈던 밭 속에서 따스한 젖가슴 같은 봉분을 이루는 죽음은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인 것 같다. 땅이 없는 가난한 어부들은 죽어서 바닷가의 버려진 땅에 묻힌다. 바닷가 잡초 속에 봉분이 허물어져 있고 풀들이 해풍에 쓸리고 있다. 이런 무덤들은 물에서 먼 쪽이 명당이다. 바다가 사나운 날에 물가에 가까운 봉분들은 파도에 씻겨서 흔적도 없이 쓸려간다. 농부가 밭에 묻히듯 가난한 어부들은 백골을 바다에 준다. 그 아들들이 다시 고기를 잡고 쓸려나간 봉분의 흔적도 이제는 편안해 보인다. 바다가 춥고 땅이 따뜻한 것도 아닐 것이다.
ㆍ된장의 친화력은 크고도 깊다. 된장은 국 속의 다른 재료들과 잘 사귀고, 그 사귐의 결과로 인간의 안쪽으로 스민다. 이 친화의 기능은 비논리적이어서, 분석되지 않는다.
ㆍ냉이 건더기를 건져 씹어보면 뿌리에는 봄 땅의 부풀어 오르는 힘과 흙냄새를 발아들이던 가는 실 뿌리의 강인함이 여전히 살아 있고 그 이파리에는 봄 햇살과 놀던 어린 엽록소의 기쁨이 살아 있다.
ㆍ달래는 기름진 땅에서는 살지 않는다, 구근은 커질 수가 없다. 작고 흰 구슬 안에 한 생에의 고난과 맞서던 힘을 영롱한 사리처럼 간직하는데 너무 독한 맛이라 정신차라고 한다.
ㆍ 봄 무덤들은 평화롭다. 푸른 보리밭 속 무덤들은 죽음이 갖는 단절과 차단의 슬픔을 넘어선 지 오래다. 죽음은 바람이 불고 날이 저물고 달이 뜨고 밀물이 들어오고 썰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편안한 순리로 느껴진다. 아버지를 묻을 때 어린 여동생은 데굴데굴 구르며 울었고 나는 동생들한테 울지 말라고 소리 지르며 울었다. 이제는 울지 않는다. 세월이 필요한 모양이다.
ㆍ출발 전에 장비를 하나씩 점검해서 배낭에서 배 버릴 때 몸이 느끼는 두려움은 정직하다. 배낭이 무거워야 살 수 있지만, 배낭이 가벼워야 갈 수 있다.
ㆍ문 닫은 분교의 교훈은 ‘푸른 내일의 꿈을 키우자’였다. 걸상 몇 개 흩어져 아이들 엉덩이에 반들반들 닳아서 아직도 윤이 난다. 농부는 노는 햇볕을 아까워했다. 작물을 보고 농사를 지어야하는데 상인을 보고 농사를 짓는다.
ㆍ툭 터진 들판마다 마을 어귀마다 이동통신회사의 기지국 안테나들이 들어섰다.
ㆍ흐린 날의 겨울 산맥은 멀어서 존엄해보였다. 자전거를 타고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산맥은 크고 포근하였다. 산봉우리에서 더 먼 산봉우리를 바라보면 거기에 이미 봄이 와 있다. 봄은 찾아오거나 떠나는 게 아니고 늘 거기에 머물러 있다. 다만 지금은 겨울일 뿐이다.
ㆍ어린 소들은 겨우네 매를 맞아가면서 밭갈이 일을 공부하고 있다. 일 배우다 말고 자꾸 군입질 하려고 한눈 팔아서 주둥이에 멍을 씌웠다. 때려주면 대가리를 내두르며 반항하고 더 때려주면 아예 팽개치고 집 쪽으로 걸어간다. 일 공부를 하면서도 눈은 늘 집쪽을 본다. 이놈을 겨우네 가르쳐서 말귀를 뚫어놓아야 내년 농사를 할 수 있다. 2살 때 가르쳐야 했는데 그때 새끼를 배서 1년을 봐주었더니 이제 대가리가 커버려서 말을 더 안 듣는다. 매 맞는 소가 불쌍한지 때리는 인간이 더 가여운지, 분간이 어렵다. 때리고 맞는 것이 다 한가지로 보인다. 양쪽 모두 자기 운명을 실천하고 있는 것. “이 놈이 좀더 맞아야 안 맞고도 일할 수 있게 된다.”고 농부는 말한다.
ㆍ숲은 글자모양도 숲처럼 생겨서 글자만 봐도 숲에 온 것 같다. 오래된 숲이 가장 새로운 숲이다. 숲 힘은 오래된 것을 새롭게 살려내는 것이어서. 숲 속에서 시간은 낡지 않고 시간은 병들지 않는다. 이 새로움이 숲의 평화일 터인데, 숲은 안식과 혁명을 모두 끌어안는 그 고요함으로서 신성하다. 시간을 소생시키는 숲의 새로움은 퇴계와 로빈 후드를 동시에 길러내고도 사람 지나간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숲이 사람을 새롭게 해줄 수 있는 까닭은 숲에 가지 않더라도 사람들 마음속에서 이미 숲이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숲을 만나면 자전거는 포장도로를 버리고 숲길로 들어선다. 안면도 소나무숲은 마을의 숲이다. 대문 밖이 숲이고 밭이 끝나는 곳이 숲이고 울타리 너머가 숲이다. 숲의 신성은 멀고 우뚝한 것이 아니라 가깝고 친밀해서 사람의 숨결을 따라 몸속으로 스미는 것임을 안면도 소나무숲 속에서는 알겠다. 안면도 소나무들은 남위 안쪽으로 끌어들여 숨기려는 붉은색이다. 소나무숲 속에서는 앞을 바라보면 붉은 숲이고 위를 쳐다보면 푸른숲이다. 봄의 소나무숲은 겨울을 견뎌낸 그 완강한 푸르름으로 진중하고도 깊다. 안면도의 소나무들에게는 안면송이라는 고유 명사가 있다.
<종의 기원>에 따르면 철새의 발바닥에 붙은 씨앗 한 개가 대륙을 건너가 새로운 숲을 이루기도 한다. 안면도 모감주나무숲은 지금 새의 붉은 혀와 같은 새싹을 내밀고 있다. 씨앗 한 개 속의 숲은 머지않아 푸른 잎으로 덮여서 어둡고 서늘할 것이다. 여름 숲은 어둑신하고 서늘하다. 숲 속에서 빛은 사람을 지를 듯이 달려들지 않는다, 빛은 밝음과 어둠의 구획을 쓰다듬어서 녹여버린다. 키 큰 나무들은 저마다 개별 존재의 존엄으로 우뚝하고 듬성듬성하다. 잎 사이로 흔들리는 아침 햇살 속에서 나무들은 다들 혼자서 높다.
ㆍ사람들이 나무를 심지 않아도 바람이나 새똥에 실려 온 풀씨들이 부리를 박고 싹을 틔웠다. 풀뿌리들이 자리를 잡자 빗물에 씻기는 모래가 덜 흘러내리게 되었고 킨 큰 나무들이 저절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숲은 의사 없이 저절로 굴러가는 재활병원이고 사람은 이 병원의 영원한 환자다.
ㆍ휴일 산에는 사람이 없는 코스를 명당으로 치고 점심 먹을 자리를 찾을 때도 사람 없는 곳이 명당이다. 다들 저도 사람이면서 한사코 사람 없는 자리를 다투다가 사람 없다는 코스로 몰려들어 결국은 인산인해를 이루니 가엾은 일이다. 이래저래 비벼지게 마련이다. 새로운 삶에 대한 유혹이 없다면 누가 비지땀을 흘리며 망원 지하철 속 같은 인산을 오르겠는가.
ㆍ하동 재첩국은 순결한 원형의 국물이다, 잡것이 섞이지 않아 국물이 갖는 위안의 기능이 봄 쑥국과 맞먹는다. 손톱만한 민물조개에 소금만 넣고 부추를 잘게 썰어 넣으면 끝이다. 그 맛은 모든 맛의 맨 밑바닥 기초의 맛이다. 4월 하순부터 재첩을 잡기 시작한다. 함지박을 밀고 강 속으로 들어가서 바닥을 긁는다. 가장 낮은 곳에 사는 가장 작은 조개 속에 가장 깊은 맛이 들어있다. 작은 숲이 들어앉아 있다.
ㆍ이슬을 맞고 차나무가 자란다. 봄에 나무의 새순을 달여 먹으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겨울에는 찻잎을 주전자 바닥에 먼저 넣고 끓는 물을 붓는다.
여름에는 끓는 물을 먼저 붓고 물 위에 찻잎을 띄운다.
봄, 가을에는 끓는 물을 절반쯤 붓고 찻잎을 넣은 다음 그 위에 다시 물을 붓는다(다신전)
겨울에는 찻잎을 주전자 바닥에 먼저 넣고 끓는 물을 붓는다. 덖음은 차의 독성을 없애고 잎 속 차 맛을 물에 용해될 수 있는 상태로 끌어내고, 차를 보관 가능하게 건조하는 과정이다. 그날 딴 차는 하루를 넘기면 안 되고 그날 안으로 덖음질을 마쳐야 한다. 일고여덟 번 덖음질하는데 주무를 때 손놀림을 멈춰서는 안 된다. 불은 흔들려서도 안 되고 연기가 나서도 안 된다. 차의 계율은 삼엄하고도 섬세히다. 그것은 자연의 본질을 추출해내기 위한 인공의 과정이다.
ㆍ숲이 불나면 자연복원으로 불 탄 나뭇가지를 그대로 두어야 숲의 회복이 빠르다. 키 작은 활엽수들이 먼저 바람에 씨앗을 날려 불탄 땅에 싹을 틔우고, 키 작은 활엽수들이 먼저 바람에 씨앗을 날려 불탄 땅에 싹을 틔우고 타고 남은 그루터기들이 움싹을 길러서 숲은 저절로 회복된다. 산불이 슬고 가면 큰 키 나부들이 다 죽기 때문에 햇볕이 땅바닥까지 잘 들어오고 식물의 밀도가 낮아져 나무들끼리 경쟁이 현저히 감소되며 타고 남은 재가 거름이 되기 때문에 나무들이 다시 이 떨기나무로 층위를 이루어 21년 후인 지금 큰 키 나무, 떨기나무, 풀 들로 건강하고 완벽한 숲의 층위를 완성해냈다. 불탄 숲은 저절로 스스로를 키웠다. 고성군 죽왕면 산불에도 숲은 죽지 않고 싹들은 기어이 살아서 숲을 이룬다. 그루터기마저 죽어버린 숲에는 먼 숲에서 풀씨들이 날아와 숲을 이룬다.
ㆍ나무는 개화나 결실에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생명이 아닌 것을 생명으로 바꾸는 전환 과정으로 자신의 생명을 완성한다 . 잎 사이마다 빛이 꺾이면서 스며들어 참나무 숲 속은 어슴푸레하고 그림자가 없다. 넓은 잎들이 물기를 내뿜어 참나무 숲에서는 콧구멍 속이 편안해진다. 안정된 극상림 숲은 나무의 세력이 조화롭게 되어 먹이 피라미드가 정돈되고 모든 나무와 풀과 새와 벌레들이 위계 속에서 질서를 갖는다.
ㆍ 문지방에 드러난 나뭇결의 무늬가 사람들을 펴안하게 해주는 것은 나이테의 문양이 생명을 통과해 나온 자연이기 때문이다. 나이테는 나무가 쓴 역사이다. 이 나이테의 역사는 인간이 해독할 수 있어 서로 소통한다. 나무는 개체 안에 세대를 축적한다. 지나간 세대는 동심원의 안쪽으로 모이고 젊은 세대라 몸의 바깥쪽을 둘러싼다. 나무껍질 바로 밑이 가장 활발히 살아 있는 세대다. 이 젊은 세대가 뿌리의 물을 우듬지까지 끌어올려 모든 잎들을 빛나게 하고 나무의 몸통을 키운다. 나무의 젊음은 바깥쪽을 둘러싸고 늙음은 안쪽으로 고인다. 나무 밑동에서 살아 있는 부분은 지름의 10분의 1 정도의 바깥쪽이고 안쪽은 대부분 생명의 기능이 소멸한 상태란다 동심원의 중심부는 물기가 닿지 않아 무기물로 변해 있고. 이 중심부는 나무가 사는 일에 간여하지 않는다. 이 무위의 중심이 나무의 전 존재를 하늘로 버티어 준다. 무위는 존재의 뼈대다. 핵심부를 중심으로 여러 겹의 동심원을 이루는 세대들의 역할 분담과 전승을 알게 되는 것이 나이테를 들여다보는 기쁨이다.
ㆍ자작나무 껍질은 방수 효과가 커서 썩지 않는다. 신라 천마총에서 나온 천마도는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그림이다. 굴참나무 껍질은 코르크층이 두껍고 단단해서 방수와 보온 효과가 뛰어나다. 산간마을 사람들은 굴참나무 껍질로 지붕을 덮어서 굴피집을 짓는다.
ㆍ수련은 절정의 순간에 고요하다. 화가는 연못 위에 핀 수련의 순간을 화폭에 번지게 하고 철학가는 화폭 위의 수련으로부터 연못 위의 수련으로 건너간다. 아침 10시가 넘어 물 위로 햇살이 퍼지면 푹과 나무의 그림자를 드리운 물빛은 더 깊고 더 투명해진다. 물속에 숨어 있던 색과 빛과 음영이 발현되기 시작하는 그때, 수련은 꽃잎을 연다. 노랑어리연꽃은 작은 꽃에 속하는데 그 꽃의 열림은 얌전하고 영롱하다. 여름 연못가에서는 아시아실잠자리가 가장 경쾌하다 작은 날벌레의 본질은 공기나 빛에 가까워 보인다. 연못가에서 부들이나 퉁퉁마디의 잎 사이를 흘러 다닌다. 날개는 비워 있는 듯 투명하다. 그것들의 생명은 빛의 부스러기처럼 보인다.
ㆍ철새들은 해마다 찾아오는 특정 지역에 대한 인상이 유전자 속에 각인되어 있어 수만 년 동안 대대로 이 강을 찾아온다.
ㆍ 삶은 강처럼 흘러서 새롭고 산처럼 우뚝해서 영원 할 것이다.
ㆍ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이 노래는 말을 걸 수 없는 자연을 향해 기어이 말을 걸어야 하는 인간의 슬픔과 그리움의 노래 같다. 남한강과 북한강을 합쳐서 내려온 한강! 산의 아랫도리가 물에 잠기고 바닷물의 압박으로 숨을 몰아쉬는 강물의 헐떡거림이 들린다. 사람의 목소리와 악기의 소리와 짐승의 소리에 길들여진 인간이 듣기에 무의미하고무표정하고 무계통하고 무정형하다. 낡은 시간이 물러나고 새로운 시간이 세상으로 밀려오는 소리다. 이 하구는 내 분단조국의 서부전선이다. 해독할 수 없는 자연의 백색 음향이 물살을 따라 밀리고 쏠린다. 북쪽 조강마을과 남쪽 조강 마을이 같은 노을에 물들고 젊은 초병들이 맞추 서서 노려보고 있다.
ㆍ웅어는 씹히는 질감은 가볍고 삼키고 나면 뒷맛이 투명하다.
ㆍ삶이 다 망가진 사람들은 산골마을의 고향을 떠났고 아주 할 수 없이 더 망가진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왔다. 등짐 지고 날밤 새워 얻는 이 가랑잎 같은 만 원짜리 지폐를 몇장은 밥으로 바뀌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몽땅 이자로 은행에 들어간다. 이 고단한 고양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새로운 고향의 희망을 길러내야 한다. 물안개가 산골짝마다 퍼져서 고단한 사람들의 마을을 이불처럼 덮어주고 있다. 강은 흘러가면 돌아올 수 없지만. 길은 마을에서 마을로 되돌아오고 모든 길은 그 위를 가는 자가 주인이다. 돌길에 자전거가 덜커덕거리자 졸던 물새가 놀라 날아오른다. 겨울 강은 흐름이 아니라 이음이다.
<섬진강 덕치마을 요강바위>
강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인간의 표정으로 깊이 가라앚아 있다. 산하는 본래 인간이 연주할 수 없는 거대한 악기다. 겨울 섬진강과 노랑산맥은 수런거리는 모든 리듬을 땅속 깊이 감추고 있었다. 산하의 음악과 리듬이 길러낸 이 바위들은 물의 본질을 수용하며 단단함을 완성했다. 그것은 생명 안쪽을 통과해가는 시간의 모습이었다. 수만 년을 깎인 과거의 바위였고, 변화와 생성을 거듭해갈 미래의 바위였으며, 박힌 자리에서 흐르고 또 흐르는 현재의 바위였다. 이 오래된 바위를 뽑아가 돈 많은 자들의 정원으로 옮겨놓으려는 도둑들이 눈독을 들였다. 떼도둑 20여 명이 중장비를 끌고 와서 요강바위를 뽑아갔다. 요강바위는 가운데가 두 사람이 들어앉을 수 있을 만큼 패였고, 그 안에 늘 물이 고여 있었다. 도둑들은 물가에 중장비를 들이대느라 진입로 공사까지 했다. 이 바위를 훔쳐 경디도 광주군의 야상에 숨겨놓고 원매자를 물색하다 눈썰미 밝은 주민의 눈에 띄였다. 경찰에 붙잡혀 장물로 분류되어 전주지검 남원지청 마당으로 운반되었다. 남원에서 25톤 이 바위를 다시 물가까지 옮기는데 중장비 사용료 오백만원이 드는데 장구목마을 주민 열 두 가구가 돈을 모아 실어왔다. 바위를 제 자리에 심어놓던 날 장구모, 사리재마을 사람들은 돼지를 잡아 물가에서 잔치를 벌였다. 공비 토벌하던 군인들이 이 강가 마을에 불을 질렀고 전쟁이 끝나자 다시 옛터로 돌아와 집을 지었다. 장구마을 이재기씨는 물굽이 윗마을인 싸리재 처녀 박갑래씨와 혼인했다.
<마암마을의 누런개>
들은 내가 들어서면 다들 뛰어와서 내 주위에서 길길이 뛰며 좋아한다. 흙발로 나한테 뛰어오르고 내 손을 핥아먹고 난리들이다. 한 놈을 쓰다듬어주면 다른 놈이 또 대가리를 들이민다. 아이들이 학교 올 때 따라와서 놀고 아이들이 집에 갈 때 따라 간다.
아이들 뒤통수 가마에서는 햇볕 냄새가 난다. 흙향기도 난다. 아이들의 팔다리에 힘이 가득 하다. 나무와 꽃과 계절과 함께 저절로 큰다. 학교에 오는 아이들 손에 양동이가 하나씩 들려있다. 점심 먹고 남은 찌꺼기를 집의 돼지와 개에게 갖다 주기 위해서다.
ㆍ아이들은 방학 때는 개학을 기다리고 개학 때는 방학을 기다린다. 다 신바람나는 일이라서.자라나는 일이 배우는 일이고 사람이 되어가는 일이다.
ㆍ금쌀로 지은 밥은 밥알이 차져 한 알씩 따로 씹힌다. 김포평야의 농수로는 인공구조물이 아니라 자연의 흐름처럼 보인다. 인간에게 절실한 것들, 인간에게 간절히 필요한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김포평야의 농수로를 들여다보면 그 쉬운 이치를 안다.
조개에 밀물 썰물이 드나들 때 조개 안쪽에서 성장하느라 흔들리면서 음파가 퍼져나간다. 서해는 서애 연안 조개껍데기 위에 파도의 무늬를 새긴다.
ㆍ소금의 짠맛은 바다의 것이고 향기는 햇볕의 것이다. 염전 사람들은 비가 올 조짐이 보이면 결장지의 물을 땅 밑의 저장고 속으로 감춘다. 바람 한 점 없는 여름날, 뜨거운 폭양 아래서 라야 소금이 익는다. 이런 소금의 삼투력은 깊고 그윽하다. 이러 소금이 젓갈을 삭히고 재료들의 향기를 드러나게 한다.
<도요새> 죽은 새들은 목을 길게 앞으로 빼고, 두 다리를 뒤쪽으로 접고 있다. 눈 속으로 날아와 박힌 새들은 비행하던 포즈대로 죽는다. 총알처럼, 바람처럼 죽는다. 날개 달린 몸으로 태어난 새의 꿈은 유선형으로 얼어붙어 있고 죽어서도 기어코 날아가려는 목숨의 꿈을 단념하지 않은 채, 더 날 수 없는 날개를 흰 눈에 묻는다. 저어새는 부리 안에 물린 흙 속에서 넘길 것은 넘기고 나머지는 뱉는다. 먹이를 넘길 때마다 길고 가는 목줄기가 껄떡거린다. 마태복음 속의 새는 천국의 새고 만경강 하구 새는 인간이 낙원에서 쫓겨날 때 함께 이 세상으로 쫓겨난 실낙원 새떼 같다.
ㆍ새떼는 갈대숲으로 날아든다. 바람 속으로 씨앗을 퍼뜨리는 풀들은 빛나는 꽃을 피우지 않고, 영롱한 열매를 맺지 않는다. 갈대나 억새가 그렇다. 갈대는 곤충을 부르지 않고 봄 꽃들처럼 사람을 부르지도 않는다. 갈대는 바람 부는 쪽으로 일제히 쓰러지고 바람의 끝자락에서 일제히 일어선다. 싹으로 솟아오를 때부터 바람에 포개지는 모습을 갖는다. 뿌리를 박은 땅과 바람에 떠도는 씨앗의 하늘 사이에서 갈대는 쓰러지고 일어선다. 갈대는 초겨울에 흰 솜 같은 꽃을 피우고 바람이 마지막 씨앗을 훑어낼 때까지 갈대 뿌리는 바람에 끄달리면서 바람에 불려가지 않는다. 갈대 엽록소는 다른 풀들의 엽록소처럼 햇빛에 빛나지 않아 푸르른 기쁨이 없다. 어릴 때부터 땅에 얽매인 채로 바람에 풍화되어간다. 4월의 빛나는 산하에서는 겨울을 난 갈대숲이 가장 적막하다. 모든 씨앗을 이 허공으로 훝어진 뒤, 묵은 갈대숲은 빈 껍데기로 남아서 그 껍데기까지도 바람에 불려간다. 손으로 만지면 먼지처럼 버려진다. 바다로 불려간 씨앗들은 다 죽고 갯벌 위로 떨어진 씨앗에서 어린 갈대 싹들이 돋아나 다시 바람에 포개어진다. 이제 갈대 줄기가 쓰러질 차례다. 그 갈대숲 속에 새들의 날개 치는 소리 들린다.
ㆍ게가 ㄸ더난지 얼마 안 된 구멍에는 게가 밀어낸 흙덩이들이 남아 있다. 갯지렁이들도 북쪽 물가에 모여 있고 새들도 아직 젖어 있는 뻘 쪽으로 옮겨갔다. 산 것들은 모두 물 흐르는 쪽으로 몰려갔고 오래된 갯가마을들은 내륙 속에 고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