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팔경(晉州 八景)
내 일찌기 소주(蘇州)에서 상유천당(上有天堂) 하유소항(下有蘇杭)이란 말 들은 적 있다.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는 말이다.
중국 문필가 위치우위(余秋雨)가 '물은 너무나 맑고, 복사꽃은 너무나 아름다우며, 먹거리는 너무나 달고, 여인은 너무나 곱다'고 표현한 곳이 소주다. 소주는 시내 곳곳에 운하가 연결되어있고, 중국대륙에서 동정호(洞定湖) 다음 가는 태호(太湖)가 있고, 쌀과 차 비단 물고기가 풍부해서 ‘어미지향’(魚米之鄕)이라 불리워왔다.
그 칭찬은 내고향 진주에도 해당된다.
진주는 지리산에서 흘러온 남강물이 너무나 맑고, 인근의 복사꽃은 너무나 아름다우며, 삼천포에서 잡아온 생선과 인근에서 나오는 채소는 너무나 달고, 진주 여인은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진주는 쌀과 물고기가 풍부해서 ‘어미지향’(魚米之鄕)이라 불러도 손색 없고, 진양호 큰 호수도 있고, 비단이 유명한 곳이다.
항주에 가서는, 서호(西湖)를 배로 유람하면서 아름다운 서호 10경에 대해 들은 적 있다.
첫째는 백락천이 만든 물 위에 걸친 아취형 돌다리에 눈 쌓인 모습. 둘째는 호수 안에 외로히 떠있는 고산(孤山)의 누대에 뜬 가을 달. 세째는 연꽃 활짝 피는 5월 술집 뜨락에서 피어난 술 향내가 정원의 연꽃 향기와 함께 바람에 떠다니는 기막힌 분위기. 네째는 소동파가 만든 여섯 개의 아름다운 다리 아래로 봄날 물안개 피는 새벽,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가 늘어진 가운데 하얀 북숭아 꽃잎이 살짝 물 위에 떠 있는 경치. 다섯번째는 추석날 배를 띄우고 달과 인공섬인 소영주(小瀛洲) 석등에 켜진 불이 셋으로 보이는 모습. 여섯번째는 서호 남쪽 호반의 정원에 모란꽃이 활짝 피고, 화려한 색 뽑내는 비단잉어 노니는 모습. 일곱번째는 남녂 골짜기에 운무가 끼어 마치 구름에 봉우리가 꽃혀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 여덟번째는 석양의 남병산(南幷山) 정자사(淨慈寺)에서 울려퍼지는 종소리. 아홉번째는 우뚝 솟은 영봉산(靈峰山) 뇌봉탑(雷峰塔) 너머로 지는 저녁 노을. 열번째는 물 오른 버들잎이 봄바람에 살랑일 때 듣는 꾀꼬리 울음소리란 것이다.
진주도 이와 비슷한 곳이 많다. 너우니 습지원의 물 위에 걸친 돌다리 밑에 비치는 망진산 절벽 그림자, 그 아래 헤엄치는 수박향내 나는 은어의 힘찬 모습, 진양호 속에 떠있는 섬에 비치는 가을 달, 연꽃 활짝 핀 너우니 술집 뜨락의 술향기가 꽃 향기와 함께 바람에 떠다니는 기막힌 분위기, 술집마다 울려퍼지는 남인수 이봉조의 노랫가락, 봄날 물오른 버드나무 숲에 덮힌 천수교 모습과 당미언덕에 활짝 핀 벚꽃 모습, 추석날 배를 띄우고 서장대 아래서 바라보는 불 밝힌 촉석루와 진주교 야경, 운무가 신비롭게 덮힌 아름다운 디벼리 절벽에 핀 이른 봄 진달래꽃, 10리에 걸친 하얀 백사장 푸른 대밭 너머 정촌으로 지는 저녂 노을, 개천 예술제 열리는 가을 밤 진주 남녀 학생들이 남강에 띄우는 수많은 연등, 겨울 하늘을 뒤덮던 갈가마귀 떼. 성안 호국사에서 울려퍼지는 밤의 종소리, 촉석루 옆에 자리한 그 석류 속 같은 입술로 죽음을 입맞춤한 논개의 사당. 공원과 남강가에 즐비한 오래된 시비, 비봉산 아래 천하의 풍류객들을 불러 시서화 논하던 정명수 시인이 숨어 살던 비봉루가 있다.
그래 우선 관동팔경 단양팔경처럼 진주 8경도 한번 읊어 보았다.
矗石月光 촉석루 달빛 아래 남강은 잠이 들고
義巖聞鐘 논개가 순국한 의암에 호국사 종소리 들리고
晉陽歸帆 진양호에 뜬 섬 사이로 외로운 고깃배는 돌아오고
新安牧笛 신안동 푸른 들판 목동의 피리소리 들리고
望晉夏雲 망진산 높은 절벽에 흰구름 아름답고
涉川採蓮 섭천못가 연꽃 캐는 아가씨 노랫가락 그윽하고
七岩竹林 칠암동 푸른 대밭 십리에 뻗어있고
道洞釣魚 뒤벼리 절벽 밑에서 고기잡는 노인이 한가롭다.
안견이 그린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는 양자강 중류에 있는 동정호(洞庭湖)와 그 남쪽에 있는 두 개의 강줄기 소수(瀟水)와 상수(湘水)를 그린 것이다. 진주에 어째 그 풍경이 그대로 있는지 모르겠다.
지리산에서 흘러온 덕천강과 경호강이 합수한 바다같이 넓은 진양호(晉陽湖) 있고, 거기 소상야우(瀟湘夜雨)라 해서 소수(瀟水)와 상강(湘水)의 밤에 뿌리는 비가 있듯이, 덕천강 경호강 밤에 뿌리는 비가 있다. 동정추월(洞庭秋月)이라 해서 동정호에 뜬 가을 달이 있다면, 진양호에 뜬 가을 달이 있다. 원포귀범(遠浦歸帆)이라해서 먼 포구에서 귀환하는 돛단배 있다면, 진양호 안에 있는 섬 사이로 황혼에 돌아오는 돗단배 있다. 평사낙안(平沙落雁)이라 해서 모래사장에 앉은 기러기 있다면, 봄철 남강 백사장에 찾아와 우는 목청 고운 종달새 있다. 연사만종(烟寺晩鐘)이라 해서 안개 낀 사찰에서 들리는 저녁 무렵 종소리 있다면, 그 무렵 의곡사 호국사 두 절에서 시내로 울려퍼지던 종소리 있다. 어촌석조(漁村夕照)라 해서 어촌의 저녁에 비치는 석양 있다면, 어옹이 조각배에 앉아 한가히 졸고있는 뒤벼리 절벽 아래 석양이 있고, 강천모설(江天暮雪)이라 해서 강가에 저녁 무렵 내리는 눈이 있다면, 세비리 절벽 아래 대숲 위로 저녁 무렵 내리는 눈이 있다. 산시청람(山市晴嵐)이라 해서 산속과 저자거리가 공히 남기(嵐氣)가 있다면, 진주도 해질 무렵이 되면 근처 산과 시내가 푸르스럼한 안개에 덮힌다. 소상팔경에 악양루 있듯이, 남강에 영남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 촉석루가 있다. 소상반죽이라해서 선비들이 담뱃대로 자랑 삼던 무늬 대나무가 있다면, 진주는 왕죽 오죽 조릿대 등 대나무가 많다.
소상팔경이 진주를 닮았는지, 진주가 소상팔경을 닮았는지는 알 수 없다. 기이하게도 두 강이 만나는 지점에 호수가 있고, 누각이 있고, 곳곳에 대나무가 많다. 대채로 조물주가 이렇게 두 강산을 닮은 꼴로 만든데는 심오한 뜻이 있을지 모른다. 그 뜻은 헤아릴 길 없지만, 최근에 진주에 기이한 일이 생겼다.
일본에서 재일 교포 사업가 김두용선생이 '소상팔경도' 8폭 병풍을 보내온 것이다. 문화재청은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된 그 그림을 보물 제1864호로 지정했다. 아마 상천의 오묘한 뜻은, 천하제일 경관 자랑하는 진주는 이 소상팔경도를 꼭 소장해야 할 곳이라고 보았던지 모르겠다.
첫댓글 좋은글 항상 잘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거사님 댁내평안하신지요?고향에 가서 밁은 공기아래 멈무고오니,
기,심신이 건강하게 힘을 얻고온느낌이 나네요~!
항상 댁내 만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