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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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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백두대간 첩첩산중 '천은사' 천년 넘도록 지켜온 자리
두타산 아래 쉰움산, 쉰움산 아래 천은사, 천은사 아래 순두부··· 행복한 내리막 타기
삼척의 동해를 등지고 백두대간에 놓인 두타산을 정면으로 다가갔다. 크고 작은 계곡에서 발원한 여러 실개천을 지나, 더 깊숙이 들어갔을 즈음, 일주문이 나타나고 한 산사를 찾았다. 이번 여정의 중심이 될 '천은사'다.
산사의 지붕이 얼핏 보이는 해탈교 부근, 수령 200년이 넘은 보호수 여러 그루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줄기를 따라 고개를 올리면 하늘에 금이 간 것처럼 고목의 가지가 뻗고 엉켰다. 겨울에만 볼 수 있는, 본 기자가 좋아하는 풍경이다. 다리 아래 계곡부는 생각보다 넓고, 비교적 큰 바위들이 많다. 이런 계곡 옆 산사는 고요하기만 하다.
거친 산 사면에 맞춰 세운 산사이기 때문일까. 사찰 내부로 들어서면서 눈에 들어오는 건물의 배치와 구성이 독특하다. 범종각과 보광루가 직각을 이루며 누각의 아래로 들어와 계단을 오르면 좁은 틈 사이로 빠지듯 석탑과 극락보전 앞에 당도한다.
전각이나 석탑, 석등에서 오래된 절의 면모를 발견하기는 어려웠지만, 이 사찰의 역사를 짚으려면 경덕왕 17년인 7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천은사는 두타삼선, 인도에서 온 3명의 신성이 흰 연꽃을 가져와 창건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이후 흥덕왕 4년(829년)에 극락보전이 건립되면서 사찰의 모습을 띠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고려시대에 들어오면서 이승휴와 이 사찰의 인연이 시작된다. 이승휴는 제왕운기를 저술한 인물로 천은사와 관계가 깊다. 이승휴는 두타산 아래 별장을 짓고 인근의 삼화사에서 대장경을 빌려 10여 년을 공부했다. 그리하여 그가 써낸 책이 '제왕운기'이다.
고려시대가 끝나고 조선시대가 시작하는 지점에서 이 사찰의 이름인 '천은사'가 지어졌다. 1899년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릉을 만들 때 천은사를 원당사찰로 지정했으며, 목조의 아버지 묘소인 준경묘를 만들 때에는 천은사를 조포사로 정해 나라의 제사에 쓰이는 두부를 만들도록 했다.
이처럼 천년이 넘도록 두타산 아래 자리를 지켜온 천은사지만, 인적이 드문 편이라서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고 마음을 편안케 한다. 산바람과 산새 소리를 벗 삼아 산사의 아기자기 풍경을 둘러보다 마음이 꽂힌 사물을 넋을 놓고 바라다 본다. 마치 강원도 거친 산세가 보물 감추듯 포개어 놓은 이곳을 마침내 찾아낸 것 같은 기분이다.
산에 나무가 당연히 흔하다지만,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고목이 산사 주위에 많다. 해탈교 부근의 느티나무, 극락보전 뒤편의 곧은 침엽수 등, 그 자태가 워낙 인상적이다. 오랜 세월을 같이 한 친구가 주위에 자리 잡은 것처럼 말이다. 이런 곳에 별장을 짓고 10여년을 공부했던 이승휴, 그는 제왕운기라는 책 속에 무슨 기록을 남겼던 것일까.
보물 제418호로 지정된 '제왕운기'는 우리 민족을 동아시아의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다. 단군신화를 전하며 신라와 고구려, 옥저, 동부여, 예맥이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 기록돼 있다. 따라서 우리의 영토를 한반도 넘어 요동까지, 발해 역시 우리 역사라고 풀이했다. 또 고려의 통일이 신라의 통일과 달리 완전한 통일이라 지적하며 고려가 단군조선 이래 완전한 민족국가라고 전하고 있다. 이는 고려 후기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이승휴를 통해 당시의 인식을 짐작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민족을 다룬 제왕운기가 쓰인 천은사, 한반도의 척추라고 불리는 백두대간을 기반으로 세워진 천은사. 뒤편의 산 이야기도 한번 들어봐야 할 듯싶다. 백두대간의 축 위에 솟은 두타산이 동해로 내리막을 타다가 마지막 힘을 낸 듯 솟으니 '쉰움산'이 바로 그곳이다. 천은사와 제일 가까운 산이기도 하다.
쉰움산의 '쉰움'이란, '50개의 움'이라는 뜻으로, 산 정상 부근의 반석에 크고 작은 움이 약 50개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기하게도 움에 고인 물은 마르지 않는다고··· 이런 현상 때문인지 이 산에서는 기우제, 돌탑 등 토속신앙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무량신전을 정면에 둔 자리에서 왼쪽 10시 방향에 쉰움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다. 해발 683m의 산으로 동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바위를 천천히 다녀와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산사를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겨울에 백두대간을 넘어온 찬바람은 매섭다. 으슬으슬 몸이 떨리기 시작할 즈음 등산로 진입. 오르막 조금 타니 숨이 가빠지고 몸이 달아오른다. 이럴 때 핫팩 2개 정도 챙겨 가면 중간에 사진을 찍거나 잠시 휴식을 하기 위해 멈췄을 때, 풍경을 즐길 때 목이나 손을 녹일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
계곡을 따라 산속으로 들어가고 계곡에서 능선으로 오르는 사면 구간에서는 가끔 로프를 잡고 올라야 하는 짧은 난코스도 더러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등산하기 어렵지 않은 편이고 겨울에는 아이젠 하나만 있으면 별다른 준비가 필요 없는 수준이다.
흙이 줄고, 암석지대가 늘어나면서 나무가 듬성듬성 자라는 능선에 올랐다. 어렵지 않게 올라서 일까. 뒤돌자 갑자기 펼쳐진 산세 사이 동해에 조금 놀라버렸다. 북서쪽에서 불어온 바람에 밀려 잔가지가 쏠린 소나무가 동해로 기울었다. 소나무와 같이 삼척시와 동해를 한동안 감상하고 전망대 바위로 향했다.
동해가 보이기 시작한 곳에서 약 20분 정도 오르면 전망대 바위 도착. 백두대간을 그냥 넘어온 게 아니라는 듯 바람이 살벌하다. 주위에는 바람 부는 소리만 가득하다. 하얀 눈이 쌓이고 사막의 모래처럼 자잘한 눈이 파도를 탄다. 돌탑 여러 개가 하얀 눈에 아이스크림 엎어놓은 듯 세워져 있다.
쉰움산 9부 능선의 풍경은 첩첩산중이지만 소담한 맛이 있다. 하늘에서 바다와 삼척으로 이어지는 파노라마는 아주 높은 산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과 달리 친근한 느낌이다. 전망대 바위라고 불릴만하구나 싶다. 걷는 동안 시선을 뺏는 매력이 가득하니 쉴 때 제대로 쉬지 못하고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누르게 됐는데, 결국 전망대 바위에 도착해서야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자켓을 벗어 눈에 펼치고 폭신한 눈을 쿠션 삼아 누웠다. 하늘이 어찌도 저리 파랄까. 눈부신 태양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파란 끼가 진한 하늘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누워있었다.
되돌아가는 길에 한 끼 해결하기 좋은 곳이 있다. 천은사 일주문에서 나와 약 400m 거리에 천은쉼터라는 간판 옆으로 한 식당(두타순두부집)이 있는데, 조포사로 지정됐던 천은사의 내력이 이어진 것일까. 두부 맛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뜨끈한 간수와 순두부에 양념장과 갓김치를 적당히 넣어 숟가락으로 떠먹으면 찬바람에 언 이빨이 시리지만 연거푸 먹게 된다. 공깃밥에 비지찌개를 크게 덜어 비벼 먹으니 이것도 참 별미다. 그 많던 두부와 비지와 밥을 다 먹고 나니 이번 여정을 맛있게 마무리 한 것 같아 행복하기만 하다.
유의사항
※ 위 정보는 2013년 1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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