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예쁘게 잘 꾸며진 조그만 공원이 하나있다. 낮 동안에는 동네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즐거운 놀이터로 이용되고, 공원 한 켠에 자리 잡은 현대식 정자는 동네 어르신들의 노인정으로 인기가 만점인 곳이다. 저녁이 되면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들과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가족과 함께 산책을 하러 나온 사람들의 쉼터가 되어 주는 공간이다.
공원의 각가지 꽃과 나무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계절에 맞추어 형형색색의 빛깔로 옷을 갈아입기 바쁘다.
이른 봄이 되면 봄의 전령사들인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들이 공원을 화사한 봄옷으로 입혀 놓는가 싶더니, 어느새 신록들의 연한 살갗 위로 내리 쬐는 햇살이 은색 비늘처럼 반짝일 때 쯤 라일락꽃은 머리가 아득할 정도의 매혹적인 향기로 공원을 가득 채운다.
여름이 되면 공원은 짙은 녹음으로 사람들에게 더위를 피할 수 있게끔 그늘을 만들어 주다가, 청명한 가을 하늘과 아름다운 단풍들이 산으로 사람들을 자꾸 불러 낼 때면, 공원은 이에 뒤질세라, 노란 은행잎과 단풍나무를 선두로 이름 모를 활엽수들이 어느 명산의 단풍들 못지않게 예쁘게 물들어 사람들의 가는 길을 멈추게 한다.
난 이런 우리 동네의 공원을 무척 좋아한다. 물론 계절의 아름다움을 집 가까이에서도 쉽게 만끽할 수도 있고, 생활의 윤택함을 주는 공원으로써도 좋아하지만, 나에게는 잊지 못할 따뜻한 사랑과 관심이 살아 숨 쉬는 추억의 장소이기에 더욱 정겹고 자랑하고 싶어지는 공원이다.
몇 해 전 남편이 현장 일을 하다가 두 발을 심하게 다쳐 대수술을 하고 거의 2년 동안이나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남편은 4개월 동안 장기입원을 했다가 퇴원을 하고서도 재활치료를 위해 어린아이처럼 걷는 연습을 자주 했어야했다. 그래서 저녁이 되면 우리가족은 모두 동네 공원으로 산책 겸 운동을 하러 나갔다. 그날 저녁에도 우리아이들이 공원 한 쪽에서 뛰노는 걸 보며, 남편의 걷기 연습을 도와주고 있는데, 갑자기 공원 저 편의 어둠 속에서 자지러지는 듯한 둘째아이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남편은 깜짝 놀라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아보자, 둘째아이가 개에게 쫓기며 우리 쪽으로 달려오지 않는가!
남편은 아직까지 사고 후유증으로 달리기를 못하지만, 그 때는 아픈 발인 것도 잊은 듯 나보다 더 빨리 아이 쪽으로 달려가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지 신발 한 짝을 벗어 달려오는 개를 향해 세차게 집어 던졌다.
남편의 신발을 맞은 개는 그제야 아이를 쫓아오는 걸 멈추었다. 아이가 새파랗게 겁에 질려 울고 있을 때 멀리서 주인이 개를 찾으러 다가왔다. 개주인은 이 광경을 보고서도 미안하다는 사과말도 제대로 하지 않고, 대뜸 다친 데가 있으면 배상을 하겠노라는 말과 연락처를 주고는 사라져버렸다.
공원에서 애완견을 풀어 놓은 것 자체가 이웃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임은 물론 이런 불상사까지 생겼는데도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돈으로 배상해주겠다는 말만 앞세우고 가 버리니, 몹시 불쾌하고 언짢았다.
남편과 나는 우는 아이를 달래 놓고, 아까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수풀을 뒤지고 있었다.
그때 주위에서 운동을 하시던 아저씨 한 분이 잃어버린 남편의 신발 한 짝을 건네어 주시며, 아이가 많이 놀랐겠다고 걱정해주셨다. 아저씨는 남편의 다친 발을 보시더니, 당신도 얼마 전에 무릎수술을 하셔서, 재활운동을 하러 나오셨다고 했다. 그리고 한참을 벤치에 앉아 우리부부에게 날씨도 궂은 날이 있듯이 살다보면 힘든 시기도 있다면서, 이럴 때일수록 부부간에 서로 더 힘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진심어린 위로와 격려 말씀을 해 주셨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무르익어 갈 때 쯤 당신은 현재 모 프로야구 단장을 맡고 있다고 자기소개를 하시더니, 오늘 우리아이가 많이 놀랐을 테니, 작은 선물을 하나 주겠다고 하셨다.
그때는 이미 밤이 깊어 열 한 시가 다 되었는데도 집에 전화를 하시더니, 선물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5분 정도 지나자, 단장님의 아드님으로 보이는 청년이 하얀 종이가방을 하나 가져왔다.
단장님은 그 가방을 아들아이에게 건네주며, 씩씩한 어린이에게만 주는 특별한 선물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가족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작별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열어 보고 깜짝 놀랐다. 가방에는 단장님 소속 프로야구 구단의 마크가 새겨진 티셔츠와 모자 그리고 글러브 두 개와 야구공이 몇 개 들어 있었다. 그것을 본 아들은 조금 전에 개에게 쫓겨 놀란 것은 까맣게 잊은 듯 펄쩍펄쩍 뛰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우리 부부도 개주인의 무례함으로 상했던 기분은 그 분의 따뜻한 마음과 고마움에 눈 녹듯이 사라졌다.
흔히들 도시 생활은 이웃들과 소통이 없는 삭막한 곳이라고들 한다. 물론 시골에 비해서는 옆집에 어떤 이웃이 살고 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무관심하게 각자의 삶에만 집중하며 사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날 단장님이 우리가족에게 베풀어 주신 관심과 사랑은 추운 겨울날의 난로 같이 도시의 삭막함을 녹여 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이웃의 온정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이듬 해 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독거노인들을 위한 도시락 배달을 하러간다. 봉사를 하러 갈 때면, 난 대로변으로 가지 않고 일부러 공원을 가로 질러 간다. 조금이라도 더 공원의 아름다움과 정취를 만끽하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미약하나마 나도 이웃들에게 그 단장님처럼 도시의 삭막함을 녹여 줄 따뜻한 난로가 되어 주리라는 다짐을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