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1261호 두려움은 내 인생을 좀먹는 암적 존재다 (수1:1~9)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1:9).
40년 전, 목사 안수를 받던 날 하나님이 제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믿지 못했다면, 이 말씀을 조금이라도 의심했다면 오늘의 이초석 목사와 예수중심교단은 없었을 것입니다.
가끔 40년 세월을 뒤돌아보면 참 만감이 교차합니다. ‘믿지 않은 자의 사후의 영이 귀신이다’라고 한 것 때문에 안수한 교단에서 제명되었고, 그 후로 수 없는 누명과 모함이 저를 짓밟았습니다. 그럼에도 전국을 돌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집회를 감행했습니다. 난관이 많았지요. 장소를 계약한 곳에서 갑자기 사용할 수 없다고 한 적도 있고, 집회 장소에 최루탄을 던졌고, 깡패들이 찾아와 칼을 들고 협박했고, 집회 장소의 전기를 끊겠다는 단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담대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2000년을 맞이하면서 하나님은 저를 해외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그곳도 녹록하지는 않았습니다. 캐나다와 미국에 입국하면 죽인다는 협박 사건, 우즈베키스탄에서 추방되고 입국금지 당한 일, 의사 면허 없이 병을 고친다는 광고를 낸 것이 발단이 되어 키르기스스탄에서 재판에 회부되고 결국 추방된 일, KGB에 끌려간 사건, 한밤중 러시아 호텔 방으로 들이닥친 경찰에 조사를 받은 일, 호텔 테러 위협사건, 에스토니아 자동차전복, 칠레 고속도로 차 고장 사고, 멕시코 종교 비자를 받기 위한 경비행기의 8시간 곡예비행…. 그러나 역시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았음은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되레 미지의 세계에 매력을 느껴 지구촌을 메주 밟듯 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저와 함께 하셨듯이 여러분과도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그런데 왜 두려워합니까? 하나님이 말만 해놓고 안 도와주고, 안 보살피고, 안 챙길 것 같아서 그럽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능력을 못 믿어서입니까?
세상의 어느 신도 전지전능하지 않고, 무소부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만이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고,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며, 아니 계시는 곳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더욱이 그분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니 무슨 말을 더하겠습니까? 세상 부모는 자식을 내다 버리기도 합디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시121:4).
그럼에도 여러분이 두려워하는 것이 있습니까? 지력가입니까? 재력가입니까? 권세자입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시146:3~4).
원수들이요? 당연히 겁먹을 필요 없습니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롬12:19)고 주님이 말씀하셨거든요. 제가 세상의 핍박과 모함을 어떻게 이겨냈겠습니까? 바로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그들은 옷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사51:7~8)는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말씀이 이뤄지는 것을 저는 목도했습니다. 사람이 우리에게 절대 어찌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히13:6).
전쟁에 대한 공포가 있습니까? 이건 기도할 문제이지 두려워할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삼상17:47)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쟁 나지 않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평화통일이 되도록 기도하면 되는 겁니다. 기도는 부도나지 않는 법, 때가 되면 반드시 우리에게 평화통일 되는 날이 옵니다.
코로나를 겪고 나니 전염병이 두렵습니까? 그런 걱정도 붙들어두십시오.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시91:6~7)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담대함은 세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과감히 사자굴에 들어갔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평소보다 칠 배나 뜨거운 풀무불에 담대하게 들어간 것입니다. 그랬더니 거기에 약속대로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다니엘은 사자를 베게 삼고 누워 잤고, 사드락와 메삭과 아벳느고는 풀무불 속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춤을 추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환난과 곤고와 핍박과 기근,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던 것,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던 느헤미야가 도비야와 산발랏의 훼방과 협박에도 담대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느4:14).
세상의 모든 풍파가 두렵습니까? 그런 분들은 이 말씀을 믿으십시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사43:2~3).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것입니다(사43:1). 누가 감히 하나님의 자녀를 대적하고, 누가 감히 하나님의 것에 손을 대고, 해를 끼치겠습니까?
수영장에서 아빠가 먼저 물에 들어가 아이더러 뛰어내리라고, 아빠가 지켜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아이가 겁먹고 두려워서 못 뛰어내리면 절대 수영을 배울 수 없습니다. 아빠를 믿고 뛰어내리면 여름철 시원한 물속에서 물장구를 칠 수 있고, 수영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중심의 젊은이들이여!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하나님이 늘 나를 지키시며 도와주신다는 것을 믿고 도전과 모험을 즐기십시오. 미지의 세계로 달려가십시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 물론 힘든 일도 만나고, 어려움에도 직면할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것이 없음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났지만 해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두려움은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딤후1:7). 마귀는 우리 상황을 전기가 나가 깜깜하듯 그렇게 만들어 지레 겁먹고 두렵게 만듭니다. 그래서 마귀를 대적해야 하는 겁니다(벧전5:8).
마귀를 대적하는 길은 성령충만에 있고, 성령충만은 오직 기도에 있습니다. 기도하면 혹 마귀가 전선을 끊어도 우리가 자가발전할 수 있으니 어둠이 엄습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기도의 임계점을 넘어보세요. 세상이 마냥 두려웠던 베드로가 성령충만을 입은 후에 달라졌지 않습니까? 믿음의 선친들이 목숨을 내어놓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동력이 성령충만 아닙니까? 저 역시 성령충만하기에 두려움 없이 다시 베네수엘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지옥에 보낼 수 있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눅12:5). 그걸 모르고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통탄이 이러합니다. “가라사대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나여늘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인자를 두려워하느냐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사51:12~13).
지금도 하나님은 당신과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놀라지도 말고 담대하게 아름다운 미래로 나아갑시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할렐루야!
두려워하는 자에겐 기대할 것이 없다
두려움은 인류 최대의 적이다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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