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제식훈련
(약5:13~20)
구약에서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는 사람이고,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는데 이 세분의 공통점은... 40일간 금식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기록할 때는 반드시 ‘누구의 아들’이라고 쓰던지, 아니면 그 사람의 탄생기사(誕生記事)가 나옵니다. 그러나 엘리야에 대해서는 부모의 이름도 없고 탄생기사도 없습니다. 그냥 “길르앗에 우거하는 디셉 사람 엘리야”(왕상17:1)란 기록만 나옵니다. “우거(寓居)하는 자”란 그저 平凡한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구약을 대표하는 선지자가 될 수 있었는지 신기하지 않습니까? 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性情)이 같은 사람이로되”
우리와 성정이 같다는 말은 우리와 별 차이가 없는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평범했던 사람이 시대를 뛰어넘는 탁월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17절~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뭔가 우리하고는 차원이 좀 다르지요? 엘리야가 기도를 하니까 3년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고 또다시 기도하니까 비가 내렸다는 거예요. 엘리야와 우리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왕상18:42~44을 보면 엘리야가 3년6개월의 가뭄을 해소하기 위해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기도의 강골(强骨)과 약골(弱骨)은 바로 이런 데서 갈라집니다. 약골은 응답이 없으면 그냥 포기합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비가 올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강골은 응답이 없다고 해서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강골의 특징입니다.
명절을 맞아 밤을 새워가며 음식을 만들고 하면 만듭니까? 못 만듭니까? 만듭니다. 밤을 새워가며 놀음을 하라면 합니까? 못 합니까? 역시 합니다. 왜 할 수 있을까요? 재미있으니까 합니다. 재미없으면 못 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밤새워가며 하라고 하면 합니까? 못 합니까? 못 합니다. 재미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잠깐이긴 하지만 물 위를 걸었던 사람입니다. 기적을 체험한 거예요. 우리 중에 그런 기적을 체험한 사람은 없잖아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베드로에게 깨어있어 함께 기도하자고 했을 때 베드로는 잠을 잤습니다. 기적을 체험했던 사람이 기도에서는 실패한 거예요. 그러나 엘리야는 기도생활에서 승리했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엘리야를 기도의 강골로 만들어주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논산훈련소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시키는 훈련이 제식훈련입니다. 제식훈련이란 대열을 짓는 훈련입니다. “줄지어 앞으로 가! 뒤로 돌아가! 우로 가! 좌로 가! 뛰어 가!” 초등학생이라도 한 시간이면 끝낼 수 있는 훈련입니다. 그런데 이런 훈련을 다 큰 어른들에게 매일 매일 같이 시킵니다. 왜 그럴까요? 대열이 흐트러진 군대는 백전백패(百戰百敗)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강한 군대는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군대입니다. 즉 지휘관이 “앞으로 돌격!”할 때 앞으로 나가는 군대입니다. “화장실 좀 다녀와서요”, “어제 잠을 못 잤는데 눈 좀 붙이고요” 이런 군대는 오합지졸밖에 되지 못합니다. 강군은 지휘관이 “돌격!”할 때 바지에 똥을 싸면서도 졸면서도 앞으로 나가는 군대입니다. 로마군대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로마군대는 로마제국을 1000년이나 지켜줄 수 있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제식훈련을 가장 잘 받았던 사람이 바로 엘리야였습니다.
이스라엘 땅에 무서운 흉년이 찾아왔을 때 하나님은 “너는 그릿 시냇가로 가서 거기서 거하라”고 했습니다. 그릿 시냇가에는 사람이 살지 않습니다. 그런 곳에 가면 굶어 죽을 일 외에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즉시 그릿 시냇가로 갔습니다. “왜 그런 곳에 가야 하나요?”라고 따져 묻지 않습니다. 묻고 따지는 것은 제식훈련이 아닙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묻고 따지는 게 너무 많아요. 제식훈련 받을 기본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현대인들은 ‘하나님의 훈련소’ 밖에서 구경만 합니다. 구경하는 것과 직접 훈련을 받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벌어집니다.
흉년이 더 심해져 그릿 시냇가의 물까지 말랐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너는 시돈 땅 사르밧 과부에게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엘리야는 노총각인데 어떻게 과부의 집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저 같으면 “못 갑니다!”하고 나가떨어지겠습니다. 목사가 과부의 집에 들어가 산다는 소문이 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목회 못 합니다. “교인들이 목사님 떠나주세요” 그럽니다. 그런데도 엘리야는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제식훈련을 받은 사람이지요.
3년 6개월이 지난 후 하나님은 정말 황당한 명령을 엘리야에게 했습니다. “엘리야야. 너는 네 몸을 아합왕에게 보이라.” 아합왕은 지금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어떻게 아합왕 앞에 나갑니까? 그런데도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아합왕 앞으로 나갔습니다. 정말 엘리야는 신앙의 제식훈련을 철저하게 받았던 사람입니다.
며칠 전 저의 집사람이 “여보. 저것 좀 봐요”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보았는데 <뭉쳐야 찬다>라는 TV프로였습니다. 내용은 우리나라 체육계에서 톱을 달렸던 사람들이 전방 백골부대를 찾아가서 친목 축구시합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선수들을 보니까 농구스타 허재, 야구 양준혁, 축구 안정환, 빙상 모태범, 마라톤 이봉주, 수영 박태환, 씨름 이만기, 격투기 김동현 등등 스타급 선수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백골부대 축구 멤버를 보니까 20대 피 끓는 젊은 사병들이 아니라 노티가 나는 대령 연대장, 중령, 소령, 대위, 그리고 역시 노티가 나는 상사, 중사로 구성된 팀이었습니다. “저건 보나 마나 백골부대가 진다” 이렇게 생각하고 저는 돌아앉아 설교 준비를 계속했습니다.
얼마 후 경기가 끝났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요? 스타 멤버들로 구성된 팀이 노티나는 백골부대에게 6:0으로 졌습니다. 1:0도 아니고 6:0입니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었을까!” 그리고 생각을 좀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그것은 훈련 때문이었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왕년의 체육계 스타들은 당대에는 자기 분야에서 최고였습니다. 그러나 은퇴 후에는 훈련이 없었던 거예요. 구경꾼으로 바뀐 거예요. 이에 반해 백골부대 장교들은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일같이 훈련을 쌓았습니다. 결국 승패는 ‘훈련!’에서 난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도 똑같습니다. 훈련이 없는 목사보다 훈련을 쌓은 평신가 더 나을 수 있습니다.
17절~18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엘리야는 기도의 ‘결말’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제식훈련을 잘 받은 결과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제식훈련을 잘 받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해두신 결말을 반드시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