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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 깨면 창의력 ‘쑥쑥’
사소한 선입견은 ‘생각 뒤집기’ 걸림돌로 작용
두 아이가 있습니다. 한 아이에게 하늘이 파란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이는 “하늘이 바다를 닮았다”고 대답합니다.
그렇다면 바다가 파란 이유는 무엇이냐고 물을 때 “바닷물이 바위에 부딪쳐 멍이 들어서”라고 대답합니다.
다른 아이에게 하늘이 파란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 아이는 “빛의 산란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똑같이 바다가 파란 이유를 묻자, 아이는 “태양의 빛이 바닷물에 부딪쳐 산란되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보통은 두 번째 아이에게 관심이 쏠립니다. 얼핏 보기에도 두 번째 아이가 첫 번째 아이보다 월등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입견을 동반한 성급한 생각은 확실히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후나카와 아쓰시의 〈생각의 습관에 날개를 달아라〉를 보면 이런 일화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싱가포르에 진출한 어느 기업의 에피소드이다. 매니저가 현지 법률사무소에 연락을 취해 변호사를 불러왔다. 응접실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백인 남성과 동양계 여성이었다. 일본에서 갓 부임해 온 이 매니저는 백인 남성에게 먼저 말을 건넸는데 반응이 이상했다. 실은 동양계 여성이 변호사였고 백인 남성은 조수였다.”
사람이 선입견을 가지고 있으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오해하거나 착각하기 쉽습니다.
편견은 자유로운 사고를 방해합니다. 사고를 경직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면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이면을 보지 못하는 까닭에 또 다른 가능성이 차단되고 맙니다.
다음의 그림을 볼까요. ‘네커의 정육면체’라고 알려진 도형입니다.
육면체의 어떤 부분이 우리를 향하고 있나요? 처음에는 육면체의 위쪽에 위치한 사각형이 우리 쪽을 향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육면체를 아래로부터 올려다 볼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다시 한 번 바라보면 우리는 육면체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아래쪽에 위치한 사각형이 우리를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관찰자로서 육면체를 바라보는 방향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그림을 볼까요.
이 그림을 보는 또 다른 관점이 있습니다. 그림을 다시 볼까요. 두 그림이 육면체로 보이는 것은 하나의 추상적인 그림에 불과합니다. 즉 도형이라는 프레임이 작용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이 그림을 도형으로 인식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그림을 육면체로 보았다면 어느 면이 앞이고 어느 면이 뒤인지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프레임의 작용 없이 하나의 추상적인 그림으로 봤다면 아무것도 선택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는 이미 도형이 아니라 단순히 추상적인 그림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육면체를 8개의 점과 12개의 선으로 연결된 추상적인 모습으로 보는 것 역시 가능합니다. 우리가 보이는 것만을 바탕으로 그것이 육면체라고 고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육면체가 빚어낸 역설적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 육면체는 마치 우리를 놀리기라도 하듯 하나의 관점에서 다른 관점으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재밌는 이야기를 또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시계는 부모가 자식에게 대물림하면서 오래 쓰던 물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시계를 만드는 회사는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색상과 튀는 디자인으로 유명한 스와치시계는 이런 고정관념을 깨버렸습니다.
스와치의 슬로건은 ‘두 번째 별장은 가지면서 왜 두 번째 시계는 갖지 않는가’였습니다.
여기서 두 번째라는 의미의 ‘second’를 줄여. ‘s’watch라고 한 것이 오늘날의 스와치 브랜드가 된 것입니다.
결국 고정관념의 타파를 통해 스와치는 세계 시계 시장의 25%를 점유하는 거대한 회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고정관념을 깨는 것은 중요합니다. 사실 창의력은 없는 것에서 느닷없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미 있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또 다른 ‘무엇’을 찾는 데서 비롯됩니다.
때로는 정상적인 것, 상식적인 것들을 한 번쯤 뒤집어 생각해 봄으로써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생각이 머물러 있거나 시선이 고정되어 있으면 절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이 바다를 닮아서 파랄 수 있다는 생각, 바다가 바위에 부딪쳐 든 멍 때문에 파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각이 자유로우면 한 관점만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마즐로우는 “망치를 가진 어린이에게 이 세상은 온통 못으로 보인다”고 말합니다.
망치를 가진 어린이처럼 생각이 자유롭지 못하면 편견과 독단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눈을 결코 갖지 못할 것입니다.
기억하세요. 창의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정관념을 버리고 생각을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함께 풀어보는 문제 해결 능력 향상 퍼즐
다음 그림에서 찾을 수 있는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풀이
이 퍼즐은 노파와 귀부인을 모두 나타내는 그림입니다. 이 퍼즐은 일종의 이미지 퍼즐로서 착시현상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창의력 증진과 관찰력 증진에 효과적인 이 퍼즐은 그림 속 양면적인 이미지를 찾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느냐를 의도하고 있습니다. 학습자에게 이 퍼즐을 활용하기 위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학습자에게 주관식 형태로 이 퍼즐을 제시하세요.
2. 퍼즐을 풀고 난 후 착시현상에 대해 알려주고, 착시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그리고 착시현상의 또 다른 사례는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게 합니다.
https://naver.me/GcW5ACg7
다음 각 그림에서 무엇이 먼저 보이시나요?
첫 번째 사진에서 그림자와 빛 안에 있는 피사체 중
무엇이 더 중요하게 보이시나요?
두 번째 그림에서는 무엇이 보이십니까? 노파 혹은
귀부인??
물론 사진과 그림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자세
히 보면 우리는 둘 다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파가 먼저 보인 사람이 귀부인을 먼저 본 사람에
게 어떻게 그게 먼저보이냐고 따져 묻는다면 기분
이 좋을까요? 그렇게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 같습
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죠. 또는 접시 위의
포크가 그림자의 포크와 접시 보다 더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와 반대되는 관점에 대한 의견
을 수용하시겠습니까?
첫 번째 사진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유명한 사진작
가 앙드레 케르테츠(Andre Kertesz, 1894~198
5)의 포크(1928년)라는 작품입니다. 그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태생의 미국 사진작가로 1915년 제1
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참전하여 전쟁 상황을 사
진으로 기록하면서 사진으로의 커리어를 갖기 시작
했고 1925년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파리로
건너가서 잡지나 신문에 실리는 사진을 주로 찍었
다고 합니다. 그의 여러 유명한 작품 중에서도 이
사진이 그의 대표작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가
이 사진을 통해서 진정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은 접시 위의 포크일까 아니면 접시와 포크의 그림자인
가요? 흑백 사진이 주는 Retro한 느낌의 이 사진에
대한 해석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빛의 피사체로 놓여진 접시와 포크에
의해 만들어진 그림자를 바라보는 관찰적 시선을
작가는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빛과
그림자로의 표현이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렬하게 대
비시킴으로써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로 사진
을 접하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 보
도록 유도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작가가
이 사진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는 정확하
게 알 수는 없지만 빛이 비추어진 실체와 빛이 만들
어 낸 접시와 포크의 실체가 그림자로 나타난 그 사
이에서의 괴리 또는 차이점 등에 대해 작가의 의도
를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진이 갖고 있
는 예술성이나 또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
는 보는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차이점도 있겠지만
또 같은 관점으로 보는 공통적인 의견도 많을 것이
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사진은 착시현상이라는 것을 설명할 때 흔
히 쓰이는 그림이자 게슈탈트라는 심리상담이론에
서 이론을 간략하게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합
니다. 게슈탈트이론에서는 늙은 노파와 젊은 귀부
인 중 자신이 보고 싶은 데로 게슈탈트라는 것이 형
성된다고 하며 동일한 사물을 보고 각 개인이 게슈
탈트를 찾아내는 능력을 자각이라고 합니다. 늙은
노파를 보든지 귀부인을 보든지 서로의 관점이 다
르기 때문에 무엇이 더 옳게 본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저 관점이 다른 것을 깨닫게
할 뿐. 결국은 표현된 인물이 다 보이게 되겠지만.
이렇게 같은 그림을 보거나 하나의 사실에도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고 그것을 잘 조율하고 화합
하지 않게 되면 결국 의견이 충돌되게 하며 그것으
로 인해 의사소통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없게 만
들기도 합니다.
물론 이렇게 간단한 사진이나 그림 같은 경우 ‘아!
그렇게도 보이네, 그렇게도 볼 수 있갰다!'라고 선뜻
자신의 관점과 달리 보는 사람들에게 꽤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신념이나 자신의
고정관념과 연합이 되는 순간에는 얘기는 크게 달
라질 수 있습니다.
경직되고 비판적인 자세에 돌입하여 서로 다른 관
점을 쿨하게 인정하지 못하게 되면 소통은 막히고
심한 경우 서로를 반목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
을 우리는 일상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됩니
다. 그럴 때 관계의 맥락이 좀 멀찍하니 떨어져 있
다면 괜찮지만 가까운 맥락 안에 있는 사람들과 이
런 경우에 처하게 되면 우리들의 스트레스를 가속
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곤 합니다.
일상의 대화에서도 포크처럼 겉면만을 듣는다면 상
대의 그림자, 진짜 속마음에 담고 있는 하고 싶은 이
야기나 감정 등 중요한 단서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이면의 의미와 감정을 깊이 있게 파악하는 것이 좀
더 깊고 안정적인 의사소통 방법의 시작일 것입니
다.
이렇게 의사소통을 잘 하려면 어떤 관점에서 들을
것인가 아니면 말할 것인가도 중요한 요소인 것 같
습니다.
상대에게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들을 것인가? 아니
면 부정적인 생각이 꽉 찬 상태에서 상태의 말을 듣
고자 할 것인가? 결과는 매우 달라질 것입니다. 또
한 대화에 참여하는 내가 긍정적 표현을 주로 사용
하는지 부정적인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는지를 생
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같은 사진이나 사물
또는 사람 등을 보아도 매우 다른 견해들을 갖고 있
을 수 있습니다. 특히 부정적인 것이 먼저 입력되는
사람들이 있고 긍정적인 것을 더 많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 긍정적이라서 때론 당황
스러운 사람들도 있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표현을
주로 쓰는 사람들에게 호감이 가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대화의 흐름이 꽤 잘 흘러가는 것이 긍정
적 표현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나타난다고
봅니다. 매사가 부정적인 판단과 관점에서 대화를
한다면 상대에게 매우 피로감을 줄 수 있고 의사소통에도 진도가 잘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아주 간단하지만 매우 중요한 것이 이렇게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가와 그것을 어떻게 대화에 투영하여 적용하는가도 의사소통에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매사를 부정적인 평가와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면 의사소통에 힘들다는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함께 한 식사와 차와 영화감상 후에 나누는 대화에 모두 비판적인 사람과 거기서 긍정적인 면을 찾아서 공유하는 대화의 시간을 나누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 있겠죠? 일단 의사소통이 잘 되려면 나의 시선이 조금 예민하고 까다롭고 비판적이지는 않은가를 먼저 체크해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그림과 사진에서도 마찬가지겠죠?
게슈탈트이론에서의 노파와 귀부인 중 우린 모두를
볼 수 있습니다. 노파를 보는 이가 귀부인을 먼저
본 사람에게 "아 그것도 보이네!” 재밌다. 또는 포크
와 접시의 사진에서도 다양한 관점을 서로 나눌 때
타인의 시각을 존중하고 풍성한 해석에 감사한다면
더 없는 좋은 대화가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긍정적인 사고와 관
점이 의사소통에 매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말씀드
리고 싶습니다. 긍정적 사고에서 긍정적 말투가 나
오고 상대의 말도 판단적 왜곡보다는 이해의 폭을
넓힘으로써 의사소통의 달인이 될 기술이 나올 수
있겠죠?
무엇을 말할 것인가? 어떤 관점에서 들을 것인가?
매우 중요한 시작이 될 것 같네요. 의사소통에서 소
통을 원한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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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천문학자들의 생각과 달리,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었다. 오히려 태양 주위를 돌고 있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통찰이었다. 너무 놀라워서 코
페르니쿠스는 20년 넘게 기다렸다가 인생 말년에
가서야 이렇게 발표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가
만히 놓여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에게, 내가
만약 그 반대로 지구가 움직인다고 주장하면 얼마
나 이상하게 들릴지 나는 알고 있었다.”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은 어떤 새로운 증거에 근거하
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하게 들렸을 것이다. 별자
리는 아랍 천문학자들이 수세기 전에 관측했던 것
과 똑같았다. 유일하게 다를 거라고는 코페르니쿠
스의 관점이었다. 수세기 동안 천문학은 지구가 움
직이지 않고 가만이 있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는 낡은 별자리표를
재학습함으로써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했다.
빙글빙글 도는 세상으로. -
<인용: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엥거스플래처/발명품: 혁명재발견, 513페이지 중>
https://naver.me/x60BFNWR
게슈탈트(Gestalt)란 ‘모양’, ‘형태’, ‘전체’ 혹은 ‘구조를 가진 개체’ 등의 뜻을 지닌 독일어입니다. 전체는 개별 요소들의 단순한 총합과는 다른 그 이상이며 의미 있는 통일체로 만드는 그 무엇을 가리키는데요. 이처럼 게슈탈트란 개체가 환경을 자신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의미 있는 형태로 조직화하여 지각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특정 자극을 부분으로 보지 않고 완결성·근접성·유사성 원리에 따라 의미 있는 전체나 형태, 즉 게슈탈트로 만들어 지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렇게 게슈탈트를 형성하는 이유는 개인의 욕구나 감정을 하나의 유의한 행동으로 만들어 실행하고 완결 짓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https://naver.me/xHD6Xru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