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체의 부모들은 대부분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미물들도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다한다. 생명체중 그래도 최고등 동물에 속하는 포유류는 더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포유류 가운데 자식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동물에 아마도 고래 그 가운데 돌고래가 위치해 있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책임감에 돌고래를 언급하는가. 바로 요즘 핫한 드라마로 소문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때문이다. 이 드라마에서 우 변호사는 특히 고래 그리고 돌고래를 자주 언급한다. 그 배경은 지금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니다.
예전에 만났던 고래를 잡는 포경선 선장의 말이 기억난다. 고래 잡이 문제를 알아보던 중 만난 그는 바다에서 돌고래 새끼를 발견하면 어미를 찾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항상 새끼 돌고래 주변을 맴돌며 새끼를 보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새끼 돌고래를 발견해 조금만 따라가면 영락없이 어미 돌고래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자식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에게 물었다. 그렇게 자식사랑이 강한 돌고래 그리고 고래를 왜 잡느냐고. 그런 책임감을 느꼈으면 다른 직업 찾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그는 자신이 배운 짓이 이것이고 자신도 자식을 여럿 키우고 있는데 바로 그 책임감때문에 하고 있는 일이라고 했다. 고래의 책임감과 고래잡는 선장의 책임감이 서로 상충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책임감이란 무엇인가. 책임감의 사전적 의미는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를 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물론 돌고래나 인간이 오로지 책임감으로 자식을 보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책임감속에 자식과의 사이에 이뤄지는 정 다시말해 자신의 뱃속에 잉태해 키워 내보낸 자식과의 그 표현할 수 없는 인연과 보호본능이 동시에 작동하기에 책임감이라는 것이 발동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자신에게 맡겨진 바로 그 임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 임무를 완수하려는 것이 바로 책임감이란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돌고래와 관련해 우리의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 장면이 있다. 10년전쯤 전에 제주 앞바다에서 일어난 일이다. 바로 야생 돌고래들을 바다로 돌려보내는 행사였다. 제돌이로 대표되는 바로 그 돌고래들이다. 그 돌고래들이 바다로 다시 돌아가게 된 과정을 여기서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당시 제돌이 야생 방류 시민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최재천 교수의 회고담이 다시 한 번 가슴을 울리고 있다. 환경생물학계의 리더이자 생태 환경 전문가인 최교수가 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실시한 당시 여론조사는 그야말로 경악스러웠다고 한다. 상상외로 국민의 상당수가 반대의견을 표했다는 것이다. 왜 잘 있는 돌고래들을 바다로 보내려고 하는가, 인간의 복지보다 돌고래의 복지가 더 중요한가, 만일 그러다가 돌고래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신이 책임지겠는가 등등의 비난이 쏟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위원장이 앞장서 자신의 소신을 강조헸다. 만일 무슨 문제가 생기면 내가 전적으로 책임지겠다,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책임을 지겠다, 자유는 거져 얻는 것이 아니다, 자유는 투쟁을 해서 얻는 것이다 하고 밝힌 바로 그 대목이 가슴에 뭉클하고 오래 남는다. 최교수는 결코 혁명가나 과격운동가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왜 자유는 투쟁을 해서 얻는 것이다라는 다소 과격한 표현을 했겠는가. 그만큼 그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우여곡절끝에 제돌이 삼팔이 춘삼이 등 돌고래들을 자신들이 잡히기 전해 노닐었던 그들의 고향 바다로 돌려 보낼 수 있었다. 결코 쉽지 않았던 아니 한국의 생태환경 수준에서 너무도 어려웠던 그 프로젝트를 완수한 최교수 등 관련자들이 가진 것은 오로지 책임감이었다. 제주 앞바다에 잘 살던 돌고래들을 몰래 잡아다 돌고래쑈를 펼치면서 자기 뱃속을 채우는 과정에서 벌어진 말도 안되는 그 억압 그리고 그 속박에서 그 생명체들을 자유롭게 해줘야 하겠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의 결실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조금 넓게 범위를 잡으면 한 나라의 지도자들은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까. 국민들이 권력을 위임하는 과정에서당연히 지워지는 그 의무감과 책임감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 것일까. 대충 임기를 때우고 떠나면 되는 것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그야말로 책임감으로 무장하고 그 책임감이라는 틀속에 자신을 가두고 있어야 한다. 당연히 그렇다. 그 책임감으로 밤잠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야 정상이다. 자신에게 지워진 그 의무감과 책임감에 어깨가 조금 처져야 정상이다. 조금 잠을 못이룬 듯한 얼굴표정 그리고 눈가에 피빛이 서려야 정상이라는 것이다. 국민들이 생활고에 힘들어 잠 못이루는데 최고 책임자가 잠이 올리가 없지 않겠는가.
국민들의 생활 그 자체가 바로 자신의 생활이요 생각이기 때문이다. 국민속에는 부유한 층도 가난한 층도 존재한다. 부유한 층보다 빈곤한 층이 더 많을 것이다. 그들속으로 생각이 흘러들어가 그들의 생활을 어떻하면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고 윤택하게 해야 하는가에 항상 골몰해야 바로 지도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냥 몇몇 리더격들이 잘 하겠지라고 방임하면 그 자체가 무책임하게 국민에게 비쳐지게 마련이다.
지도자가 조금 몰라도 큰 문제는 없다. 어떻게 지도자가 모든 것을 다 잘 알겠는가. 하지만 자신은 조금 몰라도 책임감이 있는 유능한 참모를 두는 것도 국민들에 대한 책임감일 수 있다. 조금 능력이 없어도 이 또한 아주 큰 문제는 아니다. 유능한 인재들을 잘 등용해 일을 처리하면 된다. 하지만 스스로 무책임한 마음의 자세를 갖고 있으면 이것은 아주 큰 문제를 야기한다. 무지 무능은 해결할 방법이 있지만 무책임은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 누가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던 바로 이 책임감이 그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책임감에 투철해야 한다. 아니 책임감속에 살아야 한다. 모든 것을 다 버리더라도 이 책임감만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항상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한다. 한 나라의 지도자 되기가 그리 쉬운 것인가. 한 나라의 지도자는 하늘이 내린다고 하지 않던가. 하늘에서 결코 책임감 없는 인물을 한 나라의 책임자로 내려보낼 리는 없지 않겠는가.
2022년 7월 26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