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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다는 것은 늘 젊은 것들(!)에게만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가장 치열하게 나와 싸웠을 때 나는 내 젊음 때문에 절망하고 아파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없이 폭삭폭삭 늙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나를 버려둔 시간이 참 많이도 흘러 간 것 같다.
내가 어느 순간 아주 늙었구나
하고 생각했을 때
나를 흔들었던것은 내 삶을 살고 싶다는 또다른 치열함에 대한 욕구였다.
2년 여 동안 나를 버려두면서
내가 왜 시를 쓰야 하는가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런 답도 얻을 수 없었다. 그저 내 안에 일렁거리는 객기와 감상나부랭이라고 치부해 버렸다.
그리고 단 한 권의 시집도 책도 읽지 않은 어느 정도의 시간...
허무도 절망도 아니였다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한다는 것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
어느 순간 불쑥불쑥 튕겨져 나오는 언어들처럼
나는 살고 싶었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그리고 펼쳐든 시집이 정호승의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였다.
무엇보다 내 심장을 옥죄었던 것은
밥그릇의 밑바닥까지도 핥으려 했던 시인의 치열함이였다.
그래서 그릇에도 맛이 있음을 알아차린, 절망하면서도 그리워한 대상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된 그가 부러웠다.
치열하다는 것
무엇엔가 자신의 목숨을 걸 수 있다는 것
내게도 그런 것들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아무것도 기대하진 않는다.
다만 내 삶의 딱 중반에 서서 내가 무엇인가 할 것이 있다는 것과
또한 그 것을 위해 버릴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
내 삶의 그릇에도 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미길 나는 바램한다.
그래서 어느날에고 가장 밑바닥에서의 내 모습에서 사람의 냄새가 물씬 풍기기를 또한 바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