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시내에 가면 어느덧 국제화되고 있는 한국의 지방도시를 발견합니다. 춘천 중앙시장에서는 이제 부근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들의 영어 뿐 아니라 관광객들의 중국어와 일본어를 들을 수 있습니다. 명동의 닭갈비 식당에는 어설프지만 중국어 차림표와 일본어 차림표도 있습니다. 겨울연가라는 드라마가 기폭제가 되어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춘천을 찾는 것입니다. 한류가 이제 한국에도 변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제 아내도 남이섬에 다녀 왔습니다. 아이들 놀린다고 아줌마들이 단체 관광 갔다 온 겁니다. 일본 아줌마들이 너무 많다고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흉을 보면서 결국 본인도 배용준 사진상과 기념촬영을 했더군요. 한류가 제 집안에도 영향을 미치는가 봅니다.
90년대 말 중국에서 한류라는 단어가 생기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반짝 인기로 끝나지 않을까 조바심을 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한류는 드라마, 음악, 게임 등 폭 넓은 분야에서 다양하게 형성이 되어 왔습니다. 그렇게 보면 중국에서의 한류는 평면형입니다. 청소년 세대에는 음악과 게임이 인기가 있습니다. 성년 세대에게는 드라마가 인기가 있습니다. 중국에서 한국의 대중문화가 인기 있는 이유는 서양식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한국이 중국보다 앞서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에서의 한류는 특정 장르나 특정 제품이나 특정 연예인에 집중되지 않고 단위 상품의 인기수명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한류를 보면 그 중심의 욘사마 열풍이 너무 압도적입니다. 겨울연가를 보고 또 보고 이제는 원어판을 감상하기 위해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가히 겨울연가 폐인입니다. 중국과 달리 일본에서 한류는 대단히 범위가 좁지만 인기의 강도는 훨씬 강한 수직천착형 한류입니다. 서양식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일본이 한국에게 뒤져 한국 문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일본인에게는 좀 덜 풍요로웠지만 소박하게 아름다웠던 과거에 대한 사랑이라고 해석하는 게 더 맞을 듯 싶습니다. 하지만 지난 날 아름다움 대한 사랑으로만 해석하기에는 그 지속강도가 너무 깁니다. 계속적으로 증대되는 겨울연가 후폭풍의 회오리는 도대체 언제 그칠지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욘사마 열풍은 우리에게 일본인의 국민적 특성의 일단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일본인에게는 집단주의적 특성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도 집단주의적 특성이 있습니다. 꼭 군사독재 시절의 군대문화 영향이 아닌 것은 월드컵 열풍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집단적 유행은 수명이 짧은 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이런 국민성을 냄비근성이라고 자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본인에게는 이 집단주의적 특성에 더하여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반복해서 찾는 매니아 특성이 더한 것 같습니다. 80년대 중반부터 일본인들이 한국 김치를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인들이 김치를 좋아하는 현상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일본인이 김치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은 한 때 전통문화에서 한국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현상이라고 우쭐하기도 했지만 이제 일본이 기무치를 생산해 수출하는 상황을 바라보면 일본인들의 특이한 힘을 느끼게 됩니다. 집단주의적 사회에서는 집중된 관심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후발 동참자들의 후폭풍이 더욱 거세집니다. 그래야 선발 가입자에게 동료로 인정을 받고 그들을 능가해 중심에 다가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과 같은 사회에서 소수 의견을 얘기한다면 바로 왕따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즉 일본에서는 사회적 트랜드로 자리잡은 현상에 대해서 모든 소속원들이 열심히 좋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회의 중심권에서 탈락하기 때문입니다. 고이즈미 총리가 한국인만 만나면 욘사마와 최지우의 화제를 꺼내는 것은 사회적 트랜드에 편승해 유권자 다수에게 호감을 주어야 성공하는 일본식 정치인의 입장에서 당연한 제스처입니다. 어찌 보면 간지러운 모습입니다. 일국의 지도자가 이웃나라 연예인의 동정에 대해 그렇게 시시콜콜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 경망스럽게 보이기도 합니다.
반면 중국의 지도자들은 대단히 근엄하고 거물스러워 보입니다. 중국의 후진타오 총서기가 겨울연가에 대해 배용준에 대해 언급을 하는 모습은 잘 상상이 안갑니다. 이런 면에서 중국은 일본과 많은 차이를 느끼게 합니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오히려 한류라는 단어에 불편한 마음이 들고 경계심을 느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국 지도자들의 국가적 자존심과 관계 없이 평범한 중국 인민들은 계속 한국의 드라마와 해적판 DVD 영화를 봅니다. 다양한 성향의 중국 인민들에게서 집단주의적 단결력은 자연발생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국을 하나로 뭉쳐 이끌어가고 싶어하는 지도자들은 구심점을 만들고자 골몰합니다. 모든 인민들을 하나로 묶게 할 수 있는 관심사가 때로는 축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통일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반일감정이나 영토 분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동북공정으로 인하여 한국 내 반 중국 정서가 커지고 있습니다. 중국 인민들은 한국의 대중문화 상품을 통해 한국을 친밀하게 느끼는데 중국 지도부는 영토 욕심으로 한국민의 반감을 사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경 분쟁에서 중국과 한국의 갈등은 중국과 일본의 갈등에 비해 격렬한 수준은 아닙니다. 일본과는 센카쿠열도 (따오위다오) 문제로 물리력이 충돌하고 사망자가 발생하는 격렬한 분쟁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대해 동북공정의 역사왜곡을 하는 중국은 2차 대전을 미화하는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서는 한국보다 더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중국 지도부는 공통분모가 약한 중국의 각 인민들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으로 반일 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대중문화에서도 반일 정서는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자오웨이가 일본기 디자인의 옷을 입고 나타났다 여론의 뭇매에 묵사발이 된 사례가 있습니다. 중국에서 반일감정은 한국에서처럼 과거형이 아니고 국경분쟁과 맞물린 현재진행형 반일감정입니다. 이래서는 일본 대중문화 상품이 중국시장에서 쉽게 환영 받지 못할 분위기입니다.
반면 일본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서양식 대중문화에서도 자신들이 선진국이라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서양의 대중문화에만 열렬한 관심을 보냈습니다. 일본의 대중문화 종사자들은 아직도 한국의 대중문화를 높게 평가하려 하지 않습니다. 일본의 드라마가 젊은 세대의 관심만 따라가서 40대-50대 주부들의 시장이 틈새 시장으로 방치되었을 때 그 자리를 겨울연가가 파고 들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겨울연가는 40대, 50대 주부를 시작해 계속 후폭풍을 몰고 오며 30대와 20대 여성 뿐 아니라 일본 남성에게도 환영을 받습니다. 여기에는 순수한 사랑과 가족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일 것입니다. 공산 혁명 이후 강요된 이념과 애국을 주제로 선전공작으로서의 대중문화를 만들어왔던 중국이 새삼스레 다루기 힘든 주제입니다. 그런 면에서 중국의 드라마가 일본에서 환영 받으려면 많은 산을 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중국에서 日流라는 단어가 언제 생길까? 일본에서 中流라는 단어가 언제 생길까? 언젠가는 생기겠지만 가까운 장래 안에 생기기에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만큼 두 나라 국민의 성향과 정서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또 두 나라 지도자들의 통치 방식도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한국의 韓流는 중국시장에서도 일본시장에서도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같은 상품이지만 중국시장에서의 한류와 일본시장의 한류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서구적이고 세련된 이미지이지만 일본에서는 전통적이고 순수한 이미지입니다. 한류는 이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새로운 한국의 모습을 생성케 합니다. 춘천의 시장을 중국어와 일본어가 들리는 국제시장으로 만들고 있고 닭갈비 골목의 메뉴판을 일본어로 중국어로 만들게 하고 있습니다. 한류는 중국과 일본을 한국에 가깝게 변화시키면서 또한 한국 스스로를 중국과 일본에 다가가게 변화시킵니다. 하지만 한류가 전가의 보도처럼 전지전능한 키워드는 아닙니다.
일본에서 날아오는 한류 소식 때문에 일본인의 집단주의가 나쁘지 않게 보이지만 이 집단주의가 공격형으로 변질 될 경우 우리는 과거 국국주의 시절 일본의 망령이 부활하지 않을까 염려하게 될 것입니다. 중국에서 날아오는 한류 소식은 우리에게 문화적 우월감을 갖게 하지만 중국 정치인들이 통치를 위한 구심점으로 중화사상을 부풀리면 중국 인민들은 한국에 대해 역사적 우월감으로 애써 한국의 모든 것을 무시하려 들지 모릅니다. 이제 한류는 우리와 이웃나라와의 관계를 어느 정도 투영해주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의 한류 또는 일본에서의 한류가 사라진다면 한중관계와 한일관계는 지금과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어쩌면 양국 간의 갈등이 커지는 좋지 않은 관계로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 점에서 한류라는 단어가 계속 중국과 일본에 유효한 단어였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의 드라마가 한중관계와 한일관계를 위해서 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의 드라마가 제작되는 이유는 우선 한국시장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고 국제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에 수출시장에서 환영 받고 있는 것이겠지요. 한국 드라마가 이렇게 외국에서 환영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국의 드라마가 인기가 있는 것은 치열한 내수시장에서의 경쟁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형 멜로 드라마의 스토리는 그 큰 틀에서 대동소이합니다. 사랑과 이별, 삼각관계의 틀 속의 뻔한 이야기를 가지고 시청률 경쟁을 하다 보니 수많은 변형의 옷을 입혀가면서 좀더 세련 되어지고 완성도가 높아진 것입니다. 액션물이나 추리물에서 경쟁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식 사랑이야기는 중국시장에서는 다품종 상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일본시장에서는 결정판이 환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중국시장에서는 해적판 DVD 때문에 제 돈을 못 벌었고 일본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파생상품 개발력 때문에 제 돈을 못 벌고 있습니다. 한국의 한류는 비즈니스면에서 좀더 영리하게 돈벌이를 넓혀야 할 여지가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좀더 영리한 돈벌이를 위해서 우리는 한류라는 용어를 좀더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왕에 경쟁력이 있는 상품으로 중국에서 일본에서 좀더 돈을 벌어들이고 우리 스스로 중국과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경쟁력의 핵심을 다른 상품에도 접목시켜야 합니다. 또 한류라는 단어를 따라 우리 스스로 중국과 일본에 다가가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류라는 단어를 따라 중국과 일본을 좀더 깊이 이해할 때 우리는 우려되는 중국의 위협과 일본의 위협을 줄이고 보다 한국에 이익이 되는 한중관계와 한일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갈등이 많이 누적될 수 밖에 없는 이웃나라. 결과적으로 이들과 잘 살아갈 때가 한국의 평화 시기입니다. 한국의 평화를 위해 한류라는 단어가 계속 힘을 떨쳤으면 좋겠습니다. 중국인과 상담할 때 안자이쉬나 진시센을 화제로 분위기가 좋아지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일본인과 상담할 때 욘사마와 지우히메를 화제로 분위기가 좋아지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한국의 평화로운 발전을 위해 안자위쉬, 진시센 자요우! 욘사마, 지우히메도 간바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