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 이르러 축구스타란 존재는 단순히 그라운드 위에서의 모습인 '운동선수'란 측면을 넘어 그라운드 밖에서 일어나는 사생활, 외향적요소 등 축구외적인 측면으로 대중에게 어필하는 '대중적 스타'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훌륭한 축구실력과 함께 화려한 외모, 개성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축구선수는 단순히 축구만 잘하는 축구선수에 비해 더욱 세간의 주목을 받기 마련이고 그러한 선수는 축구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도 헐리우드 스타에 못지않은 인지도를 갖는 동시에 나아가서 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추앙받기도 한다. 특히 뛰어난 패션감각을 가진 축구선수의 패션스타일은 열병처럼 번져가기 십상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소개하려고 하는 아스날의 미드필더 프레드릭 륭베리도 특유의 뛰어난 패션감각과 개성 있는 라이프스타일로 전 세계의 축구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는 동시에 패션리더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는 선수이다.
1. 륭베리의 라이프 스타일
프레드릭 륭베리는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개성 있는 옷차림으로 유명하다. 한 시즌, 그리고 시기마다 조금씩 다른 헤어스타일을 선보이곤 하는데, 가장 선호하는 헤어스타일은 펑키한 분위기의 모히칸스타일이라고 한다. 또한 륭베리는 염색을 즐겨하는 선수로도 유명한데, 륭베리는 염색까지가 헤어컷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언제나 머리가 다 빠져 없어질 때까지 염색을 할 거라 이야기하곤 한다. 특히 01-02시즌과 2002 한일월드컵 기간에 선보인 정 중앙을 빨갛게 물들인 레드헤어는 아스날팬 사이에 유행처럼 번져나갔고 응원가에 륭베리의 빨간 머리에 대한 가사를 집어넣을 정도로 사랑을 받았다. 륭베리는 이러한 헤어스타일링으로 인해 손상된 머릿결을 회복하기 위해 일정한 시기를 정해놓고 삭발을 하곤 한다.
륭베리는 패션 스타일 역시 자유분방한 멋을 추구한다. 한 가지 컨셉과 비슷한 아이템으로 멋을 내기보단 여러 가지를 혼합하는 펑키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륭베리는 언제나 새로운 아이템을 얻기 위해 런던의 본드 스트리트의 옷가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한다. 이러한 패션 스타일 때문에 자주 파파라치의 표적이 되기도 하며, 여러 매거진과 신문에 륭베리의 패션에 대한 기사와 사진이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륭베리는 이러한 매스컴의 주목을 매우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다. 자신이 패션리더로 인식될 거라는 생각은 이전까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고 하며 자신은 개인적인 것을 좋아하며 사생활을 매우 중요시 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이러한 라이프스타일과 자유분방한 성격 덕에 륭베리는 영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8대 독신남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1998년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성 콘테스트와 가장 잘생긴 스웨덴인 콘테스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그리고 륭베리는 각종 모델 제의를 받고 있는데, 얼마 전 켈빈 클라인 이너 웨어의 전속모델로 계약을 해 현재 전 세계적으로 륭베리의 광고사진이 퍼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럼 이제 륭베리의 축구인생에 대해 알아보자.
2. 륭베리의 어린시절과 할름스타드
프레드릭 륭베리는 1977년 4월 16일 스웨덴의 Vittsjo에서 태어났다. 5세 때 이사를 간 할름스타드에서 륭베리는 축구란 스포츠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고 축구의 매력에 금세 사로잡힌다. 하지만 많은 스포츠를 접할 수 있는 스웨덴의 특성 때문인지, 스포츠에 대한 륭베리의 열정 때문인지 륭베리는 축구 외에 다른 스포츠에도 관심을 보였고 1988년에 이르러서는 축구, 아이스하키, 핸드볼의 세 가지 스포츠를 병행하게 된다. 륭베리의 타고난 운동신경과 지구력은 세 스포츠마다 좋은 성과를 보이게 했고, 이 때문에 륭베리는 진로 선택을 두고 한참동안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긴 시간의 고민 끝에 륭베리는 결국 축구가 아닌 핸드볼의 길을 택한다. 핸드볼 선수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후 오랜 시간동안 피나는 노력을 한 끝에 내셔널 트레이닝캠프에 참가하게 되는 성과를 이루었지만 그곳에서 부상을 입고 핸드볼의 길에서 도중하차한다.
륭베리는 꿈을 가지고 한 단계씩 쌓던 공든 탑이 무너지자 한동안 스포츠선수의 길을 접고 오로지 학업에 열중했고, 그 결과 우수한 성적으로 칼리지에 입학해 자연과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지난날 부상이란 좌절이 찾아와 모든 스포츠를 져버리고 학업에만 열중했던 륭베리지만, 어릴 적 자신에게 희열을 안겨다 주었던 축구가 떠올랐고 도저히 져버릴 수 없었다. 공부를 하던 중에도 축구를 틈틈이 해왔고 결국 17세가 되던 해에 자신의 고향 팀이자 서포팅 클럽인 할름스타드에 입단하기로 결정한다. 1995년 륭베리는 겨우 18세에 불과했지만 기량을 인정받아 주전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당시 륭베리는 투톱 아래에서 프리롤로 플레이하는 스타일이었는데 타고난 스피드와 활동량 그리고 발재간으로 상대방의 진영을 어지럽히고 다녔다. 할름스타드의 감독은 륭베리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불어넣어줬고, 륭베리는 1997년 할름스타드가 18년 만에 우승컵을 탈환하는데 크나큰 기여를 한다. 륭베리는 1998년 할름스타드에서의 눈부신 활약과 스웨덴 대표팀에서의 멋진 활약을 밑거름 삼아 잉글랜드의 아스날에 입단하게 된다.
3. 아스날에서의 초창기
적어도 스웨덴 내에서는 유명세를 타고 있던 륭베리지만, 유럽에서는 무명에 가까웠던 게 사실이었다. 이러한 그가 아스날이란 빅클럽에 몸을 담게 되자 륭베리의 기량에 대해 의문을 갖는 여론도 많았다. 게다가 륭베리가 아스날에 와서 처음으로 갖는 데뷔전 상대는 프리미어리그 최고 명문이라 불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을 갖는 선수의 상대로는 너무 벅찬 상대였다. 그러나 륭베리는 의혹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은 무시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놀랄만한 움직임과 활약을 보여주었고 득점에 성공했다. 아스날은 이 경기에서 륭베리의 득점과 활약에 힘입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3-0으로 꺾었다. 다음날 모든 신문에선 륭베리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킬러'라고 소개하며 스타탄생을 알렸다.
륭베리는 비록 데뷔전에서 득점을 올렸지만 한동안 부진을 면치 못한다. 영국의 기후와 풍토에 적응을 하지 못했고 스웨덴의 비교적 짧은 리그일정에 익숙해있던 륭베리에게 프리미어리그의 기나긴 일정은 견디지 못할 만큼의 피로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포지션은 태어나서 처음 플레이 해보는 라이트 윙. 륭베리에겐 이 모든 상황이 그저 어색하기만 했다. 이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는 륭베리를 일으켜 준 사람은 다름 아닌 감독 아르센 벵거였다. 벵거는 륭베리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고 륭베리가 팀과 리그 그리고 포지션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힘써 도와주었다. 그 결과 륭베리는 빠른 적응력과 성장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4. 최고로 거듭남
륭베리의 스타일은 정통적인 윙 스타일이 아니라 쉴 새 없이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상대방의 허점을 파고들어 공격 하는 스타일인데, 이러한 륭베리의 플레이가 나오게 된 배경으로는 어릴 때부터 중앙미드필더로 플레이했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벵거는 이러한 륭베리의 플레이가 좀 더 공격에 효율적이면서도 상대에게 더욱 위협적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륭베리는 놀라울 정도로 빠른 습득력과 이해력을 보이며 성장했다. 자신의 이러한 성장, 그리고 벵거 특유의 스피디하면서 내용이 꽉 찬 축구는 륭베리의 잠재력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륭베리는 리그에 점점 적응을 하기 시작했고 특유의 폭발적인 플레이가 나오기 시작했다.
적응에 성공한 륭베리에겐 말 그대로 거칠게 없었다. 매 경기마다 쉴 새 없이 그리고 미친 듯이 뛰어다녔고 상대팀 진영에 깊숙이 침투하며 득점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륭베리의 존재는 아스날에게 있어서 마치 제 3의 공격수와도 같았다. 륭베리는 이제 아스날에 없어서는 안 되는 선수로 성장했으며 팀에 활력소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러한 륭베리의 활약을 밑거름 삼아 아스날은 2000년 UEFA컵 결승에 진출했고 2001년 FA컵 결승에 진출했다.
01-02시즌 륭베리의 플레이는 절정에 달했다. 시즌 매 순간순간마다 륭베리의 재능이 발휘된 게 사실이지만 가장 화려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시즌 종료가 다가오는 3월부터였다. 시즌 내내 절정의 활약을 보이던 동료 로베르 피레스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이 확정되자 륭베리는 이러한 피레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두배로 뛰었고 이러한 륭베리의 플레이는 피레스의 공백을 메우기 충분했다. 리그에서의 종횡무진 그리고 FA컵 결승에서의 눈부신 플레이. 아스날이 01-02시즌 더블을 이룩하는데 있어서 륭베리의 공로가 매우 컸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이다. 화려했던 01-02시즌을 뒤로하고 새로이 맞이한 02-03시즌. 한 시즌 내내 부상이 륭베리의 발목을 잡았다. 부상 때문에 한 시즌동안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시즌막판에 이르러 다시 예전과도 같은 활약을 보여주어 팀의 FA컵 우승에 일조하면서 륭베리 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5. 대표팀에서의 륭베리
륭베리는 스웨덴에서 '뉴 브롤린'이란 별명으로 불린다. 륭베리를 스웨덴이 94년 미국월드컵 3위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브롤린과 비교하는 것이다. 그만큼 스웨덴 국민들이 륭베리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륭베리는 스웨덴 대표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선수이다. 공수의 연결고리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스웨덴 대표팀의 공격은 륭베리가 측면을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찬스와 슈팅 그리고 최전방 공격수에게 연결하는 패스에 의존하는 빈도가 크다. 이렇게 륭베리가 대표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을 알게 된다면, 왜 스웨덴 인들이 륭베리에게 큰 기대를 걸며 새로운 영웅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것이다.
륭베리는 청소년대표부터 차근차근 올라간 케이스다. 18세가 되던 해인 1996년 스위스 U-21 청소년 대표팀에 데뷔한 이래 청소년대표팀에서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었고 2년 뒤인 1998년 미국과의 경기에서 성인대표팀 데뷔를 했다. 륭베리가 대표팀에서 본격적으로 활약을 하기 시작한건 유로2000 예선전부터이다. 스웨덴이 잉글랜드를 상대로 한 예선전 경기에서 2-1로 승리하는데 일등공신이 되었고 이러한 활약이 결국 아스날로 이적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스웨덴은 유로2000 본선에서 1무 2패의 성적을 거두며 탈락하고 만다. 그러나 륭베리는 대회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며 그가 스웨덴의 미래임을 보여주었다.
이후 2년 뒤 열리는 2002 한일월드컵, 륭베리는 월드컵 지역예선의 전 경기에 출장하면서 스웨덴의 본선진출에 일조한다. 스웨덴이 월드컵 조별예선 에서 맞이한 조는 F조.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나이지리아, 스웨덴으로 이루어진 사상 최고의 죽음의 조라 불리는 F조였다. 륭베리는 월드컵 전에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국의 선전을 위해 진통제를 맞아가며 조별예선 2경기에 출전 하는 투혼을 발휘한다. 이러한 륭베리의 투혼에 힘입어 스웨덴은 F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결국 부상이 악화되어 륭베리는 스웨덴이 16강전에서 '검은 돌풍' 세네갈의 제물이 되는 것을 벤치에 앉아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스웨덴은 안타깝게 16강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고, 륭베리 또한 월드컵 때 악화된 부상이 02-03시즌 내내 크나 큰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나 륭베리는 이 모든 아픈 기억을 떨쳐버리고 이제 포르투갈에서 열리는 유로2004에서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스웨덴의 희망이자 아스날의 폭주기관차 프레드릭 륭베리. 이제 선수생활의 절정에 달하고 있는 그가 스웨덴과 아스날에게 어떤 영예와 트로피를 선물할지 매우 기대가 되는 바이다.
6. 륭베리의 20문 20답
1.축구를 제외한 스포츠 중 가장 좋아하는 운동선수는 누구인가요?
-마이클 조던
2.생존 여부를 떠나서 가장 만나고 싶은 유명인은 누구인가요?
-레오나드로 다빈치
3.지금까지 본 영화 중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는?
-스티그마타, 식스 센스
4.만약 축구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무엇이 되어있을 거 같나요?
-전투기 비행사
5.태어나서 맨 처음 본 축구경기는 무엇인가요?
-아마도 제 아버지가 있었던 축구팀의 경기가 아니었을까요?
6.어린시절 가장 좋아했던 스타플레이어는 누구였나요?
-브라질의 소크라테스, 어린시절 아버지가 소크라테스의 유니폼을 사줘서 그때부터 좋아하게 됨. 개인적으로 브라질을 좋아합니다.
7.축구를 떠나서 가장 좋아하는 취미생활이 뭔가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커피를 마시면서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아해요.
8.요즘 가장 좋아하는 곡은?
-요즘은 주로 하드락을 즐겨 들어요. 지금은 아이언 메이든의 Fear of the Dark를 듣고 싶네요. Live Version으로.
9.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어린시절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과 어울렸던 순간이 가장 좋았습니다.
10.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뭔가요?
-퓨마, 제 몸에 퓨마 문신도 있죠.
11.가장 좋아하는 피자 토핑은 뭐죠?
-피자는 치즈 알러지가 있어서 잘 안 먹습니다.
12.당신이 했던 헤어스타일 중 가장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건 뭔가요?
-글쎄요. 마음에 들지 않았던 헤어스타일이 별로 없었어요.
13.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골 세레모니는 뭔가요?
-전 골을 넣고 미친 듯이 달려가는 게 좋습니다.
14.가장 좋아하는 옷은 뭔가요?
-청바지
15.가장 좋아하는 휴양지는?
-아직 가보진 않았지만, 호주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대보초)에 언제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호주에서 돌고래와 수영도 해봤으면 해요.
16.어린시절 가장 좋아했던 축구 클럽은?
-제가 플레이했던 스웨덴의 할름스타드를 가장 좋아했어요.
17.전 세계의 중요도시중 가장 좋아하는 도시는?
-아마도 런던이 아닐까요. 그리고 언제 뉴욕에 한번 가보고 싶네요
18.가장 좋아하는 할리우드 스타와 팝스타는?
-안젤리나 졸리, 에미넴
19.아스날의 팀 메이트중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아스날의 플레이어, 관계자 한사람 한사람이 저에겐 모두 소중합니다.
20.가장 좋아하는 헤어컬러와 앞으로 해보고 싶은 헤어컬러는 뭔가요?
-빨강색을 가장 좋아해요. 그리고 언제 녹색으로 염색해볼 생각입니다.
7. 륭베리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
1. 할름스타드 시절 펑크록밴드 Sex Pistols에 매료된 륭베리는 펑크록스타가 되고 싶어 했다. 한동안 축구를 할지 축구를 그만두고 펑크록커의 길을 걸을지 고민하기도 했다고 한다. 륭베리의 전 소속팀 할름스타드의 한 동료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 그걸 증명한다. - '륭베리는 축구보다 펑크록을 더 좋아하는 거 같다. 륭베리는 입만 열면 펑크록에 대한 이야기를 해 댔고 옷도 마치 펑크록커처럼 입고 다녔다. 나는 륭베리가 펑크록커로 데뷔할 날이 언젠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2. 륭베리는 할름스타드시절 특유의 화려한 헤어스타일과 패션을 이해하지 못하는 동료들에게 잠시 동안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동료들이 그러한 패션을 이해해주자 더욱 심하게 하고 다녔다고.
3. 할름스타드시절 륭베리에겐 수많은 소녀 팬들이 있었다. 륭베리가 뭘 하던 간에 비명을 지르며 따라다녀 매우 곤혹스러워 했다고 한다.
4. 언제나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 륭베리, 보통의 선수들이 트레이닝이 없을 때 마다 조용히 쉬거나 여가를 활용하는 반면, 륭베리는 트레이닝이 없을 때 가끔 나이트클럽에서 늦은 시간까지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리고 가끔씩 경기 전날 밤 에로틱 영화를 빌려보기도 한다고.
5. '영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8대 독신남' '가장 잘생긴 스웨덴인 콘테스트 노미네이트' '세계에서 가장 잘 섹시한 남성 콘테스트 노미네이트'등 이슈메이커로 떠오르는 륭베리는 최근에 켈빈 클라인 이너 웨어 모델로 데뷔했다. 켈빈 클라인의 사장은 륭베리야 말로 켈빈 클라인을 가장 잘 표현하는 모델이며 륭베리가 베컴에 버금가는 상품성을 지닌 스타일 아이콘이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한다.
성 명: Fredrik Ljungberg
국 적: Sweden
포지션: MF
소속팀: Arsenal FC(England)
생년월일: 1977년 4월 16일
신체치수: 176cm 75kg
팀가입일: 1998년 9월 12일
경기데뷔: Premier League v Man Utd (h) 20th Sept 1998 (Won 3-0)
전소속팀: Halmstads BK
첫댓글 와~이거 어디서 나온 자료인가여? 륭베리,피레에 대해 많이 알고싶었는데,,축구에 관한 괜찮은 잡지,,아니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마니보는 잡지는 어떤게 있나여? 그런쪽으로는 하나도 몰라서...
사커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