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이 말의 기원(origin)을 추적해보면 역사는 개인에 의해 바뀐다는 사실 앞에서 숙연해진다.
이 말은 근대화혁명가 박정희대통령이 유신 말기 장기집권과 인권침해를 공격하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했던 것.
자신의 ‘조국근대화’가 잘못된 것이라고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후대(後代)들이 자신의 무덤을 향해 저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
침’을 뱉으라고 일갈!?역사의 평가 앞에서 ‘조국’을 놓고 승부를 거는 근대화혁명가!
가난이싫어 오천년의 가난이싫어 우리도한번 잘살아보자고 외치며 일하고
또 일했던 박정희대통령 훗날에 사가들이 묻거든
나는 오직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조국근대화로 일하고 또 일해 왔다고
후대로 부터 평가받을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던 박정희대통령
40代에 임신한 어머니가 끈질기게 지우려 하였던 생명은 태어나 집권
18년 동안 나라의 運命(운명)과 국
민들의 삶에 천지개벽의 변화를 몰고 왔다.
兄은 우익 손에 죽고, 부인은 좌익 손에 죽고, 본인은 부하 손에 죽었다.
가슴을 관통당하고 남긴 마지막 말은 “난 괜찮아.”질풍노도의 시대에 淸濁(청탁)을
다 들이마시면서도 끝까지
순수한 영혼을 유지해간 그는 더러운 강물을 삼켜 바다와 같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알렉산더 대왕과 같은 호쾌한 영웅도 아니고 나폴레옹과 같은 電光石火(전광석화)의 천재도 아니었다.
부끄럼 타는 영웅이고 눈물이 많은 超人, 그리고 한 소박한 서민이었다.그는 한국인의 애환을 느낄 줄 알고
서민의 숨결을 읽을 줄 안 土種(토종) 한국인이었다. 민족의 恨(한)을 자신의 에너지로 승화시켜 근대화로써
그 한을 푼 혁명가였다. 누가 그의 무덤에 침을 뱉을 것인가?
그러나 이 말은 하마터면 1979년 박정희대통령 서거와 함께 묻힐 뻔했다. 박정희대통령이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자
“유신만이 살길이다”고 외쳐댔던 권력자들은 모조리 “그 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서슴없이 박정희를 배신했고,
이어 나타난 전두환 정권은 물론 야당, 그리고 국민에 의한 박정희 격하운동은 사회적 대세였다.
이 때 박정희 정권 시절 조선일보에서 청와대를 출입했던 기자 안병훈이 월간조선 기자 조갑제를 찾는다.
안병훈은 조갑제에게 말한다.“박 대통령은 생전에 출입기자들에게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고 말하곤 했다.
연재 기획기사로 박 대통령을 재평가하자.”?이때부터 박정희를 향한 조갑제 필생의 무서운 추적이 계속되기 시작한다.
만약 박정희 사후에 안병훈의 기획과 조갑제의 집념, 말하자면 두 명의 ‘개인’이 언론계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박정희는 그 후에 집권한 정권들에 의해 오로지 ‘독재자’로만 각인되고야 말았을 것!?
박정희대통령이 부활한 건 ‘박정희 기념사업회’가 아니다.
기자 조갑제!거듭 말하려 한다.
박정희대통령이 집권할 당시인 1961년 대한민국 1인당 국민총생산이 몇 달러였는지
‘공부’해 보았다면 결코 박정희대통령무덤에 침을 뱉을 수 없다.
89달러!-당시 유엔이 국가로 인정한 125개 국가 중 101번째로 세계 최빈국 그룹에 속했다.
북한은 49번째‘중간국가’!
박정희대통령은 이런 대한민국을 세계 최강의 신흥산업국가 그룹에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다.
절대빈곤, 그리고 끊임없이 계속 된 공산세력의 침략!
세계 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에서 공산화가 실패한 유일한 나라,
대한민국. 중국은 1949년 공산화됐고, 베트남이 공산화된 건 1975년
-유일하게 대한민국만 절대빈곤과 공산세력의 전쟁과 무력도발에 맞서
건국과 산업화에 모두 성공하게 만든 역사적 영웅이 바로 이승만과 박정희!
그래서 이승만은 건국 대통령이고, 박정희는 근대화와 산업화 대통령!
자료출처
국가중흥회 박두철 회장님


첫댓글 중단하는 자는 승리하지 못한다 절대 명제
박대통령 가족의 추억어린 사진이군요
감상 잘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