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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게시판 유럽 19세기 프랑스의 정치 실험 - 어째서 프랑스에서는 입헌군주정이 들어서지 못했을까?
이름짓기귀찮아 추천 2 조회 628 17.02.05 22:14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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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7.02.05 22:28

    첫댓글 글씨크기가 작아용.. ㅠ

  • 17.02.05 23:35

    프랑스 왕정복고.... 는 3공 초기 거의 왕정복고 직전까지 갔고 오를레앙파와 정통파가 투닥대다 결국 앙리로 정해진판에 앙리가 '공화파 꺼지셈 ㅗ 입헌군주 안함 ㅗ'시전하는 바람에...

  • 17.02.06 00:45

    우리에게는 프랑스가 혁명의 나라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어쩌면 현재 프랑스 공화정이 확립되게 된 것도 상당한 우여곡절 끝이죠.. 알리시아크리스틴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왕정복고가 거의 이뤄질 뻔한 경우도 있었고, 티에르 이후에 대통령이 된 마크마옹 역시 강력하게 왕정으로의 복귀를 추진했죠. 1889년 불랑제 사건처럼 거의 공화정이 무너질뻔 한 경우도 있었고요. 실질적으로 왕정으로의 복귀가 이뤄지지 못한 것은 왕당파들의 무능과 난맥이지, 공화주의자-자유주의 세력이 강고한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후에도 드뢰퓌스 사건-악시옹 프랑세즈-크루아 드 퓌(Croix-de-Feu)처럼 강고한 보수주의 세력이 잔존했죠.

  • 17.02.06 00:49

    거의 항상 역사의 거대 사건들에 나오는 프랑스이지만... 내전 이후에는 웬지 ㅜ

  • 17.02.06 02:06

    좋은 글이네욤.

    p.s 벌써 18세기말에 입헌군주가 가능할뻔 했긴 했죠. 역사의 가정이란 무의미하지만, 입헌군주를 루이16세가 수용하고 바렌 도주라는 패착을 두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루이16세가 처형당한건 반혁명적 자세 때문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와의 내통이었으니.) 역사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때까진 백성들이 일단 루이16세에 대해 "공화국을 지킨 군주에 대해 칭송" 했으니 말이죠.

    그렇게 되면 역설사 유로파에서 혁명 프랑스도 없었을거고, 혁명 프랑스가 없었으면 DLC랑 혁명 타겟도 없었고, 나폴레옹이랑 신로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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