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용량 첨부파일 2개(479.31MB) 다운로드기간 : ~ 2012.10.06 07:31 (30일간보관, 100회 다운로드 가능) | ||||
|
파란 메일이 없어져서... 두 개(다음, 네이버) 채널로 올립니다. 총 200회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보시길 바랍니다.
간략한 설명을 첨부한다면, 이 경기는 1년전 ABC 승리에 대해 처절하게 보복(?)당한 한판이었습니다.
중국은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에게 지면 철저히 준비를 하고 나와서 우리를 무너뜨리는ㅠ 공식을 다시 한번 보여줬죠.
97년 주전: 강동희-이상민-우지원-정재근-전희철
98년 주전: 이상민-문경은-정재근-현주엽-서장훈
97년에 크게 승리를 거둔 것은 정말로 세계 불가사의에 들어갈 일입니다. 그러나 늘 회자되듯이,
단신팀이 어떻게 하면 장신팀을 상대로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 것도 97년 경기입니다.
예전에 97년 경기를 올려드렸는데 이번에는 비교 차원에서 98년 경기를 업로드 해봅니다.
98년에는 97년과 달리 선수들의 인사이드 진입(돌파든 컷인이든 포스트업이든)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우리가 중국에게 당하는 공식 그대로 패배했습니다. 97년에 정재근의 미친 돌파력과 전희철의 NBA급 수비력, 그리고 둘의 하이-로 게임이
이상민의 돌파, 풋백득점 등으로 이어지고 후반 초반 릴레이 3점슛 대폭발이라는 결과물을 낳은 반면 이 날은 정말 무기력 그 자체였습니다.
이상민, 현주엽 등의 간헐적인 돌파가 있기는 했으나 대세와는 전혀 무관했습니다.
서장훈이 안쪽에서 고군분투하며 수비를 했으나 늘 그랬듯이 상대보다 현저히 낮은 4번(현주엽, 정재근)으로는 팀 수비가 안되었습니다.
그 틈을 타서 냉혹할 정도로 침착한 공샤오빈(202cm)의 폭격이 펼쳐지죠. 이런 공샤오빈을 데리고 놀던 김유택의 위대함이 다시 상기되는 순간...
97년처럼 기민한 플레이로 상대의 엔트리 패스 자체를 차단(그만큼 전희철의 수비 활약은 대단했고, 98년에는 빈 자리가 컸음)하는 방식을 쓰거나
벤치만 달구고 있는 운동능력 甲 김주성을 서장훈 파트너로 넣어서 공간 수비라도 해줬어야 하는데 전혀 안되었습니다.
국내 최고수준 포워드가 된 추승균도 신장열세로 별다른 활약을 못한(99년 김영만과 동일) 경기이기도 합니다.
신장이 비슷해져서 상대의 골밑을 공격할 수 있고(돌파든 포스트업이든) 상대의 파울을 누적시키며 수비를 위축시킨
U18 대표팀의 활약에 새삼 격세지감이 느껴지게 하는 경기 중 하나입니다. 신장과 몸싸움, 공간 지배력. 이게 농구의 대부분이구나 싶은 생각...
첫댓글 97년도 중국을 4강에서 이기고 결승에서는 다른 나라한테 지지 않았나요?? 기억이 잘 안나서요;; 전희철 팁인 덩크만 기억에 남아있네요 ㅎ;
일본에게 예선에서 패배했고, 결승에서도 가까스로 승리했습니다. ABC에서 우승한 것은 69년 방콕 대회 이후 무려 28년만이었죠.
감사합니다^^
국제대회에서 단신팀이 실력이 좋은 장신팀을 이기려면
운도 따르고 허를 찌르는 전략도 잘 맞아떨어져야겠죠.
문제는 토너먼트에서 어쩌다 한번 이렇게 이길 수는 있는데,
다음에 만날 때는 상대팀에서도 철저히 준비하고 나온다는 것이죠.
82년 아시안 게임 결승에서도 한국이 중공을 꺾었었지만,
5게임, 아니 3게임 시리즈로만 했어도 한국이 졌을 겁니다.
센터인 신선우를 플레이메이커로 기용한 것이 중공의 허를 찌른 작전이었죠.
82년 게임도 신선우-임정명이 정재근-전희철과 비슷하게 하이-로 게임을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신동찬의 컨트롤이 정교했고 이충희, 박수교는 공격에 전념하면서 팀플레이가 잘 맞물렸죠. 우리가 중국에서 허무하게 패배할 때를 보면, 대체로 1,2명만 미치고 나머지는 별다른 위협적인 움직임이 없을 때가 많은데 82나 97이나 선수 전원의 공간 점유율(?)이 높았던게 승리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신팀이 여러 공간에서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대패를 면할 수 없는게 농구인 듯 합니다. 1985년의 승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죠. 허재-이충희-김현준-조동우-김유택인데 82나 97스러운 전술은 아니었을 듯...
저도 85년 본 기억은 없지만... 그 당시는 중국도 230대 선수 한 명을 제외하면 키가 그리 크지 않았었죠. 2미터대 초반 선수들로 포워드 라인이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장용준을 비롯한 슛터들의 신장도 190이 될까말까 였지요. 포인트가드도 물론 작았고... 반면 허재 이충희 김현준 김유택은 당시 20대로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이죠. 85년이면 허재가 중대 2학년에 포인트가드를 전념하던 시절이고 허재는 당시 슛보다는 돌파가 더 많은 선수였고 진짜 막기 힘든 선수였죠. 이충희의 슛은 세계선수권에서 통하던 수준이고... 아마 골밑 득점보다는 중거리 득점과 허재의 돌파 위주로 경기했으리라 생각됩니다.
Seba님/1985년 경기는 전설속의 경기죠^^ 국내중계도 안되었고, 방송사에도 없는 것으로...ㅠ 스탯을 보면 말씀처럼 1~3번의 득점이 대부분이라 예상처럼(?) 4,5번 더블포스트의 활약은 적었을 수도 있습니다. 근데 그것도 추측일 뿐이죠.
97년 대표팀 신장은 현 아마추어 성인 동아리 농구팀의 신장과도 큰차이가 없네요 ㅎㄷㄷ
대신 정재근(190), 전희철(196)의 운동능력 및 커버하는 범위가 사기급이었죠^^ 교체멤버인 양희승도 굉장히 알토란 활약을 해줬고요.
97년 abc때 그 큰선수들을 상대로 정재근 전희철 두 포스트맨이 보여준 플레이들은 사실 경이로울정도의 활동량과 투지가 동반된 모습이였죠.
참 기억에 남는대회입니다.
우지원은 슈터로 기용된건지 쑨준 막으라고 기용된건지 알수없을정도로 극악의 사이드스텝임에도
쑨준을 경기초반부터 개거품물고 쫒아다니며 생애 최고의 수비를 보여줬고..
아무리생각해도 저대회 중국을 꺾었을때 그 게임은 믿기지가않습니다.
02때야 사실 최강의 멤버였으니 기적이 일어난게 이해라도가지만.ㅋ
아 다운이 안되네요.ㅜ.ㅜ 그리고 97년 경기도 정말 보고 싶네요.
개인 메일 주소 저한테 쪽지로 주십시오^^
seo7296@hanmail.net 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다운이 안됩니다ㅠㅠㅠ kh1621@hanmail.net 괜찮으시면 보내주실수 있는지요???
가능하시면 97년도 abc도 보내주시면 안될까요??
98'방콕아시안게임남자농구결승 한국vs중국(1).WMV 지금 이파일은 다운 중입니다. ^^ 두번째 파일은 아직이구요.
일이 있어서 이번주 내엔 보내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ㅠ 담주중에 보내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이당시 방콕아시안게임때 신문 기사가 기억나는데 한국vs중국 결승전에서 여자대표팀 선수들은 관중석에서 남자선수들을 열심히 응원하던 반면 남자선수들은 여자선수들이 중국과의 경기때 관중석에서
"쟤 뭐야, 저렇게 할거면 빼버리지" 라는등 비아냥 거리는 식으로 얘기하는 등 기자들이 기사에 여자 선수들이랑 너무 대조적이라 안타깝다고 썼던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