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태풍’이었지. 요즘은 안철수 얘기 꺼내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봐야지.” 지난 11일 오후 전남 여수시 중앙동 수산물 도매 상가에서 만난 60대 상인은 “어정쩡한 안철수에게 적잖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만난 상인 등 여수 시민들은 한결같이 “안철수 바람이 이제 그쳤고, 인기도 거품처럼 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9월 반응과는 사뭇 달랐다.
지난해 대권 도전을 선언한 안철수 의원은 호남 첫 행선지로 여수를 선택했다. 안 의원 처가가 여수다. 장인 김우현씨와 장모 송복자씨는 중앙동 선어시장 맞은 편에 3층짜리 상가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안 의원은 지난해 9월 27일 오전 추석을 맞아 여수 중앙동 처가에 도착해 장인, 장모에게 인사하고 그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상가 주변은 “안철수! 안철수!”를 연호하며 박수치고 서로 안 의원의 손을 잡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한 상인은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
1년 3개월여가 지난 지금 여수는 냉랭하다. 여수산단의 한 대기업 홍보과장은 “기대가 컸던만큼 실망감이 커서 그렇지 않겠느냐”며 “민주당과 갈라져 야권 분열을 초래한다는 인상이 강하다”고 했다. 안 의원 장인은 올 여름 3층 건물을 8억원에 매물로 내놓고 여수 돌산읍 한 아파트로 거처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한 상인은 “시세보다 비싸게 건물을 내놔 팔리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건물 1층은 수산물 도매상가, 2층은 성인 게임장이 입주해 있었다. 3층은 가정집으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빈 상태라고 한다.
지난해 9월 27일 처가인 여수 중앙동 수산물 시장을 찾은 안철수 의원이 주민들과 악수하고 있다./조홍복 기자
하지만 여수에서 안철수 신당(안 신당)에 대한 기대감이 완전히 식었다고 보긴 어렵다. 지난 11일 안 의원이 신당 창당 준비기구 ‘국민과 함께하는 새정치추진위원회’를 본격 가동하면서 관심이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6일 KBC광주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광주시민의 정당 지지도는 안철수 신당 44.1%, 민주당 26.3%로 나타났다.
정권을 새누리당에게 빼앗긴 민주당에 대한 지역 유권자들의 실망감이 커지면서 그 반대급부가 안철수 신당 지지도로 쏠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안 의원 측 후보들이 여수에서 열심히 활동하더라. 안 의원 참모들은 여수에 사활을 거는 분위기다. 본인들이 판단할 때 광주시장과 전남지사를 제외한 전남 22개 시·군 가운데 처가인 여수에서 안 신당 소속 단체장이 배출될 가능성이 가장 커서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여수에서 시작해 순천과 광양으로 세 확산 전략
안 신당 측은 여수에서 일으킨 바람을 인접한 순천시와 광양시로 확대한다는 전략을 짰다고 한다. 처가가 있는 여수를 흥행의 진원지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당선이 유력한 후보를 내세워 여수와 순천, 광양에 순차적으로 입성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민주당 당직자는 말했다. 공교롭게도 여수와 순천·광양 현 단체장은 모두 무소속 신분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모두 민주당 후보와 맞서 승리한 단체장들이다.
‘무소속’과 ‘민주당’으로 형성된 현 선거구도는 ‘안철수 신당’과 ‘민주당’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당선이 유력한 무소속 단체장 후보는 무소속으로 남는 것보다는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안철수 신당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그래서 “여론 조사에서 수위를 차지하는 무소속 후보는 안 신당 유혹에 많이 흔들릴 것”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안철수 의원의 장인이 소유한 전남 여수시 중앙동 3층 상가 건물. 안 의원 장인은 이 건물을 8억원에 매물로 내놓았다고 한다./조홍복 기자
여수는 무소속과 안철수 신당, 민주당 3강 구도가 형성돼 있다. 현 김충석 시장이 무소속을 유지한 채 내년 6월 지방선거에 도전할 계획이다. 안철수 신당이 여수시장 후보로 선택한 카드는 대검 강력부장과 광주지검장을 지낸 주철현 변호사와 김동채 여수경연인 협회회장이다. 이 두 명 중에서 안철수 신당 소속 여수시장 후보가 탄생한다. 주철현 변호사는 당초 민주당 입당을 타진했으나 안 의원 측으로 선회했다고 한다.
한 지역 정치인은 “주 변호사는 민주당 입당 조건으로 중앙당 법률특보 또는 법률지원단장을 요구했으나 당 지도부와 일부 의원의 반대로 뜻을 관철하지 못했다. 민주당에서 사실상 특혜 제공을 거부한 것이다. 민주당에서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주 변호사는 안철수 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여수고 출신인 주 변호사는 동문인 김종빈 전 검찰총장과 이용주 변호사와 힘을 합쳤다. 이 세 명은 시장 후보로 주 변호사가 나오고, 향후 여수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이 변호사가 출마하기로 서로 약속한 사이”라고 말했다.
바람은 있지만 위력은 역시 제한적
그는 “주 변호사는 이용주 변호사가 안 의원 측 ‘변호사 3인방’ 중 한 명인 강인철 변호사와 친분이 있는 것을 알고서 이를 통해 안 의원 측에 접근했다”고 말했다. 주 변호사가 이 변호사를 통해 안 의원 측의 강 변호사를 소개받았다는 것이다. 금태섭·강인철·조광희 변호사는 이른바 안철수의 ‘변호사 3인방’으로 꼽힌다. 변호사 출신인 송호창 의원을 포함하면 ‘변호사 4인방’이 된다.
주 변호사는 지난 6월 여수 학동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며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그러나 인지도가 약하다는 단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같은 여수고 출신인 김동채 회장은 지역에서 꾸준히 안철수 신당 기반을 다져온 인물로 평가받는다.
최근 지역 유력 인사와 정치인이 ‘안 신당호’에 승선하고 있다. 한영래 재경 여수시향우회장과 천중근 전남도의원, 이대길 여수시의원, 강재헌 여수시의원 등이 안 의원 측에 합류했다. 그러나 눈에 띄는 행보는 보이지 않는다. 안 신당은 뜨거웠던 여수에서마저 그 위력이 제한적으로 미치는 형국에 놓였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안 신당이 여수에서 돌풍을 일으켜 전국 진출 교두보를 마련할지는 미지수다. 여수가 흥행의 진앙이 될지, 아니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