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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게시판 한국 '박정희 혈서설'의 진위가 정확히 어찌 되나요?
모리야 전제국 추천 0 조회 748 17.02.06 01:54 댓글 3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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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7.02.06 01:57

    첫댓글 잘은 모르지만 개명했던게 다카기 마사오 아니었나요?

  • 작성자 17.02.06 01:58

    만주사관학교 입대전 한번더 개명했냐 안했냐가 주 논점이죠...

  • 17.02.06 02:00

    @모리야 전제국 입대전이라니

  • 작성자 17.02.06 02:00

    @대명제국 입학을 잘못썼...

  • 17.02.06 02:01

    @모리야 전제국 두번 개명은 거짓인게 맞습니다. 창씨개명은 입학 후에 했는데 그것도 박정희에서 다카기 마사오로 바꾼거지요.

  • 17.02.06 02:02

    오카모토 미노루는 다른 사람인데, 안타깝게도? 만주국군 장교가 되고 싶었던 박정희라는 군인지망생이 혈서를 쓴 적은 있습니다. 엄연히 실존하고요. 신문이 보존이 되었는데 이게 가설이 된것도 좀 우습지만요

  • 17.02.06 02:06

    확대

  • 17.02.06 05:00

    박정희가 본인의 입신양명을 위해 일본군에 들어갈려고 혈서를 쓴거 팩트입니다.
    그 기사가 왜 대문짝만하게 정리해서 보존되어있는지는 의문이지만요.

  • 17.02.06 07:08

    다 역사의 심판 아니겠습니까

  • 17.02.06 07:31

    전 주작이라고 알고있는데 말입니다.
    저 만주일보가 1935년 폐간되었는데 1939년에 어떻게 혈서를 보도하죠..? 그리고 저 신문은 원본이 아니라 복사본이며 마이크로필름이라고 하더군요. 제가 아는건 여기까지 입니다.

  • 17.02.06 08:42

    @Rhein 네, 기억에 의존했더니 틀린부분이 있었습니다.
    기존의 혈서가 진짜다 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은 5년간 주구장창 만주일보에 실려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론 1908년 폐간되었다고 하네요. 그러자 사람들은 만주신문이라고 정정했습니다.

    박정희는 강덕6년(1939년) 8월에 기안된 만주군관학교예과생도 책자를 보고, 그해 10월에 시험을 쳐서 합격하고 1940년 4월에 2기생으로 입교했다. 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박정희는 뭘 보고 혈서를 쓴걸까요? 8월이 되서야 모집공고가 떴는데 말입니다.

    1939년 3월 29일(혈서작성)

    1939. 8 2기생 모집요강 기안
    1939. 10 모집 시험에 응시
    1940. 4. 신경군관학교 예과 입학

  • 17.02.06 09:13

    @Darkrion 그러면 일본국회도서관의 저 신문 소장자료가 주작이다. 라는 건가요?

  • 17.02.06 09:19

    @Darkrion 이게 사실인진 모르겠지만 보수적인 대법원에서도 혈서는 진짜라고 했는데요?

  • 17.02.06 09:31

    @대명제국 전 개인적으로 그렇게 봅니다. 맞는게 없지않습니까?
    혈서설 증거라고는 저거밖에 없지요. 한국의 많은 사학자들이 만주를 돌아다니며 진위를 파악해보려했지만 남은 사료라고는 저것밖에 없었습니다. 신문 전체도 아닌 딱 저부분만요. 진위 파악을 위해 일본에 요청햇지만 거부당했구요. 말했지만 저건 진본이 아닌 사본입니다. 그것도 필름이요. 대체적으로 사본은 조작이 쉬워 믿을게 못됩니다.;

  • 17.02.06 09:29

    @덤덤덤 1, 2심은 "근거가 있는 연구 결과를 날조라고 한 것은 표현의 자유 한계를 이탈한 것"이라며 연구소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다만 "혈서의 진위는 재판부로서는 알 수가 없으며 혈서가 진짜인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하는 것이 정당한지 등 역사적 평가는 이 재판의 쟁점이 아니다"며 혈서의 진위는 따로 판단하지 않았다.

    혈서가 진짜라는게 아니라 연구결과를 날조라고 한 것에 대한 배상이죠. ;; 진위여부는 들어있지 않습니다.

  • 17.02.06 09:42

    @Rhein 만주신문이 아니라 만주일보네요.

  • 17.02.06 09:44

    @Darkrion 만주일보는 1942년에도 발간했습니다.(3월 24일자 졸업생답사)

  • 17.02.06 09:55

    @대명제국 만주신문이건 만주일보건 저 신문은 증거로 인증받지 못합니다.

    1. 신문 원본이 없음. (즉 신문원본은 없고 저 마이크로필름만 하나 있다. 원본 요청에 일본측에서 거부.)
    2. 심지어 저 사진에 있는 신문조차 복사본이다. (즉 사본을 저 마이크로 필름으로 찍은것. 사본은 조작이 용이해 증거 효력 X)
    3. 저 신문의 다른면은 공개하지 않음. ( 즉 박정희의 혈서가 있는 저 부분만 공개함. 다른부분에 대해서는 박물관 측에서 함구.)
    4. 저기에 쓰은 글은 1939년 당시 쓰지않는 현대 일본어로 적혀져 있다. (즉 현대에 와서 적은거라는말.)
    5. 애시당초 날짜가 맞지 않다.

  • 17.02.06 09:55

    @Darkrion 6. 저 자료에 대해 한국측에서 조사를 위해 일본에 공식적으로 요청했으나 거부됨

    다시 말하지만 박정희는 대구사범시절 교련과목 이수자였습니다. 즉 그 시절 교련과목 이수로 하사관 자격이 있었고 하사관 자격이 있는 자는 연령제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26세까지 지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입교시기와 모집요강과의 날자도 일치하지 않구요.최종적으로 1945년 일제가 작성한 임시육군군인군속계를 보면 박정희는 나이를 고치지 않고 군생활을 한게 나오지 않습니까...

  • 17.02.07 07:36

    @Darkrion 캬.. 소름 돋을 정도로 그분들 실드 치는 방법이랑 똑같네요. 1번 전제부터 이미 틀려먹으셨는데, 마이크로필름으로 보존한 것도 원본과 완벽히 동일하게 취급합니다. ^^ 나머지는 반박할 가치조차 없는 낭설 일색이군요.

  • 17.02.08 02:37

    @쥬뷰쥬 반박할 가치가 없는 낭설인건지, 님께서 반박을 전혀 못하시는건지 모르겠네요?

  • 17.02.06 08:33

    1942. 3 우등생으로 졸업, 만주국 황제 푸이가 하사하는 금장시계를 은사상으로 받음
    1942. 10 성적 우수자로서 일본 육군사관학교 본과 3학년에 편입
    1944. 4 일본 육사 제57기와 함께 졸업
    1944. 12 만주국군 보병 소위로 임관
    1945. 7 만주국군 중위로 진급

    * 1938년 10월 1기 모집 시험
    1939년 2월 24일 합격자 발표
    1939년 3월 29일 만주신문 기사 내용에 있는 문서 도착

    그리고 박정희는 대구사범시절 교련과목 이수자였습니다. 즉 그 시절 교련과목 이수로 하사관 자격이 있었고 하사관 자격이 있는 자는 연령제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26세까지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 17.02.06 08:40

    결정적으로 1945년 일제가 작성한 임시육군군인군속계를 보면 박정희는 나이를 고치지 않고 군생활을 한게 나옵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박한용씨가 100분토론에서 박정희가 1938년 문경에서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음을 입증합니다.

  • 17.02.06 09:47

    만주일보기사에 나와있듯이 박정희는 두번의 혈서를 보내는데 처음꺼는 보냈음에도 불합격하고 이후 1940년 1월에 합격합니다.

  • 17.02.06 09:48

    @Darkrion http://speculum57.egloos.com/m/1018206

  • 17.02.06 10:08

    @대명제국 그리고 저 신문 내용 자체가 이상하죠.
    박정희가 혈서를 썼다는 1938년 9월 무렵 만주 봉천의 중앙육군훈련처의 군관후보생 모집공고를 보면 치안부 군형과(軍衡課)에서 채용을 공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신문기사의 진위가 또 한번 의심된다 할 수 있죠. 신문에 적혀있는 징모과라는 부서는 있지도 않은 유령부서입니다. 징병제를 실시할 무렵에 征募課라는 부서가 존재했지만 이 또한 징모과와는 엄연히 다른 부서)
    만주신문 기사는 박정희가 설립되지도 않은 군관학교에 지원하기 위해, 만주국 치안부에는 있지도 않은 유령부서 징모과에 혈서 편지를 보냈다? 이건 앞뒤가 안맞지 않나요?

  • 17.02.06 10:14

    @대명제국 물론 윗글대로 매칭되는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만 이 신문이 내지에 있는 일본인 대상으로 만주소식 뿌리는 신문이라 지금으로 치면 중소 일간지 정도. 기자가 팩트체킹 안하고 썼을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만약 혈서까지 써가며 입교를 했는데 다른 신문도 없이 남아있는 신문이 저거 하나다? 만약 그렇다면 국내 신문들도 보도하지 않앗을까요? 물론 혈서가 사실일수도 아닐수도 있다고 봅니다. 원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요. 그 전까지 제 입장은 저게 주작이라는거죠. 사람들마다 다르긴 하겠습니다만 :)

  • 17.02.09 03:51

    혈서조작설 유포는 박사모나 박정희주의자들이 지속적으로 애써부정하는것이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실이죠. 이거 처음제기했던 사람이 그 조갑제였습니다.

    이거 관련해서 박정희의 친아들 박지만씨가 무려 직접 법정소송까지했었던 사안이었고, 재판 중에 1차 사료까지 찾아내며 법정에 제출하면서 재판결과 혈서 지원설은 진실이라고 법원이 민문연측에 손들어줬던 사안입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79&aid=000276831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79&aid=0002105763

  • 근데 입대한 것부터가 ㅂㅅ인데 혈서이냐 마냐가 왤케 논쟁이 되는건가..

  • 17.02.06 16:29

    이게 왜 크게 논쟁의 대상이 되는가라는것은 그가 '자발적으로 나갔느냐'에 대한 여부가 갈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기준이 '자발성, 반복성, 지속성, 적극성' 여부와 '선반일 후친일은 친일파이나, 선친일 후반일은 친일파로 보지않는다'라는것을 고려합니다.

  • @Wehrmacht 우왕 고맙습니다

  • 17.02.06 18:09

    ???:어디서 반신님을 모욕하지!

  • 17.02.06 21:29

    뉴라이트사학...

  • 17.02.08 03:05

    이러니 저러니해도 일단 친일파였던건 사실이죠.

  • 17.02.11 01:22

    그렇죠!!
    이글을 쓰신분 같은경우에는 단순히 정말 궁금해서 올리셨을수도있지만
    중점은 혈서가 진짜냐 가짜냐가 아니고 친일행적(반민족)을 했느냐 안했느냐가 중점이죠
    저는 박정희는 확실히 친일행적을 했다고 봅니다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했다는것 하나만으로도 말다한거 아니겠습니까 이부분에 대해서는 반박하는 사람도 없죠
    물론 본질을 흐리려는 다른식의 반박은 하죠 뭐 계급이 소위였는데 뭘했겠느냐 본인이 출세하려고 그런거지 뭐 딱히 반민족행위는 아니지 않느냐 면서요 그게 일반적 국민의 사고는 아니지요.. 씁쓸합니다 .. 저런인간이 대통령이나 해먹고 아직도 추앙받는다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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