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아들이 술을 마셨다고 충격을 받고 장로인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다
상홍 아버지는 필사적인 노력을 한 결과 집사에서 장로까지 올라갔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상홍 아버지는 매일 성경을 읽었다. 심지어는 방언을 하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상홍 아버지는 독실한 크리스찬이 되면서 아주 모범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했다.
교회에도 가족 모두를 데리고 갔다. 상홍도 하는 수 없이 아버지를 따라 교회를 나갔다. 아버지는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대학교에 진학을 하지 못했고, 그에 대한 콤플렉스도 심했는데, 교회를 다니고 성경공부를 하면서 여러 가지 면에서 달라졌다.
상홍 아버지는 매주 월요일 저녁시간에는 가족회의를 했다. 아버지는 엄숙한 분위기에서 앞으로 가족이 일주일 동안 해야 할 일을 각자 발표하도록 했다. 그리고 매달 초에는 월례회의를 했다.
한 달 동안 가족 구성원이 각자 할 일, 목표 등을 발표하도록 했다. 상홍과 상홍의 누나는 처음에는 이러한 가족회의에 대해 거부반응이 컸지만, 아버지가 계속해서 강행을 하니 하는 수 없이 따라가게 되었고, 나중에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순응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매년 1월 1일이 되면 아침 10시에 가족들 전체를 모아놓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신년사를 발표했다. 신년사를 하기 전에 거실에서 모여 모두 일어서서 애국가를 4절까지 제창하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까지 했다. 물론 반주는 스마트폰에서 틀었다.
아버지는 어디에서 구해왔는지 세워놓는 태극기도 신년행사를 할 때 준비했다. 신년사는 아버지가 며칠 동안 공을 들여 만들었다. 아버지는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식 때 기념사를 읽듯이 서면으로 작성한 신년사를 천천히 읽어나갔다.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 작년 한 해 동안 고생 많이 했습니다. 2020년 경자년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 가족은 웅대한 꿈을 가지고 보다 나은 가정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로 시작해서 30분 동안 5분간 이어졌다.
아버지의 신년사는 처음에는 별 것 아니었는데, 점차 세련되어졌다. 대통령의 신년사를 어디에서 구했는지, 거의 대통령 수준의 신년사였다. 아버지의 목표는 미국 대통령의 신년사 정도로 지구 전체를 아우르는 모든 내용을 포함시키고 싶었던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 신년사에는 지구 환경의 보전문제, 현대 사회에서의 성적 문란, 북한 핵문제, 코로나19에 대한 해결방법, 전세값 폭등 대책, 대학입시제도 개선방안, 사회지도층 인사의 성범죄, 성적 자기결정권 등에 관한 모든 문제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내용은 TV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정도의 내용이어서 매우 진부하고 고리타분했다. 어머니는 서서 지루하고 재미 없는 거실에서 서서 신년사를 듣고 있다가 졸면서 뒤로 넘어져서 머리에 혹이 나기도 했다.
아버지는 신년사를 마친 다음에는 가족 모두를 인솔해서 국립현충원으로 가서 참배를 했다. 가족들은 고위공직자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국립현충원까지 가서 누구를 향해 참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상홍의 누나에게는 결혼 전 순결을 지킬 것을 강조했고, 상홍에게는 술과 담배, 마약을 해서는 안 된다고 수없이 강조했다. 상홍 아버지는 어머니와의 잠자리도 중단했다.
이런 모범적인 생활을 하던 중에 어느 날 상홍이 술과 담배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뇌출혈을 일으켜 쓰러졌다. 다행이 응급실로 빨리 가서 일주일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은 했지만, 반신불수가 되었다. 상홍은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쓰러진 것에 대해 한없는 죄책감을 가졌다.
아버지가 일을 못하게 되자 가족들은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고생을 하게 되었다. 상홍의 누나는 당시 남자 친구의 꼬임에 빠져 순결을 잃었지만, 아버지가 무서워서 그런 사실을 절대 비밀로 유지했던 것을 상홍은 뒤늦게 알고, 누나의 지혜로움에 감탄했다.
아버지가 쓰러졌다가 다시 회복한 다음부터는 아버지 스스로 예전과 같은 엄격한 율법주의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가족들은 폭압정치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은 기분이었다.
선거를 한 달 앞두고 판세는 더욱 불분명해졌다. 처음에는 백상무와 정국영 두 사람이 각축전을 벌였는데, 시간이 가면서 맹공희 교수가 치고 올라왔다. 맹 교수는 젊고 키가 크고, 인물이 좋아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나이 먹은 여자들도 맹 교수에게 호감을 가졌다.
맹 교수는 40세에 출사표를 던졌다. 백 후보와 정 후보 진영에서는 너무 나이가 어려서 무슨 시장을 하겠느냐고 코웃음을 쳤다. 적어도 50대 후반이나 60살은 넘어야 세상을 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프랑스 면적은 64만㎢로 한반도의 2.9배, 인구 6,500여만명, GDP 2조7,900여달러로 세계 6위인 나라의 대통령으로 마크롱이 취임할 때 그의 나이가 40세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맹 교수는 결코 시장이 되기에 어린 나이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맹 교수 지지자들은 나이 든 사람들은 양로원이나 가 있어야지, 정치나 단체장을 한다고 머리 하얗고, 허리 구부정한 상태에서 옛날이야기나 하고 있으면 속이 터진다고 했다.
아무리 고령사회라 해도 노인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옛날 이야기나 취미 삼아 하고, 향수에 젖어야지, 현대와 같이 급변하는 4차원 인공지능시대에 컴퓨터도 하지 않고, 옛날 붓글씨로 한문이나 쓰고,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당파싸움이나 이조실록을 보고 말하고 있으면 치열한 국제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보수나 진보와 같은 이념적 대결이나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젊은 맹 교수를 좋아했다. 음성도 부드럽고 좋아서 아나운서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매사에 완벽한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헤어스타일도 특이했고, 모든 것을 직접 함으로써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