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구백일흔여덟 번째
정말 어처구니없었습니다
얼마 전에 유명 민물매운탕집을 찾아가다가 오랜만에 숭례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화재로 온 국민을 안타깝게 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매우 말쑥한 차림으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 화재 때 정말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지만,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보통은 ‘어이없다’라고 하면 ‘일이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히다.’라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어처구니없다’에서 온 말이라는데, 어처구니는 보통 세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대개는 ‘맷돌 손잡이’로만 알고 있어 손잡이가 없으면 어떻게 맷돌을 돌리느냐고, 말이 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뜻도 있습니다. ‘상상 밖의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물건’을 뜻하기도 하고, ‘기와집 추녀마루나 용마루 등의 수키와 위에 얹는 조형물’을 뜻하기도 합니다. 전각殿閣을 지을 때 조형물을 얹는데 이를 어처구니라 했고, 삼국시대와 후고구리(발해) 건물에서 보는 것처럼 치우蚩尤천왕, 투구, 용머리 형상의 기와를 사용했던 것처럼 어처구니는 멋진 기와집을 짓는 데 꼭 필요했습니다. 그러니 어처구니를 올리지 않으면 말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 조형물은 종류가 많아 잡상雜像이라고도 하지만, 우리나라 전통 어처구니는 수호신상守護神像이었습니다. 맷돌에 어처구니가 없듯이 전각 지붕에 어처구니를 올리지 않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이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듯이 숭례문 지붕 위에 올려진 어처구니들도 당시의 건축문화를 알려주는 문화재였습니다. 그런데 화재로 모두 쓸모없게 되었다고 판단했는지 관계자들이 그 어처구니들을 모두 화재 쓰레기로 버렸답니다. 숭례문은 문화재이니 문화재에 화재가 발생했다면 당연히 문화재 관계기관에서도 관리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문화재 관계기관이 문화를 몰랐던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