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의 위대했던 회전을 꼽으라면 단연 칸나에회전,트라시메노,트레비아 전투를 꼽을것이다,그러나 나는 자마전투에 역점을 둔다.
위대했던 한니발의 영광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영광스러웠던 해상왕국 카르타고의 영광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역사적인 전투 "자마회전" 그 치욕스러운 전투는 어떻게 전개 되었을까?
자마회전 당시 아프리카누스의 손자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아프리카누스가 이끄는 SPQR의 로마군은 중장보병 2만3천명 기병이 1천5백명으로 구성되었었다,그리고 새로이 동맹을 맺은 북아프리카의 누미디아의 왕자 마시니사가 이끄는 6천명의 보병과 4천 6백명으로 구성된 기병 총합 보병이 2만9천 기병이 6천1백이였다.
이에반해 한니발의 카르타고군은 4만명의 보병(카르타고 본국에서 차출된 시민병,새로이 고용한 발레아리스제도,이베리아,갈리아 용병,그리고 이베리아반도에서부터 이탈리아까지 위대한 한니발을 따랐던 정예용병부대.) 기병은 1천명이였다,그리고 8마리의 전상(戰象)을 갖췄다 숫적으로는 한니발이 우세했다.
로마군은 정석대로 마니프레스의 전술을 따라 3열로 전열을 갖췄다.(1열 하스타티,2열 프린키페스,3열 트리알리) 그리고 양익에 기병 후방에 경장병(스커미셔).근데 재미있는 점은 통상적으로 앞열에서 스커미셔들이 투창을 던졌던 기존의 전투방식에서 벗어나 후방에 경장병들을 배치한점과 마니프레스 전열의 특유한 체스판무늬같은 전열을 갖추지않고 간격 사이사이에 널찍한 통로를 만들었다.이것은 바로 기병에 대적하기위해 한니발이 가져온 전상을 대적하기 위한 전술이였다.
카르타고군은 4열로된 전열을 짰는데,선두에 코끼리 8마리 두번쨰열은 용병대(말그대로 그냥 시간벌이용) 세번쨰열은 카르타고 본국에서 새로이 카르타고인을 대상으로 징집시킨 시민병,그리고 네번쨰에는 한니발을 위해 이베리아-이탈리아-시칠리아-북아프리카를 거쳐 끝까지 한니발을 믿고 의지해온 정예병..
먼저 양날개의 카르타고군 기병대가 전단을 열면서 카르타고 전상들이 적 중장보병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이것은 순식간에 로마군 전열을 밀어부쳐 우세한 보병력으로 상대방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려는 전략이였다.하지만 로마군은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바로 부대사이에 틈을 만들어 전력 돌격하는 코끼리를 사이에 그냥 지나가게 했다.그리고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장병 즉 스커미셔들이 무수한 투창공격으로 코끼리들을 꼬치를 만들어 버렸다.결국 한니발의 비장의 카드였었던 코끼리는 무용지물이 된것이였다.
코끼리들이 무용지물이 된 바로 즉시 로마군의 우수한 기병대(수적으로 카르타고군이 현저하게 열세)로 양날개에 포진해있던 카르타고 기병대를 순식간에 덮쳤다,수적으로 불리한 카르타고인 기병대는 순식간에 와해댔고 로마기병대는 이들을 쫓아갔다.로마군의 중장보병역시 우수한 로마기병대가 카르타고 기병대를 와해시킨것을 보자마자 전진을 거듭하며 카르타고인 부대와 맞닥드렸다.한니발은 장기인 기병대를 이용한 포위전술도 못쓰고 코끼리를 이용한 전열 와해 전술도 먹히지 못한 시점에서 오로지 그들의 우수한 보병전력을 믿을수 밖에 없었다.그러나 실질적으로 카르타고 본국에서 보내온 용병대들은 전투가 시작하기도 전에 사기가 땅에 떨어졌고 카르타고 본국에서 징집된 카르타고시민병들 또한 제대로된 전투훈련을 받지 못한채 그저 칼과 방패만 전쟁터에 덩그러니 떨어뜨린 존재들이였다 말그대로 시간벌이용이였던 것이다.그저 한니발이 마지막으로 믿고있었던것은 한니발의 정예보병들이였다.이베리아 반도에서 이탈리아까지 한니발의 위대한 전투를 겪었던 바로 그 정예병들 말이다.카르타고 용병대와 시민병들이 순식간에 와해되고 한니발의 정예병 2만 3천과 로마연합군 보병간의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밀리고 밀리는 싸움 마치 전투는 끝나지 않을것만 같았다.
그러나 카르타고의 기병대를 쫓아 모조리 괴멸시킨 로마,누미디아 연합기병대가 돌아오고 카르타고 정예병 양익에서 돌격해오자 승패가 갈렸다.정에병들은 적을 맞아 용맹하게 싸웠으나 이미 떨어진 전력과 기병대의 강력한 Charge속에서 살아남을 길은 없었던 것이다.결국 한니발의 패배였다.
자마전투결과 한니발은 2만5천명 가량의 사상자를 낸 반면,한니발의 장기를 그대로 답습한 로마군의 피해는 고작 1천~1천5백명에 불과했다.과거 한니발이 알렉산더대제에게 답습해서 사용했던 장기를 로마가 한니발에게 그대로 배워 역이용 그 전술을 한니발에게 써먹었던 것이다.만약 한니발에게 로마와 비슷한 기병대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는 절대 패배하지 않았을것이다.고대 세계의 전투에있어 기병대란 그만큼 강력한 전과를 낼수있는 전력이였던 것이다...
위사진은 옛 카르타고의 거점하인 오늘날 튀니지의 크수르에드사드
에서 출토된 한니발 정예병들이 착용했을것으로 추정되는 가리개.
첫댓글 But meanwhile Hannibal, finding himself too weak in cavalry, sent to a certain Numidian named Tychaeus, who was a friend of Syphax, and was reputed to possess the most warlike cavalry in Libya, urging him "to lend his aid, and not let the present opportunity slip; as he must be well aware that, if the Carthaginians won the day, he would be able to maintain his rule; but if the Romans proved victorious, his very life would be in danger, owing to the ambition of Massanissa." This prince was convinced by these arguments, and joined Hannibal with two thousand horsemen.-Polybios 15.3
To make his line look more menacing Hannibal posted his elephants in front. He had eighty altogether, a larger number, than he had ever brought into action before. -Livius 30.33 // 한니발의 기병대는 누미디아 기병만 해서 2,000 이상이고 코끼리는 8마리가 아니라 80마리지 말입니다. //Those who survived and fled Hannibal would not allow to enter the ranks of his army, but ordered his men to lower their spears and keep them back as they approached; and they were therefore compelled to take refuge on the wings or make for the open country.-Polybios 15.13 1, 2열의 보병들도 재집결해서 싸웠지 말입니다
A short distance behind these were posted his Italian troops in reserve. These were mainly Bruttians who had followed him from Italy more from the compulsion of necessity than of their own free will.-Livius 30.33 //이베리아에서부터 따라온 한니발의 정예는, 뭐, 남아는 있었겠지만(Polybios 15.11) 대부분은 브루티 인들이었지 말입니다.
애초에 자마 전투에 투입된 코끼리들은 제대로 훈련도 못 받은 놈들이었고(Osprey Battle order-The Roman army of the Punic wars) 제 3열이 1,2열과 달리 떨어져서 후방에 배치로 걸로 봐도, 코끼리를 이용해서 로마군을 폭풍같이 몰아치는 전술은 아니고, 코끼리는 효과 있으면 좋고 없으면 버리는 패로 보이고, 한니발의 전술은 처음부터 1,2 열로 하스타티를 지치게 한 뒤 3열로 쇼부보려던 거같지 말입니다. 이에 대한 스키피오의 대응은 사람마다 평가가 갈리지만.
왠지 한니발을 알면알수록 불운의명장이라는 생각이;;
손자병법의 이론으로 보면 한니발은 명장도 아니고 멍청이에다 매국노나 다름없는 인물입니다. 복수라는 개인적인 사심으로 대규모 전쟁을 일으켜 경쟁국을 강력한 제국으로 탈바꿈시켰고 조국을 철저히 멸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으니 말이죠. 자세히 살펴볼수록 한니발이라는 사람이 참 어리석다고 생각됩니다. 그정도의 얄팍한 전술로 로마라는 강력한 잠재력과 저력을 가진 대국을 멸망시키거나 정복하려고 하였다니 한심한 노릇이죠. 전술가는 될수 있어도 큰 그림을 그리는 전략가는 될 수 없었던 인물이 한니발입니다. 스키피오의 전술적인 스승이었다는 말이 있으나 실제로는 상대조차 안되었던 인물이죠.
한니발의 개인적인 복수심이 어느 정도나 작용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차피 로마가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시점에서 서지중해의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카르타고와 로마의 충돌은 불가피했습니다. 무역기지로서 사르데냐와 코르시카, 시칠리아의 상실은 물론, 직접적으로는 사군툼의 친 카르타고파와 카르타고 시민에 대한 로마인의 숙청은 에스파냐의 한니발 자신에 대한 위협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정은 카르타고 원로원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파비우스가 카르타고 원로원에게 경고하러 왔을 때 카르타고 원로원도 한니발의 전쟁이 카르타고 전체의 전쟁임을 승인한 겁니다.
한니발의 계획은 로마의 정복이 아니라 로마 연합의 붕괴, 그 이후 카르타고의 헤게모니-적어도 에스파냐의 자신의 입지-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의 제거였으며 트레비아-트라시메노-칸나이 전투에 이르기까지 로마군의 가용인원의 1/3이 죽어나갔고, 실제로 카푸아와 아풀리아는 실제로 로마 연합에서 분열되어 떨어져 나갔습니다. 스키피오 이전에 파비우스나 마르켈루스 같은 지휘관이 로마에 없었다거나, 최소한 카르타고 본국의 본격적인 지원이 있었다면 한니발의 계획은 보다 효과를 거둘 수도 있었을겁니다. 결론적으로 어차피 한니발은 전쟁을 피할 수 없었고,
그 상황에서 실제 한니발이 선택한 전략은 그나마 그가 선택할 수 있던 전략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었습니다. 에스파냐에 대한 카르타고의 지배권은 완벽하지도 않았고, 아프리카나 시칠리아에서 로마와 교전할 경우 전략적 실패는 1차 포에니 전쟁에서 증명된 바였습니다. 그 상황에서 이탈리아 직공은 모험적이지만 가장 승률이 높은 카드였죠.
.....카르타고 정부가 어떻게 대처했는지만 봐도 카르타고앞날은 이미 뻔했습니다. 한니발은 그 흐름을 바꿀려 한거고요. 어쩌면 자신의 아버지가 바알신전에서 맹세시켰다고 한것도 어느정도 정당성을 얻기위해 한말일수도 있습니다.(로마가 먼저 공격했었고 그것에 굴복할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위해...라는) 고대에는 가족이나 친구 등의 복수를 한다는것은 의외로 큰 정당성을 지닌것으로 알고있습니다. 그리고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은 한니발에게 있다기 보단 카르타고정부의 어정쩡한 대응(국내파와 해외파의 분열) 그리고 실력있는 지휘관이 한니발을 제외하곤 전무했다는점.... 정말 재수옴붙은 사람이라는.....
한니발에게는 오직 한니발 자신뿐이였죠 ㅠㅠ 그에게 훌륭한 보좌진이 몇명정도만 있었다면 과연 로마의 승리라는 역사가 만들어졌을지 의문입니다. 한니발은 뛰어난 장군입니다.
한니발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기는지는 아는데 어떻게 승리를 사용하는지는 몰러]라는 평도 있긴한데 전쟁이 기정 사실이 된 이상 사실 당시 카르타고의 전략적 선택은 넓지 않았으니 어이하리오? 이런 종류의 얘기는 [정공만 고집한 제갈량이 ㅄ]이라는 류의 얘기와 같슴미다-_-;;; 두배가 넘는 적군을 포위섬멸하시는 본좌신데 존중 좀 해주시죠?
게이볼그//흠 그렇군요..울집에 있는 책으로만 보고 짬뽕시켜서 글쓰니까 이건뭐 정확도가 상당히 낮은듯..다음부터 위키디피아좀 애용해야겠네요 ㅇㅇ
게다가 자마전투이전에 한니발을 따르던 신성기병대가 카르타고정부관련음모에 휘말려서 자마전투에 못 참가했으니
쩝. 자마 전투 당시 카르타고 시내에 머물러 있던 2000의 신성기병대만 전투에 참여했어도.......
한니발과 스키피오 손자가 싸운게 아니잖아요... 스키피오와 한니발이 싸운것이고 스키피오의 손자는 한니발도 죽고 이빨빠진 카르타고가 로마의 동맹국인 누미디아를 침공하자 책임을 물어 항복한 카르타고에게 수도를 이주하도록 강압하자 카르타고의 거부로 스키피오 손자에게 멸망을 당하죠...... 그리고 아프리카누스란 칭호는 자마회전에서 한니발에게 이긴후 스키피오가 받은 칭호입니다.
사실 시칠리아와 지중해를 빼앗긴 1차 포에니 전쟁만으로도 카르타고 운명은 정해진거나 다름없었다고 봅니다. 카르타고 자체가 해상 무역으로 흥한 교역국가였으니까요.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간건 특별한 전략이었다기보다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라 봐야 할겁니다. 1차전쟁 이후로 카르타고 해군력은 로마에 크게 뒤진 상태였으니까요.
자마 회전에서 한니발에게 기병부족이 정말 천추의 한이었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