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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고대 로마 한니발 바르카의 마지막 캠페인 -자마會戰
칸나에 추천 0 조회 893 08.12.29 10:26 댓글 1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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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12.29 16:23

    첫댓글 But meanwhile Hannibal, finding himself too weak in cavalry, sent to a certain Numidian named Tychaeus, who was a friend of Syphax, and was reputed to possess the most warlike cavalry in Libya, urging him "to lend his aid, and not let the present opportunity slip; as he must be well aware that, if the Carthaginians won the day, he would be able to maintain his rule; but if the Romans proved victorious, his very life would be in danger, owing to the ambition of Massanissa." This prince was convinced by these arguments, and joined Hannibal with two thousand horsemen.-Polybios 15.3

  • 08.12.29 16:23

    To make his line look more menacing Hannibal posted his elephants in front. He had eighty altogether, a larger number, than he had ever brought into action before. -Livius 30.33 // 한니발의 기병대는 누미디아 기병만 해서 2,000 이상이고 코끼리는 8마리가 아니라 80마리지 말입니다. //Those who survived and fled Hannibal would not allow to enter the ranks of his army, but ordered his men to lower their spears and keep them back as they approached; and they were therefore compelled to take refuge on the wings or make for the open country.-Polybios 15.13 1, 2열의 보병들도 재집결해서 싸웠지 말입니다

  • 08.12.29 16:53

    A short distance behind these were posted his Italian troops in reserve. These were mainly Bruttians who had followed him from Italy more from the compulsion of necessity than of their own free will.-Livius 30.33 //이베리아에서부터 따라온 한니발의 정예는, 뭐, 남아는 있었겠지만(Polybios 15.11) 대부분은 브루티 인들이었지 말입니다.

  • 08.12.29 16:39

    애초에 자마 전투에 투입된 코끼리들은 제대로 훈련도 못 받은 놈들이었고(Osprey Battle order-The Roman army of the Punic wars) 제 3열이 1,2열과 달리 떨어져서 후방에 배치로 걸로 봐도, 코끼리를 이용해서 로마군을 폭풍같이 몰아치는 전술은 아니고, 코끼리는 효과 있으면 좋고 없으면 버리는 패로 보이고, 한니발의 전술은 처음부터 1,2 열로 하스타티를 지치게 한 뒤 3열로 쇼부보려던 거같지 말입니다. 이에 대한 스키피오의 대응은 사람마다 평가가 갈리지만.

  • 08.12.29 17:58

    왠지 한니발을 알면알수록 불운의명장이라는 생각이;;

  • 08.12.29 23:31

    손자병법의 이론으로 보면 한니발은 명장도 아니고 멍청이에다 매국노나 다름없는 인물입니다. 복수라는 개인적인 사심으로 대규모 전쟁을 일으켜 경쟁국을 강력한 제국으로 탈바꿈시켰고 조국을 철저히 멸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으니 말이죠. 자세히 살펴볼수록 한니발이라는 사람이 참 어리석다고 생각됩니다. 그정도의 얄팍한 전술로 로마라는 강력한 잠재력과 저력을 가진 대국을 멸망시키거나 정복하려고 하였다니 한심한 노릇이죠. 전술가는 될수 있어도 큰 그림을 그리는 전략가는 될 수 없었던 인물이 한니발입니다. 스키피오의 전술적인 스승이었다는 말이 있으나 실제로는 상대조차 안되었던 인물이죠.

  • 08.12.29 23:41

    한니발의 개인적인 복수심이 어느 정도나 작용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차피 로마가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시점에서 서지중해의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카르타고와 로마의 충돌은 불가피했습니다. 무역기지로서 사르데냐와 코르시카, 시칠리아의 상실은 물론, 직접적으로는 사군툼의 친 카르타고파와 카르타고 시민에 대한 로마인의 숙청은 에스파냐의 한니발 자신에 대한 위협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정은 카르타고 원로원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파비우스가 카르타고 원로원에게 경고하러 왔을 때 카르타고 원로원도 한니발의 전쟁이 카르타고 전체의 전쟁임을 승인한 겁니다.

  • 08.12.29 23:48

    한니발의 계획은 로마의 정복이 아니라 로마 연합의 붕괴, 그 이후 카르타고의 헤게모니-적어도 에스파냐의 자신의 입지-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의 제거였으며 트레비아-트라시메노-칸나이 전투에 이르기까지 로마군의 가용인원의 1/3이 죽어나갔고, 실제로 카푸아와 아풀리아는 실제로 로마 연합에서 분열되어 떨어져 나갔습니다. 스키피오 이전에 파비우스나 마르켈루스 같은 지휘관이 로마에 없었다거나, 최소한 카르타고 본국의 본격적인 지원이 있었다면 한니발의 계획은 보다 효과를 거둘 수도 있었을겁니다. 결론적으로 어차피 한니발은 전쟁을 피할 수 없었고,

  • 08.12.29 23:52

    그 상황에서 실제 한니발이 선택한 전략은 그나마 그가 선택할 수 있던 전략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었습니다. 에스파냐에 대한 카르타고의 지배권은 완벽하지도 않았고, 아프리카나 시칠리아에서 로마와 교전할 경우 전략적 실패는 1차 포에니 전쟁에서 증명된 바였습니다. 그 상황에서 이탈리아 직공은 모험적이지만 가장 승률이 높은 카드였죠.

  • 08.12.31 10:51

    .....카르타고 정부가 어떻게 대처했는지만 봐도 카르타고앞날은 이미 뻔했습니다. 한니발은 그 흐름을 바꿀려 한거고요. 어쩌면 자신의 아버지가 바알신전에서 맹세시켰다고 한것도 어느정도 정당성을 얻기위해 한말일수도 있습니다.(로마가 먼저 공격했었고 그것에 굴복할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위해...라는) 고대에는 가족이나 친구 등의 복수를 한다는것은 의외로 큰 정당성을 지닌것으로 알고있습니다. 그리고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은 한니발에게 있다기 보단 카르타고정부의 어정쩡한 대응(국내파와 해외파의 분열) 그리고 실력있는 지휘관이 한니발을 제외하곤 전무했다는점.... 정말 재수옴붙은 사람이라는.....

  • 09.01.01 01:19

    한니발에게는 오직 한니발 자신뿐이였죠 ㅠㅠ 그에게 훌륭한 보좌진이 몇명정도만 있었다면 과연 로마의 승리라는 역사가 만들어졌을지 의문입니다. 한니발은 뛰어난 장군입니다.

  • 09.01.02 10:58

    한니발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기는지는 아는데 어떻게 승리를 사용하는지는 몰러]라는 평도 있긴한데 전쟁이 기정 사실이 된 이상 사실 당시 카르타고의 전략적 선택은 넓지 않았으니 어이하리오? 이런 종류의 얘기는 [정공만 고집한 제갈량이 ㅄ]이라는 류의 얘기와 같슴미다-_-;;; 두배가 넘는 적군을 포위섬멸하시는 본좌신데 존중 좀 해주시죠?

  • 작성자 08.12.30 00:29

    게이볼그//흠 그렇군요..울집에 있는 책으로만 보고 짬뽕시켜서 글쓰니까 이건뭐 정확도가 상당히 낮은듯..다음부터 위키디피아좀 애용해야겠네요 ㅇㅇ

  • 08.12.31 11:27

    게다가 자마전투이전에 한니발을 따르던 신성기병대가 카르타고정부관련음모에 휘말려서 자마전투에 못 참가했으니

  • 08.12.31 12:19

    쩝. 자마 전투 당시 카르타고 시내에 머물러 있던 2000의 신성기병대만 전투에 참여했어도.......

  • 08.12.31 21:48

    한니발과 스키피오 손자가 싸운게 아니잖아요... 스키피오와 한니발이 싸운것이고 스키피오의 손자는 한니발도 죽고 이빨빠진 카르타고가 로마의 동맹국인 누미디아를 침공하자 책임을 물어 항복한 카르타고에게 수도를 이주하도록 강압하자 카르타고의 거부로 스키피오 손자에게 멸망을 당하죠...... 그리고 아프리카누스란 칭호는 자마회전에서 한니발에게 이긴후 스키피오가 받은 칭호입니다.

  • 09.01.01 17:45

    사실 시칠리아와 지중해를 빼앗긴 1차 포에니 전쟁만으로도 카르타고 운명은 정해진거나 다름없었다고 봅니다. 카르타고 자체가 해상 무역으로 흥한 교역국가였으니까요.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간건 특별한 전략이었다기보다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라 봐야 할겁니다. 1차전쟁 이후로 카르타고 해군력은 로마에 크게 뒤진 상태였으니까요.

  • 09.11.14 22:29

    자마 회전에서 한니발에게 기병부족이 정말 천추의 한이었겠군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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