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비 구경을 못한 대지가 마른기침을 할 때마다 폴폴 흙먼지를 날리더니 바람이 밀고 온 장마전선으로 파란 하늘은 사라지고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이 마침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한바탕 요란하게 쏟아 붓는다.
밤새 내린 비로 촉촉이 젖어있는 산촌마을. 우산을 쓰고 가랑비의 수다를 들으며 밤나무골어르신 집으로 요양하기 위해 출근했다. 머리를 감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한 숨 돌리려 소파에 앉았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문화원에서 시낭송 수업을 하신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문득 내 생각이 났다며 일정을 물어보시곤 괜찮다면 선생님의 월곡농장에서 고기파티를 하자고 하신다. 붉게 상기된 태양의 눈치를 보느라 미루었던 마음을 장마 비로 뚝 떨어진 기온을 핑계 삼아 번개를 치신 것이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아닌 비오는 날의 번개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급하게 단체 카톡 방을 개설하고 시낭송회원들한테 참석여부를 묻는 과정에서 백 퍼 참석한다는 답변을 했다.
우정과 사랑은 산길과 같아서 서로 오가지 않으면 잡초가 우거지고 길은 없어진다. 매일 볼 수는 없어도 불러줄 때 가는 것이 관계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마음은 이미 월곡농장으로 길을 내었으나 기동력이 돌부리로 걸렸다.
어제 저녁을 잘 먹고 침대로 직행했던 아들이 갑자기 전화 한통을 받더니 애마를 빌려달라고 한다. 집주인이 임대가 끝난 자취방청소를 내일 오전까지 해놓으라고 했단다.
아들은 아침 일찍 못 일어날 거 같아 자취방 가서 자고 청소한다며 밤길을 애마와 함께 대전으로 달려갔다. 삶이란 한 치 앞도 예측불가여서 늘 마당에서 죽치고 널브러졌던 애마였는데 약으로 쓸려니 필요할 땐 눈 밖 이다. 떠난 버스에 손 흔들고 뛰어봤자 버스가 뀐 방귀냄새 밖에 더 들이마시겠는가!
도시에서는 흔한 택시가 산골마을은 기린 목을 해도 그림자조차 눈 속에 담기 어렵다.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씩이고 그나마 오전에는 손님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비둘기가 콩 빼먹듯 간간히 오고 싶을 때 온다. 그렇다고 버스타고 의당까지 가려면 두서번은 기본으로 갈아타야하는데 서울 가는 거리와 맞먹는다. 그럼 즐겁자고 초대한 점심이 불편한 저녁초대가 되고 마주보는 눈빛에서 민망과 서먹이 출렁이며 물을 넘기는데도 목울대에선 큰 바위를 넘기는 상황이 연출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눈이 번쩍 뜨이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사곡면엔 영업용 택시는 없지만 치킨 집을 하면서 렌트카를 병행하는 아는 형님이 계시다. 택시비보다 비싼 요금이 부담되지만 그건 까짓것으로 도랑에 쳐 박아 버리고 요양종료시간에 맞춰 집 대문까지 와달라고 했다.
좋은 사람과의 교류를 감히 돈으로 저울질은 안 될 말이다. 마음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어디든 달려가야 직성이 풀리는 때론 앞뒤 계산하지 않은 쿨 내 진동하는 내가 아니던가.
오전근무를 마치고 자전거 페달을 비벼 집으로 달려왔다. 샘께 가져갈 것을 여쭤보니 농장이라 우리 집에 있는 것과 겹쳐 가져갈 것이 없다. 그래서 손님이 오면 빠지지 않는 기본메뉴 부침개를 만들어가기로 했다. 간단하면서도 기름내 솔솔 나는 것이 맞춤일 거 같다.
텃밭에서 너풀거리는 부추와 어느새 동그랗게 제법자란 호박 그리고 작년김장김치를 송송 썰어 두 접시를 담고 별미로 매운 고추부침도 한 접시 만들었다. 고추부침개는 전라도식으로 매운맛을 즐기는 사람에겐 딱이다. 혹여나 매워서 샘들이 못 먹으면 다시 가져오면 되니까 고민은 이것도 가교리 도랑에 쳐 박았다. 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막내시누가 다녀가면서 주고 간 일산특산품 인절미도 생각나서 그것도 모조리 종이봉지에 쓸어 담았다.
예약시간에 맞추어 형님은 대문에 도착하셨고 치킨 집을 하는데도 야박하게 간식을 주지 않아 투덜대는 네비게이션의 비유를 맞추며 의당으로 향했다. 돈 싫어하는 사람 없고 일시키면서 밥도 안주는데 일할사람 없다.
형님 차에 있는 네비가 그동안 얼마나 간식을 못 얻어먹었는지 이것이 공주터널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아예 드러누울 기세다. 그러더니 이내 삐딱 선을 타기 시작했다. 우째 자동차가 달리면 달릴수록 길이 엿가락도 아니고 마일리지도 아니고 후진하는 것도 아닌데 도착시간이 늘어난다. 이런 차는 살다 살다 처음이다.
차안에서는 두 사람이 한여름에 숯을 굽고 이삭농원에 도착한 샘들의 노파심에 핸드폰은 불난다. 핸드폰불도 꺼야지 네비 엉덩이도 두둘여야지 냉방중인데도 차안은 열기로 후끈거렸다.
결국 간식을 못 얻어먹어 업그레이드가 안 됀 네비가 사단을 내고 말았다. 네비만 믿고 갔다 생판 모르는 마을의 좁은 농토 길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곡예를 하고나서야 겨우 미로 같은 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형님께서 낯빛이 하 해지며 미안해했지만 이 상황을 어쩌겠는가! “형님이랑 생각지도 않게 긴 시간 데이트를 하게 되네요.”라고 속은 자갈밭에 가시덤풀이지만 겉으론 해맑은 가면을 쓰고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겨우 헤매고 헤매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다음 월곡농장에 도착했다. 벌써 일찍 온 샘들은 식사중이고 식탁에는 잔디밭에서 꿀꿀이가 운동회를 하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선생님의 음식솜씨를 맛보며 샘들의 이야기가 구수한 된장찌개로 얹어졌다.
번개의 화력으로 순식간에 만들어온 부침개도 식탁위에 놓았는데 선생님께서도 부침개를 해놓으셨다. 샘이 내온 부추 속에는 바다냄새를 풍기며 오징어가 팔딱대며 먹물을 쏘아댔고 가교리에서 온 부침개는 개구 떼가 합창을 하고 있었다. 부침개도 경제력차이라고 민망해하자 샘들은 이탈하려는 영혼을 잡아 무릎에 앉히며 맛있다고 칭찬해주셨다.
식탁위에서는 오징어와 꿀꿀이가 술래놀이를 하고 맥주와 이슬이 초원의 흙먼지를 가라앉혔다.
식사를 마치고나서는 의당의 촌마을의 경치를 더듬으며 꽃차를 마셨다. 찻잔이 제 몸을 비울 때 이야기가 담긴 그릇은 무한정 리필이 되고 아쉬움은 내 옷깃을 잡아끌었지만 마지막 요양 일정이 집으로 달려가게 만들었다.
시낭송가 선생님께서 갑작스레 친 번개로 인해 나의 사진첩엔 또 하나의 추억이 압박붕대를 감고 웃고 있다.
호기심에 멋모르고 샘의 치맛자락을 잡고 따라나선 길, 앙가슴열고 두 팔 벌려 맞아주는 또 다른 세계에서 다양한 만남을 경험한다. 그러면서 길가의 보잘 것 없는 잡초라 여겼던 내 삶이 한 사람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것, 잊어지는 잡초가 아닌 향기를 담아낼 수 있는 한 송이 꽃이 될 수 있음을 희망의 불빛이 심장사이에서 반짝인다.
첫댓글 정말 멋지십니다^^이런 좋은 날이 자주 생기시기를 바랍니다^^월곡농장 번개 핫팅!입니다^^
이분은 교수님으로 퇴직하신 분이고 10년넘게 방송일을 하신분인데
전혀 음식을 못할 실 줄 알았는데 이외드라구요.
길을 잘못 들어 조금은 애를 태우고 긴장도 되었으나 역시 해피엔딩이네요. 열심히 잘 사십니다. 글도 사람도 생기가 넘칩니다. 파이팅!
그런데 우재 이렇게 조회수가 많은지. 홍수에 사람들이 떠내려와 자맥질을 하는 듯 합니다.
아하하하~~ ^^::~ 그날 완전 개고생했지요. 갈림길만 나오면 이놈의 네비가 어찌나 갈팡질팡하며 식은땀을 흘리던지... 갈림길에서 가라는대로 가면 3키로씩 도착시간이 늘어나서 완전 김이 났지요. 그래도 우여곡절끝에 도착했슴다.
그런데 이렇게 접촉자가 많았나요? 컴의 오류같네요.
@수연 서문순 그러게요. 조회수가 2600을 넘었네요.
행전선생님의 청도문화탐방 기사가 보통 100을 넘지만, 이런 경우는 첨 봅니다.
유명 작가의 글이라 그런가봐요. 축하합니다. ^^
아마 다음싸이트의 검색에 노출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좋은 현상입니다.
@靜岩 유제범 컴터 오류일 거예요.. 유명작가는 무슨 그저 틈만 보이면 얽히는 마음을 풀어내며 사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