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진 물건들로 장식된 프롱크 정물화
…칼프의 〈뿔잔과 가재, 유리잔이 있는 정물〉
정물화는 17세기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발달하기 시작했습니다. 네
덜란드가 정물화의 중심지가 된 데는 그럴 만한 역사적 이유가 있지
요.
서양의 중세 시대는 기독교가 온통 지배하던 사회였어요. 그 중심
에 로마 가톨릭이 있었지요. 가톨릭은 시간이 갈수록 부패하고 타락
했어요. 하느님의 이름으로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는가 하면, 천당에
갈 수 있도록 죄를 없애 준다며 면죄부를 팔아 돈을 벌고, 눈 밖에 난
사람을 마녀로 몰아붙여 처형하는 일 따위를 서슴지 않았지요. 이를
보다 못해 마르틴 루터나 칼뱅 같은 사람이 썩은 교회를 뜯어고치자
며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을 벌였답니다.
이때 네덜란드 북부 지역은 칼뱅의 영향을 받아 종교개혁 운동에
뛰어들었어요. 당시 네덜란드는 가톨릭 세력인 스페인의 통치를 받
고 있었어요. 이 때문에 두 세력 간에 충돌이 일어났지요. 칼뱅교도
가 된 네덜란드 북부의 7개 주는 스페인에 맞서기 위해 똘똘 뭉쳤어
요. 그들은 군사동맹을 맺어 스페인에 대항해 싸운 결과 1609년 마침
내 독립에 성공했지요. 그리하여 탄생한 네덜란드 공화국은 이후 급
속도로 성장하여 세계적 강국으로 발돋움했어요. 다른 나라와의 무
역이 이런 눈부신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지요. 국제무역으로 경제적
풍요를 얻게 되자 문화와 예술도 크게 꽃피기 시작했어요. 이때 인기
품목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정물화랍니다.
당시 정물화가 인기를 끈 것은 정치, 경제적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
다. 새로운 네덜란드 공화국의 출현으로 기존의 귀족과 교회 세력은
몰락했지요. 칼뱅교도들은 교회를 개혁하면서 종교적인 상징물의 제
작을 금지했어요. 교회로부터 그림 주문을 받을 수 없게 되자, 화가
들은 새로운 그림을 그려 미술 시장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지요.
과거 화가들을 후원하던 교회와 귀족들은 성서나 신화 속 이야기
처럼 심오한 내용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새로 성장한 시민 계층은 달
랐지요. 그들은 거창한 주제의 그림보다 실제 피부에 와 닿는 현실
적인 그림을 더 좋아했어요. 그들에겐 교회가 아닌 집 안을 장식하기
위한 그림이 필요했던 것이죠. 그래서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갖가지
사물을 그림의 소재로 채택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국제무역으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된 사람들은 은근히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싶었어요. 좋은 게 있으면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니까요. 그래서 생겨난 것이 프롱크 정물화입니
다. 프롱크는 네덜란드어로 ‘과시하다’ 또는 ‘보여 주다’라는 뜻의 ‘프
롱컨(pronken)’이란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쉽게 말해, 무역을 통해 들
여온 진기하고 값비싼 물건이나 음식 등을 그림의 소재로 삼아 사람
들에게 은근히 뽐냈던 것이죠. 칼프의 작품 〈뿔잔과 가재, 유리잔이
있는 정물〉을 한번 볼까요?
그림의 소재가 된 물건들은 한결같이 사치스럽고 귀한 것들입니
다. 은으로 정교하게 세공한 물소 뿔잔을 비롯하여 은쟁반 위에 올려
놓은 바닷가재, 고급스런 투명 유리잔, 중동산 카펫, 남부 유럽산 과
일 등 첫눈에 봐도 호화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막대한 재산을 가진 사
람들은 이런 그림으로 집안을 장식함으로써 자신의 부를 자랑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 또한 물품 대신 그림을 구입함으로써 대리 만족
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죠.
빌럼 칼프(1619~1693년) | 정물화로 유명한 네덜란드 화가예요. 본래 역사화가인 헨
드릭 포트의 제자였으나 한때 파리로 가서 그림 공부를 하는 동안 정물화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초기에는 부엌의 실내 풍경을 주로 그렸으나 후기로 가면서 값비싼 금
은 세공품, 베네치아 산 유리 그릇, 중국산 도자기, 진귀한 과일 등 호화로운 정물
을 소재로 삼았어요. 이런 정물들은 당시 네덜란드 공화국의 번영과 부유층의 사치
스런 취미를 보여 주고 있지요. 그의 그림은 구도가 매우 단순합니다. 하지만 바탕
이 어두운 가운데 빛을 받아 빛나는 정물을 부각함으로써 강렬한 인상을 풍기지요.
절제된 묘사와 대상의 질감 표현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답니다.
* 별첨 사항: 이 글은 졸저 <새콤달콤한 세계명화 갤러리>(길벗어린이)에서 발췌 수록한 것입니다.
글과 도판은 길벗어린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싣는 것이며, 본 내용은 저작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