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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나(Sensation, Adventure, Nature and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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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후기 스크랩 [백두대간 제5구간] 신풍령(빼재)에서 부항령까지
산여울 추천 0 조회 54 06.06.21 10:32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여름산행에 녹초가 되다!

(신풍령에서 부항령까지, 실거리 20.5km)


종주일: 2006년 6월 17일(토)-18일(일)

날씨: 무더위

총 산행시간: 16시간 15분

 

[일정표]

6월 17일(토): 산행시간: 12시간 45분

6월 18일(일): 산행시간: 3시간 30분

12:00 A.M. 이천 출발

03:30 A.M. 인삼랜드 도착

04:40 A.M. 신풍령 휴게소 도착

05:00 A.M. 수령봉으로 출발

05:30 A.M. 수령봉(해발 약 1,050m)

06:00 A.M. 된새미기재

06:30 A.M. 호절골재

06:50 A.M. 덕유 삼봉산(1,254) 도착

07:30 A.M. 암릉지대

08:30 A.M. 임도와 철망문

08:48 A.M. 소사재

10:30 A.M. 소사재에서 출발

10:50 A.M. 고랭지 배추밭

13:00 P.M. 삼도봉(1,250m)

14:10 P.M. 대덕산

15:00 P.M. 얼음골 약수터 도착

17:45 P.M. 덕산재 도착(해발 640m)

08:00 A.M. 덕산재에서 출발

08:30 A.M. 833봉

08:44 A.M. 넓은 공터

09:10 A.M. 삼거리 안부 샘터

09:50 A.M. 853봉

11:30 A.M. 부항령 도착

 


지난달 덕유산 구간에 이은 이번 종주 구간은 야영을 하기로 계획한 산행이다. 장마철을 앞두고 있어 언제 비가 올지 모르는데다 잠을 잘 곳이 마땅히 없는 코스여서 텐트를 가지고 가기로 계획했다. 비만 오지 않는다면 비박을 하는 것이 좋겠지만 앞으로 계속 야영을 해야 하니 일종의 훈련산행으로 생각하고 야영장비를 챙기기로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장마철을 앞둔 푹푹 찌는 더위에 30키로 정도 되는 배낭을 메고 날벌레가 가득한 관목터널을 걷다가 지쳐 우두령을 포기하고 부항령에서 산행을 멈춘 실패(?)한 산행이 되고 말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밤 11시에 출발했다. 출발지점은 지난 덕유산 구간 종착지였던 신풍령(빼재)이다. 호정의 스타렉스 안에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새벽에 신풍령 휴게소에 도착해 5시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들머리는 휴게소 뒤편 절개지 못 미쳐 우측 파인 골이다.

가파른 오르막을 10여분 정도 오르면 이내 능선이 나타나고, 대간길은 능선 오른편으로 이어진다. 나무들이 많아 전망이 거의 없으며, 북동쪽으로 가다가 남동쪽으로 휘어지는 능선 위로 오르면 수령봉에 도착한다.

수령봉 정상에는 잡목들이 많아 전망이 그다지 좋지 않다. 나뭇가지 사이로 앞 능선과 막 떠오르는 아침 해가 보일뿐이다. 대간길은 남동쪽 능선으로 이어지다가 북동쪽으로 능선이 크게 휘어지고, 여기서 조금 더 가면 된새미기재에 도착한다. 지난번엔 이틀 밤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시작부터 힘들었는데 이번엔 기분이 괜찮다.

된새미기재 근처에 오면 헬기장이 있다고 하는데 숲이 우거지고 잡초와 억새로 덮여 있어 보이지 않는다. 잠시 앉아 쉬면서 이름을 된새미기재라고 붙인 이유가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다. 힘든 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여기서 다시 10분쯤 올라가면 바위 위에 올라서게 되는데 전망이 트이고 삼봉산 가는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바위에서 오른쪽 멀리 암봉이 보이는 곳이 삼봉산 능선 길이다. 북릉을 타고 조금 더 올라가면 왼쪽 봉우리 직전에서 대간길은 오른쪽으로 내려서게 되고 조금 더 내려가면 호절골재이다.

이곳 역시 왜 호절골이라 이름 붙여졌는지 궁금하다. 여기서 직진하여 올라가면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고 산죽밭을 지나 10분쯤 오르면 암릉이 나타나고 다시 잡목을 헤치고 가다 오른쪽 정상에 올라서면 삼봉산 정상이다. 돌무더기가 있고 삼각점과 함께 거창산악회에서 세운 표지석이 서 있다. 표지석에는 덕유삼봉산(1,254m)이라고 새겨져 있다. 여기서부터 덕유산 삿갓봉과 동엽령 사이에 있는 무룡산까지 덕유산에 해당한다.

삼봉산은 사방으로 확 트여 있어 전망이 시원스럽다. 북동쪽으로 대간길인 삼도봉과 대덕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덕유산 주능선과 멀리 지리산 주능선까지 보인다. 대간을 타면 수많은 봉오리들을 만난다.

힘들게 올라 정상에 서면 뿌듯함이 밀려오는 것이 대간의 매력이다. 산 아래 마을들과 다른 봉오리들을 한눈에 바라보면서 우리 땅에 대해 생각하고 이것저것 잡다한 것들을 날려 보낸다. 몇 번이고 숨이 턱에 닿는 힘든 고통 속에서 시원함을 느끼는 것이 대간을 타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삼봉산 정상을 지나면 곧바로 암릉지대가 나타난다. 오른쪽은 낭떠러지이며, 잠시가다 보면 두 갈래 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암봉 정상에 도착한다. 왼쪽 길은 우회로이다. 암봉 정상에서 다시 내려서야 대간 본 길에 합류한다.

내리막 중간엔 키를 훨씬 넘는 크기의 바위 절벽이 길을 막는다. 로프 한 줄을 타고 내려서야 하는데 만만치 않다. 빈 몸이라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30키로 배낭을 멘 상태에서는 가는 로프가 위험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곳을 내려오다 왼쪽 팔뚝이 바위에 쓸려 상처가 났다.

암봉을 내려서서 본 길로 들어서 바위 사이를 넘어서면 큰 바위 밑에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 나오고, 이곳을 지나 바위지대가 끝나는 곳에 이르면 좌우 조망이 시원스럽기 그지없다.

 

대간길은 여기서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오른쪽 골짜기로 내려서면 경사가 아주 급한 내리막길이다. 길도 험하고 돌도 많다. 명환과 종대가 먼저 내려가고, 미끄러워 넘어진 태선이 뒤로 쳐졌다. 무릎이 좋지 않은 산행객들에게는 난코스이다. 나 역시 1시간여를 스틱에 의지하면서 내려오는 동안 체력이 거의 다 소진될 정도였다.

바로 앞에 가던 용석이 멈추어 서서 땅을 쳐다보고 있기에 가보니 아주 작은 뱀이 똬리를 틀고 있다. 시골 출신인지라 뱀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그렇게 작은 뱀은 처음 보았다. 알에서 방금 뛰쳐나온 듯 귀여웠다. 모든 생명체들이 막 태어났을 때는 다 그렇게 귀여운가 보다. 길옆으로 옮겨줄까 하다 그냥 두었다. 그 역시 자연의 일부이니 그 자리가 곧 편안한 자리일 듯 싶었다.

내리막길은 한참동안 계속된다. 거꾸로 올라오는 산행이었으면 땀께나 흘릴 오르막이다. 성삼재에서 시작되는 2구간의 만복대를 지나면 나오는 내리막길 정도로 가파르고 길다. 1시간을 힘들게 내려와 경운기가 다닐 수 있는 소로에 도착해서야 내리막 끝이다. 잠시 앉아 쉬고 있는데 땅 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무슨 소린인지 몰랐으나 농수 호스를 묻어둔 곳에서 들리는 물소리였다. 소로길을 따라 10미터 정도 옆으로 왔을 때 땅위로 드러난 호스를 보고 그것이 농수호스인줄 알았다.

소로를 가로질러 이어지는 대간길에는 6시 이후 산행금지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는 철문이 있고, 철문 넘어 소나무 밭이 이어져 있다. 소나무밭을 따라 한참 가다보면 10만평 정도쯤 될 꽤나 넓은 고랭지 배추밭이 나온다. 대간길은 고랭지 채소 밭을 들어서면서 밭 좌측 가장자리를 따라 200미터쯤 내려가다가 좌측 낙엽송 숲 사이로 꺾어진 길로 이어진다. 여기서 잠시 더 내려가면 소사재이다. 꺾어진 길에는 가는 철사줄이 매어 있어 뒤에 오는 태선이 걸릴까봐 바위돌 하나를 철사줄에 걸쳐 놓았다.

거기서 잠시 걸어 내려오면 소사재이다. 소사재 도로는 무풍과 거창을 잇는 2차선 포장된 도로이며 왼쪽이 무풍으로 가는 도로이고 오른쪽은 거창으로 가는 도로이다. 도로에서 무풍 쪽을 바라보면 민가가 한 채 눈에 띄는데 그곳이 대간 종주자들이 쉬어가는 소사 구멍가게이다.

종대와 명환이 기다리고 있었고, 대원들이 태선을 기다리는 동안 난 먼저 가서 음식을 준비시키려고 가게로 갔지만 한창 바쁜 농사철이서인지 문이 잠겨있어서 다시 소사재로 돌아왔다. 태선을 기다려 같이 움직일 생각으로 되돌아왔지만 용석이 종대와 함께 다시 가서 동네 다른 사람들한테 연락처를 받아 주인하고 연락을 취하고 가게 문을 열었다. 붙임성이 좋은 줄은 알았지만 적극성 또한 놀랍다. 용석은 가게 주인 오토바이까지 빌려 소사재로 와서 배낭을 실어 날랐다. 오토바이까지 타고 오다니 역시 용석답다. 꽁치찌개를 주문하고 시원한 맥주를 시킨 것도 용석이다.

맥주를 곁들여 꽁치찌개를 맛있게 먹고 있을 때 태선이 가게로 들어섰다. 트럭을 타고 내려서서 깜짝 놀라 자초지종을 물으니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마을로 빠졌다고 한다. 길 아닌 곳을 뚫고 오느라 눈물이 날 뻔했다고 했다. 신발엔 흑이 들어가 양말이 흑 투성이다. 고생깨나 한 모양이다...^^

가게에서 한참을 쉬다가 삼도봉으로 향한 시간은 10시 30분이었다. 소사재에서 절개지 위로 올라서는 길도 있지만 가게 쪽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난 시멘트 길로 올라서도 대간길이다. 10분여를 걸으면 소로길이 끝나는 지점에 비석을 세워 놓은 무덤이 많이 있고 무덤을 지나 오른쪽 숲속으로 접어들어 밭과 이어져 있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도로가 나온다. 이 도로는 소사분교 쪽에서 오는 길이며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가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비닐하우스 건물이 있고, 오른쪽 민가로 올라서 왼편으로 꺾어지면 삼도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밭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에 포커스를 맞춰 사진을 찍는데 누군가 포즈를 취해주라고 한마디 거든다. 미안해서 “열심히 일하시는데 죄송합니다”라고 인사말을 건넸더니 아니라고 물 한잔 마시고 가라고 말씀하신다. 대간길을 알려주시는 말씀에도 친절이 배어 있다.

민가를 지나 삼도봉으로 오르는 길이 시작되는 곳에 이르러 잠시 쉬고 있을 때 나머지 대원들도 모두 올라왔다. 술을 한잔씩 한 터에 햇볕이 뜨거워지기 시작해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더욱이 삼봉산을 내려오면서 체력을 많이 써버려서 그런지 무척 힘들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태선이 먼저 앞장서고 모두 삼도봉으로 향했다. 낙엽송 숲을 따라 서서히 시작되는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대간길은 낙엽송 숲의 오른쪽으로 꺾어져 이어진다.

본격적인 오르막길에 접어들었을 때 먼저 출발했던 태선이 배낭을 내려놓으면서 먼저 가라고 한다. 20여분 오르다 쉬고 있을 때 뒤따라온 명환이 “태선이 힘들어서 잠을 자고 오겠다”고 먼저가라고 했다고 한다. 전날 잠을 거의 못잔데다 소사재를 내려오는 길에 길을 잃어 많이 지친 모양이다. 일단 삼도봉에 올라 무전기 연락을 하기로 하고 삼도봉으로 향했다.

삼도봉으로 오르는 길은 경사가 무척 가파르다. 삼도봉 능선까지 오르막이 계속된다. 오르는 길에는 나무들이 많이 우거져 있어 햇볕의 따가움을 느낄 수 없지만 후덥지근하고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이 정도의 높이와 시간이면 보통은 한 번에 치고 올랐지만 너무 힘들어 세 번을 쉬어야 했다. 쉬면 쉴수록 힘이 더 들게 마련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힘들게 삼도봉 정상에 올라서니 먼저 올라온 종대와 명환, 용석이 옆 숲속에 자리를 잡고 쉬고 있다. 정상에는 삼도봉이라 새겨진 돌표지석이 있고, 표지석에는 작은 글씨로 초점산이란 글씨도 새겨져 있다. 일명 애기봉이라고도 불린다. 이름 그대로 전북 무주와 경북 김천, 경남 거창 경계상에 있어 삼도봉이다. 지리산 삼도봉을 지나왔으니 두 번째 삼도봉이다. 사방이 막힘없이 트여있어 전망이 좋다. 남서쪽으로 지나온 삼봉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동쪽으로는 가야산, 북쪽으로는 대덕산이 지척에 펼쳐져 있다.

정상에서 대간길은 북서쪽인 표지석 바로 왼편 뒤쪽으로 이어진다. 다른 대원들이 태선을 기다리려 한숨 자는 동안 나는 먼저 대덕산으로 출발했다. 낮잠을 잘 자지 않는 편이어서 천천히 먼저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삼도봉을 내려가는 길은 관목 숲이어서 무척 불편하다. 나뭇가지에 팔이 쓸리고 찔리고 나뭇잎이 얼굴을 때린다. 날벌레도 끊임없이 얼굴에 부딪쳐와 무척 불편했다. 정상에서 20여분 내려가면 안부에 이르고, 안부에서 대덕산을 오르는 오르막은 산죽밭과 싸리나무 숲이다. 싸리가지들이 발걸음을 더 늦추게 했다. 더구나 바람 한 점 안 불어 숨이 턱턱 막혔다.

대덕산 정상 직전에 있는 봉우리에 올라서면 비교적 평탄한 능선길로 이어지고 정상 직전에 이르면 헬기장이 나타나고 곧이어 대덕산 정상에 도달한다. 정상에도 헬기장이 있고, 삼각점과 스텐리스로 만든 표지판도 있다. 또 한 쪽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표지석이 있고, 이 표지석에는 대덕산 정상이라 새겨져 있다.

투구봉으로도 불리는 대덕산 정상에는 나무 하나 없지만 조망은 훌륭하다. 덕산재 도로가 내려다보이며 멀리 삼도봉까지 대간 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삼도봉 왼쪽에 있는 석기봉과 민주지산도 보이며, 북에서 시계방향으로 금호산, 가야산, 삼봉산, 덕유산, 멀리 지리산 주능선까지도 시야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대간길로 몇 미터 내려서면 소나무 숲 아래 비교적 넒은 공간이 있어 여기서 쉬면 딱 좋다. 배낭을 내려놓고 한참을 쉬어도 대원들은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태선이 많이 늦는 모양이다. 이 속도대로라면 1박을 해야 할 부항령까지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스를 수정해야 할 것 같았다.

명환과 용석이 도착해 부항령 못 미쳐 샘까지 먼저 가겠다고 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밤에나 도착할 것 같았고, 샘이 정확히 어디있는지도 모르고 텐트를 칠 공간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일단 덕산재에서 기다리라고 하고는 종대와 태선을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 올라온 태선이 샘터까지 3시간 정도는 갈 수 있다고 하여 샘까지 가라는 메시지를 명환에게 보내고 그 자리를 일어섰다.

덕산재로 가는 길은 대덕산 왼쪽 편에서 곧장 오른쪽 급경사로 떨어진다. 북릉을 타고 가다가 봉우리 하나를 넘어서서 오른쪽 내리막길로 내려가야 한다. 가파른 경사 길을 천천히 내려가다 보면 정상에서 30여분 거리에 얼음골 약수터가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다시 산죽밭 사이로 20분 정도 더 내려가면 두 번째 샘이 나오고, 조금 더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얼음골 폭포가 나온다. 내려가는 길은 지그재그 완경사로 이어지고 조그마한 봉우리 서 너 개를 넘어서면 덕산재이다.

덕산재에 다 왔을 무렵 아무래도 부항령까지 가는 것은 무리다 싶어 덕산재에서 1박을 하기로 하고 먼저 덕산재에 도착해 있는 명환과 용석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이럴 때가 가장 힘든 것 같다. 약속한 종주 코스를 변경해야 하는 것이니 쉽게 결정할 수 없는 것이고, 일단 결정하면 그 책임까지도 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나조차 영 내키지가 않은 결정이다. 덕산재에 도착해서 명환에게 일정 변경 얘기를 했더니 그렇게 하라고 하면서 “언제 모 제가 힘이 있었나요?”라고 한다. “아니 뻘대깔까바 얘기하는거지”라고 했더니 모두들 웃었다. 웃음으로 넘겼지만 사실 명환도 내키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덕산재에는 무풍과 김천을 잇는 30번 국도가 있고, 산삼을 파는 곳이 있다. 전엔 주유소였는데 지금은 보살님이 산삼을 팔고 있다. 다음날 새벽녘에 심마니들이 들렀다가 산으로 가는 것을 보니 보살님도 심마니인 듯하다. 굳이 보살님이라고 한 것은 테이프를 틀어놓은 듯 독경 읽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덕산재에 내려서자마자 텐트를 치고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 길 건너편 산삼 파는 곳에서 들려오는 독경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식수는 산삼 파는 곳에서 구할 수 있고 화장실에서는 샤워까지 할 수 있다. 보살님의 친절한 배려 덕분이다.

텐트를 치고 저녁만찬을 즐기는 시간은 산행의 또 다른 맛이다. 한잔 술이 몸의 피곤함을 씻어주고 정겨운 말 한마디가 마음의 피로도 풀어주는 시간이다. 태선의 농담 한 마디가 잠시 분위기를 써늘하게 했지만 금방 즐거운 만찬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명환에게는 지나친 농담이었던 모양이다. 몇 마디씩 날카로운 말을 주고받다가 다행히 명환이 말을 멈춤으로써 해소될 수 있었다. 어쨌든 둘 다 멋진 시간, 좋은 시간을 망치는 어리석음을 선택하지 않아 다행스러웠다.

멋진 밤, 멋진 야영이다. 돌풍과 천둥 번개에 비가 온다는 긴급 문자메시지를 받아서 조금은 염려스러웠지만 비까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워낙 준비들을 잘해왔기에 먹거리도 풍족하고 심신이 다 편하다. 다만 가지고 간 양념고기는 상해서 먹을 수 없었다. 그만큼 날씨가 더웠던 것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술을 별로 마시지 않는 태선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명환도 이내 잠자리로 들어갔다. 술 잘 마시는 종대와 용석, 나만이 호롱불 아래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명환도 사실 두주불사형인데 다음날 아침 들은 얘기로는 술을 더 마시면 사고칠 것 같아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단다. 여태까지 사고치는 걸 본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본인만 알 일이다.

초여름 밤을 그렇게 즐기다 보니 어느새 술도 취해오고 담배도 필요했다. 산에서는 담배를 잘 피우지 않지만 이렇게 1박을 할 때에는 아무래도 필요하다. 도로 옆이어서 차들도 많이 다니고 건너편에 보살님도 있어 담배를 쉽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보살님은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나오지 않았고, 지나가는 차들은 차를 세워주지 않았다. 하긴 시커먼 장정들이 한밤중에 차를 세우는데 누가 세워줄까? 경찰차조차 바로 세우지 않고 유턴해서 반대편에 세우고 창문도 조금만 내리고는 말을 받았다. 담배 안 핀단다. 겁먹은 경찰 처음 봤다...^^ 뒤늦게 보살님이 나오시더니 담배 한 갑을 그냥 주셨다. 해프닝이라면 해프닝이다.

새벽 2시반경 대덕산을 타는 산행객 한 무리 때문에 잠을 깬 것을 빼고는 아주 푹 잤다. 텐트가 약간 비좁아 텐트 앞에서 비박을 했는데도 하나도 춥지 않았다. 자는 사람들이 있거나 말거나 한 산행객은 어찌나 크게 떠들던지 우리를 보고는 백두대간 타는 사람들이라는 둥 어쩌고저쩌고 말이 많았다. 대원들 모두 잠이 깰 정도였으니 그 사람도 참 너무했다.

이튿날 아침 일어나 정리를 할 때 어제 저녁 소사재로 간 나이 지긋한 산행객들이 내려왔다. 야영준비를 하고 있을 때 이것저것 꽤나 많이 물었던 산행객들이다. 새벽 3시부터 타서 3시간 만에 왔다고 한다. 가장 먼저 온 아주머니는 자기가 1등이라며 뿌듯해 하셨다. 뒤에 오는 일행들 중 막내보다 나이가 10년이 더 많다고 하신다. 빨리 산행하는 것이 모 자랑이겠냐 마는 그 분 연세에는 축복이다. 20년을 산을 다녔다고 하시면서 산은 경험으로 타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산행을 시작한 시간은 8시나 되어서였다. 오늘 산행은 부항령까지 3시간 정도만 가면 되기 때문에 그야말로 여유 있는 산책과도 같다. 부항령에서 우두령까지는 탈출로가 없어 우두령까지 갈거면 부항령에서 1박을 했어야 했는데 어제 이러저러한 일들로 코스를 수정했기에 부항령까지만 가면 된다.

단체사진을 찍고 오르막을 오르기 전 종대가 쓰레기 봉투를 담아간다고 배낭을 다시 내려놓았다. 건너편 가게 앞 공터 모퉁이에 놓아 둔 우리 쓰레기 봉투였다. 쓰레기차가 보기 쉬운 곳에 놓아두었었다. 후회할 일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배낭에 집어넣는 종대의 모습이 멋지다.

덕산재에서 대간길은 고개마루에서 무풍쪽 덕유산 입간판 있는 곳 우측 전봇대 옆이다. 바로 오르막이 시작되고 한 30여분 오르면 833봉에 닿는다.

833봉에는 사방으로 잡목이 우거져 전망이 없고 대간은 좌측(북쪽)으로 90도 휘어지며 완만한 능선길로 10분쯤 가면 무덤 1기가 나오고 여기서 5분쯤 더 가면 넓은 공터가 나온다. 공터를 지나 절개지 위로 올라서면 내려다보이는 조망이 시원스럽다. 부평마을이 보이고 대덕산과 삼도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절개지 위에서 20여분 진행하면 경운기가 다닐 수 있는 소로길에 도착하며, 여기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 낙엽송 숲을 따라 급경사 오르막을 한참 올라가면 조그마한 공터에 헬기장이 나타나고 곧이어 853봉에 다다른다.

낙엽송 숲이 시작되는 지점은 야생화 군락지이기도 하다. 한참을 쉬면서 취나물을 뜯었다. 지난번 소백산에 올랐을 때 종현 선배한테 취나물에 대해 배웠기 때문에 취나물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27가지 종류의 취나물이 있고, 떡취와 참취를 구별하는 법을 배웠었다.

낙엽송 숲 오르막을 올라 능선을 돌아가니 먼저 간 종대가 무언가 열심히 뜯고 있었다. 깻잎이란다. 산에도 깻잎이 있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폐광터가 있어 예전에 광부들이 깨를 심었나보다 생각했다. 부항령에 와서 맛을 보니 너무 쓰기도 했고 깨 향기도 나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깻잎과 똑같이 생긴 독초란다. 먹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853봉에는 삼각점이 있고 삼각점 위에 파이프를 박고 깃대를 달아 놓았으며 남쪽으로 대덕산과 삼도봉이 눈에 들어오고 서쪽으로 금평리 마실마을이 내려다보인다. 853봉에서 조금 내려가면 나뭇가지 사이로 부항령으로 올라오는 도로가 보이고 완만한 내리막길을 지나 고만고만한 봉우리 서 너 개를 지나면 헬기장이 나오고 곧 이어 부항령에 도착한다.

부항령은 임도인데 이제는 잡목과 풀로 덮여 거의 길 형태를 잃었고, 부항령 밑으로는 터널이 있는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도로로 내려서면 바로 앞 건너편에는 물이 졸졸 흐르는 아주 작은 계곡이 있고, 터널 왼쪽으로는 팔각정과 화장실이 있는 잔디공원이 있다. 팔각정에 배낭을 내려놓고 하산주를 했으면 딱 좋으련만 매점은 없다. 태선이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터널 방향 음심점까지 가서 돼지 두르치기와 맥주를 사온 덕분에 하산주를 즐길 수 있었다.

산행이 힘들면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몸이 지쳐 산행속도를 느리게 하여 산행일정을 변경하게도 할 수 있고, 마인드 콘트롤에 실패해 시끄러워질 수도 있다. 이번 구간 종주는 찌는 듯한 더위와 날벌레들의 등쌀, 발길을 가로막는 나뭇가지와 싸우는 산행이었다. 캠핑장비를 챙겨와서 배낭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은 구간을 다 걷지 못하고 중간에 멈춘 산행이다. 용석이 사업차 캐나다로 1년 동안 가게 되어 한동안 산행을 함께 할 수 없어서 미완에 그쳐버린 산행이 마음에 더 걸렸다.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않는다. 가야할 길은 아직 멀다. 어떤 경우에는 많이 갈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되돌아와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용석도 이해할 것이다.

백두대간 제5구간! 힘든 산행에서 여유 있는 마음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특히 힘들 때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새삼 새롭게 느낄 수 있었던 산행이었다. 좀 더 치밀하게 준비하여 더 한층 성숙해지는 다음 산행을 기대해 본다.


                                                                 2006년 6월 17일-18일

                                                              백두대간 종주팀 「산(山)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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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08.21 03:04

    첫댓글 6구간은 담배 어쩔까요???ㅋㅋㅋ 수고 하셨고요 다음 산행도 무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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