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름휴가 (8/7-8/15)
2009. 8.7(금)- 8.10 (월)
한달전부터 중국무협드라마 시청과 하루 10분정도의 중국어 학습으로 자유여행 준비를 철저히(?) 하여 중국 동방항공 오후 비행기편으로 청도로 출발하였다. 평소에 중국어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중국사람이 떠들면 알아들을수는 없으나 몇십단어(?)는 알아 기초적인 소통은 되는 것으로 알고 떠날 수 있었습니다.
중국가는 비행기편은 최근에 경쟁사가 많아져서 1인당 약 8만원이라는 제주도비행료보다 싼 저렴한 항공비로 출발할 수 있어서 앞으로는 중국에 더 자주 갈 수 있겠다 싶었다.
자유여행이라 청도에서는 민박을 했는데 한마디로 부부가 갈때는 민박을 안하는것이 좋습니다. 남자들끼리 간다면 민박도 괞찬을것 같습니다만. 홍콩화원이라는 중심가에 속하는 아파트에 민박을 하였는데 민박은 가격과 식사는 장점이 있으나 아파트 주변과 복도등의 위생상태, 이불빨래상태, 화장실등 불편한것이 더 많고 싼호텔을 이용한다면 가격(민박-2인200원)면에서도 큰이득이 없다고 생각된다. 인터넷에 올라온 민박집사진은 깨끗해 보였으나 실제로 가보니깐 기대와는 좀 달랐고 아파트 복도는 엉망이었습니다. 여행비용이 문제면 깨끗하고 저렴한 호텔을 미리 조사하고 가는것이 정답이라고 생각됩니다. 중국에서는 어딜가나 아파트를 xx花園으로 표기하는것이 좀 이상했습니다. 청도시내는 다른 중국내도시와 다른점은 자전거타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전거도로도 별도로 없는데 좀 이상하였습니다. 전에 조선족여자가 우스개소리로 한국남자들이 청도에 많아 청도여자들이 자전거를 안탄다는 말을 들은적은 있지만 하여튼 좀 이상했습니다.
청도는 역근처의 잔교와 시정부부근의 54광장이 바다와 어우러져 야경이 볼만했는데 대형건물전체를 네온사인으로 치장하는데 그 규모에 놀랄정도였다.
청도변두리에 있는 노산을 구경하고 돌아오니 원래 계획했던 태산등산계획을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산을 등산하는데 힘이 들어서가 아니고 주왕산, 북한산, 설악산을 합친듯한 모양의 아름다운산이 중국의 동해와 어우러져 당분간 이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과 중국을 더 자주 와야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청도 노산관광은 입장료 70원(약 14000원)과 노산전체를 관광시켜주는 택시를 200원에 대절하여 하루종일 한바퀴돌았습니다.
노산등산은 4코스중 한코스만하고 나머지는 군데군데 내려서 구경만하고 한바퀴돌았습니다.
택시기사 수고과 거리를 따지면 200원(약 4만원)이 비싸지 않았습니다. (케이블카 1인40원 별도)
근데 노산을 갈 때 버스정류장 사람들에게 여러명 노산을 물어보았으나 어디에 내려야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게 정말 이상하였습니다. 하마터면 노산 변두리 동네산만 보고올 뻔 했습니다. 이것은 아마 중국물가에 비해 워낙 비싼 입장료가 원인이 아닌가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304번 버스 종점인 ‘류청하’라는 곳인데 304번은 숙소앞에 정류소가 있었는데 쓸데없이 2번을 더 갈아타고 류청하까지 갈수 있었습니다.
여행의 의미는 여행지역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고적을 알아보는것도 큰 의미가 있지만 그사람들의 생활습관과 문화를 이해하고자 하는데도 뜻이 큰 만큼 그 사람들과 함께 버스나 전철등을 타보고 현지의 서민적인 식사도 같이 해보는 것이 여행경비도 줄이고 여행하는 재미도 더하는것 같았습니다.
청도 첫날 숙소주변 카페에서 그 유명한 세계제일의 청도맥주를 마셨는데 술맛을 모르지만 너무 시원하고 깔끔한 맛에 기분좋은 첫날밤을 보낼 수 있었다.
저녁에 어두울때 주변 바닷가와 시내를 돌아다닐때 신호등만 믿고 대로를 그냥 건너다 객지에서 큰일 치룰뻔했습니다. 중국은 교통질서등 모든면에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조심하고 한번 더 확인하고 다녀야하겠다고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청도는 아시아의 스위스라고 불리우는데 이는 잔교주변에 신호산공원에 올라가서 보면 확연하게 알수 있는데 바다를 끼고 붉은 지붕의 집들과 숲이 어우러져 있어 이태리의 피렌체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등 어느동네보다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네에 내려와서 붉은 지붕의 그 집들을 자세히 보면 그 내부가 너무 허술하고 위생적으로 난감하게보여 좀 씁쓸하였다.
마치 일본동경은 화려하지만 자세히 보면 10평정도의 아파트에 사는 동경시민을 볼때의 실망이 또 한번 생각나면서 역시 아시아 4국 중에는 주택의 청결도와 면적등을 종합적으로 볼때 우리나라가 제일 낫다는 생각을 하였다.
8월 10일(월)-8.11(화)
청도역에서 시속 180Km의 속력으로 깨끗한 열차로 제남에 약 3시간만에 도착하였는데 내일 공자유적지가 있는 곡부로 가는 열차표를 알아보니 표가 매진되어있었다. 약간 당황해서 자세히 알아보니 곡부뿐만 아니라 남경, 상해, 서주, 진강등 내가 앞으로 가야할 모든 기차역표가 앞으로 3일간은 모두 매진되어있어 무척 당황 스러웠고, 순간 중국의 교통환경이 원망스러웠다. 고민하다 베이징에 있는 장군학(엘지생명과학 북경대표)에게 연락을 취하니 남경가는 비행기표는 아직 있으니 빨리 예매를 하라는 거였다. 남방항공으로 내일 아침가는 표를 예약하고나서야 배를 채우고 호텔에 들어갔다.
제남역에서 택시로 약 15분거리에 있는 홍주시루23호에 있는 상호주띠엔이라는 호텔에들었는데 무척 저렴하고 괞찬았습니다.
이곳도 젊은 사람들이 붐비는 중심가이며 2인실 숙박비가 138원으로 민박보다 훨씬 싸고 주변에 큰 깨끗한 분식집들이 많았습니다. 아마 호텔여건에 비해 이보다 더 싼 호텔은 없을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집사람표정은 좀 다르긴 했지만...
아마 집사람이 원하는 여행은 어딜가나 택시타고 호텔은 최상급호텔과 식사를 원하는게 아닌가 짐작되었는데 난 속으로 그렇게 여행할려면 우리 형편에 자주여행을 할 수가 없을텐데...하고 생각하였다.
중국 호텔이 10년전과 달라진점은 우선 호텔 내부의 욕실일부분이 룸에서 볼수있도록 투명유리로 되어있어서 좀 색다르게 보였고, 전에는 부부가 아니면 같은방에 묵을수가 없었는데
“4시간당 65원-80원”등의 호텔 광고가 많은 것으로 보아 낮에도 호텔을 찾는 손님들이 많은것 같았습니다.
제남은 대명호와 표돌천광장을 구경하였는데 그저 그랬습니다.
8월11일(화)-8월14일(금)
남경비행장에 도착하니 내가 97년부터에 1년간 근무하던 고우제약창에서 중국인 복총과 이건강이사가 마중나와 11년만에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바쁜 분들 두분이나 마중나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우로 가는길은 이전과 다르게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2시간만에 고우에 도착할수 있었다. 새로생긴 깔끔한 호텔에 여장을 풀고 회사 임직원 약 8명이 저녁만찬장에 기다리고 있었다. 두분만 새로보는 분들이고 나머지는 모두 아는사람들이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정겹게 식사를 하였다. 정총께 그간의 경위를 이야기했더니 차와 기사를 내어줄테니 1박2일간 곡부갔다오라고 성화였으나 사양하고 양주(해신에서 장보고가 다니던곳)와 내가 97-98년 약 1년가까이 내가 근무하던 고우공장 및 고우시내를 구경하였다.
양주에는 최치원사당이 몇 년전에 건립되었는데 주변에 대명사(우리나라는 백제가 불교를 일본에 전했다고배우나 중국은 양주대명사에서 제일먼저 일본에 불교를 전했다고 주장함)와 그림같은 호수 소시후가 있어 가볼만했다. 신라인 최치원은 양주에와서 과거급제후 양주주변 고우시에서 우체국장을 첫관직을 했다고한다. 중국의 최초우체국인 고우시 우체국유적도 들러 최치원의 숨결을 느꼈다.
양주시내를 다니면서 젊은 사람들이 KFC와 맥도널드를 꽉 메우고 있었는데 롯데리아도 좀 있었으면 보기에 좋았을것을 ... 하고 생각되었습니다. 롯데는 어찌 우리나라 아이들만 알겨먹는데 도가 텃는데 소비가 점점 더 커지는 중국은 진출못하는지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또 한가지는 이렇게 더운 날씨에 중국에는 왜 팥빙수를 안파는지 알 수 가 없었다.
고우공장은 내가 허가서를 작성한 3가지 제형의 제품이 힘차게 바쁘게 돌아가고 은행빚 없이 지난해에는 한국돈 20억의 흑자를 기록하여 일양에 많은 이익을 돌려주고 있다고 하니 임직원들이 고마웠고 내가 과거에 일한 보람을 느낄수 있었다. 직원들도 회사창립 초기에 어려움을 같이 겪어봐서 그런지 지금은 회사일이라고 하면 한국사람이나 중국사람이나 모두 합심해서 공과사를 안따지고 솔선해서 일을 한다고 하여 우리 한국기업이 중국에서 어떻게 해야 성공하는지를 알수 있을것 같았다.
고우에 있는 3박4일동안 호텔비와 차와 직원을 붙여주어 정총및 회사측 배려에 너무 감사하였는데 마지막날 또 환송회를 베풀어 주어 우리 부부는 몸둘바를 몰랐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8월14일(금) -8월 15일(토)
남경으로 가는 동안 잘 알고 지내던 중국인 창고장 곽군과 2시간 열심히 이야기 했는데 영리한 곽군은 중국어를 유치원이하의 수준으로 이야기를 할 줄 알아 재미있게 이야기 할 수 있었습니다.
남경에서 부자묘근처에 중급의 호텔을 정하고 바로 남경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12년전에 남경박물관에 갔을때는 중국의 역사지도가 년대순으로 쭉 걸려있었는데 우리 고구려영토가 잘 나와있었습니다.
이번에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는 역사변조 때문에 이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 들렀는데 본관이 폐쇄되었고 유물만 있는 신관만 개관하였습니다.
속으로 이놈들 고구려그림지도와 연관되어 이런짓하는것 아닌가 염려스러웠습니다.
남경에는 번화한곳이 두곳이 있는데 신자코는 낮에 다니면서 백화점, 음식점다니면서 놀고 저녁때는 호텔 주변 부자묘일대를 구경하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리 많이 다니지는 않았으나 야경은 상해 와이탄야경이 최고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12년동안 남경 부자묘가 그렇게 아름답고 밤에 야시장등 구경거리가 많은 곳으로 바뀌었는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97년에 갈때도 야경이 좋다고 생각했으나 이번에 해까닥 까무러칠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관광회사에서 상해, 남경, 양주등을 묶어 패키지 상품으로 개발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두서없이 글을 썼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어 고맙습니다.
중국여행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윤 석순
첫댓글 와..전언제쯤 해외땅을 밟아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