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군의 합동묘소를 보고
북악의 우이동 산 자락 계곡 (아카데미하우스 7분 거리, 이시영선생 묘소 앞) 양지 바른 곳에 아담하고도 쓸쓸한 조그만 봉분이 자라잡고 있다. 바로 이 무덤이 해방이후 돌아온 광복군 유골 중 후손과 친척이 사라진 열일곱 분의 유골을 한곳에 안장한 곳이다.
대륙의 북쪽에서는 조선의용군이, 대륙의 남쪽에서는 광복군이 중심이 되어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는 데 광복군은 임시정부의 군대였기에 소속이나 나이로도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동지들이라고 볼수 있다. 그분들이 조국의 광복을 위해 싸우다 보니 정작 자신의 가문이 사라진지도 모르고 유골만 고국으로 돌아 온 것이다.
국립묘지에도 갈 수 있었지만, 의암 손병희 선생님께서 살아도 같이 죽어도 같이 지내자고 우이동 봉황각(천도교)에서 제자를 기르고 3.1 운동 동지를 규합하여 거사함으로서 3.1운동의 주역은 모두 우이동 산자락에 잠들고 있는만큼 살아남은 광복군 동지들이 후손이 잘되어 친일파도 끼어 있는 국립묘지 보다는 의암 예하 분들이 계시는 곳이 더 맘이 편하실 거라고 우이동에 모신 것이다.
그러다 보니 8.15광복절이나 연례행사 한 두 차례는 보훈 관련자들의 발걸음이 미치지만 전혀 돌보지 않으니 화강암 상석은 먼지 때가 묻어 시커멓고 주변은 몇 개월 전 행사에 사용한 시든 꽃잎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어 등산객의 가슴을 저미게 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본 후 시골에 가지 않았는 명절에는 북악 등산할 때 니쿠에 막걸리와 과일, 떡을 조금 넣어 지나가면서 적으나마 예의를 차려보았지만 이건 개인이 할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혜택을 누리는 가진 자, 높은 자, 배운 자가 앞장 서 추진해야 할 과제이다. 식민통치를 겪은 후 상놈 출신들이 큰 소리 치는 세상이라고 비난하는 이야기도 많지만 응당 민족과 역사를 아는 후예들이 그래도 조국의 흙 속에 편히 쉬도록 예우해드리는 게 도리이고 인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