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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단·용마산 (종주 산행, 경기 하남/광주)
*일 시 : 2001. 8. 16.(수). 홀로 산행. 날씨 35도의 무더운 맑은 날씨.
*코 스 : 호곡사 입구(08;50)-안부(10;27)-정상(10;35)-안부-고추산(11;58)
-용마산(12;55)-광주군 중부면 엄미리 계곡(하산완료 14;30)
어제 오전 고양군 지영리 어머니 묘소를 찾았다.
매년 이맘 때 행하는 홀로 행사다. 1989년 모친이 卒하신지도 어언 13년째다.
묘소 주변도 많이 변했다. 묘소 우측 바로 너머(약 30여 m지점) 철제 조립 건물이 10여 동 들어섰다. 무슨 수련회 장소로 이용되는지 공장건물인지 알 길이 없다. 앞으로 몇 년 안에 산소 이전을 요구하는 일이 생길 것으로 예상했다. 모든 인위적 시설에 이리저리 밀려나는 게 한국 산소의 운명이 아닌가 생각된다. 벌초를 하며 발견한 연자홍색 '무릇'에 마음이 간다. 문득 '홀로 산행'을 결심했다. 강한 개성이 아니다. 산악회 관련 전에는 늘 홀로 산행을 즐겼었다. 처음엔 안양 수리산을 내정했다가 검단산으로 마음을 바꿨다.
검단산 종주는 장다름 산악회 11월 산행에 계획된 바 있다.
산행을 마치면 남는 건 <山行記> 뿐이라는 생각이 요즘 부쩍 든다.
필기구를 준비하고 메모하는 산행은 거추장스럽고 번거롭다.
또 충분한 사전 학습이 있어야한다.
남·북한강이 '두 물 머리'(양수리)에서 아우라지(合水머리)하여 흐르다가 여울목이 만난다.
양옆으로 남쪽의 검단산과 북쪽의 예봉산이 씨름이라도 하려는 듯 마주 한다. 두 곳 사이로 급류가 흐르는 강변을 斗迷峽이라 하는데 경관이 훌륭하다. 그 물길을 '팔당여울'이라 하고 여기에 수도권 주민의 젖줄인 인위적인 팔당호가 자리하고 있다.
온조大王부터 근초고왕까지 370년 간 大 百濟국 수도로서 이 일대에 많은 역사적 유적·유물이 간직되고 있다. 이미 先史인들은 이곳을 터전으로 '신석기문화'를 꽃피운 유적(암사동, 미사동 유적지)을 수없이 만들었다. 급류를 타고 내려온 퇴적토가 이곳 미사리 부근에서 델타지역을 형성해 아름다운 모래톱을 만들었는데 한자로는 '美沙里'라 표기한다. 대동여지도나 기타 기록을 참고하더라도 검단산과 남한산성(일장산·청량산)은 좌청룡, 우백호의 자연 성릉으로 방어벽 구실을 하고, 社稷壇 중 '社'에 해당하는 제례행사 지역과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는 山이다. 최근에 발굴된 춘궁동 백제유적이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하남 창우리에 살고있는 고향친구 K의 조언을 받아 교통편은 대강 숙지해 뒀다.
'서울 사람 남대문 구경하기 어렵다'고 매번 중부고속도로를 지날 때마다 검단-용마 줄기를 남몰래 속 끓듯 바라보곤 했었다. 차라리 '홀로 산행'을 통해 여유있게 穿鑿하고 吟味하며 즐기자는 요량으로 이른 아침 서둘러 집을 나섰다.
6시 50분 지하철 5호선 松亭역에서 승차했다.
지난 山行記를 훑다가 하차할 千戶역을 잃고 길동 역에서 하차했다.
역 부근 식당에서 김밥을 준비하며 버스 편을 물었다. 먼 거리를 걸어 573번 버스에 오른 시각은 8시 20분이었다. 낯익은 초이동 앞을 지난 한참 후 검단산 입구라는 버스 기사의 친절한 안내를 듣고 하차했다.
연로한 분들이 제각기 작은 배낭을 매고 검단산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초행이라 그들 뒤를 따라 갔다. 창우동 호국사 입구 사거리 건널목 대각선 쪽으로 <한국 에니메이션 고등학교>가 특이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요즘 특정학교가 선호의 대상이니 많은 호응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촬영소 가는 길, 등산로 입구→>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니 전형적인 농촌 가옥들이 보이는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좌측에는 '안창 모루'쪽 호국사가 있고, 이곳은 '창우리'로 표기되어 있다.
'아릿한 꽃밭, 호박넝쿨, 매미울음소리'가 평화롭게 들린다. 촌놈 출신임을 확인하는 DNA 탓이다. 이런 정경에 낯설지 않고 정겨움과 친근감이 앞서니 말이다. 등산객을 상대로 간이 음식점들과 음료 자동판매기가 집 앞마다 설치되어 있는 점이 여느 시골과 다르다. 시대 탓인가. 자판기 커피를 뽑아 들었다.
'시골 보리밥 집'이란 상호가 보이는 단층집과 황토로 만든 단층집 사이 완만한 계단이 들머리다. 초입부터 어제 어머니 산소에서 본 '무릇'이 보인다. 반갑다. 하남시 명의로 <산불 조심>이라 쓴 프래카드가 나무사이에 끈으로 매어져 있다. 엊그제 내린 비로 올라가는 길은 늪처럼 질척거렸다. 게다가 황토바닥이라 더욱 미끄러웠다. 노인들과 부녀자들은 능숙하게 마른 길만 골라 오르는 품새가 인근 지역 사람들인가 보다. 익숙한 걸음걸이가 설명해 준다.
하늘을 찌를 듯한 고압 전선탑 허리 아래로 참나무 숲이 감싸고 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허리 아래 부분만 가린 묘한 장면이 연상되어 피식 웃고 말았다.
우측 숲은 철조망으로 길게 둘러쳐져 있다. 잠시 후 소나무 숲이 이어진다. 길바닥은 여전히 질척이고 하늘을 가린 숲길은 높은 습도로 아침부터 구슬땀을 쏟게 한다. 20~30년 생으로 추산되는 소나무 숲은 멀대같이 큰 키지만 영양상태는 신통치 않다. 게다가 낙엽 활엽수림과의 생존경쟁에 밀려 遷移현상이 여러 곳에서 목도된다. 다시 혼합림으로 된 숲이다.
防火路를 따라 15분쯤 오르니 길옆에 봉고 車가 보인다. 간이 매점이다.
매점 주변에 사시나무 여러 그루가 보인다. 우측으로 방향을 바꿔 조금 이동하니 보다 넓은 오솔길이 나타난다. 좌측으로 접어 완만한 길이 연결된다. 길바닥은 작은 자갈과 차진 흙으로 혼합되어 포장길처럼 단단하다. 50m 지나니 1.5t 트럭을 이용한 또 다른 간이매점이 있다. 주변은 20~30년 生으로 추정되는 이깔나무 숲이다.
<화기물 임시 보관소>
Box 같은 가건물과, 커다랗게 그린 입간판 <검단산 자연 보호 안내도>가 눈앞을 가린다. 지금 여러 사람들이 걷는 이 오솔길은 하남시가 시민을 위해 마련한 행정 서비스임을 알리는 내용이다. 바로 우측엔 <등산로 안내도>가 이정표와 함께 상세하고 친절하게 그려져 있었다.
↑팔당댐 배알머리(1.7Km)
창우동종점(1.17Km)←호국사(0.2Km)←현위치→정상(2.28Km)↘휴게소정자(0.66Km)
↙창우동팔당대교(3.05Km).↓새터(1.5Km)
승용차도 능히 출입할 만큼 고른 길은 다소 경사가 완만한 오름이다.
Silver 산행으로 적격이다. 며느리 밥풀꽃·딸기나무·고마리·달개비 등 여름(夏)을 여름(=열매를 여물게 함)하는 들풀과 우렁찬 매미소리가 요란스럽게 기승을 더한다. 계류구조가 直線化되고 경사가 급하니 자연 급류소리가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늘 이렇게 풍부한 水量인지 알길 없다.
오전 9시 21분. 이제 경사로가 급해진다.
좌측으로 옮겨진 시원한 계류에 잠시 손을 담갔다. 어제 벌초 중 벌레에게 물린 좌측 엄지 손 첫째 마디 바닥이 보기 좋게 부어 올라 통증이 가시질 않았다. 아쉬운 대로 산초나무 잎을 짓찧어 그 즙을 발랐다. 곧게 자란 소나무 군락들이 좌우로 꽉 차있다. 우측으로 벤치 두 개가 마련된 쉼터가 보인다. 건너편엔 <군사시설 보호구역>이라 쓴 시멘트로 된 4각 기둥이 50Cm 높이로 박혀있다.
길섶에는 파리꽃과 배초향 잎이 무성하다.
정상으로 오르기 위한 오솔길은 숨돌리기가 급한 듯 Z자로 구부러졌다. 크고 작은 돌탑 2기가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오르며 예서 잠간의 여유를 가진다는 표시다. 좌측 산허리 아래 자락에 하남시 일부가 나뭇잎 사이로 나타난다.
9시 40분.
다시 Z자로 길이 꺾인다. 또 다른 케른(돌무더기)이 보인다.
<긴급 연락처(산불, 사고 時) 119. 현 위치 검단산 2-2 약수터>
벤치 3개가 놓여있는 쉼터 공간이다.
오늘 서울 기온 예보는 33도라고 보도된바 있다.
머리띠를 풀러 땀을 짰다. 우박처럼 쏟아진다. Z자 길은 계속 이어진다.
소나무 가지가 남향으로만 뻗어있다. 숲 사이로 엷은 흰 구름 속에 정상이 잡혀온다. 자주색 칡꽃이 환하게 핀 덩굴 숲이 보인다. 칡꽃을 그늘에 잘 말려 두었다가 과음, 숙취 해소용으로 달여 마시면 효과적이다. 葛根蕩이라 해서 감기 약으로 쓰인다. 또 생 칡뿌리를 압축기로 짜낸 검은 원액을 파는 행상인들을 가끔 관광지나 등산 머리에서 만난다.
하산하는 사람들도 가끔 눈에 띈다. 맨발로 하산하던 어느 년 주부가 바로 앞에서 외마디 비명소리를 지른다. 외려 정신 없이 올라가던 내가 더 놀랬다. 상황을 판단하니 指壓삼아 맨발로 내려오다 길이 10여 Cm 가량 되는 지렁이를 밟고 기겁을 한 모양이다. 씁쓸하게 웃으며 지나쳤다.
'복합기생나비' 한 마리가 칡덤불 위에서 서툰 날갯짓을 한다.
봄형(4∼5월), 여름형(6월말∼7, 8, 9월)으로 연 3회 출연하는 나비다.
주로 북한에 많이 분포하고, 남한의 경우 백두대간 주변과 경기·강원·충북 지역 고산에 국지적으로 분포한다. 풀밭 위를 천천히 힘없이 날며 개망초 꽃 꿀을 즐겨 먹는다. 수컷은 습지에서 물을 빠는 경우가 많으며 가을 보다 봄에 개체수가 많은 편이다 .날개 한 편 길이가 35~42mm 정도로 날개모양이 둥글고 앞날개 가장자리가 곡선을 이룬다. 희귀한 나비를 볼 수 있는 검단산이 고맙다.
9시 55분. 약수터다.
쇠파이프를 통해 쏟아내는 약수는 마음껏 틀어 놓은 수도꼭지처럼 시원하게 쏟아진다.
약수터 옆으로는 벤치, 벽시계, 플라스틱 물 컵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하남시가 시원스레 조망되는 길 건너편에 이정표와 입식 거울이 걸려있다.
호국사(1.44Km)←현위치→검단산(840m)
입식 거울 옆에 <검단산>(정우용 작) 詩가 같은 크기와 높이로 형제처럼 나란히 서 있다.
"하늘이 열리던 날
白頭를 맏형으로
광주산맥 한 자리에
검단산은
태백의 막내로
호젓하게 태어났다.
(中略)
수 천년을 하루같이
저 동쪽 바다에
해가 떠오르고
한양, 광주, 양주, 양평 땅에 큰 소리 전하니
온 마을에
새벽 첫 닭이 울었다. " --복지 산악회--
視界가 트인 동쪽 아랫자락에 창우동 APT, 비닐 하우스가 보인다.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긴 장방형 조정 경기장이 잘 정비된 논바닥처럼 검푸른 색을 띄우고 산뜻하게 눈을 적신다. 팔당대교 아래로는 한강이 숱한 역사를 껴안은 채 흐른다. 강 건너 너른 공터에 와부읍 덕소 지구 APT 대 단지(1만 2000여 가구 단지. 2003년 4월 입주계획)가 주인을 위해 성냥 곽을 세로로 세운 듯 세월을 낚고 있다. 패트 병에 물을 가득히 담아 배낭 속에 넣고 일어섰다. 통나무로 이은 계단을 밟고 올랐다. 우측으로는 너른 길을 내기 위해 자른 참나무 동발을 장작 크기로 잘라 가지런히 쌓여 있다.
200여 평쯤 되는 헬기장 같은 너른 공터다.
머리 위 樹海 속에 묻힌 정상을 바라보고 오르면 山間浴場처럼 너른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공터구조가 다소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숲이 하늘을 덮은 아늑한 곳으로 부부끼리 음식과 자리를 준비해 와 午睡를 즐기는 사람들도 보인다. 옛날 군부대에서 많이 보았던 팔작 지붕처럼 생긴 목재로 만든 야외용 식탁 2개가 놓여 있다.
다시 가파른 오름 길이 시작된다. 텅 빈 뱃구레가 허전한 듯 발걸음이 무디다.
기실 아침을 거른 상태다. 좌측에는 철제 圓柱들이 길게 꽂혀 로프로 연결된 안전 시설이 정상방향으로 뻗어 있다. 우측으론 너덜지대가 좌측 로프 줄과 대칭을 이루듯 평행선처럼 위로 연결되어 있다. 마지막 급경사다.
10시 27분 정상 턱밑 안부에 올랐다.
뜨거운 햇빛이 사정없이 내려 쬔다. 안내도와 이정표가 코앞에 놓여있다.
여기부터는 정상과 용마산으로 이어진 능선이 좌우 측으로 각기 연결된다.
정상(120m)←현위치→산곡 초교(2.43Km)
↓호국사(2.16Km)
버짐처럼 흰색 띠를 횡으로 얼룩진 부분이 줄기 위아래를 장식한 물푸레나무 그늘에서 물을 마시며 구슬땀을 닦았다. 싸리꽃, 생강나무 잎이 한여름답게 무성하다.
10시 35분, 정상에 올랐다.
100여 평 남짓 圓周로 된 공터에는 사방이 트여 있고 헬기장 표시가 있다.
공터 가장자리에는 허리정도 높이의 鐵株에 흰 로프가 가드 라인으로 빙 둘러쳐져 있다. 무릎 정도 높이의 대리석 판석 위엔 <정상 부근 조망대>라 쓰여 있고 주변을 축소한 중요지점이 낱낱이 그려져 있다. 동북방향에서 서쪽으로 검단산을 휘감아 흐르는 팔당호가 그림처럼 펼쳐있다. 回河하는 강물에 얹어진 착각이 든다. 그 곡선이 여체의 허리부분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八堂'이란 지명도 여인과 관련이 있다.
검단산 북쪽 급류 비경에 도취한 선녀 8명이 하강하여 강물에 목욕을 즐기곤 했다.
동네 총각 한 사람이 미모에 끌려 한 선녀를 납치해 살게되자 나머지 선녀들도 상천하지 못하고 예서 생애를 마쳤다. 애석히 여긴 마을 사람들이 '8선녀를 위한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는 냈다는 전설에서 '팔당'이란 지명이 유래됐다고 한다. 그런 시선으로 바라봐서 그런지 팔당호 곡선이 恨섞인 여체의 흐느낌처럼 육감적이다.
正 東向 江岸에 짧은 바지 가랑이 사이로 살그머니 내비친 어린애 고추 같은 숲(半島 모형이다.)이 정약용 선생님 묘소인 '능내리 마현'이다. 그 북쪽으로 북한강 좌측 마루턱을 그리는 예봉산과 운길산이 '조곡'을 사이로 경쟁하듯 자태를 뽐내고 있다. 팔방이 트인 동쪽 팔당호 너머로 정암·해협산이, 서쪽으론 하남시를 아우르는 남한산성이, 남쪽으로는 오늘 縱走하게 될 고추봉(566m)과 용마산(596m) 줄기가 숲에 쌓여 아나콘다 등뼈처럼 역동적인 자태로 늘어져 있다. 멀리 서울시가 검은 운무에 쌓여 이국 땅처럼 느껴온다.
검단산 명칭 유래는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백제 위덕왕 때 黔丹禪師란 도인이 남한 산성에서 도를 못 깨우치고 이곳에서 은거하며 도를 깨우쳤다하여 그의 이름을 따서 검단산이라 명명했다.
둘째, 조선시대 당시 산에 나무가 너무 많아 "검붉다"하여 붙여졌다.
셋째, 한강 조운 시설을 이용해 내려오는 각종 物産 집산지였던 이곳에서 漕運船을 검사하고 단속했다는 史實에서 유래됐다는 이야기다.
공터 주변엔 코스모스가 만발하고, 큰키나무에 속하는 떡갈나무가 열매(도토리)가 긴 갈색 수염에 덮여 여물어 가고 있었다. 여덟 개의 벤치가 圓周에 따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놓여 있다. 배낭을 끌러놓고 김밥 몇 덩이와 얼마 전 약수터에서 담은 물을 마시며 서쪽 아래를 보았다. 중부고속도로 톨게이트로 향하는 차량행렬이 딱정벌레처럼 느릿느릿 기어가고 잇다. 정상엔 내 작은 체수 하나 숨을 수 있는 그늘이 없다. 그늘을 만나려면 정상 부근 아래로 조금 내려가야 가능하다. 헬기장 이용과 군사적 조망을 위해 開豁地를 만든 것으로 사료된다.
10시 52분.
離巢하는 어린 새처럼 고통을 지우고 용감하게 일어섰다.
정상에 박힌 이정표를 다시 확인했다.
↑호국사(2.28Km)
산곡초교-----정상-----창우동(3.05Km)
↓배알머리(2.5Km)
"배알머리(拜謁尾里) !" 지명이 이채롭다.
유래를 찾아보니 이것도 漕運과 관계가 있다.
팔당 여울인 이곳을 돌아가면 삼각산 아래 왕궁을 바라 볼 수 있는 시계가 확보된다. 또는 배를 타고 돌아갈 때 이 지점이 왕궁을 바라보게 되는 마지막 지점이라 윗사람을 뵙고 인사한다는 뜻의 '拜謁'을 붙여 "배알미리" 곧 "배알머리'가 됐다는 故事는 정도 600년을 맞아 편찬한 <서울 600년>(김영상)의 기록이다.
종주를 위해 조금 전 올라섰던 안부로 내려가야 한다.
이곳을 지나 능선의 재미를 천착하며 걸어야 한다.
만개한 짚신나물과 며느리 밥풀꽃이 뜨거운 햇빛을 시샘하듯 검붉은 빛을 토한다. 노란 색 짚신나물은 염료식물로 이용된다. 부드러운 잎줄기·잎·꽃을 잘게 썰어 끓여 染液을 내면 媒染劑 없이도 좋은 색을 얻을 수 있는 식물로 알려져 있다. 매염제를 사용하면 반응이 좋아 다양한 색을 낼 수 있다.
송장풀 군락, 기린초 떡갈나무 숲, 정상까지 침투한 닭의장풀과 망초가 우짖는 매미소리와 함께 검단산의 주인임을 뽐낸다. 여유 있는 능선이 이어진다. 하남시 LG 상록 재단 명의로 한국 특산식물 <병꽃나무>에 牌札이 걸려 있다. 지금은 져 버린 꽃이지만 5~6월이 적기다.
산초나무 연초록 꽃과 뚝갈(패장) 흰 꽃 위에서 채밀하는 벌들이 열심히 가을을 준비하는 役事가 보인다. 一株多枝로 마치 반송처럼 보이는 老松아래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사람들은 이 소나무 부근을 一松臺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바위 무더기 위에 적송이 8개의 가지를 치고 있었다. 60년대까지 司法考試생들이 이곳에서 자주 휴식하던 중 자연스레 붙여 준 이름이라 한다. 이곳 출신 有名인으론 헌법학자 유진오, 경제학자 남덕우 씨가 이곳 기슭 태생이다.
산곡 초교 방향에서 올라오는 두 명의 주부에게 길을 물으니 고추·용마 능선이 險路(?)라고 일러준다. 산세가 험한 게 아니라 통행인이 적어 성긴 능선이라는 의미로 받아 들였다. 이제 산곡 초교로 갈라지는 우측 길을 무시하고 직진 능선을 올라갔다. 행인도 없는 혼자만의 길이다. 늘 방문자 자세로, 산을 학습하는 태도로 자연을 접한다. 노송이 있는 공간마다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고압 전신탑이 뜨거운 태양 탓만은 아니더라도 서쪽 산록 아래로 무게의 감당이 어려운지 자 모양으로 긴 전선을 늘어뜨리고 있다.
갈림길에 이어 세 번째로 리본을 매 달았다.
11월 산행 향도가 될 것이다. 노란 색 마타리가 여러 그루 띈다.
뚝갈과 함께 그 뿌리에서 썩은 된장냄새가 난다고 하여 '패장'이라 불리는 꽃이다.
여인의 대하증 등 부인병 치료에 민간약재로 이용되는 야생화다. 서어나무과에 속하는 회백색 樹皮(상하로 회색 골이 갈라짐) 나무 아래서 잠시 숨을 돌렸다. 8월에 성숙되는 작은 콩알만한 새까만 漿果형태로 줄기 끝에 매달린 둥굴레 군락지가 흩어져 있다.
무성한 숲이 가려 좌우가 조망되지 않는다.
11시 38분.
고추봉 직전 무명봉에서 준비한 김밥을 요기 삼아 들었다.
마시는 물의 양이 더 많아진다. 후덥지근한 기온이 동작마저 거북하게 만든다.
생각 같아선 상의 모두를 벗고 싶었다. 離巢다. 이른봄부터 울어대는 소쩍새처럼 아침부터 계속 그치지 않고 내지르는 요란한 매미소리, 그리고 우측 중부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량소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생식을 위한 몸부림인가.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명초(보라 및 연보라색 작은 꽃 모양이 솜다리와 유사)에 셔터를 눌렀다.
삼각점이 박힌 고추봉에 올랐다.
리본을 매달았다. 이제 막 정오가 통과하고 있다.
스틱을 길게 하여 거미줄을 걷어내며 굴피나무 숲을 지난다. 깊은 내리막길이다.
지척에서 자지러지게 울던 매미가 외적(?)의 침입을 알아채고 무 베듯 울음을 뚝 그친다. 막 지나가자 다시 울음을 계속한다. 사거리 갈림길이다. 우측은 산곡동 거문다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좌측은 팔당호邊 석림동 길이 될 것이다. 직진 길목에 리본을 매달았다. 올라 치는 길섶에 지름 3~4Cm의 머리를 내민 흰 주름버섯 여러 개가 보인다. 서어나무과 나무 그늘에 아늑한 휴식처가 있다.
<자연은 인류의 어머니, 한세 전산고교 산악부> 리본이 걸려있다.
머리띠를 풀러 한껏 먹은 땀을 짜냈다. 그 동안 10회 이상 반복된 동작이다.
홀로 산행은 부담 없어 좋다. 제멋대로 쉬고 싶으면 쉬고, 가고 싶으면 가는 無碍自在다.
개암나무가 한참 열매를 익히고 있다. 연초록 잎사귀에 가려진 씨앗이 도토리처럼 소담스럽게 앉아있다. 다시 올려치고 내려서는 급경사 길이 몇 차례 거듭됐다. 안부 공터에서 상의를 벗어 땀을 털었다. 그 짬에 날 벌레들이 달려들어 여기저기 침을 놓는다. 빨래처럼 젖은 긴소매 상의를 다시 걸칠 수밖에 없었다.
12시 35분. 경사로를 오른다.
지름 1Cm 내외로 보이는 진노란 대가리를 처 들고 땅 밑에 줄기를 박은 '달걀버섯'이 흔하게 박혀있다.
12시 55분
'용마산'이란 비석과 <1987 복구>라고 표기된 삼각점이 박힌 용마산 정수리다.
주변엔 기린초 군락이 있다. 리본을 매달며 배낭을 내려놨다.
걷다 쉬고 기록하며 지나는 능선이 자연 지체된다. 이젠 내리막길이라 생각하고 냉동시켜온 캔 맥주를 뜯었다. 그 동안 흘린 땀에 대한 보상이라도 되려나 싶다. 원시림을 달려온 기분이다. 행인도 없는 혼자만의 산행은 느긋한 흥분이 적당히 섞여있다. 숲이 가려 동북쪽 운길산과 팔당호 일부만 눈에 잡힌다. 아이들 생각으로 머리 속이 채워진다. 나이 생각을 할수록 초조한 마음이 더욱 혼돈해 진다. 50대 후반을 걷는 모든 이들의 공통분모를 찾아본다.
1시 05분, 자리를 털었다.
내려서는 길목에 '한세 전자학교' 리본이 또 보인다. 본격적인 하산로다.
5분쯤 내려가니 이장으로 파헤쳐진 무덤 자리가 보기 거북한 흔적으로 남아있다.
일을 마쳤으면 구멍을 메우지도 않은 무책임한 사람들의 행태가 祝福없이 보였다.
주변엔 원추리가 무성하다. 무덤과 원추리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死者의 恨을 대신하는 꽃인가. 본디 죽음이 무상할진대 노란 원추리도 무상을 뛰어 넘을 순 없잖은가. 조화를 이룬 마타리 여러 그루가 옆구리에서 큰 키를 자랑한다.
뜨거운 햇볕이 정수리를 내려 쬐는 하산 길이 완만하다.
"섭섭이!"
홀로 산행 때 즐기는 흥얼거림이다. 그리곤 싱긋 웃음이 나온다.
막내에 대한 마음이 점점 더 여려진다.
늙어간다는 표시인가.
잠시 시간이 나면 그 녀석이 어느새 녀석의 표정이 입안에 가득히 채워진다.
치 사랑이 아니라 내리 사랑이라 더니…
항공기 폭음이 자주 들린다. 삼거리다.
우측으로 '푸른 솔 산악회' '서울의대 空 산악회' 리본이 나무 끝에 매달려 있다.
장다름 산악회리본도 옆에 달았다.
'엄미리' 쪽 길이다.
직진 능선을 타게되면 무명봉 하나 넘어 '각화사'와 '과학동'으로 내려가 45번 지방도로를 만나게 된다. 요란한 자동차 소리, 그리고 고속도로와 일반국도가 평행선을 그으며 마을을 지나간다. 주야로 들리는 자동차 소음에 이곳 숲은 면역이 됐을 꺼다. 도로변 카페에서 뱉어내는 대중가요 소리에도 이력이 생겼을 것이다.
노간주나무 군락지를 지났다. 곳곳에 덜 익은 도토리를 안고 떨어지는 작은 참나무 작은 가지는 '거우벌레'의 장난이다. 온 몸으로 꽃과 열매를 만드는 식물의 노력은 인간의 잉태와 출산과정에 비유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고압 전선철탑 아래로 1기의 무덤이 보이더니 바로 아래 雙封墳이 있다.
마주친 사거리에서 좌측 계곡을 내려서니 공동묘지가 여전히 代辯花라도 되는 원추리와 함께 즐비하게 보인다. 어느 門中의 공동묘지인성 싶다. 무덤群을 막 벗으려니 숲이 햇빛을 차단한다. 작은 계곡이지만 급한 경사에 계류소리가 요란하다. 혼자라는 생각에 편안한 마음으로 배낭과 상의를 벗고 대충 몸에 달라붙은 땀을 씻어냈다.
세상이 내 것이다. 그 상쾌함을 무엇과 비교하랴 싶다.
싫증나도록 물을 마셨더니 생목이 오른다.
잠시 내려서니 물먹은 支流가 여러 개 보인다.
수맥이 풍부한 산인가 보다. 용마산에 물이 없으면 용이 살수가 없을 것이다.
조금 아래 제법 넓은 계류가 보이고 방화로가 나타난다. 먼지가 폭폭 일어나는 사막을 걷는 기분이다. 황토로 덮인 도로는 산의 속살을 보는 것처럼 마음마저 아리다. 정육점 냉동실 쇠 걸이에 걸린 껍질 벗긴 소고기 덩어리와 흡사하다. 길바닥엔 트럭 타이어 자국이 흔하게 보이는 폭력범들 몸에 새겨진 문신처럼 깊게 파여져 있다. 우측 둔덕 위에는 잘 가꾼 무덤이 위세를 자랑한다. 산 자를 위한 무덤인가. 죽은 자를 위한 무덤인가. 모두가 허망하고 무상한걸 인간은 자꾸 합리화를 위한 자기기만을 위한 化粧에 빠져 있다.
이젠 햇볕조차 차단되지 않는 숲도 없는 길이다. 도로 쪽 차량소음을 가락 삼아 들린다.
길 좌측에 수십 톤 되는 입석이 하나가 보인다. 모양 암석 바탕에 붉은 글씨로 <竹林苑>이라 쓰여있다. 이 좋은 곳이 사유지인가. 칡덩굴 위를 깡그리 덮은 실새삼은 오만한 征服軍이다. 기생식물인 실새삼은 곧 칡덩굴을 枯死시킬 것이다. 자연 현상도 은밀하고 상세하게 관찰하면 소설이나 드라마처럼 흥미 있다. 모든 생물의 생존이 다 그러하지 않느냐 반문하면 할 말을 잃는다.
오후 2시 20분.
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중부고속도로가 눈앞에 드러났다.
좌우로 콩밭, 콘테이너 박스, 버섯재배 비닐 하우스, 밤나무 숲이 널려있다.
2층 양옥(음식점) 어깨 위에 받혀있는 300여 평 넓이의 저수지가 녹색 빛을 띤 채 평화로운 모습으로 앉아있다. 바로 아래엔 민가 두 채가 있다. 정문 앞에 2~3일분 신문이 쌓인걸 보니 빈집인 모양이다. 이 좋은 장소에 빈집이라.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엄미리.
고속도로 밑 두 개의 토끼굴을 빠져 나오니 고속도로로 잘려버린 엄미리 마을이 다시 이어진다. 음식점 앞에 약수가든(은고개, 761-2939)이란 상호를 옆구리에 쓴 감청색 봉고 한 대가 이 따가운 태양 볕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으며 오후의 나른함을 견디고 있었다. 창문으로 음식점 안을 들여다보니 손님이라곤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텅 빈 유령 집 같다. 마을길을 따라 잠시 내려오니 하남-광주를 연결하는 왕복 4차선 43번 國道 버스 승강장 벤치에 배낭을 내려놓았다.
오후 2시 30분.
오전 8시 50에 올랐으니 총 5시간 40분이 소요됐다.
길 건너편엔 검게 구운 원목으로 만든 2층 목조건물에 '토마토'란 이색적 상호가 붙어 있다. 주변엔 여러 채의 음식점들이 요란한 음악소리와 실외 장식으로 손님의 시청각을 묶어 두려고 작은 엄미리 마을을 피곤으로 적셔있다. 예전 평화스런 농촌 마을 엄미리는 사라지고, 카페村 엄미리만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한가한 승강장 주변엔 코스모스가 만발하고, 키 작은 여러 가지 화초가 한가롭게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炎天과 함께 붙잡고 있다.
오후 2시 46분.
강변 전철역까지 운행되는 13번 버스에 오르니 에어컨 바람에 절어버린 땀이 앗긴다.
차내 라디오 뉴스는 오늘 서울 기온이 섭씨 35도 5분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상행하는 버스 안에서 우측 능선을 復碁하듯 낱낱이 훑어봤다.
밀렸던 피곤이 미소로 변한다.
천호동 4거리 현대백화점 앞 정류장에서 하차(3시 30분)했다.
5호선 지하철에 몸을 싣고 지루한 시간을 감내했다.
松亭역 도착 시간은 4시 50분이었다.
불볕보다 더 뜨거운 오후가 지나가고 있는 시간이다.
예서 방화동 집은 지척이다.
첫댓글 <제목 착오> 2001년 여름에 만난 <검단-용마산>입니다.
하산 지점서 출발지(강동역)까지 버스나 다른 교통편 좀 알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