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울릉도에 주님의 복음이 전해진지 90년 되는 해이다. 1909년에 울릉도에 첫 교회가 설립된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기념해서 울릉도 시찰회에서는 `울릉도 기독교 90년사"를 발간했다. 그 책을 받아본 나의 감회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의 첫 목회지로서 젊음을 바친 기록과 사진이 고스란히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울릉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첫 발을 내디딘 것은 1950년 5월14일. 6.25전쟁이 나기 불과 열흘전이었다. 그때 내 나이는 35세였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평범한 전도자로 울릉도 저동교회란 작은 교회에 가서 일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교인이 십여명에 불과했으나 점점 부흥해서 1백명을 넘어서게 되었고 나는 전도사가 되고 장로가 되었다. 결국 신학교를 졸업한 뒤 목사가 되었다.
나는 울릉도에서 12년간 목회를 하다가 사정에 의하여 울산과 부산에 나와서 목회를 계속하다가 정년 은퇴를 했지만 마음속에는 늘 첫 목회지 울릉도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이제는 내 나이도 84세의 고령인데 과연 뱃길을 감당해낼까 처음에는 염려도 됐지만 자녀들과 상의한 끝에 떠나기로 결심을 했다. 울릉도에서 출생한 넷째 아들 기성목사와 다섯째 아들 기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등 두 아들이 동행하기로 했다. 넷째 자부와 손녀 손자도 같이 가게 되었다.
11월21일 주일 오후에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울산 공항에 내렸더니 이전에 울릉도에서 첫 시찰장을 하신 이장영목사님의 아들인 이규호 목사(현 총회장)가 어떻게 알고서 승용차를 보내줘 우리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경주교육문화회관에서 하루밤을 잔 뒤 경주중앙교회에서 시무하는 김창선목사가 포항 여객선 터미널까지 승용차로 바래다 주었다.
오전 10시에 선플라워호를 탔는데 날씨가 좋아 3시간만에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처음 울릉도에 들어갈 때에만 해도 천양환이라는 발동선을 타고 24시간이나 걸렸으니 금석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신비의 섬 울릉도"라 새겨진 큰 간판이 서있는 도동항에 내리니 남양제일교회 임종훈목사와 장로님 일행이 마중나와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항구에서 가까운 선창장여관에서 짐을 푼후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이날 오후 2시쯤 저동(현재는 도동3동이라고 함)에 있는 동광교회 김영암 전도사의 안내를 받아 첫 목회지였던 작은 모시개(小苧洞)에 들렀다. 아이들이 태어난 옛 사택은 양옥으로 탈바꿈했다.
11월23일 울릉도 방문 이틀째 되는 날 아침식사를 한 뒤 오전 10시부터 울릉도를 일주하는 유람선을 탔다. 두시간동안 섬일주를 하는데 경치도 좋았지만 마을 곳곳에 십자가가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기독교가 뿌리를 내린 것인데 풍어제때 아무도 제주를 맡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섬 일주를 마친 후 오후에는 남양제일교회 임종훈 목사의 안내로 천부제일교회에 갔다. 방문 사흘째인 11월24일에는 도동제일교회에서 점심을 했다. 마침 포항에 나갔던 울릉도 시찰장 오규환 목사가 들어와서 함께 점심을 했다. 오목사는 본시 울릉도에서 출생하고 울릉도에서 자라서 내가 울릉성경학원 원장을 할 때 입학해 첫 졸업생이 된 뒤 신학교를 졸업해 목사가 됐다. 오목사는 그동안 울릉도를 떠나지 않고 울릉도 9개 교회를 잘돌봐왔다.
이날은 수요일이라 수요예배를 드리는 날이었는데 오목사가 시무하는 동광교회에서 설교를 하기로 했다. 이 교회의 전신이 바로 내가 첫 목회를 했던 저동교회다. 그런 만큼 이날 설교는 감회가 남달랐다. 1950년에 와서 첫 설교를 했는데 거의 50년이 된 뒤인 99년 막바지에 다시 설교를 하게 된 것이다. 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내게서 세례를 받고 내 주례로 결혼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중 한 권사님은 내 주례로 결혼을 했는데 수요예배를 마친 후 시원한 오징어 내장국과 감자떡을 차려줘 맛있게 먹었다.
방문 나흘째인 25일 아침은 어제 저녁을 대접한 권사님이 자기집으로 초대해 함께 했다. 내가 울릉도 목회할 때 결혼 주례를 서줬기 때문에 늘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다가 이번에 은혜를 갚는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아침 식사후 남양제일교회 임종훈 목사가 봉고차를 가지고 와서 옥천제일교회와 간영교회를 방문, 예배를 드렸다.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저녁에는 남양제일교회 장로님이 염소를 한 마리 잡아 교회 교인들과 함께 풍성한 만찬의 시간을 가졌다.
11월26일. 이날은 울릉도를 떠나기로 예정된 날인데 날씨가 흐리고 폭풍주의보가 내려 배가 뜨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아침은 간영교회에서, 저녁은 통구미교회에서 대접을 받은 뒤 남양제일교회 금요기도회에서 말씀을 전했다. 밤 늦은 시간이었지만 임목사가 숙소까지 바래다 주고 자정 가까이까지 대화를 나누다가 돌아갔다. 임목사는 이번에 울릉도 기독교 90년사를 정리한 실무자이다. 11월27일 토요일 마침내 배가 뜬다는 것이었다. 울릉도는 주님께서 허락해야 들어오고 허락해야 나간다고 했는데 그야말로 월요일에 들어와서 토요일에 나가도록 일정을 짜놓은듯 했다. 넷째 아들이 주일예배를 섬기도록 하신 것이다.
오후 4시에 배가 출발한다기에 도동항에 나갔더니 여러 교회 목사님과 장로님들, 그리고 전도사님이 나와주셨다. 이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고 배에 오르니 한 주간의 일들이 마치 주마간산격으로 스쳐지나갔다. 그들과 함께 기도하고 음식을 나눈 일들이 마치 천국생활을 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