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야누슈 코르착
옮긴이 : 노영희
발행일 : 2002년 12월18일
판형 : 변형 4×6판 (양장본)
면수 : 208
가격 : 8,500원
분야 : 비소설 (교육에세이)
ISBN : 89-90220-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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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여, 아이들을 가장 편한 길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길로 이끌어 주십시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책의 저자 야누슈 코르착에 대해 “진정한 종교심과 진실한 도덕성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테레사 수녀, 마틴 루터 킹과 비견되는 야누슈 코르착의 삶과 사랑, 아름다운 죽음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나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까지 진한 감동을 전해 줄 것이다.
그것은 그가 가스실로 향하는 아이들과 함께 바르샤바의 거리에서 죽음의 행진을 같이한 순교자여서가 아니라, 그가 위대한 작가이며 의사여서가 아니라, 불쌍하고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의 인권 옹호를 위해 헌신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어린이들을 깊이 믿고 사랑했으며, 그 사랑 때문에 살고 또 죽음을 맞이할 정도로 진실하고 겸손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하여
이 책은 야누슈 코르착의 『어린이를 사랑하는 법(How to Love a Child)』과 『어린이 존중(Respect for the Child)』에서 코르착의 교육 철학과 아동 인권을 위한 그의 글들을 엮은 샌드러 조지프의 『A Voice for the Child』를 번역한 것이다. 편역자인 샌드러 조지프는 서문에서 “야누슈 코르착의 글은 시적인데다 마치 아이들이 직접 말하는 것 같아 읽는 사람이 감명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는 우리를 이끌어 어린이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게 하고, 우리 안에 잠자고 있던 어린아이의 마음을 깨워 주는 안내자”라고 말하고 있다.
야누슈 코르착의 교육 이론은 긴 글이 아니다. 그의 교육 이론은 짧은 시처럼 아름답다. 시는 언어의 함축성이 생명이다. 그저 한 번 슬쩍 훑어보아서 그 뜻을 음미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것이 곧 시의 특징이자 생명이다. 그는 이론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간단한 형식으로 가장 진실한 삶의 의미를 드러내서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한다.
― 책 속에서
어린이는 미래를 살 사람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사람입니다.
어린이를 대할 때는 진지하게, 부드러움과 존경을 담아야 합니다.
그들이 성장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든 간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모든 어린이의 내면에 있는 ‘미지의 사람’은 우리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 26쪽
삶이 당신에게는 무덤과도 같은 곳이어도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그곳을 목장으로
볼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 47쪽
자녀들이 기대대로 자라 주지 않는다고 실망하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는 단계마다 실망을 느끼게 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지요?
그것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조언이나 위로를 베푸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 가혹한 심판자가 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 57쪽
흙이 그 위에 내리쬐는 햇빛에 대해 감사하던가요?
나무가 자신이 움트고 나온 씨에게 감사하던가요?
지빠귀새는 포근한 가슴으로 자기를 따뜻하게 감싸준 어미새에게 감사의 노래를 부르던가요?
당신은 당신의 부모님에게 받은 모든 것을 아이에게 선물로 주나요?
아니면 만기 이자까지 셈해서 돌려받기 위해 모든 항목을 다 꼼꼼히 적어 놓으면서 아이에게 그저 빌려 주는 것인가요?
당신의 사랑은 대가를 돌려받기 위해 베푸는 것인가요? ― 72쪽
아이의 생각이 어른 생각보다 좁거나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저 어른과 다를 따름입니다.
아이들은 지성으로 사고하지 않고, 감성으로 사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과 대화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입니다. ― 85쪽
착한 아이와 다루기 쉬운 아이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잘 울지 않고, 밤에 잘 깨지 않고, 밝고 온순한 아이.
이 아이는 착한 아이입니다.
요즘 교육 방식은 아이들을 다루기 쉽게 만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재우고, 숨죽이게 하고,
그의 의지와 자유를 구성하는 모든 것과 아이의 기질을 조율하고
아이가 바라고 의도하는 것들을 이끌어 내는 힘을 억누르려 합니다.
이렇게 하면 행동거지 바르고, 말 잘 듣고, 순종적이고, 다루기 쉬운 아이가 될지는 모르나

그 내면 세계는 나태해지고 고여서 썩어 간다는 사실에는 무심합니다. ― 148쪽
도시의 아이들은 햇빛, 숲, 강이 있는 곳으로
캠핑을 가면 기쁨과 양분을 흡수합니다.
도시에서는 말썽쟁이였던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돌보기도 하고,
수줍음 많고 둔하던 아이가 대담하고 쾌활하고
적극적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 158쪽
코르착의 삶과 사랑과 아름다운 죽음
야누슈 코르착은 1879년 7월22일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헨리크 골드슈미트(Henryk Goldszmit)다. 조부는 존경받는 의사였으며, 아버지 역시 변호사로 코르착은 행복하고 안정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코르착이 11살 되던 해 아버지의 정신 질환이 깊어져 18살 되던 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 후, 그의 집안은 바르샤바의 빈민 거주 지역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이후 학교에 다니면서도 어머니, 할머니, 여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고, 밤에는 짧은 소설과 풍자문, 시 등을 써서 문학 주간지나 다른 잡지사에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스무살 되던 해 코르착은 폴란드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파테레프스크(Paderewsky)' 상을 받으면서 자신의 소설 주인공인 ’야누슈 코르착‘을 필명으로 사용하게 된다. 그는 “글쓰기는 그저 글일 뿐이지만 의술은 행동이다”라는 말과 함께 바르샤바 의과대학에 진학했고, 대학 재학 중 바르샤바의 슬럼가에 사는 이들이 겪는 불이익과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사실적으로 그린 소설 『거리의 아이들(Street Children)』을 발표한다.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은 “사회를 개혁하려면 먼저 교육을 개혁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1904년 의사 자격을 취득한 코르착은 바르샤바 아동 병원에 취직한 후 이듬해 징병되어 러시아군 군의관으로 러일전쟁에 참가한다. 전쟁이 끝난 후 베를린, 파리, 런던 등지를 여행하며 의학 공부를 계속하고 폴란드로 돌아온 코르착은 바르샤바에 사는 빈곤층 아이들의 여름 휴가를 조직하는 어린이 캠프 모임의 고문/교사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아동 보호와 교육에 힘을 쏟기 시작한다.
의사로서 그는 부유한 환자들에게는 돈을 받았지만 가난한 환자들에게는 오히려 약 살 돈을 주고 가기도 했다. 그러나 의술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한 그는 1912년 “캐스터 오일 한 숟갈이 가난이나 고아라는 사실을 치료해 줄 수는 없었다”라는 말과 함께 그의 삶이 보장된 의사나 작가의 길을 포기하고 고아원을 설립하여 교육에 헌신하기 시작한다.
코르착이 직접 설계하고 디자인한 어린이집(Dom Sierot)은 당시 유럽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시설이 좋은 고아원이었다. 코르착의 교육 철학과 사상이 묻어난 그의 고아원은 아이들에게 행복의 동산 같은 곳이었다.
코르착은 아이들이 선한 마음을 타고 났으며, 기회를 주고 올바르게 이끌면 더 나아지려고 애쓴다는 것을 확신했다. 또한 어린 시절은 앞으로의 삶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매 순간은 그 나름대로 소중하며, 아이들이 어떻게 될 것이기 때문에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그대로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어른의 눈으로 바라보지 말고 아이가 사고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1939년 9월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했다. 1년 후 나치는 바르샤바의 모든 유대인을 유대인 주거 지역으로 이주시켰다. 굶주림과 질병이 만연한 유대인 주거 지역에서 코르착은 ‘아동 보호소’를 만들어 아프고 죽어 가는 아이들을 임시로 수용하는 병원을 맡는다. 상황이 더 악화되는 가운데서도 코르착은 “누군가 ‘모든 사람이 비인간적으로 행동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더 인간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코르착이 죽기 직전까지 실천한 것이다.
1942년 8월 6일 ‘죽음의 행진’이라고 불리는 트레블링카의 가스실로 향하는 기차에 오르기 위해 바르샤바의 거리를 행진한 코르착과 200여 명의 아이들을 목격한 목격자는 이렇게 증언한다.
“죽을 때까지 그 광경은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중략) 그날은 무척이나 더웠다. 아이들은 네 명씩 짝을 지어 걸었다. 코르착은 제일 앞줄에서 양손에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고개를 꼿꼿이 들고 걸었다. (중략) 그들은 암살자들에 대한 멸시를 얼굴에 가득 담고 죽음을 향해 걸어갔다. 게토의 경찰 한 명은 코르착을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경례를 붙였다. 독일 병사들은 ‘저 사람 도대체 누구야?’ 하며 서로에게 물었다. (중략) 학살 앞에서 우리의 무력함을 비관하며 나는 흐느껴 울고 또 울었다.”
폴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영화 감독인 안제이 바이다는 1990년 야누슈 코르착의 생애를 그린 <닥터 코르착>이라는 흑백 영화를 만들었다. <코르착 박사와 그의 아이들>이라는 연극으로 공연되기도 한 코르착의 삶은 그의 죽음만큼이나 눈부시고 아름답다.
그림을 그린 이차크 벨페르 교수는...
1923년 폴란드에서 태어나서 바르샤바의 야누슈 코르착 고아원에서 자랐다. 바르샤바가 독일군에 함락되었을 때 러시아로 탈출한 그는 종전 후, 폴란드로 돌아와서 유대인들이 학살당한 광경을 보아야 했다. 1947년 이스라엘로 밀항하다가 영국군에 붙잡혀 키프러스에 억류됐고, 그곳 감옥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48년 이후 이스라엘에서 살면서 텔아비브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세계 각지에서 전시되고 있다.
― 아이들이 고아원을 떠날 때 코르착의 고별 인사말
“안타깝게도 너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이 몇 마디 말밖에 없구나.
신을 너에게 선물할 수도 없다. 신은 네 마음 속에서, 조용한 명상 속에서 네 스스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너에게 고향을 줄 수도 없구나. 고향 역시 네 마음 속에서 찾아야 한다.

사랑하는 마음을 줄 수도 없다. 용서 없이는 사랑이 있을 수 없고, 용서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스스로 배워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이거 하나 더 나은 삶, 진실하고 정의로운 삶을 위한 갈망.
오늘은 그것이 없을지라도 언젠가는 그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갈망이 너를 신, 고향,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끌지도 모르겠구나.”
야누슈 코르착(Janusz Korczak)의 프로필
1878년 7월22일 바르샤바에서 태어난 코르착은 소아과 의사이자 교육자, 철학자이며 위대한 휴머니스트이다. 아동 인권 옹호의 선구자로 평생을 가난하고 버려진 폴란드의 고아들과 어린이들을 돌보는 데에 헌신한 그는 폴란드 최고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기도 하다. 1912년 유대인 고아들을 보살피는 어린이집(Dom Sierot)을 설립한 그는 1939년 9월 독일 침공으로 바르샤바가 함락당하면서 200여 명의 아이들의 생존을 위해 눈물겨운 노력이 계속되지만 결국 나치의 학살 앞에 1942년 8월 6일 그가 돌보던 200명의 아이들과 함께 트레블링카의 가스실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싣는다. 지인들의 구명 운동으로 생존할 수도 있었음에도 코르착은 죽음의 행진을 선택했다. 죽는 순간까지 아이들이 자신을 신뢰하고, 인간의 선(善 )을 믿는 마음을 저버리지 않게 하고 싶었던 코르착은 아이들의 인권을 위해 확고한 신념과 책임감으로 아이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당당히 맞서 싸운 인물이다.
이 책을 옮긴 노영희 교수는...
중앙대학교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전남대학교에서 유아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중앙대학교 유아교육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한국교원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유아교육학개론』, 『유아교육기관 운영관리』, 『유아를 위한 언어교육의 이론과 실제』, 『유아 놀이지도』(고등학교 교과서), 『유아 놀이?표현 지도』(고등학교 교과서)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아이에게 책임감을 심어 주는 아주 특별한 방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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