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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희생자, 살아서든 죽어서든 국가가 책임집니다 6·25전쟁 57년을 지난 오늘은 과거의 상흔은 잊혀진지 오래지만 아직도 생존한 6·25세대는 그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한없는 슬픔, 그리움, 회한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6·25세대도 사라지고 세파가 그들을 잊게 하고 해마다 찾아오는 6월은 이벤트성 행사인양 지나치는 바람과 같아진다. 그러나 모진 풍파와 세월의 흐름 속 에서도 호국영령들은 나라와 국민이 한 무언의 약속이 지켜지기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삼천리강산 곳곳에서 피를 뿌리며 마지막 순간까지 나라를 지켜내어 살아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겠다는 오직 하나의 일념으로 자신을 초개처럼 산야에 버렸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인정받거나 위대하거나 유명하지도 않았고 촌부로, 촌부의 아들, 형제로 지극히 평범한 삶을 영위하면서 나라의 위기에 바라는 것 없이 자신을 던진 진정한 애국자들이다. 세계 전쟁사에서 한 나라 안에서 유래 없는 사상자를 낸 6·25의 참상은 57년이 지난 오늘에까지도 고스란히 남아 삼천리 금수강산 여기저기에서 고향과 부모, 형제를 그리며 방황하는 13만 여구의 유해들의 소리가 메아리쳐 들려온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이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었던 유일한 바람은 바로 이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었을 것이다. 형제자매 그리고 부모님의 품으로 살아서 돌아가려는 이들의 염원은 57년이 지났건만 죽어서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2000년 육군본부 소속이었던 유해발굴감식단은 2007년 1월부로 국방부로 편입되어 국가의 영구사업으로 발전시켜 이 땅에 이름 없는 유해가 한 구도 없도록 하겠다는 그들의 각오와 일상을 들여다보고 이들을 이끌고 있는 박신한 단장과 인터뷰를 통해 6월 호국보훈의 달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국가재건과 먹고 사는데 급급하여 관심을 가져야 할 곳에 소홀이 했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이 사업을 하게 된 것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는 국가가 보호한다는 사회적 계약인 약속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그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풍요 속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후 이런 일들은 없어야겠지만 혹여 이런 일들이 생겼을 때 희생자들은 죽어서든 살아서든 국가가 보호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업입니다. 이는 국가와 국민간 신뢰를 쌓는 일이고 평상시는 애국심을, 전쟁시에는 전투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발굴에 참여한 병사들은 호국의 얼을 잇는 중요한 의무를 수행한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유해발굴감식단이 국방부 산하 정식부대로 설립되었습니다. 국가가 직접 나서서 정식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고 마지막 한분이 돌아오기 까지 이 사업은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적 관심과 당시 참전했던 전우 가족들의 제보와 경제적 후원이 중요합니다. 교통비 및 현지 답사, 현장에서의 전문가 투입을 비롯 유전자 검사 등 제반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 KT&G의 경제적인 후원을 통해 이 사업이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고 올 상반기 발굴실적이 1년 평균을 이미 넘어섰습니다. KT&G의 관심과 후원에 깊이 감사드리며 이를 계기로 개인, 기업,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더 큰 관심과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유가족들이 채혈에 적극 참여해 주셔야 합니다. 요즘 유전자 감식이 상용화되어 가족의 채혈은 희생자의 신원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세월이 흘러서도 유가족의 채혈이 있으면 반드시 가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내년부터는 전문인력을 채용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도록 자리매김하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현재는 미국의 전쟁사 실종 확인 사령부가 유일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계에서 두 번째입니다. 이 사업은 한국전쟁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시작됐습니다. 처음 당시는 한시적인 사업이라 반신반의 했습니다. 시작해서 관심을 갖다 보니까 사업의 의미를 되새기게 됐고 국가 영구사업으로 자리매김 하는데 7년 세월이 흘러간 것입니다. 앞으로 이 사업은 재난, 애국지사 해외유해송환, 발굴 등 까지도 책임질 수 있도록 발전시켜나갈 것입니다.
국민신고 의무화 등 법을 제정해서 법적 뒷받침이 절실합니다. 국가사업법에 명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 욕심을 내어 조직이 확대된다면 권역별로 순차적으로 발굴 작업을 함으로써 어느 지역은 끝냈다는 확신을 갖고 싶은데 조직의 한계가 있습니다. 앞으로 조직도 확대하고 전문인력 등도 확보해 국가 영구사업으로 발전시켜나갈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관심이 절실합니다.
매년 평균 200구정도의 유해를 발굴해 가족을 찾고 혹 무명으로 국립묘지에 안장하여 현재(2007년 5월 9일)까지 1천7백11구를 발굴했다. 이중에는 아군이 1천3백25구 적군(중공군포함) 3백68구, 감식중에 있는 18구이다. 유류품은 4만5천2백93점이 출토돼 보관되고 있다. 유해발굴감식단은 전군에서 차출(육 해 공군, 해병)된 병사들로 구성되고 각 대학의 고고학, 인류학 등 교수들의 자문과 국과수에 의뢰 유전자 감식을 통해 가족을 찾고 있다.
유해 발굴 현장의 모습 유해 발굴 현장의 모습은 가지각색이라고 말한다. 전장의 와중에서 유해의 모습은 그 당시의 급박함을 읽을 수 있을 정도다. 발굴현장의 유해는 15세 정도의 학도병에서 청년 및 장년까지 다양한 나이층을 이루고 유품으로 학교 버클, 만년필, 라이터, 수통, 담뱃갑과 갑안에 든 담배의 흔적이 많이 발굴된다.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야산에서 전투흔적을 찾아 먼저 주변부대의 협조로 1차 굴토작업을 한 후 전문 인력이 투입된다. 마치 바닷가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 혹 제보가 있으면 제보자와 현장을 찾기도 하지만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지형이 변해 사방 1km를 파헤쳐야 한다. 유전자 감식 국과수에 의뢰 또 유해를 발굴해서도 유물을 출토하고 증거를 찾기 위해 조심성 있게 하는 것은 물론 유전자 감식 샘플을 채취해 국과수에 의뢰해 신원을 밝히기 까지는 적게는 1개월에서 수개월에 걸치는 작업이다. 이런 작업을 통해서 지금까지 유가족을 찾은 경우는 흔하지 않다. 다만 참전자의 신원만 확인된 채 국립묘지와 현충원에 안장된다. 지금까지 유가족을 찾은 유해는 24구라고 한다. 이중 23구는 현충원에 안장됐고 1구는 선영에 안장했다. 유가족을 찾은 경우 감식단은 생애 최고의 보람을 느낄 만큼 유가족들의 고마움 표시가 지극정성이라고 말한다.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격인 유해의 발굴이지만 찾았을 때의 보람은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 시간은 가고 가족들조차 세월을 이기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감식단원들의 하루하루는 너무 짧아 아쉬움만 남는다. 지금 이순간도 유해를 찾아야 할 동년배나 가족들이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감식단원은 유해의 흔적이 있는 곳이면 시간을 다툰다. 그나마 지금은 유전과학이 발달해 유해의 신원파악과 가족 찾기가 용이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유해를 찾는 가족들의 관심은 반면 멀어진다. 지나온 세월에 지쳐 포기한 사람이 많아서다. 유가족 찾기 위해 채혈 실시
유해발굴감식단은 유가족에게 유해를 찾아주기 위해 올 6월6일 현충일에는 유가족 찾기 채혈 행사를 실시한다. 발굴도 중요하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유가족이 채혈함으로써 언제 찾을지 모르지만 가족의 품으로 유해를 보내기 위해서다. 감식단은 이미 국가보훈처에서 3만여명의 자료를 입수해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내 현충일 채혈협조를 구해놓고 있는 상태다. KBS공개홀에서 6월6일 10시에서 12시까지 유가족 채혈실시는 한시적이지만 대 국민홍보를 하는 행사이다. 그리고 유가족이면 유해를 찾기 위해 전국의 18개 군병원에 채혈을 신청하면 전산망을 통해 유해발굴사업단에 기록되어 언젠가는 그리운 부모 형제를 반드시 찾을 수 있게 된다. 유해 찾기 위해 제보가 중요 그리고 무엇보다 작은 제보하나가 중요하다고 한다. 해병3기 이수경 일등상사(전역당시)의 제보가 있었다. 같이 참전한 전우 | ||
기사등록 : 2007-05-23 |
첫댓글 만구씨 좋은 기사자료 잘보았습니다. 앞으로 구포1동방에 활동사핳 올려 주길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