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마지막 모로족
1999년 9월 10일 네바다 사막 메타 연구소 | |
겔버박사는 대령에게 불만 섞인 푸념을 했다.
“이런 걸 설명한다고 해봤자 이해할 양반들이 아니잖아.”
네바다 사막 미군 생물학 연구소(일명 Meta)에는 정계의 거물급 인사들과 고급정부요원들이 어떤 설명을 듣기 위해서 컨퍼런스 룸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보통의 안건들은 화상회의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들 거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화상회의를 할 경우 영상정보를 해킹당할 위험이 있었으며, 입체적이고 다이나믹한 설명도 어려웠다.
대령은 겔버박사의 눈을 쳐다보면서, 영어를 가르치듯이 정확한 발음으로 말했다.
“박사 저들은 학생이 아니네.
중요한 것은 저들이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대단하고 ‘중요하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야. 바로 우리를 위해서지. 절대 이 점을 잊지 말도록.”
겔버박사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자료를 들고 컨퍼런스 룸으로 걸어갔다.
생각해보면 대령은 머리가 대단히 비상한 사나이다.
젊은 나이에 장교가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대령은 무슨 일이든 그 일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
컨퍼런스 룸의 실내등이 꺼졌다.
박사는 스크린을 등지고 강당 위에 서있었다. 겔버박사는 연구업무를 도맡아 했기 때문에, 강당에 서서 무언가를 설명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대령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어릿광대처럼 강대위에 서지 않았을 것이다.
잠시 후 스크린에 한 원주민의 모습이 보였다.
‘여러분은 혹시 잭과 강낭콩이라는 동화를 아십니까?’
겔버박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중고자동차 세일즈맨이 된 기분이었다.
‘동화에서 잭의 강낭콩은 잭을 아름다운 공주와 많은 보물이 있는 하늘나라로 인도하게 됩니다.
저는 지금 제게 허락된 시간동안 현대판 잭과 강낭콩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지금 스크린에 보이는 원주민은 서태평양 마리아나 제도에 있는 마야마섬 원주민으로 종족의 이름은 모로족입니다.
이 종족에겐 붉은 전사가 이들을 보호해 준다는 내용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1989년 4월 마야마섬의 관광객들 중 세 명이 모로족의 소녀를 강간한 후 살해했습니다.
며칠 후 붉은 전사가 마야마섬의 호텔에 출현해서 소녀를 죽인 관광객을 포함 총63명을 죽이고 인근의 밀림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처음엔 붉은 전사를 추적하기 위해서 민병대가 조직됐지만 전원 실종. 나중엔 모두 전멸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46시간 정도의 시간차를 두고 델타포스 밀림수색대와 네이비실 밀림수색대가 붉은 전사를 추적했지만 네이비실 부대원 2명을 제외하곤 모두 사망했습니다.
나중에 붉은 전사의 시체를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바로 모로족의 한 명이었습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키 154센티미터 48킬로그램의 신체구조를 지닌 모로족 한 명이 중무장한 군인들을 상대할 수 있었을까요?’
겔버박사는 뒤를 바라보았다.
뒤에 있는 스크린엔 원주민 사진이 넘어가고 다른 그림을 비추고 있었다.
스크린에 붉은 원숭이의 시체가 있었다.
목은 있었지만, 머리가 없었고 골반 이하의 하체도 몸통에 붙어있지 않았다.
‘이 사진이 바로 붉은 전사의 모습입니다. 저격을 당했기 때문에 머리 부분과 골반이하의 조직이 크게 훼손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견 당시 의무병 진술에 의하면 붉은 전사의 심장은 뛰고 있었으며, 체온도 따듯했다고 합니다.
제 견해에서 볼 때엔 확실히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사진입니다.’
스크린에 다른 그림이 떠올랐다. 단단해 보이는 뚜껑이 달린 메스실린더 안에 거대한 올챙이를 닮은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화면엔 그래픽으로 그 올챙이의 각부에 대한 용어가 나와 있었다.
식도라는 용어가 올챙이의 중앙을 가리키고 있었다.
섬모라는 용어는 작은 괄호로 올챙이의 꼬리 하단부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이 이상한 생물의 기관과 조직에 대한 용어가 작성되어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missing organ이라는 용어가 올챙이의 우측 상단을 가리키고 있는 점이었다.
우측 상단엔 뭔가에 의해 찢어진 것처럼, 그 부위를 이루는 조직들은 여름날 건조대의 빨래들처럼 널널해 있었다.
메스실린더 옆에는 작은 줄자가 있었는데, 이상한 물체의 어림한 길이는 대략 15센티미터쯤 되어 보였다.
‘아마 일본사람이 보았다면 회를 쳐서 먹었을 줄도 모르겠습니다.’
대령은 겔버박사에게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내용을 설명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 때문에 겔버는 몇 가지 농담을 준비했는데 이 멘트도 그 몇 가지 중에 하나였다.
어둠 저편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겔버박사는 어둠 속에서 웃고 있는 고위정부요원과 정계인물들의 목소리를 듣고 바보같이 웃는다고 생각했다.
‘사진 속에 보이는 이 말미잘 같은 조직은 독립된 개체로 아직까지는 알려져 있지 않은 생물로 보입니다.
붉은 전사를 해부하던 도중 심장과 연수에 이 생물이 붙어 있었습니다.
저희는 일종의 기생충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생물의 구조는 흡충류라고 알려진 기생충과 유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붉은 전사의 머리부분이 사격에 의한 충격으로 파손됐을 때 이 기생충의 우측상단 부분이 훼손당했습니다.
따라서 그림에서 보이는 표본은 이 생물의 완전한 표본이 아닙니다.
현재 생물학 팀이 마야마섬에서 이와 같은 생물을 찾고 있지만 발견할 것이라고는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편의상 이 생물의 이름을 ‘스키마’라고 명명했습니다. 일본의 고급 횟감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어둠 속에서 또 다시 웃음소리가 들렸다.
겔버박사는 고위 정부요원과 정계사람들이 웃음을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헛기침을 하곤 다시 설명해 나갔다.
고급횟감이라는 겔버의 설명은 단순히 간부들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조크였다.
스키마라는 단어는 겔버가 흥미 있어 하는 유전자 알고리즘의 한 종류였다.
‘저희는 이 스키마가 붉은 전사가 보여준,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힘의 원천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키마는 흡충류와 같은 인체 기생체로 인체에서 영양분을 얻는 대신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메커니즘으로 기생하고 있는 숙주의 육체적 능력을 극한까지 올려준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이 기생하고 있는 숙주에게 뛰어난 육체적 능력을 부여 하여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는 독특한 생존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키마의 독특한 생존전략이 바로 붉은 전사의 비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스크린에 입체적으로 표현된 구조물이 나타났다.
구조물은 3D로 작성된 그래픽이었다.
색은 빨간색, 녹색, 흰색, 노란색을 사용했으며 모양은 포도송이 두세 개를 겹쳐놓은 듯이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동영상이었는데, 반복적으로 상하를 축으로 회전하다가 다시 좌우를 축으로 회전을 반복했다.
때문에 입체적인 그래픽의 구조는 시각적으로 이해하기 용이했다.
‘현재 저희는 스키마의 염기서열을 모두 밝혀낸 상태입니다. 지금 보시는 것은 스키마의 부분 유전자 RS-12로 이 유전자의 작용으로 감염된 사람은 붉은 색의 털을 생성하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겔버박사팀은 스키마에서 포낭을 추출해냈었다. 그리고 포낭 속에서 천여 개에 달하는 충란을 분리해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엄청난 연구비가 투입됐음에도 더 이상의 연구엔 진전이 없었다.
때문에 몇 몇 고위간부가 연구를 중단 할 것을 요구했다.
만일 대령이 아니었다면 연구는 중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령은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설명할 기회를 요구했고 받아들여졌다.
겔버도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설명으로 연구가 중단 될 지, 아니면 계속 될 지가 결정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바보라고 생각하는 저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연구가 중단될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희가 연구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스키마가 까다로운 숙주선택성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이 스키마는 모로족에게만 그것도 선택된 모로족에게만 기생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성과 중 하나로 HLA(Human Lymphocyte Antigen)검사(조직 적합성 검사의 일종)를 이용해서 스키마가 원하는 조직을 탐색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분석결과 인종별로 차이를 보였는데, 백인의 경우 스키마에 감염될 확률은 1억분1이며 흑인의 경우엔 천 이 백만분의1 황인종의 경우엔 육 백만분의 1로 추정됩니다.
또한 인간 이외의 생물이 스키마에게 감염될 경우의 수는 백십만 이십일 조의 일에 해당합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저희 연구에 진척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숙주를 찾게 되면 스키마와 숙주와의 생화학 작용을 연구하여 의학적으로 혁신적인 사실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스크린에 다시 붉은 전사의 시체가 보였다.
‘이 붉은 전사의 목 부분을 보아 주십시오.
하얀 조직이 보이시죠.
바로 붉은 전사의 손상된 조직이 재생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또한 이 붉은 전사의 나이는 대략 5백 60세로 미국의 역사보다 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5백 20세는 일반론적인 상상을 초월하는 나이입니다.
더군다나 붉은 전사의 각 기관은 사춘기의 아이처럼 아주 건강했습니다.’
컨퍼런스 룸의 실내에 불이 들어왔다. 누군가 심각한 얼굴로 겔버박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약간 동화 같은 이야기군. 이번 연구 조사가 잘못됐을 가능성은 없나?'
겔버는 실내등을 켠 상태에서 스크린에 하나의 화면을 보여 주었다. 앙상한 뼈만 남은 미이라였다.
'이 미이라는 91년도에 일본 아와시와 늪 지역에서 발견된 미이라 사진입니다.
그 당시 일본인들은 오차가 11년 미만인 반감기 측정기를 개발했는데, 당시 미국보다 1년 정도 앞선 최첨단 기술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의 분석결과 이 미이라의 나이는 220 세로 판명되었습니다.
일본인들은 미이라의 비강에서 9세기경에 유행한 독감 바이러스까지 찾아냈지만, 일본학자들은 몇 가지 사실을 끝내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미이라와 함께 출토된 유품을 미뤄보아 미이라는 일본인이 아닌 바로 모로족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또한 이 미이라의 간에서 원충류로 보이는 기생충이 발견됐는데, 바로 그 기생충이 스키마와 같은 염기서열을 갖고 있음을 저희 연구진에서 확인했습니다.
모로족이 일본의 아와시와 지역까지 어떻게 흘려들어 갔는지는 밝혀내진 못했지만 이 미이라는 저의 연구를 확인 해주는 보증인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침을 삼키고 나서 질문을 던졌다. ‘어느 정도의 비용이 투입돼야 연구가 완성될까?”
겔버박사가 주춤했다. 그때 앞자리에 앉아있던 대령이 일어나 대답했다.
‘그건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투입된 연구비가 얼마든지 간에 연구가 성공할 경우 투입 금액의 수천 배의, 계산할 수도 없는 이득이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성공 시 수천 배의 이득을 보장하는 프로젝트는 많아.’
정계의 사람들은 의심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마치 자신의 일은 누군가를 의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5년 이내에 성공할 확률이 98%이상 되는 프로젝트는 없습니다.’
대령의 설명이었다.
‘겔버박사 지금 대령의 말이 사실인가.?’
겔버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현재 진척도가 80%이상입니다. 5년 내에 연구가 성공할 확률은 거의 100%에 가깝습니다.’
‘잘 이해가 안 되는군. 이 프로젝트는 스키마에 감염된 숙주 없이는 불가능해 보이는데? 어떻게 그런 계산이 나오지’
대령과 겔버가 뜻 모를 웃음을 지었다. 자신감 넘치는 웃음이었다.
‘그랬군..’
‘그래서 한국에서 첩보부의 활동을 허락해 달라고 한거군. 자네들이 숙주를 찾아낸 게로군’
'현재 저희는 성공적으로 스키마에게 감염된 대상을 양치기 소년이라는 암호로 부르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내용은 이 자리에서 설명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누구도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500살이 넘었다는 붉은 전사의 사진만이 스크린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
첫댓글 정말 흥미 진진 하네요. 실망시키지 않을거라는 말에 동감입니다.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다분히 딱딱한 이야기 속에서 작가의 냄새를 맡으려 노력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