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유일한 1인칭 소설^^
하지만 이게 선택되지 않은 건 잘된 일인 것 같아-_-;;
3인칭인데도 애들 성격이 쓰는 사람에 따라 막바뀌니 원^^;;
“바람을 두려워 말아라 베로니카 저 황금빛 모래가 아름답지 않니”
“내가 이 물동일 옮기고 나면 너는 또 어디론가 도망가겠지”
“내가 원하는 것은 미래에 존재하니”
“언젠가 네가 돌아올 것을 알기에 베로니카, 나는 널 기다리지 않아.”
“라 라라 라라라…(la lala lalala…)”
시골 처녀들이 부르기엔 심오한 노래였다. 물동이를 이고 가는 소녀들 중 유독 푸른빛이 돌 정도로 새카만 머리칼을 흩날리는 소녀는 후렴구를 계속해서 따라 부르며 화음을 넣고 있었다. 저 소녀로군,
“종달새가 우리를 보고 있는데 어디서 날아온 새인지는 모르겠구나, 물동이에 앉아 물을 마시러 왔는지 그건 종달새밖에 알지 못하겠지.”
“라 라라 라라라…”
“…내가 종달새라구요? 이거 영광인데요?”
아까부터 내가 주시하고 있던 소녀가 짐짓 모르는 척 가사를 바꿔 불렀다. 그걸 보고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지. 하긴, 일부러 나 들으라고 하는 건데 못 알아듣고 앉아있으면 그건 더 민망한 일이다. 게다가 가사를 들어 보니 내가 누구인 줄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 소녀의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었다.
“레인 반 첼시, 공주님을 뵙습니다.”
“예? 저…아닌데요?”
“?”
“저어…”
“…젠장, 이 공주가!”
난 그 소녀가 검푸른 가발을 벗는 것을 보곤 이를 갈았다. 젠장, 젠장, 젠장할! 너무도 깜찍하게 속아 버려서, (아니, 끔찍이 맞겠다.) 어디 쥐구멍을 찾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 인간을 공주만 아니면 확 엎어놓고 때려줄 텐데!
“공주님께선 도망가셨어요.”
“…알아요.”
“물 드릴까요?”
데시안식 인사는 안 그래도 없는 내 기운을 더 빠지게 만들었다. -데시안은 사막 국가이기 때문에 물을 준다는 것은 호의의 뜻을 품고 있다. 물론 인사도.-아, 그래. 물이라도 마셔야지, 안 그럼 열 받아 버릴 것 같아.
“네, 주세요.”
내가, 왜, 얼굴도 모르는 공주한테 이런 식으로 당해야 하는 거냐. 절대로 내가 머리가 나빠서라곤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 이래봬도 머리 좋단 소리 꽤나 들었다고.
“…?”
잠깐, 여기서도 속는 건 안 될 말이다. 난 갈색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소녀를 쳐다봤다. 나에게 물을 주려던 소녀는 내 기색에 잠시 멈칫했다.
방긋-
“메리엘 코로나 데시안! 공주님! 거기 서세요!”
갈색 머리 소녀, 그러니까 공주는…환한 미소-능청스럽긴-를 지어 보이곤 튀었다. 이 여자들이! 사람을 갖고 놀아?
우리의 공주님은 어떤 분이시냐, 새카만 흑발을 남자마냥 자르시고 장난 하면 또 따라올 자가 없으며, 상당히…존경스러운 분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레인 반 첼시의 일기 중-
“…….”
내 앞에 계시는 이 분이 공주…님이시란 말이지, 왕자가 아니라? 아깝다. 여러모로 남자로 태어나셨어야 했는데.
“그렇게 웃으면서 쳐다보시면 부담스럽습니다.”
내 말에 공주는 눈을 가늘게 휘며 눈을 빛냈다. 뭐야? 부담스럽게.
“흠…대단한 분께서 미천한 공주에게 무슨 볼일이 있으실까?”
이 공주가…큰 소리가 나야 정신을 차리려나? 분명 이 여자는 성격이 꼬인 게야. 왜 그렇게 빙글빙글 웃는 건데? 아저씨처럼.
“너, 왜 온 거지?”
“공주님이 더 잘 아시겠죠.”
“호오, 해보자는 거?”
“글쎄요, 해볼까요?”
나와 공주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훗, 절 이기실 수 있을까요?
처음으로 공주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잔뜩 긴장해선 주먹을 쥐었다. 흠…좋아, 한번 해 보자고!
“가위, 바위, 보!”(×2)
“우후후, 이겼다.”
크흑, 지고 말았어……(어이, 이성을 되찾으라고.)공주는 처음으로 가짜 표정을 얼굴에서 지웠다. 역시, 공주는 공주란 건가.
“레인 반 첼시, 공주님을 뵙습니다.”
“아니야, 레인 경. 앞으로 마이라고 부르도록. 공주님은 물론 존댓말도 안 돼.”
“에?”
“졌잖아.”
아…그래도 그런 엄청난 시련을 안겨 주다니! 나보고 지금 왕족 모독(인지 뭔진 모르지만)으로 잡혀가란 소린가?
“두 분, 그렇게 놀면 재밌으십니까?”
“응.”(×2)
가위 바위 보가 얼마나 심오한 놀이인데, 그걸 몰라주다니, 라오스 통치자인 샤인 블루의 자서전도 본 적이 없나? 가위 바위 보가 얼마나 우연에 대한 자신의 고정된 운명을…흠흠, 그만 하자, 미친 인간 같으니까. 차도르를 둘러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처녀가 우리에게 물었다가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나, 원래는 이런 인간이 아니었다. 공주랑 있다 보니 성격이 바뀌는 것 같아. 으음.
내 이름은 레인 반 첼시, 이름이 별로 맘에 안 들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지은 것도 아닌데, 솔직히 이런 이름 잘못 썼다간 역모 죄로 잡혀간다. 레인(Reign)은 ‘군주’라는 뜻이다. 뭐, 이름 풀이는 이쯤 해 두고, 내 소개를 좀 하자면 얼굴도 나름 괜찮고, 머리도 나쁜 편은 아니고, 성격도 봐줄 만한 녀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내가 왜 공주를 찾아다녔냐, 사막 국가는 다른 나라들처럼 중앙 집권 체제를 갖추기에 부적합하다. 그래서 부족장들이 부족을 통치하고 왕은 부족장에게 거의 모든 권한을 넘긴 상태, 사실 이런 상태로 계속 가다가는 데시안은 위태롭다. 어쨌든! 카이얀 부족은 수도를 차지하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 데시안에서 가장 권력이 강한 부족이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핵심은 이거다. 왕족들이 어떤 쪽으로 머리가 굴러갈 것 같은가, 뻔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공주와 카이얀 부족의 후계자를 결혼시켜 버리면 꽤나 이상적인 구조가 된다. 여러 가지 이유로 공주가 왕위에 오를 때는 아무래도 부족들의 반대가 있다거나 된다 하더라도 언제 쿠데타가 일어날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이 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지금 왕가는 끝날지도, 그런데 카이얀 부족을 등에 업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 내가 이런 이야기를 횡설수설하는 이유가 뭐냐, 그건 말이지, 그…카이얀 부족의 후계자가 나란 말이다! 나의 대단하신 아버지는 냉큼 예스해 버리시고-우리 부족한테 실이 될 거리가 없으니까- 어머니는 왜 나만 보면 로맨스 소설을 지어내시는 건지-대체 정략결혼의 어디에 낭만이 있다는 거야?―도통 모르겠고, 그나마 좀 착한 동생이란 녀석은 부럽다는 눈길로 쳐다본다. -이봐 동생, 너 그러다 내 말발로 확 나랑 입장 바꿔 버리는 수가 있어- 그렇다고 부족장 후계자 주제에 반란을 일으킬 수가 있나, 공주는 굉장한 사고뭉치인데다 가출까지 하고, 설상가상인지 나더러 공주를 찾아오란다. 어떻게 했냐고? ‘네 알겠사옵니다.’하고 나왔지, 내가 공주가 이런 사람일 줄 알았나? 상상초월인데.
자, 그럼 그 대단한 공주님은 어떤 분이시냐, 글쎄 사실은 잘 모르겠다. 수뇌부에선 말썽꾸러기라고들 하는데, 그 외의 정보는 없다. 은근히 베일에 싸여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얼굴도 별로 알려져 있지는 않은데, 묘사를 해 보자면 햇볕에 타서 나랑 옆에 있으면 더 튀는 구릿빛 피부에(내 피부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들 만큼 하얀 편이다) 짧은 블루블랙의 머리칼은 둘째 치고 옷차림이 공주와는 땅에서 별까지 차이가 난다. 푸른색의 눈은 생기 있어서 보기 좋지만. 성격은…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냥 알아서 알아내도록.
“너, 나 꼬시려고 왔지.”
“잘 아시네요.”
“존대하지 말랬지.”
공주는 내가 존댓말을 사용하자 바로 한 마디 한다. 내가 믿을 건 이 공주뿐이다. 아마도 내가 공주였다면 얘기가 달라졌겠지만 이 공주는 괴짜다. 이 결혼을 하기 싫다고 생각하면 안 하는 성격인 거다. 뭐, 결혼하기 싫은 건 일단은 내 쪽이니까.
“난 그리 만만하지 않을 걸?”
공주님은 턱 하니 앉더니 손짓했다. 뭘?
“자아, 그럼 보여줘.”
그러니까 뭘?
“내가 너랑은 절대로 결혼하고 싶어지지 않게끔 해 달란 말이지. 얼굴도 그 정도면 미남이고, 보아하니 머리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신분이야 말할 것도 없잖아.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성격도 꽤 맘에 들어. 내가 너와의 정략혼을 거부해야 할 이유가 없는데?”
“…그…그렇습…아니, 그런가…가 아니라, 아니, 정략결혼이 안 싫어?”
정략결혼이라는 건 당사자들의 마음 따윈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계산으로 되어 있는 결혼. 순수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공주도 나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랑 결혼하면…분명 후회한다. 그런데도 싫지 않은 건가? 게다가 비협조적이야.
내 대답에 공주는 슥 상체를 기울여 내 옷깃(멱살!)을 잡아당겼다. 공주의 얼굴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싫단 말이지? 카이얀 부족의 후계.”
“싫지 않아. 하지만 결혼은 자신 없어. 이해해줄 수 없어?”
“…그런가. 역시…맘에 들어 너.”
공주는 씁쓸하게 웃었다. 내 한 마디의 말에 모든 걸 이해해준 눈빛이었다. 공주는 잡고 있던 옷깃을 놓고는 자세를 고쳤다.
“뭐, 어쨌든 조건은 바뀔 수 없어. 내가 너랑은 결혼하기 싫게끔 만들어. 그렇게 하면 내가 성심성의껏 돕겠어.”
아니면 미인계라도 써서 돕게 만들던가. 라는 눈빛에 난 지금 당장 공주가 협조해주는 것을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했다. 우와 뭐 저렇게 냉정해! 좀 공짜로 도와주면 어때서.
“그건 그렇고, 결혼하기 싫게…라니.”
그 말인즉슨, 나랑 결혼하는 게 싫지 않다는 거냐! 왜! 와이! 난 너 첨본단말이다!
울상을 짓고 있는 내게 공주는 팔짱을 끼고 오른손으로 턱을 문지르는 자세로 중얼거렸다. 응?
“난 여왕이 될 거니까. 어차피 결혼 같은 건 해야 한다고. 어차피 할 거 싫지만 않으면 되지 뭐, 아니면…….”
“?”
중얼거리던 중간에 공주의 분위기가 무섭게 바뀌었다. 말꼬리가 흐려지더니 날 보곤 입꼬리가 올라가는 공주를 보며 나는 본능적으로 한 발짝 물러났다.
“그래, 그런 건가. 그랬던 거군. 후후후”
“뭐, 뭐가?”
“네가 왕이 되면 되겠군, 아 그런 좋은 방법이. 카이얀의 후계란 녀석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망설였었는데, 망설일 필요도 없겠네.”
에에에에에에에에엑! 그건 무슨 궤변이야!!!
얼굴이 새파래진 나를 보며 공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여자아이가 하면 귀여운 포즈이지만 당신이 하면 귀엽지 않아!
“왕 되는 거 싫어?”
“솔직하게 말해?”
“솔직하게.”
“싫어!”
“바보 아냐? 왜 싫어?”
“그럼 넌 왜 안 하려고 하는데?”
“귀찮아서.”
“…….”
공주의 한 마디에 난 그만 할 말을 잃었다.…설마…….
“설마 꿈이 적당히 돈 벌어서 시골로 내려가 돗자리 깔아 놓고 시나 쓰면서 탱자탱자 사는 거?”
“어떻게 알았어?”
공주는 정말 놀란 표정이었다. 거짓이 없는 표정에 난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았다. 이…이럴 수가.
털썩-
“……나랑 꿈이 똑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