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1994 년 9 월 30 일
곳 오대산 ( 강원도 평창군 진부 1563.4 m )
누구와 : 나. 나애님. 고광심
인천에서 전철타고 청량리,상봉터미널에서 버스타고
진부에 도착.택시타고 진고개산장에 오니 오후 3시30분 이었다.
진고개산장은 문이 잠기고 우린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기다리려니
매표소 아가씨가 우리가 가려는 동대산에서 두로봉까지는 자연휴식
년제라 입산금지란다..
우리의 목표는 동대산-두로봉-상왕봉-비로봉-호령봉 의 31km
를 당일 종주로 야무지게 해내리라 생각했는데 실망되고.맥이
빠졌다.
목적지를 바꿀까 생각하고 월간산 9월호에 소개된 오대산 수청동
계곡 개념도를 보고 진고개산장-노인봉-소황병산-매봉-수청동 계곡
을 의논했스나 매봉정상에서 수청동으로 하산도중 급경사 절벽지대
와 희미한 등산로가 우리에게 무리일것 같아 포기했다.
손에 잡힐듯 가까운 동대산 봉우리를 보고 있노라니 도무지 미련이
남아 머뭇거리고 있는데 등에 도토리 자루를 힘겹게 진 산장지기가
내려온다.
우리는 동시에 "아저씨!오늘 산장에서 자고 내일오대산종주 하려는
데 안될까요?"하고 간절한 표정으로 묻자 ,우리를 아래위로 쭈-욱
훓어보더니 "동대산?"하고 묻는다.
"아뇨!동대산부터 호령봉까지요".
할아버지는 기가 막힌듯 잠시 보더니 "지도 있어?" "네"
나침판 있어?" "네" :어디 가지구 와봐!내가 심사를 하고 괞챦으면
관리공단에 허락을 얻어주지" 하신다
우리는 얼른 222산에서 확대 복사한 지도와 안경호 100명산의
자세한 설명복사본 나침판을 건내준다.
심사를 한다고 지도를 펼치더니 두로봉을 가르키며
" "여기가 동대산에서 무슨 방향이야?"
"네,북서쪽이요"나는 얼른 대답하고 "또 물어 보세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관리공단에 전화를 한참한 후
허락을 얻었지만 못미더운지 아주머니들 잘못되면 내목 달아나니
두로봉에서 북대사로 하산하란다.
우리 산행계획의 절반도 안되는 거리다.그럴순 없지.
너무 좋아서 희희낙낙하고 있는데 동대산에서 씩씩하게 생긴 두 청년
이 내려온다.
우리는 궁금해서 어디서 오냐고 물으니 월정사에서 비로봉 상왕봉 두
로봉 동대산을 종주 했는데 10시간을 했단다.
우리가 목표한 호령봉은 가지도 않고 10시간이라니...
그래도 반가워 우리도 내일 종주하고 호령봉에서 동피골까지 완전종
주하려 한다니까 갑자기 두 청년은 깔깔 웃더니
"아줌마들이요?아줌마들은 안돼요.우리가 10시간 걸렸는데 게다가
호령봉하구 동피골까지나요?"말도 안된다며 손사레를 쳐댄다.
문득,나이를 잊고 있던 우리들은 머쓱해지고 당황할밖에...
우리는 자신이 있는데 저들은 우리의 나이를 보고 있구나
하기는 사십중반의 여자나이면 저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비애를 느끼며 황급히 몇년동안 등산한 산들의 이름을 들먹인다.
여전히 황당한 아줌마들이구나 하는 표정의 그들과,노인봉에서 내려
온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따라 물따라"리본을 기념으로 준 청년과
산장지기,매표소아가씨와 함께 우리들이 준비한 쇠고기로스와 된장찌
개 등으로 산장밖 평상에서 맛있게 먹었다.
생전 처음 자보는 산장안은 상상했던것보다 덜 낭만적이었고 한장에
천원하는 담요는 정말 덮고 싶지 않았지만 내일을 위해 잠을 청했다.
잠이 올리가 없다.그 청년들은 있는대로 코를 골고 옆의 사라엄마는
잠이 들만하면 벌떡 일어나 배낭 지퍼를 부-욱 내리곤 살림살이를
다 꺼내서 부시럭 부시럭대다 눕는다.또 조금 잠이 살폿이 들려는데
벌떡 일어나 부~욱!이러길 밤새하다 날이샜다.(왜 그랬을까?)
흔들거리는 해드랜턴 불빛에 멀미를 느끼며 동대산에 오르니 6시 20분
몸이 풀리지않아 목표보다 이십여분 늦어져 조급해졌다.
나침판으로 두로봉쪽 능선을 잡으니 폐쇄된 등산로 치고는 길이 잘 나
있고 밤톨만한 도토리가 발에 깔려 미끄러질 정도고 당귀는 왜그리
많은지....
일순,밀려왔다 밀려가는 안개에 젖은 숲은 고요롭고 태초의 신비를 간
직한듯 후두둑 떨어지는 이슬방울은 요정처럼 빛난다.
우리 이방인 셋은 그곳에 항상 있었던것처럼 스치는 바람인양 고적하
게 걸어간다.아무 말없이 한숨어린 감탄과 함께....
상수리 열매가 깔린 숲에 앉아 아침으로 라면을 끓여 먹는다.
하얗게 빛나는 유명한 차돌바위지대를 지나 오르내림을 수차례한 후
두로봉 못미쳐 심마니 쉼터 샘물에서 수통에 물을 담는다.
갑자기 어디서 두런거리는 남자들의 목소리에 우리들은 긴장을
하고 두리번거리니 길옆 숲에 술취한듯한 남자 두명이 앉아있다.
등산객도 아니고 약초캐는 사람?사람이 이렇게 두려워 보긴 처음이다.
그옆으로 지나가야할 우리들은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 나대장님은
스틱을 힘주어들고,나는 단단한 나무를 주워들고 사라엄마는 돌을
들까 말까 망설이고 이렇게 깊은 산속에 이런일도 있다니...
일부러 큰소리로 "안녕하세요?"하고 지나며 힐끗보니 빈망태에 낫
그리고 반쯤 벗어내린 바지,충혈된 눈!우리는 마구 뛰었다.
뒤에서 소리를 지르며 쫓아오는 그 목소리는 우리의 고즈넉한 마음을
한순간에 저 나락으로 밀어낸다.
그바람에 십여분이면 오를 두로봉정상을 아깝게 노치고 서남능선길로
들어선 시각은 11시20분 아침먹은 시간까지 여섯시간 걸렸다.
임도가 나오고 가로질러 바로 능선으로 붙어 상왕봉에 도착하여
어제 저녁에 준비한 주먹밥을 먹는다.
살아천년 죽어천년 고고하게 서있는 주목밑에서 사진도 찍으며 비로봉
에 오니 오후 2시20분 이다.
지금까지 종주한 동대산과 연봉들이 파노라마 처럼 펼쳐지고
백두대간과 능선들의 마루금을 밟은것이 스스로 대견했다.
9시간 산행하고 이제 월정사로 하산하면 총 10시간 인데 두청년과
같은 시간대에 종주함에 슬적 자만심이 들고
시간의 여유가 있다는 생각에 아주 호령봉까지 가서 동피골로
하산하기로 갑자기 결정한다.
동피골은 험하고 길도 없고 힘들다고 절대로 가지말라고 산장지기가
그렇게 말렸는데,우리는 자신감에 넘쳐 철망을 들치고 호령봉으로
뛰기 시작했다.
이제는 즐김이 아니라 나이를 초월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스스로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리라.
더덕향이 코를 찌르고 길도 희미한데 한시간만에 호령봉에 닿으니
발바닥에서 불이 난듯 화끈거리고 숨이 턱에 찬다.
약초캐는 사람을 만나 하산길을 물으니 가르쳐준 후 "지금 그리로
하산 하실려구요?"하고 조그맣게 묻는다.
우리는 씩씩하게 대답하고 내리막길로 발을 딛는데 앗!불싸!이게
웬일인가?갑지기 무릎의 통증과 오금이 땡기며 발을 옮길 수가 없는게
아닌가?인대가 늘어난 것이다.
다시 비로봉으로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뒤로 돌아 갈 수 는 없는
일!아픔을 참고 발을 내딛으니 등산로는 없고,바위가 구르고 흙이
무너진 협곡과 너덜길이었다.
호령봉에서 오대산산장까지 빠른 걸음으로 2시간40분 걸린다 했는데
이렇게 내려가다간 언제 하산이 끝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인대가 늘어나긴 나대장님도 마찬가지라 둘이서 엉덩이로 앉아
너덜길을 내려 오는데 사라엄마는 등산로 찾아놓고 기다리고
끝도없이 무너진 바위와 흙사이를 나뭇가지를 잡으며 신음소리
를 내며 가는중에 갑자기 길이 끊겨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건너고
계곡 건너길 수십번 갈길은 아득하기만 했다.
배낭을 뒤지니 우황청심환 한알이 나와 나대장님과 반쪽씩 먹으니
질~질 끌던 발이 신기하게도 덜 아프다.
한시간을 별 통증없이 내달으니 오대산장이 나와 안도의 숨을 쉬며
시간을 보니 오후 6시 40분이다.
진부에서 막차가 7시인데 정상적인 방법으론 갈 수 없어 무조건 길을
막아 승용차를 얻어 탔다.
도로공사직원 이라는 차주인은 전력으로 달려 막,터미널을 빠져
나오는 막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버스안에 앉아 어둠이 내려앉은 차창밖을 보며 오랜 여행을 끝내고
귀로에 오른듯 만감이 교차한다.
오늘,난 벅찬 산행에서 무엇을 얻고 돌아 가는 것일까?
카페 게시글
산행사진.산행후기
오대산 종주기 ( 동대산-두로봉-비로봉-상왕봉-호령봉 )
안나푸르나
추천 0
조회 62
03.09.25 18:36
댓글 2
다음검색
첫댓글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계령님이 있을 수 있었군요.그 열정으로 안나푸르나를 향하여... 앞으로의 일년이 짧고도 길었으면.기다리는 즐거움에 푹 빠져 버려야지...
그대들이 우러러보이는구료. 산장에서 6.25때 담요를 걸치고 잠들 무렵 사라엄마가 배낭 지퍼를 북!하고 열었다고 해서 혼자 실성한 사람처럼 오랫동안 웃고나니 반년은 젊어진듯 싶고 치통도 어디론지 날아가 버렸지뭐유. 하 하 하.^^ 그대들이 자랑스럽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