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량문제로 쪼갰습니다.
살라미르 정원을 둘러본 후 라호르의 대표적인 배낭족 숙소인 리갈 인터넷 인과 그 주변에 관한 부분입니다.
10: 26 라호르 박물관 도착
라호르 박물관은 말 로드(Mall road)의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펀잡대학교 정문 건너편에 있었다. 처음오는 사람은 박물관과 대학교를 구분 못할정도로 펀잡대학교 건물들도 멋있는 영국 빅토리아시대 양식이었다. 도착해서 보니 허걱! 문이 닫혀있다. 금요일은 휴관일이었다. 하필이면..... 쩝쩝
우리가 문닫힌 박물관 담장에서 허탈하게 서있는데 낡은 티셔츠와 허름한 반바지에 아주 간단한 색을 맨 동양인이 우리 곁에 와서 마찬가지로 허탈해하고 있다. 박선생이 “쪽발이 같다”고 해서 내가 실실웃으면서 옷차림이 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조금 후에 그 사람이 우리에게 또렷한 한국어로 라호르 성은 어떻게 가냐고 물어본다.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 미안해서 럭샤타고 10분 조금넘는데 무슨 시장골목으로 왔다고 대답하였다. 다시 라호르 성까지 걸어서 얼마나 걸리겠냐고 한다. 글쎄? 한시간 조금 넘지 않을까요라고 답변하고 나서 어디서 주무시냐고 하니 리갈에 있다고 한다. 우리도 얼른 같은 곳에 있네요. 저녁에 보죠하고서 헤어졌다. 그리고 나서 하릴 없어서 박물관 옆 음료수 가게에서 생수(15루피), 콜라(10루피)를 사서 나눠먹었다. 이리저리 생각해 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서 일단 살라미르 정원을 보러가기로 하였다.
릭샤와 교섭을 하니 80루피 이하는 절대 않된다. 몇 대를 보내고 나서 할 수 없이 80루피에 합의를 보고 출발하였다.
10 : 40 라호르 박물관 출발
생각보다는 되게 먼 곳에 살라미르 정원이 있었다. 80루피는 주는게 맞는거 같았다.
11: 05 살라미르 정원 도착
※ 샬리마르 정원 (Shalimar Garden)에 대한 보충 설명
시가지 동쪽 약 5Km 지점에 조성되어 있는 무굴제국 시대의 정원이다. 1642년 샤 자한이 조성했는데, 모든 건물과 분수대를 대리석으로 만들었으며, 광대한 정원에는 연못과 수로가 기하학적으로 배치되어 균형미가 돋보인다. 400개나 되는 분수가 일시에 물을 뿜는 모습은 장관이다.
▶ 구 시가지의 북동쪽에 위치(기차역에서 4km)
입장료 200rs/ 07:30 - 18:00
▶ 교통 : 기차역에서 4번 버스가 간다. 오토릭샤는 mall에서 90rs에 갈 수 있다.
입장료 200루피(외국인)를 내고 들어갔다. 살라미르 정원은 17세기 샤 자한 시기에 만들어졌는데 3개로 구성된 정원과 분수대가 이어져있는 형태이다.
맨 앞 분수대는 다행히 물이 뿜어져나오고 잇었다. 분수대라고 해서 하나만 있는게 아니라 일렬 종대로 100m 정도 수십개의 분수가 뿜어져나오는 형태이다. 두 번째 정원은 네모난 연못에 분수가 질서정연한 형태로 모여있었다. 분수대를 한바퀴 둘러보고 맨 마지막의 분수대 부근에 있는 휴게소에서 아이스 크림을 하나씩 먹고 나왔다.
12: 10 살라미르 정원 나옴
정원을 나와 박선생이 전화를 해야한다고 해서 PCO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점심을 먹을까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마땅한 곳이 없었다.
날은 서서히 클라이막스를 향해 온도가 치솟고 있고 온몸은 땀으로 적셔지고 있었다. 일단 리갈쪽으로 후퇴해서 부근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하였다.
12:33 살라미르 정원 앞 출발
12 : 49 리갈 시네마 도착
럭샤를 60원에 타고 왔다. 도착 후 박선생이 도저히 못견디겟다고 KFC로 피서를 가자고 한다. 머뭇거리니 자기가 살테니까 가자고 한다. 꼭 돈이 없어서 머뭇거렸다기보다는 배낭여행 다니면서 그런데 꼭 가야하나하는 생각이었는데 박선생 같은 경우 패캐지는 여기저기 많이 다녔지만 배낭여행은 첨이라 아직 적응이 덜되어서 그러려니했다. KFC는 리갈 들어가는 입구에서 바로 옆에 있다. 들어가니 냉장고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솔직히 살 것 같았다. 나는 맥도날드나 KFC 같은 미국식 인스턴트 음식점은 다녀보질 않아 뭘 먹어야하는지 솔직히 잘 모른다. 그냥 일행이 징가버거 시키기에 같이 먹었다. 내가 어느정도로 이런 곳에 문외한이냐면 치킨버거가 있고 징가 버거가 있어서 나는 징가 버거는 닭이 아닌 다른 고기로 만든 버거로 알았다. KFC 자체가 닭고기 전문 음식점인걸 그 후에 알았다. 징거버거 세트는 190원인데 버거 하나와 콜라 1잔, 그리고 감자 칩이 조금 나왔다. 음식가지고 장난하면 않되지만 먹는건 부차적이고 피서하러 온 것이 목적이므로 깨작거리면서 시간을 때웠다.
14: 00 KFC 나옴
리갈로 들어가 드러누우니 잠이 살짝 온다.
15: 20 낮잠에서 깨어남
잠에서 깨어 뭘할까 생각하다가 루피가 조금 부족하기에 일단 환전을 하고 서점에 들러보기로 하였다. 리갈에서 나와 말 로드 큰길을 보고 오른쪽으로 가니 바로 옆에 모스크가 있고 경찰들이 지킨다. 폭탄 테러 방지하려고 그러나보다. 그 모스크를 지나 조금가니 환전하는 곳이 여러곳 보인다. 그 중에서 Union Exchange에 가서 80달러를 환전하였다. 1달러에 60.7루피를 주니 상당히 좋은 거래였다. 그 후 파키스탄에서 결코 이 비율로 환전한 곳은 없었다. ]
환전한 곳을 나와 조금더 오른쪽으로 걸으니 육교가 나와서 육교를 건너가니 인디아 북센타가 있어서 들어갔다. 이것 저것 구경하다가 필요한 책과 지도를 조금샀다.
파키스탄 사진엽서 8루피/1장, 볼펜 34루피(근데 이건 바가지 썼거나 계산 착오다. 왜냐하면 일반 슈
퍼에서 노란색 바탕에 뚜껑이 파랗거나 검은 색 볼펜이 상당히 좋은데 이걸 3 4루피에 샀으니까...
펀잡과 NWFP주의 지도를 각각 나나씩 샀다. 100루피/1장, 파키스탄 전도는 50루피였다. 서점 안에서 아들들에게 보내는 엽서를 쓰고 우체국을 물어보니 조금만 왼쪽으로 가면 4거리가 나오는데 거기 있다고 한다. 엽서를 쓰고서 우체국을 찾기 위해 4거리에 가니 위쪽으로 꺽어서 무슨 주차장같은 곳에 양복점이 있는데 그 옆이 우체국이란다. 그런데 문닫았다. 아마도 정식 우체국이라기 보다는 간이 우체국같았다. 할 수 없이 GPO(General Post Office?)로 가야할 모양이다. 4거리로 다시 나오니 4거리 한가운데 멋진 조형물이 서있는데 빅토리아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부근의 건물들도 영국식 건축물들이 제법 멋을 부리고 있다. 아마도 무슨 펀잡 컬리지라고 하는걸로 보아 대학교 부속 건물인 것 같다. 거기서 20루피를 주고 릭샤를 타고 GPO로 갔다. GPO 1층에 들어가니 국제 엽서 보내는 곳은 우체국이 아니라 같은 층의 오른쪽에 있는 무슨 UNION 어쩌구 저쩌구 써진 곳이었다. 거기서 30루피씩 주고 허니거니에게 엽서를 보냈다.
16: 35 GPO 출발
GPO를 나와서 등지고 오른쪽으로 길을 건너니 커다란 모스크가 나오는데 사진을 못찍게 경비가 손사래를 휘휘 젓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찰칵!
털레털레 걸어서 리갈로 돌아왔다.
16: 48 리갈 도착
다시 일행들이 덥다고 KFC로 가자고 해서 갔다. 이번에는 아이스크림 빅 사이즈(2컵) 50루피/1개, 얼음이 제공되는 생수/45루피를 시켜서 먹으면서 시간을 때웠다.
중간에 나와서 집에 전화를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는다. 신호는 가는데 받질 않는다. 4번이나 그랬는데 전화를 끊으니 40루피를 내라고 한다. 별 생각없이 그러려니하고 앴는데 나중에 보니까 사기 당했다. 전화가 직접 연결되어 통화 하지 않으면 요금은 내지 않는다.
18:10 리갈로 돌아옴
리갈에 돌아오니 아까 박물관에서 만나 실례를 했던 여행객이 돌아와있다. 미안해서 라면드실거냐고 하니까 너무 좋아한다. 4개월이상 한국음식을 못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라면 4개와 계란 4개를 넣어서 라면을 끓이고 김치 캔도 하나따고 팩소주도 3개를 꺼냈다. 어차피 박선생이 오늘 밤에 귀국해야하니 환송연도 겸한 것이다. 계란은 나가서 리갈 시네마 앞의 버거 노점에 가서 1개에 5루피씩해서 20루피에 사온 것이다. 오늘도 라면은 내가 끓였다.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옥상의 개집 앞에 신문지 깔고 앉아서 먹었다. 알고보니 여행의 베터랑이었다. 지금도 중국에서 동남아시아로 빠졌다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실크로드를 타고 KKH를 넘어 라호르에 온 것이다. 벌써 4개월이란다. 내일 인도로 가서 북인도쪽을 둘러보고 방콕쪽으로 갈 예정이라고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날이 어두워졌다. 서양 애들이 하나 둘씩 옥상 귀퉁이의 원두막 같은 곳에 모이기 시작한다. 알고보니 하시시하기 위한 모임이란다. 한 예수처럼(생김새만) 생긴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는 낮에는 하루 종일 비실거린다. 그러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살아난다. 잠도 자기자리에서 않자고 아무데서나(특히 우리 자리) 자는 바람에 우리가 잠자리 확보하기가 상당히 곤란했다. 이 친구가 우리에게 내일 1만명 정도가 모이는 엄청 큰 수피 축제가 있는데 보고가지 않을거냐고 한다. 우리는 그저 씩 웃기만했다. 거기 가봐야 타악기 몇 개놓고 음악연주하면서 춤도 아니고 흐느적거리는 것도아닌 짓거리하면서 하시시 줄대가면서 피워대는 곳인데 사실 별 관심없다.
알았다고 웃으면서 대답하고 우리끼리 다시 이야기를 하였는데 무척 유익하고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암튼 대단한 여행자이다.
20: 00 박 선생 출발
일단 박선생이 라호르 아리랑으로 가기로 하였다. 어차피 거기서도 블루스카이 님이 오늘 귀국하니까 같이 움직이면 나을 듯 싶어서였다.
릭샤를 잡아 태워 보내면서 11시 30분까지 않오면 간 걸로 알기로 하였다. 막상 초반에 귀국해버리니 못내 마음이 허전해졌다.
21: 00
다시 리갈로 돌아오니 이제 막 씻고 옥상으로 올라온 한국의 젊은 여인네들을 만났다. 거기서 다시 의기투합하여 새벽 1시 30분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특히 이 여인네들 때문에 우리 코스가 바 뀌게 되었다. 원래는 길기트에서 스카르두 둘러보고 나와 베샴으로 가서 스왓벨리를 타고 내려갈려고 하였는데 산드루 패스를 극구 칭찬하면서 칼라쉬 밸리를 꼭 가보라고 한다. 위험하지 않냐니까 그런 거 전혀 못 느꼈다고 한다. 그래? 사실 이번 코스는 카라코람 산맥쪽만 보고가나했는데 힌두쿠시 산맥도 한번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 싶어서 코스 변경을 결정했다.
※ 인도에 관해 들은 유쾌한 에피소드 두가지
두 사람 다 인도를 간다고 하면서도 이미 인도를 한번씩 경험한 모양이다.(여인네들은 레, 여행자는 다람살라로 간다고 한다.)
이들이 말하는 인도는 혼돈이자 개판이면서도 인간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도가 그립다고 한다. 이들이 각자 인도에 관한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너무 인상에 남아서 소개한다.
먼저 남자 여행자의 경우는 10년전에 갔었다고 한다. 한번은 기차를 탈려고 시간이 되어서 역 플랫홈에 들어갔더니 자신이 타야할 기차가 7호차인데 아무리봐도 7호차가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당황해서 왔다리 갔다리 해봐도 분명히 6호차 다음은 8호차더라는 것이다. 가끔은 번호가 중간에서 빠져 엉뚱한 곳에 있기도 하기에 끝에서 끝을 다시 봐도 마찬가지더라는 것이다. 어떻하나? 하고 주저앉아있는데 개찰구쪽에서 한무리의 흥분한 사람들이 몰려나오는데 웨스턴 얘들도 여럿 껴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그 사람들에게 접근했더니 바로 자기와 함께 타야할 7호차 손님들인데 같은 상황이더라는 것이다. 게다가 7호차는 침대칸이라 좌석탄에 비해서는 고급 칸인데 이렇게 소홀히 할 수 있는지 분개한 사람들이 역무원을 붙잡고 거칠게 항의하고 있는 중이었다. 가만히 지켜보니까 인도사람들이 흥분해서 난리고 서양얘들도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카운터 펀치를 날리고 있어서 역무원은 완전히 그로기 상태더라는 것이다. 사실은 시발역을 떠난 그 기차가 중간의 큰 역에서 7호칸을 추가로 붙이고 와야하는데 기관사가 깜박한 것이다. 허지만 지금 당장 그 설명이 적어도 인도에서는 통하지 않는건 당연한 것 더는 못 견디겠는지 역무원이 “좋다. 해결해 주겠다”면서 사람들을 일단 진정시켰다. 해결방법이 무엇일까 너무 궁금했는데 답은 의외로 간단했더라는 것이다. 역무원은 분필을 하나 들고 성큼 성큼 8호차에 가더니 8을 지우고 7을 쓰더라는 것이다. 그걸 본 항의 군중들이 “와”하는 함성을 지르면서 기차 안으로 쇄도해 들어갔고 자신도 뒤를 따라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 무사히 드러누워 목적지까지 갔고 불행한 8호차 사람들은 스스로 알아서 열차의 어딘가에서 함께 여행을 했을거라는 이야기다.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던 젊은 처자(부산 모 대학교 4학년)도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해준다. 바라나시에서 마침 옷이 더 이상 입을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워서 티셔츠를 하나 사러 가게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리저리 골라 본 결과 결국은 가게 앞에 걸려있던 옷이 그나마 가장 맘에 들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오랬동안 바깥에 걸어놓아서 앞쪽이 햇볕에 바래져버렸다는 것이다. 그걸 껀수로 옷 값을 깍으로 덤벼들었단다. 이 옷은 너무 오래되어서 앞의 색깔이 너무 바래졌으니 깍아달라고 하였더니 그 인도 아줌마 왈 : no problem! It's multi color!"하면서 제값을 천연덕 스럽게 받더라는 것이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엉겹결에 달라는 대로 다 주고 나와서 생각해 보니 허긴 옷의 기능이 중요하지 색깔이야 무슨 상관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는 것이다.
상당히 철학적인 이야기같이 들렸다.
어제 만난 60대 후반의 아저씨는 인도에서 건너와서 kkh타고 중국으로 넘어간다고 오늘 아침 떠나셨는데 이 아저씨 말도 되게 웃긴다. 인도에서는 역이나 터미널에 내리면 럭샤꾼들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조금만 내가 럭샤를 탈 의향이 있는 표정이나 동작을 취하면 사정없이 몰려와서 몸을 찢어버리듯이 끌고 귀가 터질 듯이 떠들어 댄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귀챦다고 밀어도, 발로 차도 소용없어서 결국은 거의 현행범 수준으로 체포(?)되어 럭샤를 탄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인도에 관해 어떤 인상을 줄까? 적어도 내겐 상당히 흥미로운 여행지로서 구미를 당기게 하는 이야기들이다. 어떤 이들은 명상과 사색, 요가 등등을 하러 인도를 가는 이들도 있지만 난 그냥 당하고 싶고, 부대끼면서 생활속에서 포기를 배우고 싶다. 이젠 내 인생도 포기를 배워야하는 시기 아니던가? 그 동안 너무 많은 것을 원했고 너무 많은 시도를 했고 그래서 조금 얻고 많이 아펐지 않은가? 지금 현재의 내 위치에서, 내 인생의 배낭에서 무겁고 버겁고 불필요한 짐들을 하나씩 버려야 옳치 않겠나? 웃으면서 들었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느꼈던 이야기들이다.
02:00 취침
마침 바람이 불고 비가 조금씩와서 어제와는 달리 크게 더운지 모르고 잠이 들었다.
※ 리갈 인터넷 인에 대한 나의 생각
리갈 사장은 상당히 멋쟁이 시절을 보낸 한량같다. 전해지는 썰(說)에 의하면 파키스탄 총리 비서도 역임한 히피라고 하는데 글쎄.... 그러나 지저분하게 놀지는 않는다.
리갈 시설 자체는 전혀 기대하지 말고 가는게 정신 건강에 좋다. 다만 화장실이 좌변기이고 자기가 조리를 해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고, 교통이 편리한 곳(?)에 위치해 있는 점, 인터넷에 한글쓰기가 가능한 점, 여행자들의 정보노트가 유익한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우로 밀착한 침대, 그나마도 못얻으면 그냥 바닥에서 자야한다. 그렇다고 다른 마땅한 대안이나 숙소도 없다. 조만간에 새로운 숙소가 나타나 인터넷에 떠다녀야할 것으로 사료된다. 사실 서양 애들은 의외로 며칠씩 묵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다. 그중에 상당수는 목요일에 벌어지는 수피축제와 거기에 연관되는 하시시에 탐닉하는 젊은이들이다.
참고로 RPI는 없어졌다.
※ 리갈 부근 개념도
리갈 인터넷 인에서 큰 길쪽으로 나오는 곳의 꽃집(노점)바로 옆에 저녁이면 사시 케밥 비스무리한 것을 파는 곳이있다. 양고기가 아니라 닭고기다. 또 거기서 오른쪽으로 리갈 시네마 입구 앞에는 버거를 파는 노점들과 튀김집이 저녁에만 있다. 그리고 리갈에서 오른쪽으로 큰 길따라 모스크를 지나면 길가에 “샐러드”가게가 있는데 여기는 진열된 것중에서 필요한 것을 손가락으로 찍으면 모아서 샐러드나 버거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려면 큰길 옆의 택시나 럭샤 대기하고 있는 곳에서는 흥정하지 말 것. 대단한 바가지를 씌운다. 그냥 지나가는 럭샤나 택시를 세워 흥정하는 것이 좋다.
큰길 따라 왼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큰 모스크 지나 우체국이 있다. |
첫댓글 귀중한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