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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한여울
7월30일
차태순... 문현기... #@%$*&*#... ... 참으로, 이름 외우는데는 도사다라고 감히 얘기 할 수 없다. 참으로 외우기가 어려운 것이 이름이다.
뭐 빠진 것이 없나? ... ... ... 역시 총만 달랑 있고 총알이 없네그려. 사진기는 있는데 필름이 없다는 말이다. (출발할 때까지 준비를 하지 못했다)
========================================== 저녁 6시에 채사장(이하 병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형님 뭐 하는교?” “오늘 쥐쥐에 환영 번개이지만 사실 부담스럽다. 난 안갈란다” “부산에서 왔는교?” “아니, 한 9시 쯤에 온다더라. 그라고 병수도 우리 집에 와서 자고 함께 가자” “보고요, 난, 번개에 참석하고 그라고 ‥‥” “그라고 저라고 간에 집(칠곡)도 멀고 샴실은 불편할끼고, 같이 자고 가자. 전화해라” “안 그래도 지난 번 모임(작천정 야유회)에서 애경씨와 어천인이 오라 카던데요” “그러냐, 잘 됐네.” “집이 어딘데요” “택시 타고 송현여고 정문 앞에 와서 전화하면 3분 내에 만날끼다”
한 8시 쯤에 출발한단다.
“왔는교?” “아니, 곧 도착할끼다. 니는 어디에 있노? 안오나??” “여기도 곧 끝납니다.” “알았다”
“애경이와 미영이가 작천정에서 ‘인쇄나라-병수’를 초청했다면서...” “-.-;; 그날 그래카이... 말라고 부산차 타노, 그냥 대구 차 타지.. 하믄서 집에도 안온다카던데.. -.-; 그 카던교.. 아이고 참!! 그사람, 우끼는 사람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병수로 부터“아~ 빨리 올라캤는데, 잡아가지고서요. 지금가도 되겠십니꺼?” “물론이지.. 온나”
11시 30분 쯤에 인쇄나라 병수도 합류했다. 난, 12시 쯤에 잠자러 가고 그들은 가볍게 술 한잔 하며, 담소를 나누다가 2시 쯤에 잠이 들었다고 한다.
7월 31일(토)
아니, 눈을 떴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가 4시 30분에 간단히 몸을 씼고 나서 5시에 일행을 깨웠다.
5시에 진용주 대구회장(이하 회장 혹은 용주)에게 먼저 전화하고 일행이 세수하는 동안 5시10분~30분 사이에 노순점씨, 이효숙(빨간토마토)씨, 신창교(뚜룩 혹은 디카맨)씨에게 연락을 취한다...
6시 약속한 프린스호텔 앞에 도착하니 05시55분... 차례 차례로 등장한다. 일일이 악수를 한다. 회장 내외는 다소 신경을 쓴 탓인지 10분 지체되어 등장한다.
1 차량 : 진용주, 차태순, 노점순 +문현기(초4년-용돈 40만원 모아서 함께 가는 친구^^고 순점씨 조카임) 2 차량 : 사부, 무서븐 여인, 병수, 애경, 미영, 효숙, 창교 그리고 나(8명)
칠곡에서 회장내외가 준비한 김밥을 먹고(경비 포함-총경비 75만원: 여행자보험 포함) 12시 40분 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차량을 맡기고(경비에 왕복 연료비 및 차량보관비 포함)서 출발하기 전에 사온 수박도 쪼개 먹고 여행객에게 나눠 주고(다 먹지 못해서리 ^^;) 이곳 저곳 구경하다가 드디어 3시20분 인천발 심양행 뱅기에 올랐다. 곧 담뱃 값이 오른다고 한다. 면세점에서 구입하지 못한 것을 찝찝해하는 것을 보고 회장이 돌아오는 뱅기 안에서 사면 된다고 귀띔한다.
30일, 출발하기 전에 전에 배웠던 중국어를 뒤적였었다. 그라고 덮었다. 기냥 부딛쳐 보자고 하면서 말이다. 그 - 랬 - 다 - .
그랬던 내가, 순점씨 덕분에 잊혀진 중국어가 새록새록 피어나기 시작한다. 확~ 핀 것은 아-이이-다 ^^;
초보자가 느끼기로는 학원 강의는 시험대비인 것 같다. 문법 위주인 것처럼 말이다.
순점씨는 대명동 大邱大에서 매일(토, 일 제외) 오전 7시 50분~8시40분 사이에 중국인 교수로부터 약 1년간 배웠단다. 2달 간, 9만원이란다. 9월 2일부터 다시 시작한단다. 실생활에 필요한 회화 위주로 한단다.(뭔, 광고 같군-.-;)
회장이 말한다. “형님(사부님을 지칭), 오후 3시에 점심도 제공한다 캤지요.” - 일동 웃음^^ -
현지 시간 3시 40분(한국시간 4시40분)에 심양에 도착했다. 심양에서 연길행 뱅기는 저녁 8시 40분!! 자그마치 3시간 30분 동안 기다려야 한다.
여기 저기서 콜! 이다. 심양 공항에서 프래시가 터진다. 터~진다. 터어진다.
(아, 참 우리는 어천인으로부터 필름 1통을 건네받는다. 아마도 2통 받았을끼야)
나도 한 장(50元) 사서 부모님께 전화를 한다. “여기 심양인데요, 곧 연길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탈려고 합니다” “아~ 그러냐... 그래 몸조심하거라. 끊자. 돈 많이 나온다” 가슴이 찡~하다.
난, 잠이 많다. 중국인들이 의자 위에 누워서 새우잠을 잔다. 나도 그대로 흉내낸다. 피곤이 풀린다. 심양 공항에서 지루하리라 했던 시간이 빨리도 지나간다.
분명히 방송을 했을끼다. 우리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 어쩌면 안 했을 지도 모른다. 여기는 중국이니까...
두만강, 해란강, 송화강 일대의 6개시(연길, 도문, 용정, 훈춘, 화룡, 돈화)와 2개현(왕천, 안도)을 합친 길림성(성도는 장춘) 면적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땅을 “북간도” 혹은 “연변”이라고 한다. 그 중심이 “연길”이다.
무궁화 민박 아짐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 차렸다.
오기 전에 회장은 ‘우리가 단체이기에 다른 팀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도착해보니 그 의미를 알겠다. 겉으로는 한국 기준으로 볼 때는 허름한 건물(아파트)인데, 내부는 시설이 좋았다. 말 그대로 가정집이다. 가정집을 통째로 민박집으로 사용한다. 인터넷도 깔려 있다. 멘트 하나 날렸다. [ 태풍 요... 여기는 조용합니다. 현재 연길입니다 &*%$@# ]
(초등학교 4학년인 현기도 酒夜同行했다) 민박집아짐마가 뭐라고 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머지 일행들은 酒夜를 보내고... 새벽 4시 경에 들어오는 기척을 듣고… … (酒夜에 있었던 일은 다른 사람이 쓰야 할 듯 싶으이^^;)
얼른 세수하고 깨우고 밥먹고 가니, 벌써 다른 손님들은 차에 와 있다.
거의 뒷자리에 우리 일행들은 앉는다. 다들 酒夜의 시간을 보낸 지라 앉자마자 목을 뒤로 제친다. 난, 차창가에 펼쳐진 풍경을 놓지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한 4시간 걸린다 하던데(그렇게 어렴픗이 얘기를 들었다) … … 실제로는 6시간 소요되었다.
카랑카랑하게 얘기하는 것을 보고 다른 일행이 “소리가 너무 커 목이 쉬겠다.” “괜찮다”는 시늉을 했다. 그녀의 얘기가 틈틈이 계속되었지만 우리는 아무 것도 알아 듣지 못했다. 암튼, 그 소리에 반해 우리 일행은 박수를 쳤다. 다른 일행들도 동조를 한다 ^^
우리는 화장실로 향한다. 돈을 내지 않는다. 기쁘다^^; (속으로는 세계화의 추세인가 하면서) 화장실은 노천식이다. 조그마한 건물 형식이다. 가본 분은 알끼다.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골목 가게 수준이며. 다른 1동은 식당으로 되어 있다.
고구마 말린 것을 물어보니, 7元이란다. 머뭇거리니 5元까지 해 준단다. 10元에 3봉지 하자고 흥정을 시도했다. 안된단다. 15元이하는 안된다고 했다. 운반비.. 뭐라고 하면서... 나는 “그라면 12元하자”고 했다. 안된단다. “13元?” 안된단다. “왜, 안 팔지요” “5元, 10元 단위로 팝니다.”고 한다.
종전에 다른 중국인이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3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 … 들었다. 그 중국인은 고개를 가로 흔들면서, 비싼지 구입하지 않는다.
주인 아줌마 “ … … ”
::: 중국어를 다시 배워 볼까나 ?!! :::
“아저씨는 좁쌀이다. 대범하지 못하구만”이라고... 그라고 옆사람과 중국어로 얘기한다. 짐짓 모른 체 하자, 아주머니는 “그라면, 밉(米)쌀이라고 할까요?”하면서 옆사람과 히히덕대면서 웃는다.
결국 사지 않고 돌아왔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우리의 업보(業報)라고나 할까. 다소 씁쓸하게 여운이 남는다. 이 휴게소에소에서 자그마치 1시간 머문다. 8시 30분에 버스는 출발한다.
약 10시 30분 경에 [虎林園]이라는 곳에 버스가 선다. 그리고 그 차장이가 조선(한국)말로 함께 가자고 권유한다. 버스는 과거 급행(직행)버스인데 일종의 관광버스인 것 같다. 그때서야 이 아가씨가 가이드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난, 왜 이렇게 둔하지 -.-;; 긁적긁적)
버스에 내려 사진을 찍는다. 디이카 맨!! ^.^
우리는 아랑곳 하지 않고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는다.
65元(보험료 5元 포함)이다. 어느 숙소 앞에 도착하니, 가이드가 짚차 이용을 권유한다. 다른 일행들은 그 짚차를 타고 올라 간다. 80元이란다. 회장은 말한다. “단적으로 말해서, 숙소에서 다시 협상하면 됩니다.” 우리 일행은 회장의 말에 동조한다. 가이드 아가씨의 눈빛이 어둡다...
회장이 말한다. “예약한 숙소가 있는데요” “그라면 우리집이다” 그- 렇- 다. 연길 무궁화 민박에서 소개시켜준 같은 조선족이 운영하는 민박이다. 여장을 풀고 점심을 먹었다. 식당 앞 플랭카드에 <말끔한 맛과 푸짐한 반찬으로 ~> 우리 식이라면, <깔금한 맛과~ >라고 했을 것이다.
천지에서 1시간인가 머물기로 하고 올라갔는데, 짚차 기사는 40분 만에 오라고 한다. 속은 기분이다.
“天池 보고 안보고에 무슨의미가 있겠느냐마는 어차피 온 김에 보고 가는 것이 안좋겠냐 언제 다시 올낀데“ 하며 아쉬움을 뒤로 하며, 내려 오는데, 찦차 기사가 짜증을 낸다. 늦게 내려왔다면서 말이다. 이렇게 해야 되나... 쩝...
우리 일행은 민박집의 소개로 백두산 온천장으로 향했다. 우리의 어천인은 酒夜의 시간이 즐거웠든지, 자신은 꿈나라로 가겠단다.
온천장으로 향한다. 규모는 동네 목욕탕 정도이다. 露天탕도 있다. 샤워기의 온도가 일정하지 않아서인지 뜨거운 물이 나왔다가 찬물이 나왔다 한다. 하지만, 여정의 피곤함이 그냥 녹아든다. 그랬다. 참으로 조오타~
뒤늦게 알고 보니 숙소에서 운영하는 것이고 무료로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라고 이 모든 것을 주선한 우리의 호프(hope) 회장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
숙소로 돌아간다. 酒夜의 시간과는 상관없는 나는 로비에서(참고로 2층으로 된 민박, 어쩌면 장급 여관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싶다) 일하는 아가씨와 얘기를 나눈다.
“요즘 어때요. 일본인들도 오나요” “일본인들은 안와요... 요즘 한국인들도 장백산에 올만큼 와서 예전만 못해요” “아가씨도 가이드 같은 직업을 하지요?” “요즈음 가이드가 너무 많아서....요..” 한다.
“잘 모르겠는데요. 중국인들도 잘 안와요. 볼게 없잖아요! ”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마도 중국정부가 10대 명산으로 지정한 이유는 1. 한국인이 많이 찾아온다. 2. 조선족이 많이 산다. 3. 한국인들이 많이 찾으니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라고 생각한다.“ “그럴 수 있겠네요”
자신은 한국에 가서 이른바 막일(노가다) 생활을 2년간 했단다. 아가씨가 묻는다. “경기도가 어디에요” 서울과 인천 그리고 경기도에 대한 지리 강의^^;;를 했다. 진지하게 듣는다.
“아가씨 나이는요?” “21살” 고등학교 졸업하고 여기서 일한단다. 중국돈으로 400~500元 받는가 보다... “나는 (나이가) 얼마나 보이죠?” “음~...” 뜸을 들인다. “30대 초반에서 29?” “건데 얼마에요?” 움~ 하하하 … … 이하는 생략하겠다.
다시 내려와 저녁을 먹고 아까 목다 나눈 얘기를 아저씨와 했다. 그는 이 민박집주인의 형부라고 했고 성은 孫씨이며, 랴오닝省 鞍山시에 집이 있다고 한다. 안산의 볼만한 곳을 소개해 주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고 가까이에 있는 本溪시, 단동시, 대련의 싱하이공원을 소개 해주었다.
酒夜의 시간과 온천욕(溫泉浴)으로 인해 다들 꿈나라로 향했다. 딱, 한사람만이 불만을 토로(吐露)한다. 개인의 인권을 생각해서 그 이름은 밝힐 수가 없음을 양지(諒知)하기 바랍니다.
8월 2일 백두산 - 연길
한 방에 같이 잠든 사부님도 6시에 일어나 명상에 든다. 명상에 든 것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심장ㅇl… 심장이 뛰고 있는 것이다. ‘왜 갑자기 뛰는거지’ 그 원인을 찾으려고 애썼다. … … 그때, 어천인이 들어온다. “빨리 나오세요, 천지가 열린다고 하네요. 짚차계약 했어요” 현기를 깨웠다. 부스스 눈 비비며 일어난다. 일단 내가 먼저 내려간다. 곧이어 사부님이 내려온다. “현기는요?” “가 ~ 는 그 자리가 깨꾸라지면서 안간다고 하데. 그냥 나혼자 내려 왔어” 마침 얼쩡거리는(^?^) 태순씨 !! 그녀(회장의 아내 <= 올 때부터 속이 더부룩하여 여행내내 고생이 심했다)와 함께 동행한다.
사부님, 나, 무서븐 여인, 김애경, 김미영(어천인), 그리고 차태순 이상 6명이고 안타깝게 중도 포기한 사람으로는 문현기(대구 대덕초 4년), 신창교(대구 K중 국어교사)이다.
짚차 기사는 마음이 급했다. 아니, 우리의 마음도 급했다. 6시 경부터 뛴 심장이, 올라가면서 더욱 콩닥콩닥한다.
“약간 동그랗고 넓적하고 손바닥만한 곤충인데, 갑자기 수 많은 개미로 변하는 기라. 나는 당장 살충제를 뿌려 개미들을 죽였지” “뿌리면 안되는데... ”하며 어천인이 말한다. “꿈에서 그랬단 말이다. 암튼, 죽었다고 생각한 개미들이 넓적한 지네모양으로 스믈스믈 기어 가는기야... 그러다 어느 사람이 마치 빵 쪼개듯이 썰어 주는데 그 몸 속에 죽은 개미들이 흩어져 있데… 무슨 꿈일까?”
일행은 아무 말이 없다... -.-;; (표정은 개 ~ 꿈)
나도 얘기하고 싶었으나 혹시 김샐까봐 자제한다. 짚차 기사는 어제(1일) 오른 차량(3000cc)보다 더 좋고(4500cc) 차분하게 운전을 한다. 그도 마음이 너무 급했는지 다소 고속으로 달리다 보니, 앞서갔던 5대가 눈에 보일 정도였으며, 정상에 오를 때까지 3대나 추월하였다.
어제 오를 때 짙은 안개로 인해서 보이지 않았던 백두산 기상대도 보인다. 밝은 하늘색으로 치장한 집이다.
기사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지향하는 것은 다르지만 ^ ^ㅋ )
아침부터 콩닥거리는 심장으로 인해 그 압박으로 인해 중턱(?)에서 더 이상 오르지 못한다. 약간의 현기증을 느낀다. 눈을 감는다. 가쁜 숨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쉬면서 앞을 본다. 일행들은 벌써 올라갔다. 환호를 지른다.
[짚차 주자장에서 약 100m 거리에 頂上이 있다 ^^ ]
천지의 물껼을 살~짝 옅봤다고 한다. ‘오늘은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라고 한다.
天地 四方에 天池가 약 80% 비춰진다. 경탄 그 자체였다. 어제(1일)는 한족 가이드와의 신경전 때문인지 오르면서도 그녀의 실망한 모습을 뒤로 했는지 천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사진에서만 보아온 天池다. 저 너머에 북한지역이다. 이른바 <장군봉>이 보이고 그 아래로 내려오는 길이 보인다.
아침 식사시간이 지나서 우리는 서둘러 내려간다. 일행들도 기다리고 있을껀데 … … 내려 가는 도중에 날씨가 심상찮다. 시커먼 구름이 몰려온다. 여기저기서 기사에게 전화가 걸려 온다. 뭐라고 말한다. 중간 쯤 내려올 때, 한번은 전화받다말고 우리에게 바꿔준다. 그 자신이 판단이 안서는 모양이다. 우리 일행이다. ‘오지말라’고 했다. 우리가 내려가고 있으니, 오지 말라고 했다. 나머지 일행들은 ‘우리가 올라 갈테니 정상에서 기다리라’는 전화였던 것이다.
벌써, 날씨가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기사 스스로도 판단이 안서니, 그 책임을 우리에게로 돌린 것이다.
“누가 날 잡았지! …” 태순씨가 말한다. “우리 신랑이요!”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그 집안의 대표를 모셔왔다는 사실을 기억해두라~” [일동 웃음 ^ ^]
기사에게 한국돈 일만냥과 사부님이 숙소로 달려가 가져온 부산의 명주(?), C1소주 한병을 건넨다. 기사, 기분이 째~진다. 이용료는 주선자(女)가 챙긴다. 일행에게 그 무용담^^을 얘기한다.
도중에 달걀 데우는(삶는) 곳이 나온다. 어제는 숙소입구에서 한 중국인이 폭포 입구까지 태워주는데 10元 달란다. 물론 안 탔지... 가보니 겨우 150~200m 밖에 안되는 거리다. 이게 서로를 不信하게 하는 동기가 된다. 중국 관광부(아니면, 길림성)에서는 이런 것부터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입구에서부터 디카맨의 활약은 눈부실 정도였다. 약 200~300m 걸어 올라가니 장관이 펼쳐진다. 사실은 山門에서 조금 더 지나 주차장(숙소에서 약 100m)로으로 향하다 보면, 볼 수 있다. 꽤 먼 곳에서도 볼 수 있다.
계단으로는 오르지 못했다. 아침 일찍 낙석이 떨어져 한 사람이 실려갔다면서 위험하기에 통제한다고 간접적으로 들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30여분을 기다렸다. 회장 말로는 폭포요금은 폭포가 떨어지는 곳까지라고 하는데, 우리는 발만 동동 굴릴 수 밖에 없었다. 천지에 발 한번 담글끼라고 부푼 가슴을 안고 왔는데 말이다.
중국인이 계단 입구에서 항의를 하고 있었다. 항의가 심해서인지 입구를 지키는 사람이 더 늘어났다. ‘현지인도 통제하는 마당인데…’ 하면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려 왔다.
11시 30분 경에 숙소에 돌아왔다.
무서븐 여인이 다시 한번 함께 가자고 주선한다. 처음에는 난, 안갈려고 했는데... 천지에 별 관심이 없었던 회장 대신에 내가 합류하기로 했다. 1차에 230원 + 천지에서 2시간 머물기로 계약했다. 아침 일찍 갔었던 崔三씨 차량으로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선자는 최삼씨 아내였던 것이다. 보기가 좋았다 . 9월 중에 한국으로 함, 온단다. 연락처를 주었다.
원래 6명 타야 하는데, 7명이라 현기는 차에서 잠시만 엎드려서 가기로 했다.
아침에 본 천지의 모습은, 저리가라 였다. 2시간의 여유라서인지 몇 번의 장관이 펼쳐진다. 여기 저기서 한국인(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많다), 중국인, 또 다른 외국인들의 감탄 소리가 빈발(頻發)한다. 원없이 한껏 봤다. 특히, 창교와 점순과 효숙과 현기가 그랬다.
우리 부부는 3번 오르는 셈이다.
::: 참으로 天池에는 천지 외에는 진 짜 볼 것이 없네 ^^ ::: ::: 저 바보들, 북한 저 바보들, 돈이 다 중국으로 들어가잖여.. 개방하면 좋을낀데 ::: ::: 요사이 금강산구경도 별로라고 한다. 설악산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단다 ::: (다행히도 누군가 2007년도엔가 북한에서 개방한다고 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20여분 기다렸다. 오지 않는다. 일행이 천문대 쪽으로 사진 찍으로 갈 때에 조선족 가이드를 찾았다. 차량 명함을 주면서 좀 알아봐 달라고 했다. 전화를 한다. 연락이 안된다. 감이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혼자 왔어요?” “네!” “30분인데 (2시간이나 있어서) 그렇지요. 담이 큰데요. 내가 내려가 연락해볼게요” “네, 감사합니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내려가는 조선족 가이드 한 사람에게 더 부탁을 하였다.
::: 천지를 보려면 최소 1박 2일이 필요하다. 그래야 제대로 본다 ::: 그래야 천지에 온 보람이 있을 것이다. 팩키지가 아닌 배낭여행이라면, 우리와 같이 나름대로옵션(각자 부담 ^^;)을 하면 될 것이다. 다음에 오면, 등산을 하고 싶다...
우리가 점심을 먹고 있자니 4시에 간다던 버스가 3시 25분에 왔다. 소천지로 간 일행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고 있는 중이란다. 3시 40분에 버스에 올랐다.
마땅히 줄 것이 없어, 할 수 없이 20元을 주고 왔다. 姓이 같은 金氏다. 미처 얘기는 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꿈을 반드시 이루었으면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씨가 많이 있지만 중국에서는 그렇지 않단다. ‘양볼에 자연 그대로의 보조개가 있는 아가씨’다.
연길로 가는 버스, 우리가 탄 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연길로 바로 가는 버스는 이 버스 뿐이라고 한다. 원래 4시에 출발했다면 그녀들(하얼삔에서 어학연수 중이고 서울사람이란다)도 탓을 것이다. 그런데 일찍 출발한 것이다. :: 다음 여행자들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출발시각이 고무줄이라는 것을 ... :::
버스는 사부님의 급한 볼일로 중도에 주유소에서 잠시 선다. 혼자 가기가 뭐 한 것 같아서 내가 동행한다. 웬걸, 다들 급했는가 보다 약 3/4 정도의 승객이 내렸다 ^^ 5시30분 경에 사슴농장에 버스가 선다. 다른 버스 2대가 연이어 왔다. 사슴을 직접 키우는 곳이란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상점에 들어가니 아기 사슴을 머시기거시기 하여 다소 마음이 얹잖았다.
무궁화 민박집으로 향했다. 9시 30분, 그 유명한 진달래 냉면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문을 닫는다고 한다. 주변에 삼천리 냉면 집이 있는데 2군데였다. 처음 봐둔 집으로 향했다. 물냉면(8元)을 시켰는데 참으로 그 양이 많다. 시원한 탁주가 4元이라 해서 시켰더니...만... 에게게, 컵 1잔에 달랑 들고 오는게 아닌가. 냉면 맛은 그런대로 좋았다. 식사 후, 역시 나와 사부(올 때부터 이빨이 좋지 않았다)와 현기만 숙소로 향하고 나머지 분들은 또 酒夜의 시간을 보내러 어디론가 떠났다.
나는 민박주인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중에 가슴 아픈 사연을 들었다. “아들처럼 생각했는데... 배신을 때리니, ……” 생략한다...
또 서로를 못믿는 동기가 생겨난다. 가슴이 정말로 아팠다. 민박주인 앞에서는 냉정할려고 했으나 가슴은 아팠다. 그랬다.
1. 성수기에는 유명한 집에는 육수 맛이 떨어진다. 대신 겨울에 먹는 냉면이 쥑인다. 2. 성수기에는 덜 유명한 집이 차라리 낫다(맛이 떨어지지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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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수는 여성동지들에게 <발맛사지> 함 쏘았다고 한다. 아니, 그런 면이 있었다 말이지. 좋은 면이야 ^^
무서븐 여인의 말에 의하면, ‘의식있는 청년’이라고 했다.
** bamboo ** ㅋㅋ 생동감 넘치는 백두산여행깁니다. 2004/08/08 8월 3일 연길 - 도문, 용정 혹은 서시장
원래(처음) 일정에는 없었다. 그 얘기를 듣고 사람들을 깨웠다. “일찍 일어나야 용정도 볼수 있다 카네요” 하면서 말이다.
평소에도 낮에 10분이라도 눈을 감고 있어야 했던 사람이다. 여행 중에 낮잠은 커녕 계속 함께 했으니 일찍 잘 수 밖에는... 쩝 -.-;;
중간에 양송이 수집(도매)처가 눈에 띈다. 일행 일부가 들어가본다. 12명 모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봐도 관광객임을 알 수 있다(바가지 상혼, 예방)는데 12명임에랴...
<임시 대합실>이 보이고 그 반대쪽에 차표 끊는 것이 보인다. 역시 연변이다. 모든(대부분) 간판의 글이 조선(우리) 글이다. 주차장에도 중국어와 병용했다. 쉽게 볼 수 있다. 누구나 표를 쉽게 끊을 수 있다. 버스의 크기는 12인승짜리, 25인승짜리가 대부분이다. 돌이켜 보면, 이게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문행 버스는 25인승짜리이고 7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요금은 10元이다. 시간은 1시간 소요된다고 안내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고속도로 경유하여 가는 관계로 약 40~5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또 다들 머리가 젖혀져 있다. ^^;
강이 보인다. 회장이 말한다. “강 저머너가 북한 땅이다” 회장부인이 전해준다 “저 건너가 북한이래요”, 나도 거든다. 이때, 회장이 말한다. “가짜다” 그랬다.
회장이 말했던 곳으로 다리를 건너 넘어가고 있다. 처음으로 농담했다. 내가 듣기로는 말이다...
도문 주차장을 배경으로 연신 플래시를 터뜨린다. 인력자전거(1인당 2원*2명)를 타고 국경지대로 향한다. 한 10분 만에 도착한다. 회장이 말한다. 3년 전에 많이 바뀌어 있다고 했다. 사진 찍을 때 조심하라고 한다. 괜찮은(만들어진) 배경에다 사진 찍으면, 돈을 낸다고 한다. 주민들이 <중조 국경지대> 등을 여기 저기 만들어 놓고 있다.
참으로 묘하다. 강 저너머가 북한 땅인데, 그게 나에게는 익숙한 땅이다. 연길에서 도문으로 오면서, 광야에 펼쳐진 곡식들보다 더 익숙한 땅이 저 너머에 있다.
또 한 무리는 마작을 하고 있다. 하는 방법은 몰라도 마작이라는 것은 안다 ^ ^ 드디어 사진 자료에서 본 북한의 남양시가 한 눈에 들어온다.
다리 저너머가 북한 땅이다. 몇 명이 다리를 건너가고 있다. 건너서 북한으로 가는 것인 줄 알았는데 돌아온다. 중국 군인이 북한 검문소까지 함께 걸어가서는 사진 찍고 돌아온단다. 운이 좋으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운이 나빴다 ^^;;
중국검문소 위에 전망대가 있다. 돈 내는 줄 알았는데, 그냥 올라가란다. 전망대에 오르는 중간에 상점이 있고, 정상(약 3~4층 높이)에는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고, 실제 사용하는 지는 알 수 없어도 북한 돈과, 그외 것을 파는 상점이다. 많이 걸어서인지 몇몇은 나무 그늘아래에 쉰다.
주변 상점에 들어가서 회장내외, 현기(담임과 친구 선물이랑), 무서븐 여인도 뭔가를 사들고 등장한다. 약 1시간 정도 쇼핑한 것 같다. 전부 북한술 4병에 보드카 1병이다.
한식 집이지만, 그동안의 유수한 세월 탓인지 한국식과는 사뭇 다르다. 어떤 요리는 중국요리, 그 자체다.
아 참, 도문 국경지대에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다. 1명에게 돈을 주면, 떼로 몰려서 그사람을 집중공략한다. 그 거지의 1명이 우리가 갔던 식당에 앉아서 거나하게 음식을 먹고 있다. 알아차렸는지 슬금 눈을 피한다. 뒤에 오는 여행자들을 위해서라도 가능한한 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심양행 열차는 5시 40분! 마음이 급하다. 일정에 없었던 용정! 용정은 꼭 가고 싶다. “신선생, 우리는 일어나 가자” 연길 서시장은 가지 않더라도 용정은 꼬옥 들러고 싶었다. 많은 이들이 상대로 상혼으로 넘쳐나던 말이다. 그러자 회장이 말한다. “함께 일어나죠” 다시 연길에 돌아오니, 2시 40분!
우리 6명(순점씨 가족, 뚜룩, 빨간토마토, 우리내외)은 용정으로 향했다. 5시 경에 숙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시인 윤동주{서시 -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세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가 태어나고 묻힌 곳이 용정이다. 박경리의 土地가 용정을 배경으로 한다.
택시 2대를 대절(흥정)했다. 대절료는 100元으로 했다. 기사는 조선족과 한족이다. 80원 하자고 했으나 한족이 말한다. “길표-고속 통행료-는 승객이 담당하라”고 하는데 실랑이가 싫어서 그냥 100元(길표 왕복이 20元^6^ 이리치나 메치나 100元)으로 했다. 마음도 급했기 때문이다. 택시의 고속질주(시속 120Km) 덕분에 15분만에 용정에 도착한다.
버스 타고 왔으면 가기가 참으로 막막했다. 택시 대절, 잘했다 싶었다. 거의 입구까지 데려다 준다. 중도에 경기장 건설이 한창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준비를 한단다. 용정에서 경기가 열린다면, 참으로 정치(경제)적인 계산이 깔린다면,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일게다.
♪ 일송정 푸른 솔은 ~ ~ 한 줄기 해란강은~ ♬ 일송에 있으니, 눈이 아프다. 눈물이 난다. 왜그런지 모르겠다. 무서븐 여인은 더 심했다. 해란강을 바라볼 때 훔쳐지는 눈물... (나중에 알고보니, 일제에 의해 해란강에서 많은 이들을 몰살되었다함)
확 트였다. 저멀리 용정시가 펼쳐진다. “아~!! 시워원 하다”
시원스러운 돌삐로 바뀌어져 있다. 중국인들은 모른다. 계속 한국인들을 상대로 관광사업을 하려면, 옛 동요를 다시 새겨야 할 것이다. 그게 한국인의 정서에 맞다고 본다. 그래야 많은 관광객이 다녀갈 것이다.
-오늘날 와서 알게 되었지만, 중국의 동북공정의 일환 임을 알게됨 ::2005년 -
우리와는 달리 중국은 중학교가 9개가 있다면, 일중, 이중, 삼중, ‥‥구중 하는 식이다. 아직 수업중이라서 우리는 조심했다. 역사적인 건물은 박물관화되어 있고 학생들은 신축 건물에서 공부를 한다. 일중은 주변 6개 중학교가 합쳐져서 현재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무서븐 여인이 먼저 방명록에 기록하고 장학금 2만원(중국돈 140元)을 냈다고 한다.
우리가 가고 나서 민박할 여행자(하얼삔에서 어학연수)가 경극을 관람한다. 속으로 부러웠다.
곧이어, 서시장 팀이 도착한다. 저녁을 먹고 (내가 올 때는 헐렁했던 혁대가, 서서히 끊어지는 감을 느껴 맛나는 반찬을 뒤로 해야만 했다 -.-;; ) 나서 역으로 향한다.
시외버스 정류장에 있던 <임시대합실>이 바로 연길 역이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말한다. “여기서 기차 못타면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간다 ^^ ” 그렇다. 그만큼 사람들이 많다. 우리 일행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조금 가다가 인원 점검을 했다. 원래 6인용 침대칸을 이용계획이 있었는데, 표를 구하지 못해 [4인용] 침대칸을 구입했다. 회장의 아내가 말한다. “연길에서 심양까지 뱅기요금이나 열차요금이나 거의 같다”라고 한다. 上칸은 223元이고 下칸은 231元이다. 암튼, 6인용보다는 4인용이라 나는 좋다. 좀 더 편하게 갈 수 있으니 말이다. 이름이 뭐더라... 6인용이 <잉~워>고 4인용이 <루안워>군... 음...
회장은 심야에서 머물 호텔에 전화를 건다. 예상 도착시간은 오전 8시이었으나, 실제 도착시간은 6시30분이었다.
회장이 말한다. “원래 무궁화 5개짜리인데, 바람이 너무 불어서 4개가 날려갔다.” = 일동 *^^* =
루안워는 다른 사람이 타지 못하도록 통제한다고 한다. 모두 9칸으로 되어 있으니, 36명만이 타고 있는데 그 중 12명이 우리 일행이다. 서시장에서 사온 과일을 잘라 먹고, C1소주를 마신다. 그것도 모자라서 무서븐 여인이 사온 북한 백두산과 들쭉술을 내놓는다. 다음날 아침에 보니, 마시다 만 술병이 2병 있다. 북한 술이다. 입맛에 안맞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서로의 입맛을 달리 해놓았던 것이다.
酒님도 일행을 멀리하는 바람에 ^^;
지난일들이 또다시 새록새록 생각나는 하루군요^^ 즐거운 한주 되셔요~ 2004/08/09
8월 4일 심양
내리기 30분 전이라는 표시라고 한다. 이른바 움직이는 모닝콜이다. 돈 준 만큼 확실한 서비스다. 심양북역에 도착하니, 동빈도 호텔 사장이 마중 나와 있었고 그 숙소로 갔다. 짐을 일단 숙소에 두고 TV채널을 돌려보니, KBS1과 OCN이 나온다.
오전 8시에 아침을 먹고 나서니, 반가운 얼굴을 본다. 한때 나에게 배운 제자였다. 현재 대학2년생이란다. 기억으로는 2학년때 담임을 한 것 같다. 선교원 사람들과 심양에 왔단다. 포옹을 해주었다. 아니, 너무나 반가워 포옹을 했다. 선교사라는 분도 한 번 본 적이 있다. 그 이후에도 고궁에서 한번 더 만났다.
서로의 일정이 다르니, 각자의 일정대로 움직인다.
연길 역에서 출발했을 때부터 그랬다.
눈은 간(肝)과 연결되어 있다. 肝은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 肝을 대변하는 것이 눈(目)이다. 눈이 충혈되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피곤하다는 증거이다. 처음 6월정모(처음 가입하고 참석함) 때도 그랬었다.
회장은 모임에 적극적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임에 적극적인 것과 건강을 주의하는 것’은 다르다. 지난 밤에 사부님이 회장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권고(勸告)한 모양이다.
다들 충분히 이해된다. 회장이 피곤하다는 것을... 中心에 있기에 피곤한데도, 움직인다.
숙소에서 택시로 10元이다. 12시 30분에 출발 장소에서 만나자고 했으나 거의 같이 움직였다. 거의 제품이 ‘짜가’라는 것을 알지만, 대체로 시계와 혁대 등을 구입했다. 회장부인은 무조건 80% 깎으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때로는 80%도 통했다. '잘 샀다, 못샀다'를 떠나서 흥정하는 재미로 쇼핑을 한다. 잼~난다.
1시 경에 점심을 시장주변에서 해결하고 고궁으로 향한다. 택시로 11元이다.
볼게 많다는 얘기다. 약 2시간 가량 머물렀다.
다음으로는 西塔으로 갔다. 항상 택시 3대에 나누어 간 관계로 인원점검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서탑>에서는 모두 모이는데만 30분 소요된다. ::: 1. 12명이 움직일 때는 중국현지 휴대폰이 있어야겠다 ::: ::: 2. 휴대폰이 없으면, 휴대용 무전기라도 있으면 좋겠다 :::
일단 가까이에 있는 <발맛사지집>에 들렀다. 30元(발과 다리)짜리로 했다. 약 30분이다. 우리의 현기^^도 맛사지에 동참한다. 원래 아이들은 혈기왕성(血氣旺盛)하므로 하지 않는다고 한족아가씨가 말한다. 꽤 오래동안 이 업종에 있다보니 한국말을 조금 한다고 한다.
사부님이 등장하자 현기를 내려보내고 채사장이 부른다. “관장님(사부를 지칭-현재 부산어천검도장 운영), 여기 오이소오”하며, [처음 올 때는 큰 형님 혹은 형님이라 불렀는데, 언제부터 '관장님'으로 바궜지^^]
<등 맛사지>를 추가한다. 우리도 채사장 덕분에 30분간 더 쉬게 되었는데, 단순히 기술만 배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픈 자리를 족집게 마냥 골라내어 맛사지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 끝나고 나서 무서븐 여인은 1인당 5元씩 5명에게 팁으로 얹져주었다.
어림잡아 계산해보니 대략 한달에 1500元정도 되어보인다. 몸이 상당하게 풀렸다.
서탑거리를 구경하다가 북한식당 모란관에 갔다. 888元짜리를 주문했다. 돈에 비해 별로 먹을 것은 없어 보인다. 마지막에 나온 북한 냉면, 참으로 맛이 없다. 연길에서 맛본 냉면보다 못하다. 그 집만 그런가? 하기야 음식이 목적이 아니고 공연이 목적이었다. 목적이 다른데 있었기에 이런 것은 다 묻혀진다.
마침 공연한 북한아가씨(음식서빙도 함)가 있길래 빨간토마토가 적극적으로 나서 함께 사진 찍자고 한다. 난, 관심없는 것처럼 했으나 나도 모르게 그들 뒤에 써억 서 있음을 발견한다 *^^*
회장 몸도 성치 않아 숙소에서나마 함께 酒夜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8월 5일 심양 - 인천 - 대구
아침 먹고 뱅기장으로 향했다. 도착시간 7시 30분, 8시에 들어가서 기다리는데 회장이 북방항공직원과 실랑이를 하고 있다. [너무 늦게 와서 표가 없다는 것이다]
사부님이 큰소리로 알아 듣게 말했다. “우리는 8시에 도착해서 기다렸다. 우리는 단체다. 표가 7장 뿐이라니, 뭐가 이런게 다 있냐?” 마침, 한국말을 알아 듣는 직원이 있어 다행이다. 실랑이 끝에 일단 10명이 원래대로 가기로 했고, 대구회장 내외가 뒷뱅기가 마련 되는대로 오기로 했다.
역시 믿음직하다. 이래서 대구회장이다. 우리가 인천에 도착하고 나서 전화해보니 현지시간 12시30분(한국시간 오후1시30분)뱅기로 온다는 것이다. 다행이다.
결국 뱅기 시간 등을 감안하였고 채사장 얘기도 있고해서 술(북한 술 전부와 보드카 1병)은 포기해야만 했다.
으레껏 이코노미 좌석이라 생각하면서 갔는데, 엥~ 자리가 없다. 다시 번호를 보고 좌석을 찾으니, 비즈니스 좌석이다. 돈이 많으면 항상 비즈니스 좌석을 이용하겠지만, 이게 웬 횡재 ^^; 다 사부님 덕분이다. 큰소리를 친 덕분이다. 비즈니스좌석이라 서비스도 달라 보인다. 또 기내식이 나온다. 아침을 푸짐하게 먹은 관계로 기내식은 거의 입을 대지 못한다.
** (살기좋은대구...) ** 걸죽한 여행담이 걸잡입니다, 앞으로 대구 중여동 공식 서기로 임명하겠읍니다, 2004/08/09 즐거운 여정이엿다니 넘 좋군요..부산 야유회 오실거죠... |
첫댓글 귀주의 황과수 폭포는 낙차 68m, 폭 84m인 아시아 최대 폭포라고 하네요...
백두산의 장백폭포의 높이 68m... 폭이 황과수보다 많이 좁아서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