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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마음 <최명숙 목사>
한해의 끝 날인 어제나 한 해의 첫날인 오늘이 다르지는 않지만 그날이 지닌 의미는 사뭇 다릅니다.
이 사람과 저 사람 역시 같은 사람이지만 가지고 있는 그 마음에 따라 다르기에 이삭이 아빠는 시각장애아인 이삭이를 데리고 다니다 보면 누가 특별한 행동을 하거나 특별한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마음의 기운을 느낄 수가 있어 그 기운만으로도 위축이 된다고 했습니다.
교회에 오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하다는 그들의 행복하고 밝은 표정이 보는 이들을 행복하게 하고 ‘목사님과 베데스다 사랑하는 성도들과 함께 늘 지금처럼 예수님 사랑 안에서 함께 한다면 삶의 모든 경험과 과정들을 살아나갈 자신이 있을 것 같습니다.’고 카드에 적어 보낸 그 마음 역시 고맙고 소중합니다.
새로 생활공동체 가족이 된 이연규, 강순덕 부부의 방에 들어가면 정면 벽에 노부모님의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아무리 핵가족 시대라지만 요즘 젊은 부부의 가정에서 노부모의 사진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것도 많이 배우고 잘 사는 집일수록 노쇠한 부모님의 사진을 걸어놓는 일은 드뭅니다.
대신 가정마다 새순처럼 자라나는 아이들의 사진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유치원 졸업사진을 박사학위 사진이라도 되는 양 크게 확대해서 걸어놓거나 자기들의 결혼사진을 마치 영화 스크린처럼 만들어 벽면을 장식하는 경우는 흔합니다.
그러나 그 화려한 공간 어디에도 자신을 낳아서 기르느라 헌신한 부모님의 모습은 찾을 수 없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14살 때부터 공장엘 다니며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 살림에 보탬을 주었던 아들이 10여 년 전에 우리 교회에서 반려자를 만났을 때, 결혼식을 올려줄 형편이 못된다고 관공서에서 주최하는 합동결혼식에서 식을 올렸습니다.
그 날,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순진무구한 눈망울을 굴리며 나오는 신랑과 부모도 없이 척추장애를 가지고 외롭게 살아온 안쓰런 신부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눈물이 쏟아져 인사도 나누지 못할 정도로 펑펑 울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이번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얼굴이 달덩이처럼 훤하게 예쁜 딸을 데리고 생활공동체 가족으로 들어왔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과 다르게 벽에 촌노(村老)의 사진을 자랑스럽게 걸어놓은 그 마음이 아름답고 소중합니다.
사역초기에 명절이면 선물을 가지고 찾는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는 식구들의 모습을 사진 찍으려고 할 때면 나는 주방에서 일을 하던 차림 그대로 걷어 올린 소매만 내리고 다른 사람들 대신 나만 찍으라고 하면서 수복하게 쌓아놓은 라면 박스나 과일 박스 앞에서 사진을 찍어 자료를 만들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연말에는 꼭 모두를 찍어야만 한다는 R클럽의 요청에 그들의 후원금을 사양한 일까지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자체가 어려운 건 아니지만 장애를 가지고 어려운 여건에 있다고 해서 나를 믿고 생활을 하는 그들을 그렇게 비참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는 최집사님이 “언젠가는 우리 목사님도 선교나 구제를 위한 금일봉을 가지고 시설을 방문할 수 있는 날이 와야 한다”는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물질과 봉사로 교회를 돕는 마음도 소중하지만 그러한 마음은 한 차원 높은 마음이지요.
나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생활공동체 가족들과 함께 생활을 나누고, 어려운 이들이나 시설을 돌보는 외부의 구제는 내가 직접 나서는 대신 집사님들을 앞세워 뒤에서 조용히 이행하고 싶은 생각이지만 그러나 최집사님의 그 마음은 감동적입니다.
되돌아보면 언뜻 처절한 모습으로 그리하여 치열하게 살아온 것 같지만 사실은 이러한 소중한 마음들로 둘러싸여 나는 갑각류(甲殼類)처럼 약한 속살을 가지고도 행복하게 살아온 것입니다. ‘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 신33:29 - - 2004. 1 - .
아름다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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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데스다성전에서 예배할 수 있음은
작성자 : 최규환 작성일 : 2004/01/08 16:50
얼마 전부터 저는 예배를 드리려고 교회에 올 때마다 하나님께서 베데스다 성전을 세워주시고 우리를 불러주심으로 찬양하며 기도하고 귀한 말씀을 들을 수 있음은 어떠한 축복인가 생각하곤 합니다.
따뜻한 바닥, 피아노와 자막이 나오는 반주기, 쩌렁쩌렁 소리 나는 스피커 환히 빛을 발하는 형광등, 뒷켠에 떡 버티고 서있는 에어컨, 구석구석 따뜻하게 데워주는 보일러, 압력밥솥, 파란 불꽃을 내며 지지고 볶을 수 있는 가스버너, 그 밖에 여러 가지 시설과 비품들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런 것들만으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큰 교회에 가면 더 삐까번쩍한 시설이 있다고요?) 물론 있습니다. 있고말고요.. 그러나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은 다른 교회에 있는 그것들과는 사뭇 다르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분들을 통해 이루어 주셨고 지금도 끊임없이 이루어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매월 회보를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진정 여러 손을 통하여 일하고 계심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도 축복받은 자녀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목사님을 특별히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지명하시고 기도를 들어 응답하시며 이루어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조용히 축복가운데로 이끄시면서 당신이 도구로 쓰신 후원자들을 위해 기도할 또 한 번의 축복을 허락하고 기회를 주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편안히 주님을 모시고 예배할 수 있음은 목자의 '간절한 기도'와 하나님께로부터 도구로 쓰임 받는 후원하신 분들의 '정성의 결정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 다시 새로운 해를 맞이하면서 우리를 위해 물질과 기도로서 후원해 주신 많은 분들을 위해 하나님의 더 크신 사랑과 축복이 임하시기를 기도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영암 간척지 논바닥의 보릿 잎이 햇살을 받아 빤닥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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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에 올린 최규환 집사님의 글에 대한 해설로 오늘은 오랜 세월동안 이름 석 자로만 후원 헌금난에 기록되었던 님들을 몇 분만이라도 소개해야할 것 같습니다.
빠짐없이 다 소개할 수 없는 점 먼저 양해를 구합니다.
조용자님은 서울에 계신 분으로 지금은 60이 넘은 독신여성이며 보건사회부에 근무하다가 얼마 전에 정년퇴직을 하신 분입니다.
92년 7월, CBS방송의 ‘새롭게 하소서’ 프로에 출연했을 때 당시 진행을 맡았던 영화배우 고은아(권사)님의 소개로 알게 된 분으로 건축하기 전부터 건축헌금과 후원헌금을 구분해서 지속적으로 후원을 해 온 분입니다.
윤영모님은 한국외국어대학교에 근무하시는 분으로 장애를 가진 여성과 열렬한 사랑으로 결혼을 해 살면서 마음이 늘 장애인의 입장이 되어있는 따뜻하고 푸근한 성품의 60대 초로의 신사입니다.
지금은 대학에 다니는 두 자녀를 두고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모범가장이며, 또 부인 윤춘자 집사님은 ‘한 마음’이라는 모임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정기 후원을 하고 계십니다.
87년 사역 초기, 후원금 한 푼도 없이 어려웠던 그 때, 처음으로 매월 정기 후원을 시작했던 그래서 잊을 수 없는 개야도 교회(김봉엽 목사),
목사 안수를 받던 91년, 피아노를 기증한 지금은 고인이 되신 당시 이기원 장로님,
“어느 피아노사에든지 직접 가셔서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놓기만 하십시오. 그러면 보내드리겠습니다.” 라는 부탁대로 피아노사로 내가 직접 가서 고른 피아노가 지금 예배드릴 때 사용하고 있는 피아노입니다.
그 때 어머님께서 참았던 사실을 털어놓으셨는데 사실은 가까운 데 사는 친척이 피아노를 새 걸로 교체하면서 사용하던 중고 피아노를 다른 사람에게 기증했다고 자랑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어머니는 너무 섭섭하고 마음이 아파서 우셨다면서 중고가 아닌 이렇게 좋은 새 걸로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감격스러워 하셨습니다.
교회당을 건축할 당시에 헌신한 이만수 장로님의 감동스런 이야기야 이미 몇 차례나 했지만 외에도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시키신다면서 아낌없이 정기적으로 건축헌금을 드린 나인숙권사님,
교도소에 복역 중이면서 건축 당시에 어린 딸이 모은 100만원을 건축헌금으로 전달한 강현태님,
수년 동안 매주 우리 교회에 청소 봉사를 했을 뿐만 아니라 가정 도우미로 모은 돈으로 예배당의 커틴과 장의자를 마련해 준 양경자집사님과 이영자집사님,
신앙생활을 하기도 전에 멀리 경상도에서 십일조 헌금부터 꼬박꼬박 보내온 조용철님,
교회에 출석은 하지 않지만 식당을 짓던 99년 대형냉장고를 사서 기증한 이환수님,
식당의 싱크대, 식탁, 의자, 가스버너, 그리고 목사관 현관의 신발장과 싱크대는 천리안 지역동회인 군산 동호회 김성훈님이 ‘레오가구’를 운영할 당시에 기증한 것입니다.
그리고 식기류는 서울에 있는 천리안동호회에서 회원들이 마음을 모아 밥공기에서 주전자에 이르기까지 수십 명 분의 식기세트를 안 깨지는 제품으로 사서 보내왔습니다.
외에도 이발봉사로, 인쇄로, 강단 꽃과 화분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오랜 세월동안 사랑을 보내주시는 많은 님들,
매월 회보 ‘후원헌금난’과 ‘감사드립니다’난에서 당신의 눈에도 익은 그 이름들은 내 가슴속에 늘 은혜의 파노라마처럼 살아있습니다.
오늘은 그 사랑을 우리가 이렇듯 고마운 마음으로 누리고 있음을 님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받은 은혜들이 사랑의 씨앗이 되어 더 큰 사랑을 세상에 전하라는 그분의 뜻으로 알고 이 빛 받아 더 아름답게 세상에 반영시킬 것을 다짐합니다.
옛날, 그 암울했던 시절, 목이 터지도록 불렀던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노래에는 ‘풀잎 끝에 달려있는 이슬방울’이나 ‘갈 바를 모르는 새 한 마리의 가엾은 모습’만이 아름답다고 여겼던 답답한 세월들도 있었지만, 이러한 아름다운 심령의 모습들은 지치고 찌든 영혼을 우슬초처럼 정화시켜 세상을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만들어 줍니다.
오늘은 건조한 대기 속에 내린 싸락눈이 반짝이며 여기저기에 별처럼 흩뿌려져 있고, 하얀 눈빛에 반사된 햇살은 어느새 봄을 머금고 있습니다.
- 2004. 2 - .
순 교
그분께서도 분명 우리에게 ‘용서하라’(마6:15)고 말씀했건만 언제부터인가 ‘용서’라는 말을 선뜻 사용하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게 피해를 입혔다고 해도, 상처를 주었다 해도, 배신을 했다 하더라도 우리가 연약한 모습으로 서로 부대끼고 살아가면서 누가 누구를 감히 용서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차라리 ‘이해를 한다’거나 ‘인정을 한다’는 말을 사용해왔습니다.
그럴 즈음 부천 초등학생 납치 살해사건과 이어서 포천 여중생 실종 살해사건을 비롯하여 비슷한 사건들을 줄줄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끔찍해서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실제로 우리 곁에서 일어난 사실이기에 그냥 외면만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건강하게 잘 놀던 천진난만한 초등학생 아들이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해서 무참하게 발로 짓밟히고, 목 졸려 죽은 싸늘한 시체로 돌아왔다면,
또 막 피어나는 사춘기의 딸이 하교 길에 실종되었다가 알몸으로 배수구 속에 틀어박힌 채, 부패된 시체로 발견되었다면, 우리가 그 아이들의 부모라면 어떻겠습니까?
숨이 가빠오고 손발이 떨리는 분노를 느끼는 그 때, 비로소 ‘용서’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하, 용서란 바로 이런 때 사용하는 거구나! 그러나 그들은 그 순간, 용서보다는 차라리 그 잔인한 가해자와 함께 무너져 버리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너무 너무 마음이 아픈 오늘은 욥의 아내가 생각납니다.
욥은 그녀를 어리석은 여자와 같다고 했고, 우리는 믿음이 부족한 여자라고 생각했었던 그녀의 말이 오늘은 가슴을 칩니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냐,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2:9)고 울부짖을 정도로 슬픔으로 무너졌을 그녀의 가슴을 오늘만은 안아주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이 거북이를 한 마리 기르다가 큰 거북이가 혼자 심심할 것 같아서 아주 작은 새끼 거북이 한 마리를 사서 넣어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외출을 했다가 들어와 보니 큰 거북이가 작은 거북이를 잡아먹고 살을 다 파먹은 등껍데기만 둥둥 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 사람은 왠지 그 거북이가 보기만 해도 징그럽고 소름이 끼쳐서 기를 수가 없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동물 중에서도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은 느낌부터가 다릅니다.
호랑이, 사자, 늑대는 무시무시한 공포감을 주지만 사슴, 토끼, 소, 양의 모습은 평화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를 ‘양’으로 비유하신 그분의 뜻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 정말 양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스스로 양이라고 하면서도 어느 순간에 포악하고 잔인한 육식동물로 가는 데마다 공격적인 태도로 평화를 깨뜨리고, 만나는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참으로 그렇게 우리가 모두 양들이라면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는 해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사11:9)이라는 그분의 말씀대로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사11:7)’ 천국은 우리 안에 이루어질 것입니다.(눅17:21)
살아 갈수록 천국을 갈망하게 됩니다.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고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해를 입지 않는’(사11: 8) 사랑스런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마음 놓고 자랄 수 있는 그런 천국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살아내야 할 삶은 순교의 삶입니다.
현실의 분노와 절망 속에서 욥의 아내처럼 차라리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고 싶은 ‘나’를, 파괴해 버리고 싶은 ‘나’를, 그러한 ‘육신의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이야 말로 순교지요.
그러면서 진흙과 같은 우리가, 지렁이 같은 우리가 그분은 따라가는 거지요.
그렇게 세상에서 돌고 도는 악순환의 고리가 우리 앞에서라도 계속해서 끊어질 수만 있다면,
지옥의 어둠을 사르는 빛의 사역으로 아픔 속에서도 천국의 씨앗을 심어가는 것이지요.
순교란 무기를 들고 나아가 싸우다가 장렬하게 죽어가는 돈키오테 같은 영웅심이나, 죽더라도 강대상에서 죽겠다는 불필요한 아집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게 ‘참나’를 누르고 있는 질식할 것 같은 ‘겉나’의 껍질을 깨고 하늘을 보는 것이지요.
참으로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정치적인 종교 탄합이 있던 때만이 아니라 지금도 삶의 현장에서 순교는 계속해서 이루어져가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던 것이지요.(고전15:31)
또 다시 다가온 이 사순(四旬)은 겉 사람을 장식하는 형식이나 의무적인 금식이나, 행사가 아니라 껍질을 깨고 돋아나는 새싹처럼 육신의 ‘나’를 죽이므로 영적인 ‘나’로 거듭나는 나비처럼 자유로워지는 기간이었으면 합니다.
상대를 정죄하는 나! 아직도 ‘나(self)’를 덮고 있는 ‘나(ego)’가 피 흘리고 죽어지는 찬연한 순교의 기간이었으면 합니다.
- 2004. 3 - .
4월의 편지 - .
목사 가족
어떤 사모님의 예(신실하신 목사님... 세습이라느니 등으로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야 있지만 예수에게도 유다가 있었듯이)... 목사 아이들의 빗나감... 우리 부모님과 동생 살얼음을 걷듯 조심스럽고 조용하게.. 예수님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형제냐? 라는 말로 혈연을 초월한 형제애를 강조하셨으나..마지막 숨지는 순간에 요한제자에게 ‘보아라, 네 어머니다’라는 말씀으로 가족을 부탁했으며 제자 요한은 사랑하는 스승의 어머니를 자기 어머니로 모셨다고 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속담에도 ‘색시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한테도 절을 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목사 가족이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목사 가족이니까 헌신이나 희생을 특별히 강요하가나 비난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아니다. 내 동생은 장애를 가진 형제들의 누나로, 언니로, 그리고 동생으로 스스럼없이 격의 없이 지내왔다. 특별히 헌신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적도 없었고, 목사 동생이라고 해서 고자세가 되었던 적도 없었다. 나는 그런 동생이 오히려 편했다. 특별히 나타나는 것보다는 그냥 함께 하는 자세가 얼마나 이상적인가? 이따금씩 그런 이들이 있어 배타적인 느낌..아버지 팔순광고도 성ㄱ연치 않은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내 동생 시부님이 별세하셨을 때는 주보에 광고도 하지 않았다.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리...
앞으로 우리 교계에서도 이런 미숙한 풍토가 개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주의 종의 가족이라면 내 가족처럼 아끼며 잘 지내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 멘
도올 김용옥 교수의 강의가 사람들에게 이해가 잘되고 옳소!로 받아들여질 때는 박수가 터지지만 목회자가 선포하는 메시지에는 ‘아멘!’이 나옵니다.
그러나 옳소!는 그냥 옳다고 인정하고 아는 것으로 끝나지만 아멘!은 받아들이는 대로 확신하는 대로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아멘’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열고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는 순종과 기도의 표현이지만 목회자에게 있어서도 이 ‘아멘’은 열심히 선포한 내용이 성도들의 마음에 받아들여졌음을 확인하게 되는 힘과 보람을 주는 반응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선포된 축복의 메시지는 영적으로 섭취가 잘되어 “아멘”하는 그 영혼을 통하여 역사가 되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믿음의 사람들은 그러한 기가 막힌 ‘아멘’의 체험을 통해서 살아계신 그분의 존재를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지요.
예수께서도 “너희가 내 안에 내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 )고 하시지 않았던가요?
그러나 이 ‘아멘’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있는 자에게서만 나타날 수 있는 아름다운 반응입니다.
‘아멘’하는 모습들은 모두가 소중하고 아름답지만 내게는 특별히 가슴을 찡~하게 하는 아멘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교통사고로 뇌를 심하게 다쳐 시각장애와 인지능력 일부가 손상된 이삭이는 평소에 다른 사람의 말에 그렇게 잘 귀를 기울이는 아이가 아닙니다.
그냥 자기가 하고 싶고 궁금한 것을 알아보기 위해 모든 것을 열심히 만져보고 움직이는 모습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면서 “우리 이삭이 이제 하나님께서 눈 깨끗하게 낫게 해주셔서 시원하게 보게 해주실 거다.”하는 말씀에 뜻밖에도 “예!!!”하고 씩씩하게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면서도 순간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보기를 간절하게 원하고 있으면 그렇게 반갑게 대답을 할까요?
남기도 예외는 아닙니다. 아직도 보기에는 사람들의 말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제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그림을 그리고 있다가도 내가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우리 남기 이제 하나님께서 더 똑똑하고 말도 잘하게 해주실 거야... ” 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예!!!"하고 씩씩하게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어린 마음에도 말을 잘할 수 있기를 간절하게 원하는가봅니다.
애초에 그런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한말이기에 녀석의 그 대답은 나를 숙연하게 했습니다.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몸 전체가 불편한 상태에서 양쪽 목발에 겨우 의지하여 몸을 움직이는 종훈이 역시 “와~우리 종훈이 얼굴이 참 밝구나,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이제 건강하게 해 주실거야..” 하자 “예!!”하고 씩씩하게 대답을 하고 얼굴이빛이 더욱 환해지면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까지 깍듯이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게 사랑스런 아이들의 ‘아멘’을, 우리가 들어도 가슴이 뭉클한 이 간절한 ‘아멘’을 그분이 모른 체 하시겠습니까?
이삭에게 빛을 안주시겠습니까? 꼭 육신의 시력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아이의 인생에 육신의 시력보다도 더 크고 소중한 빛을 꼭 안겨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저토록 맑은 눈빛으로 찬양을 하는 여린 정서를 가진 남기의 간절한 ‘아멘’을 들으시는 그분이 저 아이를 늘 보호하시고 지켜주시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가슴에 꼭 안아서 반드시 그 인생을 보석보다도 더 빛나는 인생으로 만들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불편한 중에도 늘 해맑게 웃는 아이, 유난히 눈이 커서 더욱 착하고 애처로워 보이는 종훈이의 간절한 소망을 그분이 왜 모르시겠습니까?
축복의 말에 힘없는 몸으로 온 힘을 다해 “예!!!”하고 확신을 다짐하는 그 아이의 ‘아멘’이 그대로 하늘에 상달되어 비틀거리는 이 아이의 가엾은 지체를, 세상에서 보장 받을 수 없는 이 아이의 장래를 그분이 굳건하게 붙들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 아이들의 ‘아멘’이 하늘 보좌를 움직일 것을 확신하면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마18:3)는 말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묵상해봅니다.
믿음이란 그런 것이지요. 믿음이 아니면 축복의 메세지도 ‘노멘’(?)이지만 믿음은 고난의 십자가까지도 ‘아멘’으로 감당하게 하는 능력이지요.
그래서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수치와 고난과 죽음까지도 ‘아멘’으로 받아들이지 않으셨던가요? 그리하여 그 위대한 ‘아멘’의 삶을 통하여 죽음의 권세까지도 이기고 부활의 승리를 이루신 것이지요.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러한 확신과 용기 있는 ‘아멘’의 신앙이 이루어질 때 죽음의 절망까지도 이겨내는 놀라운 기적과 은혜의 삶이 될 것입니다.
- 2004. 4 - .
놀라운 일
어느 목사님이 군산에 와서 놀라운 일을 보았다는 말을 했습니다.
내용인즉 베데스다교회 목사님은 여성에다가 장애까지 가졌는데 건강한 비장애인성도님들이 저렇듯 열심히 교회를 섬기는 모습들을 보고 놀랐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의 그 말은 바로 내가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점을 정확하고 솔직하게 짚어준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육체라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고전1:29)하시는 그분 안에서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그들이 가진 순수하고 겸허한 믿음과 진취적인 가치관입니다.
목사의 신체적인 장애가 그들의 믿음에 장애가 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리 안에서는 천국이 이루어진 것이요,
장애인교회는 이미 없어진 것입니다.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갈4:14)
비록 우리 모두가 온전한 존재는 아닐지라도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세속적인 인식을 넘어 그분의 뜻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동안 봉사하기 위해(신앙생활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교회를 다니겠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고마움 마음들이지만 그보다도 더 소중한 마음은 지금의 우리 성도들처럼 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써 섬기는 일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누구든지 우리 교회에 오는 이들은 영혼이 잘되고 강건해지는 복을 받는 것이요.
지금의 우리 성도들처럼 그분 안에서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것이며, 많은 일을 하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이지요.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매년 4월이면 우리와 함께 장애인주일을 지키는 신풍복음교회에서 올해에는 깜짝 이벤트로 엘리베이터 시설을 멋지게 갖추어 놓고 우리를 초대했습니다.
4월 장애인주일 예배를 위해서 지난 3월에 공사를 마쳤다는 것입니다.
이 지역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그 교회가 장애건물에서 드디어 비장애 건물이 되면서 지역의 의식도 함께 변화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시설을 갖추고 우리를 초대하신 목사님과 장로님들도 흐뭇해하셨지만 우리도 기뻤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일들이 있습니다. 며칠 전에 시내 모 교회를 다니는 장애인 부부가 단 한 칸 마련된 장애인 주차장에 그나마 다른 차가 늘 주차되어 있는 점을 지적하자 거기에 주차를 하는 그 교회 장로님 왈, “이 교회가 장애인교회냐?”면서 불평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장애인이 그 교회에서 예배드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되는 건지 참으로 모를 입니다.
또 얼마 전에는 장애를 가진 사람을 칭찬하는 말로 어떤 분이 “당신은 장애인 같지 않다”라는 말을 했을 때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많은 말들 중에 하필이면 장애인을 비하시키면서 칭찬을 하느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나 역시 장애인이라 지나치게 민감하다고 할 것 같아서 참았습니다.
사람마다 성격과 느낌과 생각이 다르건만 긍정적인 면은 비장애인의 몫이고, 부정적인 면은 장애인의 몫으로 나누는 편견은 불편한 몸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일이지요.
그분은 즐거운 일이 있으면 열악한 여건에 있는 자들과 함께 그 기쁨을 나누라고 하셨지 그들을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하여 상처를 주라고 하신 일은 없지 않았던가요?(눅14:13)
그러나 우리가 있는 이 자리에서, 우리 교회에서 이러한 편견과 선입견으로 이어진 사슬이 끊어지고 있음을 볼 때, 여기 복 받은 자들을 통하여 하늘나라가 임하고 있음을 나는 느낍니다.
나는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을 포함해서 우리 성도들의 겸손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신앙의 자세를 볼 때마다 나도 그들을 더욱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목회자가 될 것을 다짐합니다.
나에게 바람이 더 있다면 언젠가는 의지가 강한 사람에게 “당신은 장애인처럼 강인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오는 것이며,
어떤 사람도 100% 남에게 도움만 주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도움만 받는 사람도 없는 세상에서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으로 구분시키는 고정관념이 없어지는 것이요,
장애를 가진 목회자와 장애를 가진 교우들과 함께 하는 비장애인 성도들의 모습이 더 이상 특별하거나 놀라운 일이 아닌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보이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 2004. 5 - .
누가 우리를...끊으리요?
사람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 이라크에서의 미군과 영국군들이 저지른 끔찍하고 잔혹한 포로학대는 기독교의 ‘하나님’이든 이슬람의 ‘알라’든 용납되지 못할 행위입니다.
미 여군 린디 잉글랜드(Lynndie England)일병은 정신의학적 축면에서 보면 전쟁중독증 환자, 즉 고엽제나 생물화학전에 노출된 환자와 다름없으므로 군에서 전역(제대)한 이후에도 그와 유사한 행동을 저지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라크 포로들에 대한 그들의 모습은 먹이로 사로잡힌 동물을 갈갈이 찢는 맹수들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러한 끔찍한 행위를 저지르고 있던 그녀의 몸속에서 그러한 그녀의 신체적인 영향과 정신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한 생명이 조직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녀는 임신 4개월째를 맞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태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녀는 “엄마, 나는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어요 (Mom, I was in the wrong place at the wrong time)” 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적어도 자신이 잘못된 장소와 잘못된 시간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면 그녀는 죄의 길에 서지 않는 것이 복(시1: 1)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나는 인간성마저 무너뜨려 정신부재(精神不在)의 사막으로 만들어버리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사람이 얼마나 악(惡)해질 수 있는가를, 그리고 얼마나 약(弱)해질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강(强)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계를 경악하게 하는 세기의 마녀(魔女)가 되어버린 린디! 그녀가 과연 강한 것일까요?
악한 것이 곧 강한 것은 아닙니다. 분별력을 잃은 채로 상황이나 감정이나 욕심에 이끌려 다니며 변질되어가는 것, 현실이 힘들어질 때 무너지고 포기하는 것, 그리고 회피하거나 파괴적인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야말로 약한 것이지요.
악한 것이 강한 것이 아닌 것처럼 선한 것도 약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으로 강한 것은 선(善)이요, 악(堊)한 것이야 말로 약한 것이지요. 그러기에 그분 안에서라면 우리가 비록 약한 존재일지라도 강한 자가 되어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살아가면서 어려움과 아픔을 소망 중에 잘 이겨나가는 진정으로 강한 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로마서 8 : 35-
사고로 시각장애를 갖게 된 어린 아들의 아픔을 흔들리지 않는 잔잔한 평온함으로 삭여 나가는 안개꽃처럼 고운 여인이 있습니다. 연약한 듯 하지만 주님 안에서 강한 이삭 엄마 노서운님이 며칠 전,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로 건강한 쌍둥이 아들을 출산했습니다.
오늘은 그녀가 출산 전에 보내온 편지를 끝으로 6월의 편지를 마치려합니다. 슬프고 살벌한 세상에서도 뻐꾸기 소리와 함께 갓 그린 수채화처럼 신록이 숨쉬고, 꽃은 꽃으로 피어나는 여기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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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목사님,
지난 주일에 이삭 아빠와 가슴을 두근거리며 열어본 우리 쌍둥이들의 이름에 깊은 감동을 받으며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답니다.
이름 밑에 쓰인 성서의 의미처럼 ‘힘’과 ‘샘’을 선물로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주신 목사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목사님께서 주신 글을 액자에 담아 올려놓고 저희 가족들은 "힘아, 샘아." 하며 자꾸 불러 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출산일을 앞두고 우리 이삭이는 엄마 뱃속에 쌍둥이가 빨리 낳아 엄마와 함께 교회에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베데스다로 우리 가정을 보내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은혜, 그 모든 것들은 이삭이가 아니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깊은 실의에 빠져 있던 이삭아빠도 베데스다 목사님과 성도들, 그리고 그곳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하는 가운데 많은 안정을 찾고 주님께 가까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마음 한 켠에 용서하지 못하는 티끌들조차도 언젠가 다 없애 주시리라 믿으며 요즘은 더욱 착해 지는 일, 예쁜 생각, 좋은 생각만 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그게 쉽지 않네요.
목사님께서 기도하시며 꿈꾸시는 사목과 모든 사업들 가운데 저희도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함께 힘을 실어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소망은 결코 거창하고 큰 무엇이 아닌, 다만 이 땅에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이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모두가 편견 없이 함께 사랑하며 행복할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봄비가 촉촉이 내립니다. 목사님,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제 삶에 목사님 같은 분을 만나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뒤에서 늘 목사님을 위하여 기도 중에 기억하겠습니다.
2004. 5. 12 노서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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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6월 .
자 랑
자식을 둔 부모에게 있어서 자랑하고 싶은 자식이 있는 것보다 신나는 일이 없는 것처럼 목회자에게 있어서는 자랑하고 싶은 성도가 있는 것보다 신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반면에 자랑할 만한 자식이 없는 부모나 자랑할 만한 성도가 없는 목회자라면 아무리 다른 조건들이 다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행복할 수가 없겠지요.
요즘 매월 당신에게 편지를 쓰면서 내 사역 속에서 체험하는 감사와 기쁨을 당신과 더불어 나누고자 하는 나의 모습이 혹 자랑이 되지나 않을까하는 우려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내가 누리는 이 빛나는 감사와 기쁨이 혹시라도 자랑으로 전락하는 일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거의 십년이 되어가는 봉고차 한 대로는 운행이 어려워져 아무래도 두 대는 운행해야 될 것 같아 지난여름 12인승 노란 스타렉스를 구입할 때에도 차 구입을 위한 특별헌금이 자원하여 드려졌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후원금으로 운영해오면서 외부로부터 많은 사랑과 도움을 받아온 사실도 은혜요 감사지만 교회 자체 안에서 이루어 주시는 은혜는 더욱 깊은 감사가 아닐 수 없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낡은 봉고차가 계속 수리비가 들고 브레이크가 갑자기 작동을 하지 않는 일까지 생겨 15인승 새 차를 구입해야할 여건이었지만 아직 공사비 대출금도 상환하지 못한 상황이라서 생각다 못해 최장기 할부로 구입하는 길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차 구입을 위한 특별헌금이 즉석에서 드려져 3일 만에 카키색 15인승 봉고가 현금으로 출고되었습니다.
새 차를 마련하게 된 사실이 기뻐서 만이 아닙니다.
새 차를 구입하기 위해 드려진 헌금의 액수가 소중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자원하여 기쁨으로 행하는 헌신의 모습이, 그렇게 그분 안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모습들이 자랑스럽고 소중한 때문입니다.
누군가 고생(苦生)은 곧 고생(高生)이라고 했습니다.
차원 높은 삶, 그리하여 한계를 초월한 승리의 삶인 고생(高生)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고생(苦生)의 삶이 전제되는 것으로 그것은 십자가가 곧 부활이요 부활이 곧 십자가이듯 고생(苦生)과 고생(高生)은 ‘두 나’이면서도 하나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 와서 영생을 구했던 부자 청년은 풍족한 상태에서 영원히 살기를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부자 청년이 예수께 물어본 영생이 장생(長生 - everlasting)의 의미라면 예수께서 부자 청년에게 대답하신 영생은 고생(高生 - eternally)의 의미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에게 ‘네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그 후에 나를 쫓으라는 고생(苦生)이 전제된 삶을 제시한 것입니다.(마19:16-20)
물질을 의지했던 그에게 있어 구원이란 바로 그 물질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지요.
많은 사람들에게 그분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버리고 나를 쫓으라’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사람에 따라 권력일 수도, 능력일 수도, 사람일 수도, 건강일 수도, 명예일 수도, 미모일수도, 좋은 여건일 수도 있습니다.
성도들로 인하여 기쁨과 감사를 누리는 나에게는 어쩌면 그분을 향한 시각이 근시안(近視眼)이 되어 사람을 보게 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게 기쁨과 보람을 안겨주는 교회의 지체들일지라도 그것을 의지하게 된다면 이미 그것은 유익한 것이 아니라 그분 앞에서 버려야 할 것이 되어 추상같은 그분의 명령으로 가슴을 치게 될 것입니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마18:9)
그러므로 지혜란 우리에게 주신 좋은 것들이 진정 좋은 것으로 있게 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오후 순서를 준비하려고 예배당에 올라가 보니 주일학교가 끝나고 간식을 나누는 시간이었는데 곰돌이처럼 오통통한 준호는 과자 두 봉지를 받아들더니 마치 강아지처럼 저쪽 구석으로 가서 거기서 혼자 먹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와~ 우리 준호는 누가 뺏어 먹을까봐 여기 와서 혼자 먹는구나!” 했더니 수줍게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는 그 눈빛이 전혀 자폐아 같지가 않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적어도 내가 볼 때에는 장애아이가 아닙니다.
나름대로 특징은 가지고 있지만 어느 아이들보다도 귀엽고 소중합니다.
뿐만 아니라 장애를 가진 교사나 비장애인 교사나 모두 하나가 되어 한 아이, 한 아이의 특성을 이해하면서 한 아이를 마치 열 명의 아이들보다 더 큰 비중을 두고 사랑하는 교사들의 땀을 흘리는 모습도 참으로 거룩하고 아름답습니다.
나는 때로 고슴도치 목사가 되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우리 성도들을 자랑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사도 바울처럼 나 역시 궁극적으로 자랑할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임을 다시금 다지면서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나의 바람을 기도로 드립니다.
완벽보다는 겸허를, 능력보다는 성실을, 비판보다는 긍휼을, 개선보다는 인내를, 그리고 열정보다는 변함없이 지속적인 믿음을 그리고 아울러 나도 7월의 녹음 같은 풋풋한 생명력으로 그분의 품에서 숨 쉬며 언제까지나 그분의 소중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 2004. 7 - .
다람쥐 쳇바퀴
새벽녘, 방죽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논(畓)위를 하얗게 적시는 신비로운 사랑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느새 파란 모들은 무더위 속에서도 바람결에 일렁일 정도로 자랐습니다.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생명의 역사, 능동적인 생명의 노력을 나는 자연 외에도 요즘 어린아이들에게서 발견하고 있습니다.
사고로 시각장애를 갖게 된 이삭이는 9살 나이답지 않게 키도 크고 힘이 셉니다.
그 아이가 어느 날 교회 마당에 있는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 걸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삭의 여동생 이다가 발견했습니다.
순간 이다는 어린 마음에도 오빠가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는지 급히 쫓아가더니 마치 어린아이에게 자전거를 태워주는 어른처럼 한쪽 손으로는 핸들을 잡고, 한쪽 손으로는 자전거 뒤쪽을 잡고 힘 센 오빠가 페달을 밟는 속도를 쫓아가느라 츄리닝 바지를 입은 짧디 짧은 두 다리가 그야말로 찢어져라고 달리는데 두 다리를 바퀴보다 더 재빠르게 돌려대며 중간에 포기하지도 않고 악착같이 붙잡고 끝까지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나이답지 않게 철이 든 이다의 행동이 기특하다는 생각에 앞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집에서는 어리광을 부리며 엄마하고만 자려고 한다는 그 어린아이에게서 어떻게 저 순간에 저렇듯 강한 보호의식이 나타날 수 있을까,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이다는 그렇게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폐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학교로, 미술학원으로, 그리고 특수 조기교육까지 받으며 매일 매일 바쁘게 생활하고 있는 동초등학교 3학년 남기는 아직도 자신감 부족으로 큰소리를 지르지 못합니다.
그 자신감을 기르기 위해 체육관엘 다니는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요즘 입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매일저녁마다 인나인(in-line)으로 운동장을 몇 바퀴씩 도는 운동을 하는 것도 요즘 남기의 일과 중 하나입니다.
체육관에서 지쳐서 돌아오는 날에도 운동을 쉬지 않고 일상의 룰을 지속적으로 지켜가는 남기는 몸살을 앓을 때는 이제는 학교만 다니겠다고 했다가도 몸살이 나으면 다시 빠짐없이 열심히 다닙니다.
취학통지서가 나올 즈음에는 학교에 들어갈 때가 된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학교 앞을 지날 때마다 말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에서도 힘들게 “엄마, 남기 학교....” 하면서 학교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계속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남기는 비록 건강한 아이들보다는 불편하고 힘든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자기에게 주어진 여건에서 매일 밤 빠짐없이 일기를 쓰며 간간히 엄마에게 커피나 홍차를 끓여 대접까지 하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 생활공동체 가족인 상평초등학교 4학년인 세영이는 여름방학을 맞아 외갓집엘 가면서 주일학교 찬양대를 한 주간 빠지게 되는 것이 걱정이 되어 교회 홈페이지에다가 부탁과 당부를 올리고 갔습니다.
자기가 없어도 다른 대원들이 찬양 연습을 큰소리로 열심히 하라고 누누이 당부를 하는 것으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지 ‘찬양대를 지으신 하나님께’라는 제목으로 함께 찬양을 하는 친구들과 찬양을 지도하는 집사님, 그리고 반주하는 선생님을 위한 간절한 기도문까지 올려놓고 갔습니다.
어른들의 보호 속에만 있는 것 같은 어린아이들도 이렇게 나름대로 열심히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고 있음을 볼 때 그분의 역사는 어른들 뿐만이 아니라 어린아이들의 삶을 통해서도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시어머님의 병환으로 7월 한 달 동안 이발봉사를 하지 못한 박정아 님은 전에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이 때로는 답답하게 생각되기도 했지만 이번에 어머님의 병환을 통해 건강에 대한 소중함을 체험하면서 다람쥐 쳇바퀴 도는 날들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음이 행복임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아, 사소한 일상의 소중함이여, 그분의 뜻은 꼭 특별한 일만이 아니라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정체된 듯이 가만히 서 있는 나무가 있는 자리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므로 사랑을 공급하고, 우주의 수많은 별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지구별이 지금도 열심히 돌면서 역사를 이루어 가듯이 말입니다.
- 2004. 8 - .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
아직 남아있는 초록의 끝을 안타깝게 잡고 있는 잎새들의 마지막 떨림으로 여름은 가고 있는데 숲에는 온갖 풀벌레 소리가, 세상에서는 온갖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오늘 귀에 들려오는 사람의 소리들을 예수의 길을 따라가는 우리의 사고로 한번 걸러져야만 될 것 같아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한창 감성이 예민하던 사춘기 시절에 허근욱씨의 ‘내가 설 땅은 어디냐’라는 자전적 소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공산주의자의 딸로 태어나 이념이 무섭게 대립되던 시대의 틈바구니에서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남한에서는 그 아버지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딜 가든 질시와 경계의 대상이 되어 억울하게 옥고까지 치르는 곤욕의 삶을 살아야했고,
북한에서는 월남을 했었다는 이유로 역시 감시와 적대의 대상이 되었던 그리하여 그야말로 발 디딜 땅이 없었던 처절하고 고독했던 그녀의 고백은 나로 하여금 그 시절, 인간애에 대한 회의와 함께 세상이 싫어지게 했습니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그 내용이 지금 생각나는 이유는 요즘 정치인들 가운데서 부모가 친일(親日)이었던 이들을 색출하고 있는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5공의 주역들이 정치계를 장악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한 조상의 허물을 그들이 죄목으로 만들어 징계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바른 처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내 나라를 빼앗기고 종주국의 노예가 되어 민족을 배신하는 삶을 처음부터 원했던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내 나라 내 민족의 주체성을 지키지 못했던 그들의 잘못은 있지만 눈앞의 이익과 일신의 안일을 위하여 나라와 민족을 배신하는 일들이야 지금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요.
그러나 그런 실패한 오욕의 삶이 그들 당대에서 끝나지 않고 상대를 헐뜯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 조상의 잘못으로 그렇잖아도 괴로워하고 있을 후손에게 전가시키는 행위가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에스겔 시대에도 조상의 죄를 후손에게 전가시키는 행위에 대해 ‘아비가 신포도를 먹으면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겔18:2)라고 책망함을 볼 수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일이라면 차라리 역사의 어둠에 묻혀 질병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독립투사들을 찾아서 예우하는 일이 더 아름답겠지요.
역사의 허물을 후손들에게 돌려 그들로 하여금 질시의 대상이 되게 하는 것은 조상의 무덤을 자기들의 손으로 훼손하는 이완용의 후손과 같은 이들을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도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로마의 속국이 되어 오욕의 치하에서 고통 받는 유대민족으로서 일신의 안일과 부를 위하여 종주국의 노예가 되어 동족의 피를 뽑아먹던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를 만나러 뽕나무 위로 올라가는 모습입니다.(눅19:)
그 정도로 그는 양심의 괴로움으로부터 구원 얻기를 갈망했던 것입니다. 그 때 그의 곤고함을 아시는 예수께서 그를 받아주시자 삭개오는 그 순간에 삶이 변화되며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회개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아비의 악(堊)을 삼, 사대까지 보응하겠다(출34:7)는 말씀은 조상들의 삶의 방식을 답습할 수 있음에 대한 우려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조상의 행위에 대한 자책과 부끄러움으로 이미 받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 죄에 대한 벌을 우리가 그들에게 주라고 하신 명령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도 잡초처럼 자꾸만 차오르는 감정과 비판과 숨 가쁜 분노는 무던히도 뜨거웠던 지난여름의 열기처럼 보내고, 모든 것들을 대기의 투명함처럼 그분의 뜻으로 조명해 볼 일입니다.
예수님처럼 간음한 여자와 흥분한 군중들을 앞에 두고 무엇인가를 땅바닥에 쓰면서 얽히고설킨 문제들을 정리해 본다면 누구에게든 함부로 돌을 던질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요18:3-11)
성경은 오고 가는 시대에 삶의 가장 바른 해답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 2004. 9 -
여행, 또 하나의 선물
단체로 떠나는 여행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스스로 가방하나 들 수 없는 신체적 여건에서
혼자 3박 4일의 일본여행을 떠나기까지는 나름대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구더기가 무서워도 장을 담그겠다는 결단으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인천공항에서 이륙한 아시아나 항공기는 일본 나리타공항에 착륙했고, 기간동안에 일본 3대 항구(요꼬하마, 오오사카, 고베) 중 하나인 요꼬하마의 습하고 강한 바닷바람 속에서 썬캡으로 아예 얼굴을 다 가리운 채 챠이나타운과 공원등으로 돌아다녔습니다.
챠이나타운 거리에서는 아이들처럼 군밤을 받아먹으면서 다녔고, 하늘 높이 뿜어져 오르는 공원 분수 벤치에 쌍쌍이 얽혀있는 젊은이들을 보며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임을 실감하기도 했습니다.
후지산이 반사되는 가와구찌 연못(모두가 화산폭발로 인하여 천연적으로 만들어진 연못)이 있는 가와구찌 호텔에 묵으며 연못에 반사된 후지산과 아침에 일어나 연못 너머로 보이는 후지산을 감상했습니다.
화산폭발로 생긴 산으로 언제 또 폭발하여 피해를 입게 될지 모르는 위험을 안고 있는 산을 일본인들은 신성시하여 평생 그 산을 화폭에 담는 일에 일생을 바치는 화가와 그 산을 촬영하는 일에 일생을 바치는 사진작가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후지산은 일본의 3대 길몽(후지산,독수리,가지)에 속하며 지금도 산에 오르면 여기저기에서 하얗게 연기가 오르고 있어 거기에 구웠다는 껍질이 까만 달걀이 한 개를 먹으면 수명이 3년 연장된다는 말과 함께 팔리고 있었습니다.
차로 오를 수 있는 한계인 3/2까지를 오르니 세차게 부는 찬바람에 머리가 온통 갈래갈래 흐트러지고 날려 어쩔 수 없이 가게에 들어가 모자를 하나 사서 쓰고 신사들을 몇 군데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등록되지 않은 신사만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난히 종교심이 강한 일본인들, 그러나 어디에도 교회당 십자가는 찾아보기가 어려운 그 땅에서 나는 문득 사도 바울이 아테네 시민들에게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들의 강한 종교심이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쓴 단까지 만들어 섬길 정도였던 것처럼(행17: 22-23) 일본인들은 자기들의 취향대로 생활 곳곳에 수많은 신사들을 만들어 놓고 인생만사를 거기에 빌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신으로 만들어 섬기는 그들의 신앙을 보면서 나는 참으로 엉뚱하게도 그곳에 예수신사(?)를 만들어 놓고 선교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해보았습니다.
동경으로 들어서자 습한 바람 대신 건조한 가을햇살이 한결 개운했습니다.
고가도로로 동경시내를 돌아보고 밤에는 젊은이들의 거리라는 신쥬큐 거리를 긴 머리를 묶고 악세사리를 파는 남성, 초미니 스커트 차림의 아가씨들이 물결을 이루며 붐비는 인파를 헤치고 걸었습니다.
천황이 산다는 황궁 앞 넓은 잔디밭은 소나무들이 일품이었는데 그 소나무 그늘마다 노숙자들이 누워있었습니다.
그들은 일을 하지 않고 유효기간이 끝나가는 식품만으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햇살 아래 늘어져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이 추구하는 삶은 무엇일까를 잠시 생각해보고 있는데 천연염색 개량한복을 입은 내 모습을 가리키며 벤취의 여학생들은 저희들끼리 “조센?”하면서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문명국이지만 건물구조마다 작고 타이트했고, 아파트 베란다마다 지진이 날 위험 때문에 샷시를 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건물처럼 그들의 사고도 타이트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한군데 둘러본 복지 시설도 자동문과 자동목욕기계 등 편리하게 기계화는 되어있었지만 노약자들이 생활공간에 자연친화적인 정서적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쓰다 보니 부정적인 면만 말한 것 같지만 일본인들, 그들은 검소하고 예의가 바른 사람들이었습니다.
기간 동안 휠체어 리프트가 있는 버스로 다녔는데 하루에도 몇 차례씩이나 내리고 오르는 일을 도우면서도 기사와 안내양은 늘 상냥한 태도를 잃지 않았습니다.
안내양은 처음에 리프트로 휠체어를 내리 오를 때마다 일본어로 하다가 다음부터는 한국어 책을 사서 공부를 했다면서 “올라갑니다” “내려갑니다”로 깎듯이 안내를 했습니다.
그 “올라갑니다” “내려갑니다”가 반대로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도 했지만 그녀는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피곤하고 지칠 무렵, 그리고 우리 땅이 그리워질 무렵에 여행은 끝이 나고 그림움의 날개라도 단 것처럼 귀국을 했습니다. 여행이란 시작할 때에도 설레임과 기대로 행복하지만 끝날 때에도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으로 행복하듯이 이 세상 여행도 그럴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2004년!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여러 가지 은혜와 함께 여행이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 2004. 10 -
속 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있는 한 끝까지 홀몸으로 살 줄 알았고, 또 그럴 거라고 단언을 해왔던 내가 푸른 잎들이 마악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10월에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놀라움을 인겨 주며 전격적인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은 나 스스로도 실감이 안 되어 한동안은 내가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였으니 다른 이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게 결혼이라는 새로운 출발을 통해 나는 그분 안에서의 새로운 사역을 부여 받은 것입니다.
신체적 장애라는 열악한 여건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삶 자체가 그분 안에서 감당해온 하나의 사역이요, 주의 일을 한다고 부대껴 온 것이 목회 사역이라면 새로운 사역은 ‘부부’가 되어 이루어가야 할 가정 사역과 한 사역자를 그분의 종으로 아름답게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늦은 나이에 더 많은 사역을 맡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동안 두 가지 사역을 내 삶에 마련해 주시고 감당하게 하신 그분은 새로운 두 가지 사역 또한 감당케 하실 것을 믿습니다.
결혼을 하기 전부터 피곤한 내 몸을 맛사지 해주는 신랑이 거의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살아온 신체적 콤플렉스인 내 다리와 발을, 내 마지막 자존심을 감싸주듯이 따뜻한 손으로 졸음을 참아가며 정성껏 맛사지 해 주는 순간, 나는 하나가 되어가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두 개의 공예품을 접착시켜 하나로 만드는 작업을 보니 맞붙는 부분의 코팅을 사포질을 해 서 완전히 벗겨낸 다음 속살이 나온 부분에 접착시켰습니다.
예수의 삶을 사는 우리도 그 분 앞에서 코팅된 껍질을 벗듯이 모든 것을 내보이는 고백으로 하나가 되어 그분의 생명으로 숨쉬며 살고 있는지를(요12:26) 신혼여행지인 제주의 천지연 폭포의 물보라 속에서, 비행기 안에서 하늘에 가득한 구름을 바다처럼 내려다보면서 생각해 보고 확인해 보았습니다.
내 삶의 이러한 새로운 변화가 열심히 헌신하고 기도하므로 노처녀 목사를 시집보내는 일까지 이루어 낸 내 사랑하는 교회 지체들에게도 힘과 기쁨이 되기를 바라며 늘 감사와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노서운 님의 아름다운 글로 11월의 편지를 마치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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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에세이
지난 토요일에 우리 가족이 다니는 베데스다 교회 최명숙 목사님의 결혼식이 있었다. 내가 최목사님을 알게 된지는 이제 겨우 1년 남짓하지만 결혼 발표를 듣는 순간 나는 그 누구보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은 그 분이 여느 교회의 평범한 목사님과는 다르게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또 다른 장애인들을 위한 아름다운 봉사의 삶을 살고 계시기에 그 삶이 소중한 열매로 맺어짐에 참으로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각 장애아인 아들 이삭이와 이제 5개월 된 쌍둥이 까지 있어 외출을 거의 못하는 실정인 우리 가족이지만 딸 이다와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아 목사님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휠체어를 타고 오거나 각기 다른 여러 종류의 장애를 가진 하객들이 아주 많은 결혼식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장애는 너무도 당당하고 아름답기조차 했다.
신랑 신부의 입장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곱게 머리를 올리시고 화사한 한복을 단아하게 차려 입으신 모습으로 휠체어에 오르신 아름다운 목사님을 뒤에서 묵묵히 밀고 오시는 멋진 신랑의 환한 미소는 장애의 아픔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내게 있어 베데스다교회가 아름다운 이유는 평범한 비장애인들 가운데 보석처럼 빛나는 장애인들이 있어 서로 서로 아무런 편견 없이 함께 할 수 있는 이유 때문이다.
이제 소중한 동반자의 삶을 살게 될 두 분의 삶 속에서 장애의 아픔을 가진 더 많은 사람들이 베데스다를 찾아올 수 있도록 더욱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도록 반석처럼 단단한 디딤돌이 되어 줄 것이라는 믿음과 소망 하나 가져본다.
목사님의 결혼 발표를 하던 날, 목사님의 어머니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장애를 가진 딸을 바라보며 늘 불안하고 안타까웠는데 이제는 지금이라도 눈을 감을 수 있겠다고....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의 심정은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으리라.
나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가슴으로 깊이 공감했다. 지금 내 옆에서 잠든 눈이 안 보이는 아들 ‘이삭’을 바라보며 이 아이보다 내가 먼저 눈감고 세상을 떠나는 일이 없게 해달라는 말도 안 되는 기도를 드리며 눈물을 흘린다.
2004년 10월 글.노서운
(이삭 몬테소리 어린이집 소식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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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11 - .
밥
오늘날까지 일을 해오면서 나는 비상식적이고 비계획적인 행동으로 인해 주위의 염려를 많이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타당하고, 안전하고, 가능한 일만 해왔다면 어쩌면 나는 지금껏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내가 있는 곳은 늘 벼랑 끝이나 절벽과도 같은 한계였지요.
7년 전, 이곳에 건축을 시작할 당시에도 주위 사람들의 걱정을 들었습니다. 조립식 단층으로 초라하게 지어야지 이렇게 완전 건축물로 지으면 누가 후원을 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다가 공사비도 없이 빈손으로 시작하면서 왜 지하까지 설계를 해서 공사비를 더 들이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현실적으로 타당하기에 나는 묵묵부답일 수밖에 없었으며 늘 한계에서 이론을 초월해 있었기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현명했고 나만 어리석은 것 같 보였지만 그러나 적어도 내가 가진 목적만은 타당했습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해 보인다고 해서 다 옳은 일이 아닌 것처럼 불가능해 보인다고 해서 잘못된 일은 아니지요.
그리고 바람직한 일이라면 분명 그분께서 이루어 주시리라는 어린아이 같은 믿음, 단지 그 뿐이었습니다.
상식 이하를 살아왔는지 상식이상을 살아왔는지는 몰라도 나는 ‘지구의 보석’이라는 과분한 찬사를 듣는가 하면 ‘불도저’라는 무지막지한 별명도 들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주위의 부정적인 견해를 안고 확보해놓았던 지하 공간을 3년 전에야 비로소 쉼터로 내부시설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인터넷과 독서시설, 차를 나누며 교제하는 탁자와 좌탁, 따뜻하게 누울 수 있는 바닥공간과 탁구와 당구시설까지 갖추면서 우리 지체들 뿐만이 아니라 신앙인들의 쉼터 공간으로 유용하게 사용되기 위한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지체들이 사용하는 주일 외에는 거의 비어있는 상황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평일에도 지하를 사용하는 반가운 이들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외출을 했다가 저녁 늦게 돌아와 보니 마당에 자전거 3 대가 있고 불이 켜진 지하에서 인터넷과 탁구를 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보였습니다.
알고 보니 근처 농공단지에서 일을 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일을 마치고 이곳에 와서 인터넷에 들어가 고국에 편지를 쓰기도 하고 탁구와 당구도 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전도사님이 그들에게 전도를 해야겠다고 내려갔다 오더니 예배드리는 교회가 따로 있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몇 년 전 이 근처에 있는 모 교회에서 ‘외국인노동자선교센타설립’ 행사가 있어 참여했던 적이 있었는데 아마 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거기서 드리더라도 그들이 부담없이 이 공간을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제공해주는 것도 소중한 선교지요.
훗날 그들이 고국에 돌아가서 일터 근처에 있는 어느 교회가 자신들에게 시설을 부담없이 사용하도록 배려를 해줬음을 기억하고 이야기 한다면 예수의 사랑은 거기에서 숨 쉬며 전해질 것입니다.
오늘도 불이 켜진 지하에서 탁구를 치는 모습들을 흐뭇하게 들여다보면서 우리 공간을 사용해 주는 그들이 참으로 고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들은 이 교회의 목사가 누구인지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를뿐더러 관심도 없습니다.
다만 여기가 교회라는 사실과 교회이기 때문에 외국에 와서 힘들게 살아가는 이방인인 자기들이 아무 때든지 편하게 쉬며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나 역시 목사의 이름이나 얼굴을 모르더라도 교회이기 때문에 그들의 밥이 되고 있다는 사실만 알아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진정으로 밥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상대가 온전한 인격을 갖추지 못했기에, 생각이 부족하기에, 허물이 많기에 밥이 되어줘야 하는, 그저 한 알의 밀알이 썩어져야만 열매를 맺는 진리를 살아내는 것이지요.(요12:24)
예수께서는 스스로 밥이 되어 먹히기 위하여 영생의 떡은 그렇게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 마지막 만찬을 통해 직접 자신의 살과 피를 상징적인 음식물을 통해서 먹여주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목적도 궁극적으로 먹히기 위함이건만 예수 사람이라는 우리가 먹히기 보다는 오히려 먹으려고만 하는 건 아닌지 모를 일입니다.
첫눈을 부르는 뿌연 하늘아래 서면 몸에 물을 내리고 하늘을 바라보는 나무처럼 살고 싶지만 때는 사랑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나도 아직 온전한 밥이 되기엔 멀었는가 봅니다.
- 2004. 1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