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빈은 2000년 KBS드라마 <가을동화>에 출연하면서 ‘꽃미남’ 타이틀과 함께 아시아를 휩쓸게 될 ‘한류스타’ 대열 선두에 자리 잡았다. 그 후 10년 동안 꽤 많은 한류스타들이 부상했다. 그들도 연륜이 들어가면서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자신들의 아우라를 형성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어느 정도 활동하다보면 말랑말랑한 멜로드라마에서 탈피하여 액션에 매료된다는 것이다. 꽤 많은 한류스타들이 피와 땀이 고스란히 베어나는 액션 드라마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한다. 이들이 앞서거니 뒤서니 출연한 영화를 잠깐 살펴보아도 그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권상우의 <야수>, 지진희의 <수>, 소지섭의 <영화는 영화다>, 송승헌의 <숙명>, 비(정지훈)의 <닌자 어쌔신>..... 원빈의 새 영화 <아저씨>는 어떨까. 이 영화는 이전의 영화들이 보여준 액션의 한계를 거뜬히 넘어설 뿐만 아니라 드라마로서도 잘 짜인 면모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원빈은 전당포 주인 차태식 역으로 출연한다. 그는 허름한 가게 2층집의 쇠창살 너머로 귀중품을 건네받고는 영수증과 함께 돈 몇 푼을 넘겨준다. 그에게선 가족의 의미나 과거의 추억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런 그에게 유일하게 살갑게 대하는 존재는 옆집 사는 소녀 소미뿐이다. 소미의 엄마는 나이트클럽의 무희이다. 위험스럽게도 암흑가 보스의 마약을 빼돌리다 처참하게 살해된다. 빼돌린 마약을 찾아 나선 악당들. 이 영화는 그동안 보아온 이런 유의 영화에서 많이 보아온 극적 요소들이 모두 나온다. 중국 흑사회 조직과의 거래, 동남아출신 킬러, 사채와 연계된 장기적출 밀매조직, 아동을 이용한 은밀한 거래, 그리고 보스를 제거하고 새로운 조직을 꿈꾸는 넘버 투. 물론 이들을 쫓느라 잠복을 거듭하는 강력계 형사들까지……. 이 모든 잔인하고 끔찍한 범죄 현장에 툭 내던져진 전당포 주인. 오직 그를 움직이게 하는 동인(動因)은 그에게 따뜻한 온정의 손길을 내밀었던 소미이다. 알고 보니 차태식은 군 정보부대 특수요원, 정보사 특수요원이란다. 형사들에게 주어진 정보로는 적진 침투, 요원암살 등 지극히 비밀스런 임무를 수행하는 위험천만한 살인기계이다. 실제 차태식은 눈 깜짝할 사이에 상대의 칼을 빼앗고 그들의 목을 딴다. 일말의 동정이나 가책, 실수도 없다.
우리나라 영화감독들의 안목이 넓어지면서 액션영화도 소름 돋을 만큼 잔인해졌다. 지진희의 <수>는 일본에서 활동한 최양일 감독의 영향인지 꽤나 ‘하드’한 액션장면을 선보였다. 류승완 감독의 <짝패>도 그러했다. 액션영화는 동네 깡패들의 소박한 주먹다짐 차원에서 벗어나서 칼날이 힘줄을 끊고, 육신의 일부를 산채로 도려내는 끔찍한 고문수준으로 진화했다. <아저씨>의 이정범 감독은 그러한 계보를 이어간다. 이번 영화에서 선보이는 잔혹함의 미학이라면 신속, 정확, 깔끔이라는 특수요원다운 액션을 보여준다는 것. (물론, 이들 영화의 자양분은 오승욱 감독의 <킬리만자로>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액션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이미지가 중요할 것이다. 적어도 제이슨 스타뎀이나 스티븐 시걸에게선 ‘내츄럴 본 액션스타’의 육체적 감각이 살아있다. 원빈의 <아저씨>는 그런 육화된 액션 이미지는 없다. 워낙 뚜렷한 꽃미남에 착한 눈을 가진 원빈이기에 그런 이미지 변신은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놈놈놈>과 <악마를 보았다>에 출연한 이병헌의 무서운 눈매 변신과 대비될 것이다. 원빈은 전작 <마더>에서도 그러했듯이 영화 속 캐릭터에 함몰되는 이미지 대변신보다는 그런 드라마틱한 캐릭터마저 자신의 이미지에 녹여내고(?)마는 본질적 부드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특수요원 출신이지만 따뜻한 가족 사랑과 그 기억을 간직한 차태식 역을 해내기 완벽한 배우인 셈이다.
옛날에 날리던 요원이 강호에 은거하다가 가족(혹은, 가족에 준하는 존재)의 안위를 위해 다시 현장에 컴백하는 액션 영화라면 전혀 새로운 것이 없는 구도이다. <테이큰>과 <맨 온 파이어>가 그러했고, 좀 오래된 아놀드 슈왈츠네거의 <코만도.1985>도 그런 내용이다. 엄청난 폭발력을 감춘 살인 킬러와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귀여운 소녀가 교감하게 되는 것은 둘 다 외롭고, 둘 다 세상에서 ‘제외’된 동류의식 때문일 것이다. <레옹>처럼 과묵한 킬러가 소녀와 밥을 먹고 화분에 물을 주는 장면에서 둘은 정을 느끼는 것이다. 소미 역을 맡은 김새론은 살인 킬러 차태식의 심성을 뒤흔들 만큼 뛰어난 감정 연기를 해낸다. 원빈만큼 최상의 캐스팅인 셈이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잔인하다. 국가의 안위를 위해 최전선에서 목숨을 내놓고 작전을 펼쳤던 그들이 사람을 죽일 때 폼생폼사하며 온 동네에 다 소문낼 만큼 요란스럽게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한된 시간에 정해진 타깃만을 정확하게 처치하고 바람같이 사라질 것이다. 제이슨 스타뎀같이 목격자를 양산하며 전적을 내펼치는 스타일이 아닐 것이다. 소미를 구하기 위해 악의 소굴로 뛰어드는 원빈, 충분히 멋있고 화려한 액션을 보여준다. 세상을 온통 잔인함으로 채우는 악당들도 꽤나 개성적이며, 적극적인 악역을 해낸다. 송영창의 연기야 달인 수준이며, 장기밀매를 하다 마약까지 손을 뻗는 야심찬 악당 만석 역의 김희원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태국의 타나용(Thanayong Wongtrakul)이란 배우가 동남아 킬러로 나온 것도 특이하다.
이 영화와 비슷한 시기에 이병헌의 <악마를 보았다>가 개봉되었다. 연쇄살인범에게 연인을 잃은 전직 국정원 요원이 광기에 사로잡힌 살인범에게 복수하는 내용이다. 이병헌이 바로 국정원 요원이다. 바야흐로 비밀요원의 복수극이 시작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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