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명의 光적인 天才보다는 한 명의 정상적인 평민이 낫다"? 이 영화를 보면서 시종일관 내가 느낀 점 3가지는 그 첫 번째가 無知의 다행스러움, 두 번째는 박지(博知)의 고마움, 그리고 마지막이 사랑의 위대함인 것이다. "뷰티풀 마인드"는 실제 수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존 포브스 내쉬 주니어의 일대기를 묘사한 전형적인 전기영화이다. 전기영화의 특징상 지루함과 타분함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뷰티풀 마인드"역시 그런 영화일 것이라는 기대를 했으나 영화를 다 보고 나서의 작자(It's me)는 전기영화의 전형을 탈피한 영화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내가 목숨을 부지하면서 살아온 24여년동안 봐 온 전기 영화중 최고의 점수를 주고 싶을 만큼의 대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영화이다. 영화 얘기는 이쯤하고 본론으로 들어갈까?한다.
태초의 지구상의 인간은 동물학적 분류에서의 그냥 직립보행하는 포유류에 불구했다. 유인원인 침팬지나 오랑우탄이랑 우리들과 틀린 점이 무엇인가? 물론 이러한 관점 역시 지금 우리가 과학이 발전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반문 역시 이상하리라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유인원과 만물의 영장일 수 있는 이유 역시 인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인간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유인원 혹은 포유류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사회라는 것을 만들고 또 인간만의 고유의 성질인 이성을 이용하여 도구를 만들어 좀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인간은 그러한 단순한 도구들만으로는 더 이상의 편안한 생활의 지속을 보장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은 약은동물이자 유인원인 동시에 단순한 미물이기에 좀더 편한... 좀더 쉬운... 생활을 찾을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또 한번의 이성과 사고를 사용하여 증기기관을 만들게 되었다. 수많은 시련과 역경속에서도 인간의 삶에 대한 편안함을 위한 욕망은 끝이 나지 않았다. 숱한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인간들은 드디어 편? 훌?삶을 위한 증기기관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산업혁명이후 만들어진 증기기관으로 인간의 삶에 일대 혁명이 일어난 셈이다. 인간에 끝없는 욕망이 증기기관에 이은 또 한번의 혁명인 컴퓨터의 등장을 부추겼다. 이러한 모든 기계의 발전은 모두 과학에 의한, 인간의 욕망에 의한 무한한 발전이다. 과학은 인간을 편리하게 만들었고 모든 경제, 문화활동 및 사회 전반적인 생활에 활력소가 되었다. 과학의 무궁무진한 발전은 인간의 끝없는 고뇌의 산물이며 증거들이다. 오늘날 이렇게까지 인류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의 욕망에 의한 것이라고도 단정지어 말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천, 수만명의 과학자들은 인간의 편한 삶을 위해 물신양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땀의 결실로 인해 안위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러한 과학자들에게 우리 같은 민간인들(?)은 무한한 존경과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만일 그러한 과학자들이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는 급한 용무 때문에 서울을 가게 됐을 경우에도 도보나 혹은 말을 타고 몇 달이 걸려서 도달했을테고 인터넷을 통한 편한 문화! 생활도 누리지 못했을 것이 아닌가? 확실한 것은 과학이라는 도구 때문에 인간의 삶이 편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인간의 욕망이라는 과학이 인간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인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인간은 모순 덩어리 그 자체이다. 인간은 그들이 만들어낸 과학들로 인해 자신들 스스로를 파괴하는 탈출구를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닌가? 영화 "터미네이터"를 보면 인간의 무한한 지능으로 인해 발단한 과학에 의해 인간사회를 지배하는 기계의 탄생을 예고한다. 그리하여 자신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기계로봇이 결국 자신들을 파괴하는 기계로 전락하는 이야기를 통해 과학의 무한한 발전이 결코 좋은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은 영화"매트릭스"에서도 언급한바 있다.과학의 발전이 결국 기계문명이라는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낸 셈이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 역시 이러한 과학의 발전을 통한 인간의 고뇌가 결국 천재 수학자 인생을 망치게 되는 결과를 낳게 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영화이다. 대작"뷰티풀 마인드"에 나오는 주인공 존 내쉬는 주위의 수학자들과 남다른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인! 간으로 나온다. 그는 다른 수학자들과는 다른 사고를 가진 사람이고 그러한 남들과 다른 천재적인 사고 때문에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또한 내쉬는 학교에서 요구하는 논문을 제출하지 못해 더욱 고민한다. 내쉬는 자신은 다른 학생들과는 다른 새롭고 혁신적인 논문을 제출하고 싶어하지만 그가 살고 있는 시대의 낙후성들 때문에 그의 혁신적인 생각은 빛을 발하지 못한다. 그렇게 남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다가 자신의 삶 전체를 흔들어 버릴만한, 남과는 다른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여기까지는 보통의 전기영화와 똑같은 견해를 보이는데 중요한 것은 그 다음부터이다. 내쉬는 결국 평범하게 그녀와 결혼을 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지만 자신이 느끼고 또 생각하는 것은 결코 평범한 사람의 삶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결국 자신의 친구들과 아내에 의해 밝혀지게 되지만 그들의 도움이 있기 전까지는 내쉬 자신도 자신의 삶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내쉬는 그때부터 정신분열증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는 필시 자신의 천재적인 두뇌에서부터 오는 정신적 압박이라고 볼 수 있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가 ? 율섦?국가정보원에서의 삶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신적 분열증에 의한 환각이었다. 너무나도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내쉬는 그의 천재적인 두뇌의 분열증을 결국 극복하지 못하고 자멸하고 만다. 이를 보고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난 내쉬를 보면서 차라리 내가 無知한 것이 너무나도 고마울 따름이었다. 나 자신이 과학자들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천재적인 두뇌에는 왜 그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아이러니이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불완전성이고 약삭바른면이 아닌가 한다. 무엇이든지 극단적인 것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오히려 내쉬를 보면서 내가 그러한 두뇌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내가 민간인(?)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고 나의 사랑스런 부모님에게 한없는 감사함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쉬는 차라리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했으면 하는 소망도 가졌을 것이다. 자신이 자신만의 독특한 천재성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을 때 그는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쉬의 아내는 이러한 내쉬를 결코 나무라지 않는다. 오히려 그를 사랑으로 감싸주고 병을 치료할 수 있게 도와준다. ! 내쉬의 아내가 아니었더라면 내쉬는 아마 자신과의 싸움을 혼자서 했어야만 했을 것이다. 과학의 힘은 대단하다. 그러나 사랑은 힘은 위대하다. 이는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보면서 시종일관 내가 느낀 점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해야하는 얘기는 사랑의 위대함이 아니기 때문에 그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한다. 과학이 무지를 걷어내는 교수님의 말씀처럼 스타크래프트의 오브로드나 사이언스 베슬임은 틀림이 없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학이 있음으로 해서 인간은 자신들이 모르고 지내던 면을 알아내고 필요한 부분을 파헤쳐내고 또 그러한 무지한 면들을 연구하여 영원한 지식과 지혜를 얻었다. 이(과학=사이언스 베슬)는 인간의 욕망이라는 '전체 map'에 거의 모든 면을 다 보여주고 찾아내는데 기인한 일등공신이다. 그러나 내쉬는 그러한 과학의 필수조건인 천재적 두뇌 때문에 오히려 파멸하고 말았다. 우리 일반 민간들은 천재들이 얼마나 많은 고뇌를 하고 고통받는 지를 모른다. 아마도 죽었다가 다시 인간으로 환생을 한다 하더라도 모를 것이다. 우리는 무지하다. 그래서 우리는 다행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또 연구를 할! 것이다. 그것은 인류가 천재지변에 의해서나 성경에 나오는 '아마게돈'과 같은 상황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에 말초적인 특징이며 절대불변하는 인간의 성격이 아닌가 한다. 인간이 무지에 대한 궁금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절대로 내쉬와 같은 정신적 분열증을 보이는 과학자 혹은 인간이 등장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내쉬의 일대기를 영화화한 "뷰티풀 마인드"가 세기의 명작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러셀 크로우 즉 내쉬는 자신의 분열증을 극복해 낸다. 이러한 내쉬의 생각은 자신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못한다면 자신 역시 다른 수학자들과 똑같을꺼라는 자신만의 자각?의해서 의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자신의 아내의 도움을 통해 과학의 위대함을 이겨내고 결국 새로운 경제이론을 만들어 낸다. 이는 결코 자신 혼자만의 영광이 아니라 아내의 영광이라고 아내에게 이러한 쾌거들을 되돌려준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아내에 대한...그리고 남편에 대한 위대한 사랑의 얘기가 아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 대한 평론이나 의견들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과학? ?현실에 대한 비판적 내용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저 이 영화를 한 천재적 수학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인간승리에 대한 내용으로만 일추시켜 버리는 내용들로 즐비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을 보고 나서의 나의 줄기찬 생각들은 온통 과학이 인간을 얼마나 처참하게까지 만들 수 있는가? 과학의 위대한 힘이 무지한 인간들을 얼마나 비참하게까지 만들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교수님이 요구한 답안도 그러한 것들이기에 나 역시 거기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극도로 무지한 인간이 절대적인 자연에 도전하고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과학은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인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학에 대한 도전으로 이한 인간의 파멸 역시 어쩔 수 없는 결과가 아닌가? 그러나 과학은 또 '필요선'이기도 하다. 이러 어쩔 수 없는 아이러니 때문에 과학은 날이 갈수록 더더욱 발전하고 발달하고 있다. 이연걸, 양조위, 장만옥 주연의 영화 "영웅"을 보면 이러한 대사가 나온다. "大義를 위해서는 少義를 희생해야만 한다." 과학의 발전, 인간의 편리함이라는 大儀를 위해서는 몇몇 인간들(과학자)의 ? 株萱?어쩔 수 없는 결과란 말인가? 그럼, 그러한 과학자들의 희생은 누가 보장해 준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과학의 발전에 편해지고는 있으나 정작 그러한 편안함을 위한 과학의 어두운 면에는 너무 무감각한 것도 사실이다. 과학은 앞으로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나갈 것이다. 그럴 때마다 과학의 어두운 면(인간에 대한 희생, 혹은 자연의 파괴 또는 인간 스스로의 자멸)도 고개를 들 것이다. 그러나 또 다시 그러한 어두운 면만을 등한시한다면 머지않아 우리는 T-1000과 "메트릭스"에 나오는 Matrix에 의해서 모두 소멸 당하고 말 것이다. 과학은 인간에 의해 발전했다. 그러나 또한 이러한 과학의 어두운 면들 역시 인간에 의해 극복할 수 있다. 존 내쉬의 意志는 대단했다. 인간의 의지 역시 대단한 것이다. T-1000과 Matrix에 의해 지구가 전멸당하지 않을려면 인간의 끊임없는 과학에 대한 견제와 과학만이 이 세상 모든 무지를 밝혀내고 벗겨낼 수 있는 사이언스 베슬이라는 생각을 버려야만 할 것이다. 완벽한 사이언스 베슬이란 있을 수 없다. 사이언스 베슬도 Upgrade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Defensive-Matrix도 되고 EMP shock-wave도 쓸! 수 있는 것이다. 과학을 똑바로 알고 이용하자. 과학은 불과 같고 칼과 같고 핵과 같다. 모든 과학의 부산물들에는 양면성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과학의 부산물들은 모두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에 의해 창출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과학을 무조건으로 맹신하다면 제2, 제3의 존 내쉬와 같은 정신 분열증의 환자들이 나올 수밖에는 없다. 과학은 憂惶淸心丸이 아니다. 절대 과학은 신이 아니다. 인간들이여! 과학을 무조건 믿지 말라. 그러나 과학을 의심하지도 말라. 과학은 오로지 투여한 결과만을 보여주는 거울일 뿐이다. 그대들은 과학을 믿는가? 그리고 나는 과학을 믿는가? 우리 내면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과학의 맹목성을 버리고 과학을 과학 그대로 받아들이는 안목이 필요한 것 같다. sbs의 명작 시트콤처럼 똑바로 살자. 그것이 과학이라는 족쇠로부터 우리가 자유로워지는 지름길이지 싶다.
첫댓글...... 님들이 올리신 글을 보니 저에게는 이 과제가 더욱더 큰 짐이 되어 버린건 아닌지....... 정말 난감하네요 이글을 쓰신분도 그렇지만 이글을 읽으실 교수님(교주님) 만만찮으시겠습니당^^ 저로서는 도저히 눈이 아파서 한사람의 글도 다 채 보지못할것 같은데 3학교의 레포트를 읽고 평가 하신다니.....
"목숨을 부지하면서 살아온 24여년동안 민간인(?)"임을 찬양해야겠어요. 그런데, 물론 인간이 과학이라고 하는 새로운 형태의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을 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간인임을 다행하게 여기는 것은 전투적인 면모가 부족해보이는 군요. 좀 더 적극적이면 어떨까요?
첫댓글 ...... 님들이 올리신 글을 보니 저에게는 이 과제가 더욱더 큰 짐이 되어 버린건 아닌지....... 정말 난감하네요 이글을 쓰신분도 그렇지만 이글을 읽으실 교수님(교주님) 만만찮으시겠습니당^^ 저로서는 도저히 눈이 아파서 한사람의 글도 다 채 보지못할것 같은데 3학교의 레포트를 읽고 평가 하신다니.....
"목숨을 부지하면서 살아온 24여년동안 민간인(?)"임을 찬양해야겠어요. 그런데, 물론 인간이 과학이라고 하는 새로운 형태의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을 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간인임을 다행하게 여기는 것은 전투적인 면모가 부족해보이는 군요. 좀 더 적극적이면 어떨까요?
아. 참. 그리고 학교 발표로 과제물을 대신하는 건데, 아주 노력해서 올리셨지요! 특별 점수 드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