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이 영화가 감독상과 작품상을 놓쳤을때 매우 허탈해하던 감독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를 해설하던 한국 사람은 '동양 영화에 대한 서양인들의 편견'쯤으로 평했으므로, 나도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이 영화가 그런 거창한 상을 수상했더라면, 오히려 아카데미상 선정자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릴뻔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의 치명적인 단점은 지나칠 정도로 엉성하게 구성되어 있는 플롯에 있다.
사건과 사건 사이의 필연성을 완화함으로써 무협영화가 주는 동적인 효과를 통속적인 사랑이 가져오는 정적인 효과와 결합하려는 시도를 감독은 의도했을 수도 있지만, 그리고 실제로 격투의 배경들은 그런 의도를 짐작하게도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의도되었든 아니든 그것은 완벽한 실패였다.
- 왕대인 가계의 미스테리
용과 파란여우는 제자와 스승의 관계인가? 아님 모녀관계인가?(아님 둘 다?)
전자라면 이들은 최초에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후자라면 파란여우는 왕대인과 어떤 관계일까?
용은 왕대인의 친딸일까? 양녀일까?
감독이 우리에게 주는 정보는 거의 없다.
- 이상한 제목
줄거리는 크게 세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리무바이와 수련의 사랑. 용과 호의 사랑 회상. 청명검 때문에 이 네 사람이 뒤얽히게 되었던 것.
그런데 이 네 사람 중에서 가장 비중이 떨어지는 것은 호. 그는 그저 '호방한 마적 두목에다 용을 지극히 사랑하여 객기를 부리는 자' 정도로 역할을 수행한다. 오히려 호 보다는 주인공으로 걸맞은 사람은 파란여우일 것이다. 그녀가 영화에서 하는 역할은 지나치게 크다. 그런데 臥虎藏龍이라니. 이게 대체 뭔 뜻인가?
- 그 밖의 것
파란여우는 왜 도둑질을 했던 것일까?
그녀의 전직은 무당파의 수련자였고, 리무바이의 스승에게 몸을 제공했고, 혹시 그래서 용은 리무바이 스승의 딸인가?
그렇다면 수련과 용은 배다른 자매인가?
비극의 결혼식 이후 용은 어째서 검을 휘두르며 돌아다니는가?
권모술수에 능한 용과 파란여우의 마차가 호에게 공격당했을때 용은 별로 무술을 잘하지 못했고, 심지어 파란여우는 기절까지 했다. 그럼 파란여우는 그 이후에 무당파로 들어갔나?
어릴적 부터 편법을 익혀 온 용은 그녀의 어미 혹은 스승이 훔쳐낸 秘書중 핵심부분을 찢어내 혼자만 익힐 정도로 영악한 여자였는데 어째서 리무바이는 그녀가 순수하다는 것을 알았고, 어째서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려고 기를 쓰는가? 하긴 장지이의 미모 정도면 모든 것이 용서될 수 있었을 지도 모르지.
이런 용이 늘 무림의 자유를 꿈꾸었다니...
용은 왜 마지막에 절벽에서 투신할까? 소원이 뭐였길래?
이안이 격투 장면을 좀더 현실적으로 묘사하려 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것은 이미 앞서 막차님이 잘 지적했던 바 있다. 최소한 물방울이나 바늘하나로 많은 고수들을 휩쓸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휴부님의 해석처럼 이 영화가 패미니즘으로 해석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휴부님이 마지막에 '청룡검'과 '리무바이'를 언급만 하고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이 아쉽다. 리무바이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청명검'이 갖는 상징은 감히 짐작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휴부님의 견해에 따라, 이미 용에 대해 감독이 패미니즘적 성향의 여성상을 부여하려 했다고 한다면, 청명검에 새겨진 용의 문양이 영화도중 몇 번 클로우즈업 되었다는 점, 청명검이 여성성을 상징하는 검이라는 점(반면에 수련은 자기의 주무기가 장검이라고 밝혔으므로 조금 덜 여성스러운 검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그리고 용이 그런 청명검을 훔쳐내었다는 점 등이 용에 대한 의미부여와 일치한다.
또, 휴부님의 이러한 견해는 수련과 용의 두 번에 걸친 장시간의 리얼한 격투 장면에서도, 그러니까 전통 고수의 입장에 선 여자와 인습적 굴레를 벗어나고픈 여자사이의 투쟁에서도 그 견해는 뒷받침된다.
그런데, 수련과 용의 싸움을 단순한 사랑 싸움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적어도 이럴 단서는 두 사람의 두 번째 싸움에 들어있는 것 같다. 아직도 이 두 사람이 왜 두 번째 격전을 벌였는지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질투는 아니였을지.
이러한 짐작은 마지막 동굴씬에서 리무바이가 용을 치료하는 광경을 수련이 보게 되는 그 장면이 아마 이 점을 뒷받침할 것이다.
리무바이를 좋아하던 수련은 리무바이가 용을 그의 수제자로 키운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미 질투가 났던 것은 아닐지.
용이 비극의 결혼식 이후 리무바이와의 대결에서 이겼다는 거짓을 말한다거나 쓸데없이 자신의 무력을 과시하는 것 모두가 리무바이에 대한 사랑의 한 표현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는 리무바이와 맞대결하기 위해 직접 리무바이를 찾았을 테니까.
어쨌든 이것 역시 억측인데..
그러나 패미니즘 영화로 보기에도 역시 한계는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는 용의 정확한 목적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녀가 무림의 자유로움을 원했는지, 무림의 최고수가 되기를 원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최소한 이 맹랑한 아가씨는 결혼식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순전히 한 사내의 아내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 같다. 용을 사랑하는 호라는 남자가 아니었다면 용은 결코 자의에 의해 인습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리무바이가 어떠한 수단에 의해서든 그녀를 무당파에 들이겠다고 한 언질도 어떤 보증의 역할을 했을 수 있지만...
그런데 용이 호와의 결투에서 빗을 찾으려고 그 고생을 하는 집념어린 고집이나, 비서의 중요 부분을 스승 몰래 찢어 감추고 혼자 연마하는 영악함은 용에게서 어떤 사회적 저항으로서의 패미니즘적 의식을 도저히 읽어볼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은 그저 그녀의 성격 탓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의미부여를 하든 간에 이 영화의 엉성한 줄거리는 참으로 짜증을 일으켰다. 이런 점에서 동사서독의 탄탄한 줄거리와 편집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최근에 본 몇 안되는 졸작 중의 하나이다.